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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1044화 (1,044/1,329)

10화

무심한 하루해가 떠올랐다.

적출과 이식 수술이 벌어지는 날이 밝았다.

중환자실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신현수와 가족들이 신동철 이사장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허망한 죽음 앞에 눈물짓지 않는 사람이 없었지만 신현수는 꿋꿋하게 참아 냈다.

“아버지, 안녕히 가십시오.”

인사를 대신하는 것처럼 손과 발을 깨끗이 닦았다. 눈을 감은 채 퉁퉁 부은 얼굴을 가슴에 안고 다시는 보지 못할 아버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수술과 마취를 담당할 의사, 뇌사를 판정한 세 명의 교수가 차례차례 고개 숙여 숭고한 뜻에 존경을 표했다. 가장 늦게 인사한 김지훈이 직접 중환자실 침대를 옮겼다.

드르르륵!

중환자실과 수술 방을 연결하는 복도가 두 줄로 도열한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장기를 받기로 한 환자들의 가족, 재단 이사들, 함께 근무하며 병원에 청춘을 바친 의료진들까지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신동철 이사장은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눈을 얻을 환자들과 함께할 것이다.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이 평생 지금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허망한 죽음이 아니었다.

숭고하고 품위 있는 죽음이었다.

위이이이잉!

수술 방 문이 열렸다.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대기 중이던 이준영 교수와 수술 팀이 직접 신동철 이사장을 맞이했다. 차마 손을 놓지 못하던 신현수가 눈가를 붉히며 수술 팀에게 고개 숙였다.

“아버님을 부탁드립니다.”

“이사장님을 잊지 못할 거야. 고맙다.”

가슴 찢어지는 슬픔과 숨죽인 오열 속에 수술실로 옮겨졌다. 의학적으로 마취가 필요 없는 상태였지만 김진호 교수는 마음을 다해 마취를 시작했다.

“수술 시작하셔도 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이준영 교수의 목소리가 무섭도록 나직하게 깔렸다.

“장기 적출 시작합니다.”

적출 팀이 대기하는 가운데 먼저 수술을 시작한 안과 교수가 한 쌍의 각막을 떼어 냈다. 누군가에게 밝은 빛을 선물할 것이다.

하나의 간이 우측 간과 좌측 간으로 분리돼 간경화로 신음하던 환자들에게 전해졌다.

두 개의 신장이 아직도 살아 있는 육신을 떠났다.

깊은 침묵 속에 네 개의 수술실에서 네 명의 환자에게 차례차례 이식 수술이 시행됐다.

김지훈의 수술 팀은 우측 간을 받았다.

네 번째 간 이식을 이렇게 시행할 줄 몰랐다.

신동철 이사장의 마지막 모습이 떠오르는 순간 차갑게 식은 간이 이상스럽게도 뜨겁게 느껴졌다.

‘아버님, 감사합니다.’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되는 수술이었다.

환자가 흘리는 피 한 방울에조차 신동철 이사장의 생이 담겨 있었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꾹 억누르며 마취에 전념하는 윤서연이 오히려 더욱 슬퍼 보였다.

‘아버님, 아버님을 만나 정말 행복했어요. 안녕히 가세요. 우리 아빠에게 저 잘 있다고 전해 주세요.’

“간정맥부터 시작합시다.”

띠! 띠! 띠! 띠!

환자의 간이 제거된 자리에 새로운 간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해 완벽하게 이식하는 것만이 고인의 뜻을 잇는 길이었다.

그 시간, 한 사람의 삶이 종착역에 다다랐다.

이준영 교수가 신동철 이사장의 텅 빈 육신에 난 상처를 세심하게 봉합했다. 깨끗한 천으로 정성스럽게 이미 차가워진 육신을 감쌌다.

김진호 교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현수 선생 부릅시다.”

신현수가 들어왔다.

“신현수 선생, 준비됐지?”

“예.”

“인공호흡기 제거합니다.”

장기 적출을 하는 동안 육신을 살리기 위해 달려 있던 모든 장비가 제거됐다.

생체 징후 측정기만 남았다.

띠! 띠! 띠!

간신히 육신을 지탱하고 있던 심장의 박동이 점점 느려졌다. 폐 기능이 사라지며 산소 포화도가 뚝뚝 떨어졌다. 창백했던 피부가 하얗게 변했다.

깊은 고요만이 수술실을 감돌았다.

띠이이이이!

심장이 멈췄다.

생물학적 죽음이었다.

한평생 병원을 위해 몸 바쳐 일했던 한 사람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났다. 우여곡절, 시시비비가 있겠지만 이젠 나쁜 기억만큼은 잊어야 할 때였다.

김진호 교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오후 세 시 정각, 신동철 이사장님께서 운명하셨습니다. 신현수 선생, 아버님 옮겨도 되겠습니까?”

