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1065화 (1,065/1,329)

11화

치료비 문제로 실랑이가 벌어졌을 수 있었다.

보호자가 제시간에 도착해도 미처 돈을 준비하지 못해 서로가 난처해지는 상황을 제법 보았다. 응급처치 후 이송해야 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왕왕 있는 일이었다.

김지훈이 급히 달려 나갔다.

‘돈도 돈이지만 지금은 환자부터 보내야 돼.’

잘못 짚었다.

어이가 없어 한숨을 쉬고 말았다.

“우리 병원 앰뷸런스가 한 대뿐입니다. 환자가 한 명 더 있는데 일단 남겨 둬야죠. 119 차량이 두 대나 왔는데 왜 안 된다는 겁니까? 아직 안 갔잖아요?”

“우리는 일단 병원에 환자를 이송하면 다른 병원으로 다시 못 옮긴다니까요. 응급실에 들어간 환자는 해당 병원 앰뷸런스를 이용해야 한다고 법으로 정해져 있는 걸 어떻게 합니까?”

공무원 마인드가 아니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실제 법이 그랬다. 개인 의원에 내원한 환자 이송 시 119를 이용하지 못해 택시를 불러야 하는 경우도 있어 희한하다는 말밖에 안 나오는 시절이었다.

어쨌든 원리 원칙을 따지기에 이송해야 할 환자가 너무 급했다. 남은 한 명의 환자도 치료가 가능할지, 보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두 대를 사느니 사설 앰뷸런스를 이용하면 비용을 많이 아낄 수 있다고 할 때 알아봤어. 하긴 외상 환자를 전문적으로 받을 생각이 없었고, 오늘 같은 경우가 많지 않을 텐데 틀린 말도 아니긴 하네.’

더구나 민정호의 제안을 받아들인 사람이 김지훈을 포함한 의료진이었다. 선입견 때문에 탓을 하는지 몰랐고, 119 대원에게 언성 높여야 답 안 나오는 일이었다.

김지훈이 재빨리 대안을 냈다.

“우리 병원 앰뷸런스로 환자부터 이송하세요.”

“과장님!”

원무과 직원이 당황했다.

십중팔구 두 명의 환자를 모두 이송해야 할 상황이라 판단하고 있었다. 전문 병원의 특성상 중증 외상 환자를 함부로 받기 힘든 것이 사실이었고, 그에 맞는 응급실 운영이 원칙이라고 교육을 받은 탓이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걱정 마세요. 구급대원이시죠? 대신 119 차량 한 대는 끝까지 대기해야 합니다. 만일 이송이 늦어져 환자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할 겁니다. 우리 병원 상황을 이해해 주십시오. 법보다 사람이 먼저 아닙니까?”

구급대원도 차마 거부하지 못했다.

다만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해 상부에 전화를 걸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내심 기가 찼지만 이해해야 할 일이었다. 허용되는 범위를 넘는 일을 독단적으로 처리했다가는 책임을 면치 못하는 처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디나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네. 이런 법을 고쳐야 할 사람들은 다 뭐 하고 있는 거야? 목소리 요란하고, 월급만 축낼 줄 알지 제대로 하는 게 없어요.’

씁쓸한 마음이 적지 않았다.

제법 시간이 걸린 후에야 대기가 결정됐다.

“대기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뇌 손상 의심 환자는 이미 수술이 가능한 병원으로 출발했다. 아마도 가장 가까운 병원이 아닌 대형 병원이 있는 서울로 갔을 것이다.

늦지 않게 도착하길 바랄 뿐이었다.

김지훈이 인사를 한 후 응급실로 달려갔다.

그때 문이 열리며 남은 환자 한 명이 침대에 실려 엘리베이터 앞으로 옮겨졌다. 피 묻은 가운을 입은 채로 손일석과 고경철이 급히 계단으로 향했다.

“손일석 선생, 뭐야?”

“간 손상이 의심돼.”

“다른 손상은 없어?”

