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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1066화 (1,066/1,329)

12화

김지훈이 수술실에 섰다.

전문 병원 개원 후 첫 수술이자 담도공장 문합술을 복강경으로 시행하는 첫 시도였다. 긴장 속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대단했다.

‘이러다 손 굳는다. 릴렉스! 릴렉스!’

김지훈이 훅 숨을 내쉬었다.

사람이며 장비며, 심지어 수술대 위에 눕는 환자의 눈빛까지 모든 것이 낯익고 익숙했다. 하지만 수술 자체가 갖는 의미가 남달랐다.

‘양성이 나와 라파로로 담도공장 문합술을 시행하면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 처음인 만큼 췌장과 연결한 경험이 있다고 자신해선 안 된다. 방심하는 순간 언제든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김지훈이 수술 팀을 보았다.

서도훈, 송진우, 고경철, 고경아.

감히 최고라 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 꾸릴 수 있는 최선의 팀이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그들과 함께 노력해 가면 언젠가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을 것이다.

“마취 시작합니다.”

김진호 교수의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서도훈, 송진우, 고경철이 재빨리 수술 준비를 시작했다. 조용히 바이탈을 확인하며 마취를 지켜보던 김지훈이 손을 소독한 후 수술용 덧 가운을 입었다.

깊은 잠에 빠진 환자 앞에 섰다.

왜 이리 떨리는지 모를 일이었다.

최대한 가슴을 진정시켰다.

고경아의 침착한 눈빛이 상당한 도움이 됐다.

김진호 교수의 눈가에 걸린 자잘한 주름은 불안이 아니라 김지훈에게 보내는 확고한 신뢰였다.

“김 과장님, 수술 시작하셔도 됩니다.”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어떤 수술을 어떤 방식으로 하든 복강경 수술의 순서는 동일했다. 배꼽 상방을 뚫고, 공기를 주입한 후 카메라로 장기를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모든 장기가 정상적으로 관찰됐다.

담도에 초점을 맞췄다.

그 속에 숨은 종물을 밖에서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양성 종양 의심은 검사 결과를 토대로 한 의료진의 소견일 뿐이었다. 더욱이 악성일 경우 과도한 조작은 암 세포를 퍼트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

하기에 더욱 신중해야 했다.

주변 조직을 세세하게 살폈다.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이건 또 뭐야?’

절대 보이지 않아야 할 소견이 관찰됐다.

“서도훈 선생, 림프 노드(Lymph Node:임파절)가 커진 것 같지 않아? 혹시 전이된 걸까?”

악성 종양의 최대 문제는 전이였다.

다른 장기로 퍼지는 원격 전이는 사전 검사로 배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임파절이나 연결 조직으로 미세하게 퍼진 국소 전이는 실제 수술장에서 발견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서도훈이 신중하게 대답했다.

“확실히 커지긴 했지만 담도에 발생한 염증 때문이 아닐까요? 악성이면 종양 경계가 매끄럽게 보일 리 없지 않습니까?”

기대 섞인 전망을 잊지 않았다.

“송진우 선생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조직 검사용으로 몇 개 떼어 내자. 모스키토!”

‘전이 소견이면 안 되는데.’

김지훈이 슬며시 다가오는 불안을 밀어냈다.

림프절 전이 역시 암의 진행 정도를 파악하는 데 무척 중요한 요소였다. 특히 종양과 바로 인접한 부분인지, 다소 떨어진 부분에서도 암 세포가 발견되는지에 따라 국소 전이와 원격 전이를 나눈다. 최악의 경우, 일 기가 아닌 이 기, 삼 기로 변할 수도 있었다.

쌀알만 한 크기라도 눈에 보인다는 사실 자체로 불안했다. 이 조그만 조직과 담도 내 종양에 어떤 세포가 있는지에 따라 수술 방법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환자의 예후까지 말이다.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임파절 박리를 시작했다.

암이든 염증이든 주변 조직을 약하게 만드는 데다 임파절 주변에 미세 혈관이 상당수 분포하기 때문에 의외로 심한 출혈이 발생했다.

당황할 일이 아니었다.

다만 악성인 경우 출혈 자체가 전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최소의 조작을 통한 신속한 지혈이 필요했다.

“보비! 수처! 타이!”

서도훈이 눈을 껌벅거렸다.

김지훈의 기구 다루는 실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었다. 하지만 수술 테이프로 기구 조작만 봤을 뿐 최근 몇 년간 실제로 보진 못했다.

막상 집도 모습을 보니 생각 이상이었다.

‘출혈 때문에 시야도 잘 안 나오는데 너무 쉽게 하시네. 하긴 담도공장 문합술을 숨도 안 쉬고 라파로로 결정하신 이유가 있겠지. 후우! 따라잡기 쉽지 않겠어.’

