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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1059화 (1,059/1,329)

5화

김지훈이 곧바로 결정했다.

“상행 결장 제거하자.”

이미 동맥은 모두 묶은 상태였다.

시간을 지체해서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수술 팀은 신뢰하고도 남았다.

그동안 대부분 간을 수술했지만 췌장암이나 담도암을 수술할 때는 반드시 장을 연결해 줘야 하는 과정이 있다. 당직 때마다 일복 터졌고, 사인방 중에서도 가장 탄탄한 기본기를 가진 김지훈이었다.

김지훈이 장간막을 따라 보비로 선을 그리고 곧바로 절제에 들어갔다. 기본기에 충실한 이혁원은 마치 대장 파트 펠로우라도 되는 것처럼 거침없이 손을 놀렸다.

거칠다고 할 정도로 빠르게 장을 절제했다.

여유가 없는 환자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모스키토! 타이! 컷!”

공장 말단부터 시작해 상행 결장 전체를 들어내고, 곧바로 공장과 평행 결장 연결을 시작했다.

수술 팀 모두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수처! 타이! 컷!”

어느새 연결 과정이 끝났다.

이제야 김지훈이 고개를 들었다.

마취과 당직의의 눈빛이 편안해 보였다.

띠띠띠! 띠띠띠!

심박동 소리가 다소 느려졌다.

모니터에 표시되는 혈압 역시 정상치 하한선에 근접했고, 산소 포화도는 도리어 높은 상태였다.

김지훈이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비장 파열 단일 손상에 비해 다발성 손상은 위험도가 급격히 상승하기 마련이었다. 숙련되고 노련해질수록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일이었다.

‘다행히 늦지 않았네.’

“수술 부위 확인합시다.”

그때 마취과 간호사가 다가왔다.

“선생님, 보호자 도착했어요.”

“들어오시라고 하세요.”

하얀 덧 가운을 입은 보호자가 주춤주춤 수술실로 들어섰다. 김지훈이 제거된 비장과 상행 결장을 가리키며 상황을 설명했다.

보호자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두려움과 긴장 때문에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수술 전 보호자 누구도 만나지 못했기에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조카는 괜찮습니까?”

“아직 두고 봐야 하고, 수술이 남아 있습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계십시오. 수술 끝난 후 설명드리겠습니다.”

김지훈이 다시 수술에 집중했다.

빠른 수술로 약간의 여유를 얻었다.

마무리는 단순히 배를 닫는 것이 아니라, 수술이 정확하고 안전하게 시행됐는지 확인하는 과정이기에 더욱 집중해야 했다.

꼼꼼하게 수술 부위를 확인했다.

더 이상 손댈 부분이 없다는 확신하에 수술을 마쳤다.

일주일 내에 퇴원할 수 없겠지만 환자 치료를 이어 맡을 사람이 박승준 교수였다.

‘운도 따르네. 하긴 어떤 수술을 했어도 나보다 훨씬 잘 치료해 주실 선생님들이 넘치는구나.’

환자가 무사히 깨어났다.

상당히 불안정한 상태였지만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아야 할 상황은 아니었다. 미처 얼굴도 보지 못한 보호자들에게 상세히 설명한 후 주말 당직 첫 수술을 끝냈다.

채 세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김지훈이 휴게실로 향했다.

‘무사히 퇴원하겠지?’

간단히 샤워하고 골똘히 환자 생각을 하다 말고 흠칫 놀라며 후다닥 회의실로 달려갔다.

‘회의 끝났나?’

벌써 끝났다.

아무도 없었다.

부재중 통화 역시 한 건도 보이지 않았다.

왠지 서운하고, 야속했다.

물론 이경석일 테지만 과장 자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적어도 결과를 받아들이고 축하했어야 할 자리를 함께하지 못한 탓일 수도 있었다.

“에이! 문자라도 남겨야 하는 거 아니야? 사람들이 말이야. 예의를 몰라요.”

투덜투덜 방금 전 수술한 환자를 보기 위해 병실로 향하던 김지훈이 부르르 떨었다.

휴대폰이 무척 격하게 떨렸다.

‘일석이겠지? 자식, 경석이 형 다음으로 과장 하겠다고 현수 닦달한 것 아니야?’

별생각을 다 하며 휴대폰을 꺼낸 김지훈이 돌연 허리까지 구부렸다. 아무도 보는 사람 없건만 마치 눈앞에 누군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예, 선생님.”

