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신동철 이사장이 뇌사 상태라는 사실을 모르는 의사는 없었다. 산적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감정만 앞세우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친구 아버지의 일이었다.
막상 신현수의 입으로 듣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도저히 남의 일이라고 치부할 수 없었다. 아픔의 크기를 비교할 수 없겠지만 차라리 부지불식간 가족을 잃은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무거운 한숨만 터졌다.
분명 할 말이 있어 왔을 텐데 신현수가 이를 악물며 터져 나오는 신음을 참았다. 일그러진 얼굴로 괴로움을 참다 참다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
“지훈아,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뵀을 때 본 서류 기억나지? 뜻을 따를 생각이야.”
차마 내색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런 식으로 다가올지도 몰랐다.
“설마 장기…….”
“그래. 장기 기증.”
김지훈이 얼굴을 감쌌다.
숭고하다느니 훌륭한 결심이라느니 하는 말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뇌사자 장기 기증이 활성화되기를 간절히 원했건만 오히려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괜찮겠어?”
“고민한 지 제법 됐어. 내 판단이 맞는지 알 수 없었고, 뇌사가 확실하다는 신경외과 과장님 말씀을 부정하고 싶어 현실을 인정하지 못했을 뿐이야.”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부탁 하나 하자. 뇌사 판정과 장기 기증에 관한 일을 네가 맡아 주었으면 해. 우리는 친척분들을 설득하는 일만으로도 벅찰 것 같아.”
“내가?”
“며칠 전 이사 한 분을 만났는데, 간 이식 센터 설립을 위해 무척 노력하셨다고 말씀하시더라. 우리에게 거는 기대가 무척 크다는 말까지 하셨대. 네가 맡아 주면 아버지도 정말 기뻐하실 거야.”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절차대로 따르면 되는 일이라 해도 친구 아버지라는 사실을 떨치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식인 신현수의 결정이었다.
뇌사가 무엇인지, 장기 기증을 한 사람이 어떤 수술을 받아야 하는지 모를 신현수가 아니었다. 가장 냉철하고 이성적이었기에 순간의 결정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김지훈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이렇게 미안하고, 부담스러운 일이었나?’
“현수야, 누구보다 간 기증이 활성화되기를 원해 왔지만 잘 생각했다는 말은 도저히 못하겠다. 내일 다시 만나 얘기하자.”
“네가 부담 가질 이유가 없어. 이미 충분히 고민하고 결정한 일이야.”
“한 번도 아버님이라고 부른 적이 없지만, 이사장님이기 전에 가장 친한 친구의 아버님이란 사실을 잊은 적도 없어. 나도 마음이 너무 아프다.”
훅 울음이 터졌다.
윤서연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아버님 수술과 마취는 이준영 선생님과 김진호 선생님께 부탁드리고, 난 수혜자 수술을 맡을 생각이야. 이식 수술은 지훈이 네가 맡아 줘.”
“서연아!”
“결정하고 온 자리지만 이런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더 힘들게 하지 마. 아버님도 우리가 감정에만 휘둘리길 원하지 않으실 거야.”
이미 확고하게 결정을 내렸다.
울음을 멈춘 신현수도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윤서연 말대로 시간을 끌어 봐야 더 힘들고 괴로울 뿐이었다.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면 친구인 자신이 나서는 것이 맞았다.
그것이 예의였다.
“후우! 절차 진행할게. 대신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말해야 돼. 아버님의 뜻을 받든다고 해서 후회하지 않는다는 소리는 아니야.”
“후회하지 않기 위해 내린 결정이야.”
이성적으로 대처하고, 담담한 척이라도 해야 하건만 울컥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익히 알고 있던 사람의 뇌사와 장기 기증을 받아들이는 일이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현수야! 서연아! 미안하다. 미안해.”
김지훈이 고개를 들지 못했다.
눈가가 뜨거워졌다.
한 줄기 눈물이 흘렀던 모양이었다.
슬픔을 삭이고 삭였던 신현수가 무너졌다.
어깨를 들썩이며 끅끅 울음을 억누르다 아이처럼 펑펑 소리 내 울었다. 쏟아지는 눈물을 따라 아버지의 웃는 얼굴이 스치고 있을 것이다.
한참 만에야 간신히 입을 열었다.
“지훈아, 부탁할게. 고맙다.”
신현수의 뒷모습이 쓸쓸했다.
불러도 대답 없는 아버지와의 마지막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매일 그래 온 것처럼 신현수와 윤서연은 중환자실로 가 신동철 이사장과 시간을 보낼 것이다.
어떤 생각을 할까?
아버지의 귀에 대고 무슨 말을 할까?
홀로 남은 김지훈이 감정을 추슬렀다.