딱히 틀린 말이라 할 수는 없었지만 김지훈의 속 모르는 생각이었다. 불과 하루 전의 고민을 알았으면 분명 같은 생각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임파절이 하나둘 박리됐다.

김지훈이 고경철을 보았다.

“고경철 선생, 이거 바로 조직 검사 의뢰하자. 최대한 빨리 결과 받아서 연락해.”

셀라인에 담아 보관한 임파절을 받아 든 고경철이 재빨리 수술실을 나갔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 고민하던 김지훈이 손을 내밀었다.

“모스키토!”

서도훈이 흠칫 놀랐다.

“전이라고 나오면 어쩌시려고요?”

“휘플 해야지. 임파절이 양성으로 나와도 문제야. 종양까지 양성이라는 소리는 아니잖아. 어차피 담도 내 종양의 악성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데 시간을 죽일 필요가 있을까? 진행하자. 보비!”

김지훈은 망설이지 않았다.

삐이이이이!

날카로운 작동음이 울렸다.

담도를 덮고 있는 조직을 빠르게 열었다.

노란빛이 감도는 담도 전면부가 드러났다.

‘암이 발생한 부위치고는 너무 깨끗해. 절대 양성을 배제할 수 없겠어. 이대로 진행하자.’

담도를 길게 절개해 종물을 노출시켰다.

임파절 전이 우려 때문에 상당히 불안했지만 수술 전 검사대로 상당히 매끈하고 경계가 뚜렷해 보였다.

때마침 수술실 내 전화벨이 울렸다.

김진호 교수가 직접 받았다.

“김 과장, 양성이랍니다.”

수술 팀 모두 눈을 빛냈다.

아주 적절한 시간에 무척 다행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김지훈의 말처럼 전이가 아니라는 사실만 확인했다. 종양 일부를 절제해 추가 조직 검사를 해야만 수술 방법을 최종 결정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악성 여부를 떠나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것과 좁은 틈새로 기구를 넣어 조작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였다. 최대한 안전하게 떼어 내야 하지만 샘플을 얻는 과정 자체가 상당히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김지훈이 이리저리 몸을 비틀었다.

종양이 담도 내부 깊숙이 위치한 데다 절대 무의미한 손상을 주면 안 되는 탓이었다. 기구 방향을 수차례 바꾼 끝에야 간신히 절제할 부분을 확보했다.

‘후우! 그나마 각도가 나와서 다행이네.’

“조직 검사용 팁 주세요.”

김지훈이 뭉툭하지만 작고 예리한 날이 달린 ‘ㄷ’ 자형 팁으로 종양 일부분을 잡았다. 서서히 손잡이에 힘을 주며 종물이 전하는 촉감을 느끼려 애썼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보다 너무 단단해. 설마 악성인가?’

사라지지 않는 불안이었다.

조심스럽게 좁쌀만큼 떼어 냈다.

출혈량이 적지 않았다.

염증이 심한 경우에도 마찬가지 양상을 보이지만 임파절 비대 때문인지 악성 여부를 추측조차 할 수 없었다. 더욱이 악성 세포가 점점이 박혔을 수도 있어 샘플 하나로는 오판할 가능성이 높았다.

여러 개의 조직이 필요했다.

담도 바닥에 면한 부분을 떼어 낼 때는 각도 자체가 나오지 않아 땀이 날 정도로 힘들었다. 상당 시간 용을 쓴 끝에 두 곳의 조직을 더 뜯어냈다.

그 탓에 출혈량이 더욱 많아졌다.

지혈은 더 힘들어 거즈를 흠뻑 적실 정도였다. 악성일 경우 혈액을 통한 전이 위험이 있어 김지훈이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외쳤다.

“보비! 거즈 들어오고, 시야 확보 확실하게 하자. 고경철 선생, 빨리 갔다 와.”

대기하고 있던 고경철이 수술복을 입은 채로 다시 내달렸다. 조직 검사만 급한 상황이 아니었다. 대충 지혈한 후 결과를 기다리다간 다른 문제를 유발할 것이 빤했다.

“보비!”

삐이이이이이!

하얀 연기가 시야를 가릴 정도로 지혈을 시도했지만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서도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잘 안 멈추는데 수처는 어떻습니까?”

“보이는 것 이상으로 딱딱해. 타이하다 더 찢어질 수도 있어. 보비로만 지혈하자.”

제법 오랜 시간 출혈과 싸웠다.

간신히 지혈했지만 극히 미세한 조작만으로도 다시 피가 터질 상황이었다. 종물을 더 이상 건드리지 않는 것이 답이었다.