(과장 축하한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원장님과 충분히 상의해서 결정했다. 앞으로 일이 많겠지만 충실하게 해내기 바란다.)

“선생님, 그러니까 제가…….”

(자세한 내용은 현수 통해 들으면 된다. 끊는다.)

얼떨떨했다.

어안이 벙벙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전문 병원 규모가 기존 병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고 신설이라지만 명색이 대학 병원의 일부였다. 무엇보다 이준영 교수가 동의했고, 직접 전화까지 했다는 사실에 도리어 믿기 힘들었다.

‘내가 과장이라고? 과장?’

슬슬 입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과장으로서 보무도 당당히 회진 도는 모습을 상상하는 순간 소풍을 앞둔 아이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렇게 기쁜 소식은 가급적 빨리 나눠야 한다.

일순위가 누구인지는 생각할 것도 없었다.

어느새 고경아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경아 씨, 나 과장 됐어요.”

(지훈 씨, 축하해요. 정말 축하해요.)

김지훈의 목소리는 방방 날아가는 반면 살짝 떨리긴 했어도 따끈따끈한 새 소식을 듣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아내를 잘 아는 남편의 직감이었다.

“알고 있었어요?”

(결정되자마자 제부가 바로 알려 줬어요.)

“그래요? 목소리 괜찮았어요?”

(좋아하던데요? 제부가 말은 그렇게 해도 속이 무척 깊잖아요. 은근히 지훈 씨가 되기를 바란 것 같아요. 신현수 선생님하고 이경석 선생님 표정도 좋았다고 했어요.)

김지훈이 벅벅 머리를 긁었다.

분위기와 달리 혼자만 과장 자리에 욕심을 낸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한 사람만이 차지할 수 있었고, 축하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손일석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찢어지는 입을 주체하지 못했다.

김지훈 과장!

단순한 직함이 아니었다.

지난 시간 기울여 온 각고의 노력이 가져온 결실이었다. 동기들의 지지와 동의가 있는 이상 실력뿐만 아니라 세상을 잘못 살지 않았다는 증표였다. 더구나 빡빡하기로 이름난 스승의 추천과 동의가 있었다.

한껏 즐거워해도 좋았다.

카르페 디엠!

사인방과 함께 나눠야 할 일이 하나 더 남았다.

“혹시 응급실장은 누가 됐는지 들었어요?”

(이경석 선생님이라고 하던데요.)

‘잘됐네.’

바로 전화를 걸어 축하의 말을 주고받았다. 고경아 말대로 분위기 절대 나쁘지 않았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이 터졌다. 손일석과 신현수에게 고마운 마음도 잊지 않았다.

여기까지였다.

주말 당직이다.

“과장님, 환자 왔습니다.”

“아직 과장 아니다.”

“미리 연습해야 실수 안 하죠. 하하하!”

넉살을 떨며 연락할 때마다 과장이라 부르는 이혁원과 함께 뜨겁고 화려한 이틀을 보냈다. 파김치가 되고도 남을 상황이었지만 피곤조차 느끼지 못했다.

고경아와 뒤늦게 축하 자리를 가진 것이 아쉬웠을 뿐 몸은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칭찬 혹은 그에 준하는 일은 정말 고래도 춤추게 만드는 모양이었다.

***

마지막 주가 밝았다.

언제 또 올지 모를 편안한 한 주의 시작이었다.

외래 진료는 오창도 교수를 보조만 하면 됐고, 수술은 하루 이틀 내에 퇴원이 가능한 복강경만 잡았다. 알게 모르게 환자가 주는 스트레스가 대단했는지 마치 휴가라도 간 것처럼 마음이 편했다.

물론 부담을 모두 덜은 것은 아니었다.

전문 병원 준비를 소홀히 할 수 없었고, 전화만으로는 마음을 전하기 부족했다. 응급실장이긴 하지만 일순위였던 이경석까지 제치고 과장이 됐다는 미안함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한가함에 몸을 맡긴 이경석이 피식 웃었다.

“김 과장!”

“형, 쑥스럽게 왜 그래요? 평소대로 불러요.”

손일석이 눈을 흘겼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과장을 과장이라고 부르지 못하면 우리가 홍길동이란 소리야? 가뜩이나 심사가 편치 못한데 염장을 지르네. 어후! 이준영 선생님이 배신을 때리다니, 그럴 줄 몰랐어. 강호의 도리가 아니야. 현수야, 이 사태를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긴? 합의한 대로 해야지.”

김지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합의?”

“세상 날로 먹는 거 아니다. 과장이야. 그것도 최연소 과장. 술 사. 제일 고급진 걸로.”