‘내가 머뭇거리면 현수, 서연이, 가족들까지 더 힘들게 할 뿐이다.’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다면 도리어 확실하게 추진해야 했다. 장기 기증에 필요한 서류와 절차를 확인하는 내내 울적한 기분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퇴근했다.
소식을 들은 고경아가 깜짝 놀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친구 와이프일 뿐 각별한 친분이 있는 사이도 아니건만 슬픔에 북받쳤다.
“왜 울어요?”
“그냥 슬퍼요. 갑자기 엄마 아빠가 생각나네요.”
고경아가 원주 집에 전화를 걸었다.
“엄마, 아빠, 건강하셔야 돼요.”
어린 시절 자라 온 얘기까지 하며 자신의 사랑과 마음을 전했다. 물끄러미 곁을 지키던 김지훈이 눈가를 비비며 밖으로 나왔다.
서울의 밤하늘은 밝기에 도리어 탁했다.
그리운 이들을 대신해 늘 보았던 별이 보이지 않았다. 점차 희미해져 이젠 잊은 줄 알았던 아픈 기억과 그리움이 왈칵 다가왔다.
‘어머니! 아버지! 이번 일은 정말 힘들 것 같네요.’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뒤엉켰다.
결코 웃지 못할 일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대가 없이 얻을 수 있는 일도 없었다.
누군가의 엄청난 희생과 슬픔이 있어야만 죽어 가는 환자의 삶을 구할 수 있었다. 피상적으로 생각해 왔던 뇌사자 장기 기증도 다시 바라봐야 했다.
뇌사자 가족의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면 사람의 도리가 아니었다. 진정으로 함께할 때 이식이 갖는 삶과 죽음의 의미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다음 날.
병원이 발칵 뒤집혔다.
신동철 이사장이 뇌사 상태라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발표됐다. 동시에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장기 기증을 한다는 것까지 공표됐다.
죽음의 기정사실화였다.
많은 이들이 숭고한 뜻을 기리면서도 큰 충격을 받았다. 장기 적출과 이식 수술을 맡아야 하는 외과 교실은 더없는 착잡함에 잠겼다.
김지훈의 얼굴이 특히 안 좋았다.
송재덕 교수가 김지훈의 어깨를 다독였다.
‘부담이 큰 일이지만 네가 진행하는 것이 맞다.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
“지훈아, 지금이야말로 의사라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이사장님의 뜻과 현수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힘들어도 네가 맡아야지. 네가.”
이준영 교수도 어두운 안색을 감추지 못했다.
뇌사 상태에 빠진 신동철 이사장의 장기를 적출해야 하는 만큼 김지훈과 비교도 되지 않을 부담을 안았다. 하지만 누군가 맡아야 할 수술이었고, 스승으로서 제자들이 슬픔과 부담에 휩쓸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야 했다.
“김 교수, 이사장님 수술은 내가 맡을 테니 나머지 일에만 신경 써. 원장님 말씀대로 의사로서 이번 일에 대처해야 돼. 감정은 수술이 끝난 뒤 보여도 충분해.”
“알겠습니다.”
손일석과 이경석이 다가왔다.
공연히 사인방으로 불린 것이 아니었다.
김지훈만큼 강한 유대를 느끼며 중환자실을 함께 지켰고, 신현수의 슬픔을 나누고자 애썼다. 마지막 길을 준비하는 일 역시 그들의 몫이었다.
“지훈아, 우리가 도울 일이 있을까?”
“여럿이 나설 일이 아니야. 현수보다 힘든 사람은 없어. 끝날 때까지 옆에서 신경 써 줘.”
“걱정하지 마.”
어떤 말로도 서로가 느끼는 부담을 덜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야 해결될 일이기에 지금은 각자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마땅했다.
‘내가 모르는 사람의 일일 뿐 뇌사 역시 숱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추억으로 남은 것처럼 현수도 잘 이겨 낼 것이다.’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었다.
미적거릴수록 나쁜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았다. 뇌사자 장기 이식을 위해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아는 이상 지금 곧바로 움직여야 했다.
중환자실을 찾았다.
복부와 흉부 CT, 간염 여부를 비롯한 간 기능 검사, 혈액형과 면역 타입, 악성 종양 유무 등등 필요한 검사를 모두 내보냈다. 결과가 나오는 대로 간 이식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와 대조해 적합한 사람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신경외과 과장을 찾았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바로 시간을 냈다.
“뇌사 판정 때문에 왔습니다.”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니까 바로 끝내지. 나머지 두 명은 누가 좋겠어?”
뇌사 판정에는 최소 세 명의 의사가 필요했다.