수술이 중단됐다.

샘플을 들고 간 고경철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지?’

긴장이 고조됐다.

악성이면 고령의 환자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큰 수술인 휘플을 해야 했다. 반면 양성이면 복강경 수술의 어려움을 떠나 종물을 포함한 담도를 제거하고, 공장을 이어 주면 끝이었다.

환자에게 가해지는 부담이 천지차이인 것이다. 따라서 임시 검사라 해도 상당한 정확성을 요구한 탓에 시간이 많이 걸릴 상황이긴 했다.

빤히 알면서도 초조하기 짝이 없었다.

손 놓고 가만히 있으려니 생각만 복잡해졌다.

결국 초조함을 참지 못한 김지훈이 입을 열려는 찰나 기척을 최대한 죽인 발소리가 들렸다.

다다다다다다!

고경철이었다.

김지훈이 훅 숨을 내쉬었다.

“뭐래?”

“양성입니다.”

“확실해?”

“종양 샘플은 물론 임파절까지 여러 번 확인한 결과입니다. 악성일 확률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후우! 안도의 한숨이 터졌다.

이런 경우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극도로 희귀한 케이스가 진짜 현실로 다가왔다.

환자에게는 천운이었다. 반면 의사 입장에서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처음 시도하는 복강경 수술이란 거대한 벽이 남았다.

김지훈이 입을 꾹 다물었다.

중압감이 도리어 강해졌다.

전문 병원의 설립 취지와 목적에 맞는 질환의 첫 수술이자 첫 도전인 이상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욕심도 적지 않았다.

‘긴장하자. 침착하자.’

공존하기 힘든 상반된 각오를 다지며 눈빛을 굳힌 김지훈이 손을 내밀었다.

“담도 박리하고, 자르자.”

삐이이이이!

보비로 지져진 조직이 하얗게 변했다.

간에서 나오는 부분부터 췌장관과 만나는 부분까지 최대한 깔끔하게 박리하기 시작했다. 전면부는 거침이 없었지만 후복막과 면한 부분이 상당한 어려움을 안겼다.

김지훈은 멈추지 않았다.

수없이 경험한 과정이었다.

무엇을 주의해야 하고,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수처! 타이! 보비!”

자르고, 묶고, 지졌다.

담도가 환하게 드러났다.

“하부부터 처리하자.”

췌장관과 연결돼 총수담관이 되는 지점의 살짝 위에서 담도를 열었다. 미처 배출되지 않았던 녹색 담즙이 흘러나오자마자 송진우가 카메라 초점을 다시 잡았고, 서도훈이 재빨리 석션으로 제거해 시야를 유지시켰다.

훌륭한 호흡이었다.

사전에 충분히 준비했다는 말이기도 했다.

절개 면이 길어지며 담도 내 종양의 하부가 점점 확실하게 보였다. 덩달아 췌장관을 따라 흐른 소화액이 역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절대적으로 주의해야 할 일이었다.

“송진우 선생, 시야 확실히 확보해. 서도훈 선생, 담즙 확실하게 석션하고, 기구끼리 충돌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종양 하부 담도 자르고, 봉합부터 한다. 가위!”

고경아가 기구를 넘겼다.

손 안에 딱 잡혔다.

담도를 잘랐다.

옆으로 누운 Y 자 모양으로 췌장관과 합류해 총수담관으로 변하는 부위 직상방이었다. 작은 가위를 통해 상당한 저항이 전해질 정도로 강하고 질긴 조직이었지만 깔끔하게 절단했다.

가장 먼저 봉합해 막아야 할 부분이었다.

깊게 조직을 뜨다간 자칫 췌장을 건드릴 수 있었다.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작은 혈관이 많아 출혈의 위험도 무척 컸다. 만일 시야가 흐려진다면 봉합 자체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자칫 복강경으로 수술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적절한 긴장하에 고도의 집중력을 요했다.

‘후우! 여기서 실패하면 환자에게는 최악이고, 나 역시 경험조차 얻지 못한다. 신중하게 접근하자.’

김지훈이 첫 바늘을 찔러 넣었다.

연골처럼 단단한 담도 벽을 놓치지 않으려 최대한 주의를 기울였다. 한 바늘 한 바늘 수처를 진행할 때마다 뻥 뚫렸던 담도 절단면이 조금씩 닫히기 시작했다.

수술 부위가 모니터를 꽉 채웠지만 실제 봉합해야 하는 부분은 극도로 좁았다. 김지훈의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지만 바늘을 조작하고, 실을 조이는 손길에 어떤 무리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절단면이 하나의 선으로 변했다.

첫 고비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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