신현수가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온기 하나 남아 있지 않았지만 좀처럼 손을 놓지 못했다. 이미 뇌사를 받아들였다 해도 이제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죽음과 맞닥트렸다.

실감할 수 없을 것이다.

한참 만에야 고개를 끄덕였다.

영안실로 이동할 간이침대가 들어왔다.

수술 팀이 일제히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마지막 길을 가는 내내 수많은 이들이 애도를 표했다. 잘 꾸려진 장례식장, 수없이 들어오는 근조화환도 아픔과 슬픔을 결코 대신할 수 없었다.

“간 혈류 측정합니다.”

김지훈의 이식 수술이 막바지에 달했다.

피가 흐르기 시작한 간은 건강한 양상을 보였다. 담도를 이어 주고, 거부 반응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죽음을 기다리던 사람이 기적적으로 삶을 찾을 것이다.

신동철 이사장이 만든 기적이었다.

밤늦은 시각.

김지훈의 수술을 끝으로 수술실 불이 꺼졌다.

초조하게 수술 방 앞을 지키던 환자 가족들이 달려왔다. 그들이 고대하는 말은 단 한마디였고, 김지훈과 수술 팀은 최선을 다했다.

“수술은 잘됐습니다.”

“감사합니다.”

펑펑 쏟아지는 눈물이 보였다.

최근 며칠 수없이 본 눈물과 의미가 달랐다.

기쁨이자 희망이었다.

“면회는 내일이 돼야 가능합니다. 환자가 안정되기 전이라도 고인과 가족을 찾아뵀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죠. 그래야죠.”

원칙대로 환자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신기동 교수에게 수술받은 환자 옆에 자리를 마련했다. 무사히 끝났다는 사실에 기뻐하기는커녕 무거운 공기만 감돌았다.

정신을 뺏긴다면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수술 후 시행한 모든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환자 곁을 떠나지 않았다. 몰라보게 성장한 고경철의 노티를 철저히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충분하지 않았다.

김지훈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혁원 선생, 나종진 선생, 환자 철저히 봐. 조금이라도 문제가 된다 싶으면 바로 연락해.”

“알겠습니다. 선생님, 장례식장에 가 보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곧 열두 시가 다 됩니다.”

“가야지. 신장 이식 받은 환자들은 괜찮아?”

“송진우 선생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김지훈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너무 늦은 시간인 데다 호상도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이 곁을 지켜 주길 바랐다.

조용했다.

순간 가슴이 서늘해졌지만 이내 안심할 수 있었다. 병원 관계자들과 외과 교수 대부분이 상가를 지키고 있었다. 언제 연락받았는지 정훈철까지 보였다.

‘다행이다.’

“경석이 형, 조문했어요?”

“같이하려고 기다렸어. 수술은 잘 끝났지?”

“예. 잘 끝났습니다.”

영정 속에서나마 신동철 이사장이 웃고 있었다.

이경석이 향을 피웠다.

김지훈과 손일석이 한 송이 국화를 놓았다.

고인을 향한 두 번의 절과 반절.

‘아버님, 안녕히 가십시오.’

상주들과 나눈 한 번의 절과 반절.

‘현수야, 힘들겠지만 힘내.’

신현수가 희미하게 웃었다.

“고맙다. 식사 못했지?”

“알아서 할 테니까 문상객들 없을 때 쉬어.”

“수술은?”

“모두 잘됐어. 아버님도 기뻐하실 거야.”

상주의 삼 일은 단순한 삼 일이 아니었다.

빈소를 떠나 따라 나오려는 신현수를 억지로 앉혔다. 동료들이 있는 자리에 앉은 김지훈이 물끄러미 음식들을 보면서도 젓가락을 들지 못했다.

“김 교수, 하루 종일 수술했다. 뭐라도 먹어.”

김지훈이 스승의 목소리에 물 한 모금 마셨다.

이렇게 가슴 아픈데 고인에 대한 기억은 얼마 없었다. 친구 아버지기 전에 이사장이었고, 신세라면 누구보다 신세를 많이 졌는데 사무적인 관계로만 만났다는 사실만 떠올랐다.

다들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공과가 있겠지만 좋은 분이셨다. 병원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도 많이 하셨지. 마지막 길도 그렇게 가시는구나. 지훈아, 일석아, 경석아, 너희들 어깨에 걸린 짐이 무겁다. 무거워.”

송재덕 교수의 말에도 입 안이 까끌까끌하기만 했다. 상갓집을 찾는 이유가 대개 상주와의 관계 때문이라지만 이번만은 그렇게 넘어갈 수 없었다.

다음 날 저녁.

고경아와 함께 다시 빈소를 찾았다.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누군가 사정을 못 들었는지 눈치 없이 웃음을 터트렸지만 상갓집이라고 반드시 울어야 한다는 법은 없었다. 신현수도 담담한 얼굴로 조문객을 받았다.