환자 상태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주치의가 빠질 수는 없었다. 나머지 두 명은 수술 혹은 환자와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어야 모든 일에 공정을 기할 수 있었다.
“우리 과 교수님은 배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과장님께서 직접 신경과와 내과에서 한 분씩 선정했으면 합니다.”
“알았네. 동의서가 작성되는 대로 일차 판정에 들어가겠네. 참! 그 전에 이식받아야 할 환자들에게 연락이 가지 않나?”
“시간상 일차 판정 전에 알게 될 겁니다.”
“난 잘 모르지만 보호자 마음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어. 가급적 그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잘 조정했으면 하네.”
아들인 신현수가 결정했다 해도 일정 촌수 이내 가족들의 동의가 없으면 기증을 할 수 없다. 이식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환자들에겐 청천벽력과 같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선의로 시작된 일이 더 큰 절망과 실망을 초래한다는 의미였다. 따라서 기증자 가족의 의사가 확고한지 수시로 확인해야 했다.
“알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교수실을 나서던 김지훈이 멈칫거렸다.
“과장님, 뇌사가 확실한 거죠?”
“안타깝지만 확실해. 기적이 일어난다면 모를까, 의학적으로는 회복의 여지조차 없어. 중환자실을 지킨 자네가 더 잘 알잖아?”
“선생님께 다시 듣고 싶었습니다.”
신경외과 과장이 답답한 콧소리를 냈다.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시간을 끌면 아픔만 커진다.
김지훈이 장기 기증 절차에 집중했다.
검사 결과가 나오자마자 이식 코디네이터와 함께 환자 선정을 논의했다. 장기 매매와 같은 불법적인 일을 막기 위해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관계로 이견을 보일 이유가 없었다.
우측 간과 좌측 간 및 신장 이식을 받을 네 명의 대기자, 각막을 필요로 하는 환자까지 모두 다섯 명을 고르는 작업이 빠르게 진행됐다.
이틀 후, 일차 뇌사 판정을 시작했다.
신경외과, 신경과, 내과 전문의 세 명이 신중하게 신동철 이사장의 상태를 확인하고 뇌사가 확실함을 선언했다. 말없이 과정을 지켜본 신현수와 윤서연의 안색이 창백하기만 했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이 얼마나 괴롭고 힘든 자리인지 여실하게 보여 주었다.
“현수야, 다음번에는 꼭 참석하지 않아도 돼.”
“아니야. 우리가 꼭 있어야 할 자리야.”
기증 의사의 번복은 없었다.
총 다섯 명의 환자에게 이식을 위한 진료와 검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통보했다. 다시 한 번 철저히 검사 결과를 검토해 적합하다는 사실을 최종적으로 확인했다.
이차 판정에 들어갔다.
최종 절차였다.
뇌사라는 사실에 변함이 없었다.
동시에 가족들도 마지막 절차를 밟았다.
번복이 없는 한 곧 적출과 이식 수술에 들어갈 것이다. 이준영 교수가 적출을 맡고 신기동 교수와 김지훈이 간 이식을, 이혁민 교수와 박승준 교수가 신장 이식을 맡을 예정이었다.
각막은 안과에서 담당할 것이다.
모두들 초조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가족의 최종 결정을 기다렸다. 다시 볼 수 없기에 울음과 격한 목소리까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수밖에 없었다.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회의실에서 신현수와 윤서연이 나왔다.
결코 쉽지 않은 말이 나왔다.
“예정대로 기증하겠습니다.”
신현수의 눈가가 벌겋게 부어 있었다.
최종 결정이라지만 법적 권리를 갖는 가족 중 한 명이라도 마음이 변해 반대하면 장기 이식은 불가능했다. 더구나 한 사람이 가진 장기에 다섯 명의 삶이 걸렸다. 매몰차게 보이겠지만 불과 하루 뒤로 수술 날이 결정됐다.
이미 한 차례 수술 계획을 상의했던 일반외과와 센터에 합류했으면 하는 의료진이 모여 최종 점검에 들어갔다. 어느 때보다 숙연했다.
신현수는 밤새 아버지 곁을 지켰다.
김지훈이 늦은 시간에 찾아 함께했다.
핏기 잃은 손을 꼭 부여잡은 채 말이 없었다.
지난날을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차마 사과하지 못했던 일, 차마 표현하지 못한 사랑을 이제야 나누는지도 몰랐다.
“지훈아, 고맙다.”
“미안한 일뿐이야.”
“네가 없었으면 내가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 허무하게 돌아가시는 아버지를 보며 아무것도 못했겠지. 끝까지 함께해 줘서 고마워.”
무엇이 고마울까?
후! 길게 숨을 내쉰 김지훈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 삶을 되찾길 원하는 이들에게 집중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