“다행히 우리 과 문제가 다야. 들어올래?”

귀가 번쩍 열렸지만 손일석은 당당하면서도 확실한 써전이었다. 자신과 고경철의 능력이 못 미친다고 판단했으면 도움을 청하고도 남았다.

그런 써전이 수술을 결정한 이상 개입은 금물이었다. 더구나 이준영 교수에게 인정받아 간 이식 수술 팀 하나를 이끄는 손일석이었다.

‘경철이가 퍼스트인 게 약간 마음에 걸리지만, 일석이 결정이라면 믿고도 남지.’

김지훈이 빨리 올라가라는 손짓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나 김지훈은 참새요, 수술 방은 방앗간이었다. 무서운 속도로 머리를 굴려 그럴듯한 핑계를 찾았다.

기계식 리트랙터(Retractor:끌개)가 아무리 좋아도 사람 손만은 못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슬그머니, 그러나 후다닥 수술 방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었다.

“정말 들어오려고?”

“리트랙터 잘 걸어도 둘이 하긴 힘들잖아. 세컨이 있으면 더 편하지 않겠어?”

“당연히 편하지. 좋아. 허락한다.”

선심 쓰는 척 응급 수술을 들어갔다.

할 일이 많았다.

열성적으로 리트랙터를 끌며 매서운 눈빛으로 고경철의 손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손일석이 최대한 간을 보존하려 해 주어진 시간도 많았다.

‘자식! 날이 갈수록 좋아지네.’

네 시간 만에 수술이 끝났다.

결과가 좋았다.

마취에서 회복되는 내내 자리를 지키며 정상적인 호흡과 한결 좋아진 안색을 확인한 손일석이 피식 웃었다.

“중환자실 첫 번째 환자네. 그것도 간이잖아. 이것 참! 간 이식으로 세부 전공 바꾼 지 얼마나 됐다고 딱 맞춰 와. 119도 알고 우리 병원으로 이송했을까?”

“환자나 걱정하셔.”

“공연히 응급실을 들렀을 리는 없고, 장풍연 환자 때문에 나왔지? 내 환자 신경 쓰지 마시고 라파로 준비나 잘하세요, 과장님! 흐음!”

지난 일주일 내내 처졌던 손일석의 어깨에 힘이 팍 들어갔다. 역시 써전의 힘은 수술에서 나왔고, 최대한 빠르게 수술받은 환자에게도 큰 행운이었다.

김지훈이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예. 저는 공부하러 갑니다.”

“처형에게 연락하는 거 잊지 마.”

김지훈이 웃었다.

서울 병원 분위기에 취해 단 한 명의 환자가 얼마나 귀중하고 소중한지 잠시 잊고 있었다. 그만큼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입만 아픈 일이었다.

김지훈이 얼굴을 펴지 못했다.

췌장공장 문합술 테이프를 참조하며 수술 팀과 이미 한 차례 논의했지만 장기가 다른 이상 접근 방식부터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담도를 어떻게 처리할지, 이후 공장은 어떤 식으로 연결할지 고민할수록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점점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악성이면 고민하지 말고 개복하면 되지만 도리어 양성일 경우가 더 문제다. 담도 박리가 쉽지 않을 텐데 공장을 연결할 정도로 충분한 담도를 확보할 수 있을까? 간에 인접한 부분은 또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 T-tube를 넣어야 한다면 공간 확보가 만만치 않겠어.’

악성일 경우 환자나 의사에게 최악이지만 휘플이란 수술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만큼 어렵고 복잡하다 해도 고민할 사안이 아니었다.

양성이라면 완전히 다른 수술이 된다.

무엇보다 경험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부담이었다.

의사의 경험 부족은 환자에게 큰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었다. 대표적으로 합병증 발생 빈도가 급격하게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고령과 약한 체력을 감안할 때 사소한 합병증마저 치명적인 위험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환자가 먼저 라파로를 원했지만 한계에 몰렸던 최인선 환자와는 상황이 완전히 다른 케이스다. 은근히 긴장되네. 그냥 개복한다고 할 걸 그랬나?’