김지훈이 현실적인 문제를 꺼냈다.

“발인 때 운구는 누가 하기로 했어?”

“안 그래도 부탁할 참이었어. 일석이, 경석이 형하고 상의해 줘. 아버지도 당신의 뜻을 따른 사람들을 보고 싶어 할 것 같아.”

“알았어.”

마지막 날 새벽.

김지훈, 손일석, 이경석, 이혁원, 나종진, 송진우가 운구를 맡았다. 장례식장을 떠나 고인이 평생을 바친 서울 병원 앞에서 노제를 지냈다.

모든 예가 끝났다.

“천안 병원에서도 노제를 지낸다네.”

“그래야 하지 않을까?”

장지까지 함께 가고 싶었지만 의사의 손을 기다리는 환자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영정을 든 신현수의 뒷모습이 너무 쓸쓸해 보였다.

‘현수야, 힘내자. 아버님, 안녕히 가십시오.’

검은 장례 차에 몸을 누인 신동철 이사장이 마침내 살아서는 가지 못할 곳으로 떠났다. 모두들 마지막까지 배웅한 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신현수의 빈자리가 유난한 날이었다.

아버지가 누운 관에 한 줌 흙을 뿌릴 때 그간 참았던 눈물과 울음이 한꺼번에 터져 나올 테지만 언젠가 올 날이 일찍 온 것뿐이었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삼오제가 지났다.

형식일지라도 고인을 기억하는 가족에겐 마음을 추스를 소중한 자리였다. 병원 역시 이사장의 죽음이 가져온 충격에서 서서히 벗어났다.

신현수가 복귀했다.

괴로움을 잊으려는 듯 일에만 몰두했다.

아버지의 장기를 받은 환자들에게도 각별히 신경 썼다. 보호자들이 고개 숙여 진심으로 감사를 표할 때마다 웃음 지으며 함께 기뻐했다.

“고맙습니다.”

“별 탈 없이 회복되어서 제가 도리어 감사드립니다. 아버님도 기뻐하실 겁니다.”

밀린 외과 업무가 대부분 정리됐다.

이제 신동철 이사장이 못다 한 일에 매진해야 할 때였다. 무엇보다 신규 병원 공사를 재개하고, 간 센터 설립을 관철시켜야 했다.

상대는 이사회였다.

먼저 공석인 이사장과 이사 한 명을 추가로 선출해야 모든 일을 추진할 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 지분이 많다 해도 젊은 나이의 신현수가 이사장이 되기에는 아직 일렀다.

다행히 신동철 이사장과 가장 친분이 깊었던 데다 이사들 사이에서 신망이 두터운 이사가 존재했다. 사심이 없다고 알려져 가야 할 방향으로 재단을 이끌 적임자였다.

신현수, 윤서연 일가의 지지를 받는 이상 이사장으로 선출되는 것은 기정사실과 다름없었다. 일정 지분 이상을 취득해야 하지만 부족한 한 명의 이사를 추천하는 일도 순조롭게 진행됐다.

물론 난관 하나를 넘어야 했다.

신동철 이사장과 대립했던 이사가 있었다.

개인적 이익에 상당히 민감했던 만큼 야심을 갖고 있을 테고, 신임 이사 자리를 자기 사람으로 채우려 할 것이 분명했다. 이미 많은 시간을 소비한 만큼 빠르게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신현수의 제안 아래 이사회가 소집됐다.

이사로서 참석한 신현수와 윤서연이 긴장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든든하게 뒤를 받쳐 주었던 아버지 없이 처음 참가하는 이사회였다. 더구나 일반적인 업무가 아닌 신임 이사장 및 신임 이사 선출과 동시에 중단된 사업을 재개하기 위한 자리였다.

면면을 살피던 신현수가 눈가를 찌푸렸다.

정원 아홉 명의 회의에 총 열 명이 참석했다.

예상대로 상대 역시 이사를 추천하고자 했다.

둘 중 한 명은 원하는 직함을 얻지 못할 상황이 된 것이다. 물론 일정 지분만 확보했다면 누구나 이사를 추천할 수 있다. 하지만 신동철 이사장이 경계한 이유를 잊지 말아야 했다.

‘누구지? 개인적 욕심을 채우기 위한 추천이라면 반드시 막아야 한다.’

마지막 표를 행사할 이사장 자리가 공석이었다.

여덟 명의 이사 의견이 반으로 갈린다면 최악의 경우 지분 싸움을 해야 할 수도 있었다. 경우의 수를 계산하던 신현수가 눈가를 좁혔다.

질 수 없는 싸움이라 확신했다.

땅! 땅! 땅!

“지금부터 이사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자리에 앉아 주십시오.”

사실상 신현수와 윤서연의 첫 이사회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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