“술? 사야지. 당연히 사야지.”

손일석이 어깨를 툭툭 쳤다.

“분노의 주먹 맛 보기 싫으면 적금 깨야 할 거야. 적당히 끝낼 생각 없으니까 시간도 넉넉하게 잡아야겠지?”

“어디 가고 싶은데?”

“흐흐흐! 강남에 어마어마하게 비싼…….”

“설마 그… 그런 술집을?”

이경석이 혀를 찼다.

“김 과장, 알고 보니까 상당히 음흉한 구석이 있었네. 우린 좋은 참치집 가자는 말인데 평소 가고 싶었던 거 아니야?”

“참치요?”

“참다랑어로 깔면 액수가 제법 나와. 과장 턱인데 가끔이라도 먹는 한우로 때울 수는 없잖아.”

으헉! 한우보다 비싼 참치?

그래도 무조건 사야 한다.

스스럼없이 과장이라 불러 주고, 평생 다시 오지 않을 기회를 맨 먼저 잡았는데 참치가 아니라 참치 할아버지라 해도 기꺼이 사야 했다.

이런 일 미루면 공수표 되기 십상이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사인방 모두 아내에게 허락을 득했다. 고경아는 말할 것도 없었고, 고경희, 윤서연, 이경석의 아내까지 축하의 말을 전했다.

“감사합니다.”

싱글벙글, 좋다는 얼굴을 감추지 못하며 병원을 나서던 김지훈이 돌연 헛기침을 터트렸다. 퇴근 시간이 겹친 탓인지 하필이면 민정호와 마주쳤다.

“축하드립니다.”

“들으셨습니까?”

“제가 모르면 안 되죠. 앞으로 자주 보아야 할 텐데 잘 부탁드립니다.”

“행정적인 문제는 원장님과 부원장님이 계신데 절 볼 일이 있겠습니까?”

민정호가 삐딱하게 고개를 돌렸다.

“각 과의 실적을 파악하고, 적정 여부를 판단하는 것도 제 일입니다. 외과가 주력인 이상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돈과 무관한 일은 확실하게 제외할 생각입니다만, 그런 일이 있을까요?”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치료 부분까지 관여한다는 말이었다. 개인 병원에서나 있을 법한 실적 평가까지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원장님께서 허락하셨습니까?”

“당연히 말씀드렸습니다. 김 과장님도 독립 채산제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적자가 누적되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또다시 애매모호해졌다.

“망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이사장님께 전문 병원의 존폐 여부를 확정해 알리는 것 역시 제 일 중 하나입니다. 회사든 병원이든 좀비 기업에 불과하다면 빨리 정리하는 것이 모두에게 유리합니다. 아! 쓸데없는 말을 했군요. 그럼 이만!”

민정호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점점 차가워지는 날씨 탓인지 무척 냉정해 보였다. 그 때문에 김지훈 스스로도 더더욱 냉정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좀비 기업이라고? 조짐만 보여도 이 년 내에 병원을 닫겠다는 소린가? 하긴 적자 상태에서 지원이 없으면 우리는 차치하고 현수가 버틸 재간이 없겠지. 그렇다고 해도 진료 영역에 침범하는 것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결코 돈을 무시할 수 없지만 환자를 돈만으로 보는 것이 도리어 망하는 지름길이다.’

김지훈이 진저리를 쳤다.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지만 인생 선배인데 대화를 나눌 때마다 밀리는 느낌이 적지 않게 들었다. 확실히 냉혹한 사회 속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희한해. 왜 뭔가를 놓치는 것 같지?’

이런 날까지 민정호와 진상건 때문에 기분을 잡칠 수 없었다. 서둘러 약속 장소로 향하려는 찰나 고급 세단이 눈앞에서 멈췄다.

위이이잉!

부드럽게 내려가는 창문 너머 민정호가 보였다.

“또 뭡니까?”

“임시 개원 첫날부터 비용이 발생한다는 사실 알고 계시죠. 나가야 할 돈 다 나갑니다.”

“그래서요?”

“이준영 선생님과 함께 충분히 준비하셨겠지만 환자 확보를 잘했는지 궁금해서요. 서울 병원도 환자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이만!”

‘어쭈! 또 지 할 말만 하고 가네?’

기분 망가트리려 작정한 모양이었다.

이럴 때일수록 가끔은 현실을 떠나 허리띠 풀고 무장 해제 해야 다음을 위한 충전도 가능한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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