반면 대단한 의미가 있었다.

수술 자체가 김지훈은 물론 국내 의료계에서도 첫 시도일 가능성이 거의 100퍼센트에 수렴했다. 뿐만 아니라 췌장공장 문합술에 이어 휘플을 복강경으로 시행할 수 있는 귀중한 발판이 될 것이다.

솔직히 악성 여부를 떠나 담도 종양을 복강경으로 수술한다는 사실 자체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도 남았다. 전문 병원의 위상을 높이는 일에도 단단히 한몫할 것이다.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수술을 그리던 김지훈이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대부분의 양성 종양은 어떤 방법으로든 제거만 하면 환자의 목숨을 위협하지 않는다. 때문에 개복과 별 차이 없는 위험성이 존재하는 이번 복강경 수술의 예외성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큰 부담이었다.

온 가슴을 짓눌렀다.

‘악성일 때 도리어 편하게 수술할 수 있다고 생각되다니 웃기네. 어쨌든 우리 병원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수술이다. 환자와 병원의 미래를 위해 결코 실패해서는 안 된다.’

검사 결과를 찬찬히 다시 확인했다.

허탈한 미소마저 사라졌다.

종양의 크기는 불과 1센티미터 남짓이었지만 위치가 너무 안 좋았다. 기구를 조작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될지조차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병원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데 자신감만 떨어지고 죽겠네.’

생각 같아서는 서도훈과 송진우에게 연락해 상의하고 싶었지만 최종 결정과 책임은 오로지 집도의의 몫이었다. 둘 모두 서울에서 출퇴근한다는 사실도 감안해야 했다.

어느새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백날 고민해야 뾰족한 답도 없고 머리만 아플 뿐, 실제로 부딪쳐야 답이 나올 수술이었다. 쩝쩝 입맛을 다시며 병원을 나서던 김지훈이 슬쩍 응급실 상황을 살폈다.

손일석과 고경철이 심각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몇몇 환자만 누워 있을 뿐이었다.

분위기상 수술 환자 때문은 아니었고, 앞으로 환자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두고 논의하는 것처럼 보였다. 혹은 한산한 응급실 걱정을 하는지도 몰랐다.

‘사방팔방이 다 걱정거리네. 어차피 응급실이 아닌 외래로 승부를 봐야 하는 병원이다. 다음 주에는 간 이식 환자가 오기를 바라자. 어떻게든 생체 이식을 활성화시켜야 해. 후우! 서울 병원에서 진료하며 상의했던 환자들은 다 어디 갔을까?’

대형 병원인 서울 병원과 중형 병원인 전문 병원의 차이가 극명하게 느껴질 때마다 가슴이 서늘했다. 초반이라는 사실에 애써 위안을 가지려 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서서히 일요일 밤이 저물었다.

“지훈 씨, 내일 수술에 특별히 준비할 것은 없죠?”

“기구가 아니라 내 손과 수술 팀 호흡이 문제네요. 평소 준비하던 대로 해 주세요.”

“서도훈 선생님과 오래간만에 수술해서 불안해요? 이준영 선생님도 인정한 써전이잖아요.”

“나도 인정하지만 안 불안하면 사람이 아니겠죠. 게다가 한 번도 안 해 본 수술이잖아요.”

“그런 수술이 한두 번인가요? 호호호!”

맑은 웃음에 왠지 모를 자신감을 얻었다.

정말 과분한 동반자였다.

“우리 마님 덕분에 마음이 편해지네요.”

김지훈과 고경아의 나직한 대화도 희미해졌다.

***

월요일 아침이 밝았다.

이경석의 업무이건만 응급실부터 들른 후 한숨 두어 번 내쉬고, 유일한 입원 환자인 장풍연 환자를 보러 병동으로 향했다.

고경철이 차트 정리를 하고 있었다.

시간과 여건상 모든 스텝의 회진을 따라 돌 수 없기에 송재덕 교수와 이준영 교수, 그리고 과장인 김지훈까지 단 세 명만 담당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어깨가 으쓱거릴 일이었지만 한숨이 또 터졌다.

차트 높이가 낮아도 너무 낮았다.

텅 빈 송재덕 교수의 자리는 그렇다 쳐도, 모두들 주력이자 핵심이라 인정한 과장의 차트가 달랑 하나라니 눈물이 앞을 가릴 지경이었다. 전체적으로도 이준영 교수와 복강경 파트가 아니었으면 처참 그 자체였을 것이다.

전공의 수련마저 걱정됐다.

‘몸이 편한 건 좋은 일이지만 이런 식은 아니지. 이렇게 쭉 가다간 전문의 시험도 제대로 볼 수 없겠다. 장인어른에게 맞아 죽을지도 몰라.’

“고경철 선생, 오전에 뭐 해?”

“선생님 수술 참관할 생각입니다.”

“그래. 오늘 단 하나뿐인 수술이니까 잘 봐.”

“선생님, 혹시 써드 서면 안 됩니까?”

“어차피 보는 건 마찬가진데 왜?”

“참관보다는 써드를 서야 더 잘 보입니다.”

‘기특한 놈!’

“좋을 대로 해.”

대화를 나누고 나눠도 시간이 남았다.

단 한 명뿐인 환자가 주는 민망한 여유였다.

그때 수술 전 준비를 위해 장풍연 환자를 보고 나온 서도훈과 송진우가 재빨리 달려왔다. 급할 일 하나 없건만 바쁜 척해 줘서 고마울 따름이었다.

“선생님, 환자는 없지만 수술 전 다시 한 번 검토할 겸 회진부터 빨리 도시죠. 경철아, 뭐 해?”

‘도훈아! 꼭 그렇게 말해야 하니?’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올랐다.

송진우 너는 왜 덩달아?

기척 드문 복도를 지나 병실을 찾았다.

환자를 보니 복강경이나 개복이나 초조하긴 마찬가지였다. 수술 중 배를 열 수 있는 요인이 결코 적지 않아 긴장이 배가됐다.

코 줄, 소변 줄에 중심 정맥과 연결된 수액 줄은 환자에게 불편 이상의 고통과 불안을 안겨 주었다. 딸과 사위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선생님, 말씀하신 대로 결과가 나오면 꼭 복강경으로 성공해 주십시오. 잘 부탁드립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양성이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항상 해 왔던 것처럼 환자와 보호자에게 편안한 미소를 보인 김지훈이 병동으로 향했다. 환자 한 명 없는 송재덕 교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김 과장, 드디어 첫 수술이구나. 첫 수술. 처음 하는 수술이라고 긴장하지 말자. 환자 없다고 스트레스받을 이유도 없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소리도 있잖아. 시작이 반. 참 좋은 말이다.”

“걱정이 되긴 합니다.”

“내가 원장이다. 원장. 고민도 내가 하고, 스트레스도 내가 받는 것이 맞아. 김 과장은 오는 환자 열심히 보고, 수술 잘하면 된다. 의사에게 또 뭐가 필요하니? 뭐가? 그치? 내 말이 맞지?”

사실 가장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릴 사람은 송재덕 교수와 이준영 교수였다. 직함이 주는 부담과 제자들에 대한 책임감이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원장님 덕분에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네요.’

“감사합니다.”

“뜬금없이 뭐가 고마워?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환자 한 명도 없는 나다. 나야. 허허! 허허허! 가자. 가자. 수술하러 가자.”

왠지 모를 여유가 느껴졌다.

인생이 주는 경륜일 것이다.

꾸벅 인사를 하고 수술 방으로 향하던 김지훈이 지그시 이를 물었다. 지나친 한가함이 주던 갑갑함이 긴장으로 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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