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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1041화 (1,041/1,329)

7화

어디지?

어디에서 피가 나는 거야?

이런 상황에서는 김지훈도 침착하기 어려웠다.

정신없이 뒤졌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간 뒤편 깊숙한 곳이었다.

거즈로 피를 제거하자마자 피가 차올랐다.

동맥이 아니었다.

간 내 혈관이 끊어진 채 노출됐다고 해도 가해지는 압력이 있어 이 정도 속도를 보일 수 없었다.

순간 혈관 하나가 뇌리를 스쳤다.

“간정맥이다. 석션! 혈관 겸자!”

찌이이이익!

시야에서 피가 사라지는 순간 검붉은 피가 꾸역꾸역 흘러나오는 혈관이 보였다.

김지훈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따르륵! 따가각!

“셀라인! 석션!”

시야를 확보했다.

굵은 혈관을 잡은 혈관 겸자 너머로 길게 찢어진 간정맥이 또렷하게 관찰됐다.

더 이상 피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극히 드문 경우라 해도 하마터면 경험 많은 전문의 둘이 수술을 하면서도 놓칠 뻔했다.

“모스키토! 수처!”

따르륵! 따가각!

간정맥을 제대로 잡은 김지훈이 빠르게 찢어진 부분을 봉합했다. 기구를 제대로 놀리기조차 힘들 정도로 좁았지만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타이!”

손상 부위를 해결했다.

깨끗이 씻어 내 출혈 여부를 확인했다.

간 절단면에서 우징(Oozing)처럼 스멀스멀 새어 나오는 피를 제외하면 발견하지 못한 출혈 부위는 없었다. 하지만 수술 전부터 시작된 기존 출혈이 너무 많았다.

환자의 생사는 여전히 미지수였다.

초조한 가운데 손실량을 보충하기 위한 수액과 혈액이 빠르게 투여됐다. 손으로 짜 강제로 주입시켜도 결코 충분하지 않았다. 우징이라도 막고자 수술용 천을 집어넣어 강하게 압박했다.

어떤 추가 조작도 허락하지 않았다.

수술 팀이 오직 바이탈에만 집중했다.

띠띠띠띠띠띠띠!

심장은 여전히 헐떡였다.

‘수술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설마?’

불길한 생각이 감돌았다.

혈액 팩 하나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김지훈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환자는 버틸 것이다.

심장이 뛰는 한 빠르게 주입되는 피가 혈관에서 더 이상 빠져나가지 않으면 박동에 분명한 변화가 있어야 했다.

일 분이 한 시간처럼 길게 느껴지는 순간!

띠띠띠! 띠띠띠! 띠띠띠!

촘촘하던 심전도 간격이 넓어졌다.

“혈압 80에서 잡힙니다.”

김지훈이 훅 숨을 내쉬었다.

마취과 당직의는 아예 주저앉았다.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었지만 적어도 테이블 데스의 위기는 모면했다. 간정맥 손상을 찾지 못했거나 빠르게 봉합하지 못했다면 수술은 여기서 중단됐을 것이다.

수술 팀의 놀라운 실력과 빠른 대처 덕이었다.

무엇이 가능하게 했을까?

이유는 멀리 있지 않았다.

간 이식을 하며 주변 조직의 해부학적 구조까지 완벽에 가깝게 파악했다. 혈관을 이으며 쌓은 경험 또한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간정맥을 건드렸단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꺼져 가는 목숨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없는 데다 의외의 손상에 조금이라도 머뭇거렸다면 100퍼센트 사망에 이르렀을 것이다.

아직 수술은 끝나지 않았다.

마취 시간 자체도 치명적으로 변했을뿐더러 너덜너덜하게 남아 있는 우측 간 절단면을 깔끔하게 정리해야 할 때였다.

“간 자릅니다. 혈압 어떻습니까?”

“아직 위험합니다. 빨리 끝내 주세요.”

혈압 유지가 최대 관건이었다.

일반외과 인턴까지 동원해 피를 짰다.

문제는 혈압이 돌아온다 해도 환자가 받은 손상은 추측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간과 담낭을 절제하고, 수술을 끝내야만 살릴 수 있었다.

김지훈이 강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은 오직 수술에 집중할 때다.’

“모스키토!”

간 절제가 시작됐다.

가급적 손상받은 부위를 따라 자르며 살릴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보존해야 했다.

김지훈의 손이 정확하게 움직였다.

서걱! 서걱!

과감할 정도로 빠르게 간을 잘랐다.

이혁원의 타이는 확실했다.

간 조직, 혈관, 담도를 가리지 않고 안전하게 처리해 두 번 손을 대야 할 일이 없었다.

고경철도 일 년 차의 한계를 상당 부분 벗었다.

능동적으로 수술에 임했다.

흐르는 피를 닦고, 시야를 확보하는 손길이 무척 꼼꼼하고 자연스러워 조금도 방해되지 않았다.

서걱! 서걱!

거칠게 부서진 절단면이 점차 사라졌다.

세심하게 마무리된 매듭이 늘어 가며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피의 양이 현격히 줄었다. 격렬하게 들리던 기계음도 어느 틈엔가 규칙적으로 변했다.

혈압이 다소나마 안정을 찾은 것이다.

김지훈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집도의가 신경 써야 할 소리는 위급 상황을 알리는 마취과의 다급한 목소리뿐이었다. 오직 수술에만 집중하며 환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마침내 우측 간 대부분을 제거했다.

담낭까지 절제했다.

“셀라인! 석션!”

수술 부위를 깨끗이 씻었다.

인체에서 가장 큰 장기가 대부분 사라진 우상복부가 휑하니 빈자리를 드러냈다. 하지만 인간의 생명력, 간의 회복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앞으로 다가올 몇 차례의 고비만 잘 견뎌 내면 환자는 죽지 않을 것이다. 비록 약해질지 몰라도 정상적인 생활까지 영위할 수 있었다.

김지훈이 훅 숨을 몰아쉬었다.

‘이 환자 역시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띠! 띠! 띠! 띠! 띠!

이제야 다소 안정된 심박동 소리가 들렸다.

절단면은 깔끔했고, 좌측 간이 남아 있는 이상 간 조직 부족을 걱정하지 않아도 좋았다. 환자의 의지와 생명력이 남은 일을 대신해 줄 것이다.

끝까지 책임져야 했다.

수처조차 넘길 수 없었다.

“배 닫습니다.”

수처와 타이의 달인인 김지훈이었다.

본능처럼 손을 움직이며 환자를 살피는 동시에 시계를 보았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을 줄 알았는데 불과 세 시간 만에 마무리에 들어갔다.

환자의 위급함이 사라졌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을 잘랐는데 힘들었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만큼 수술 팀은 철저하게 대응했고, 완벽하게 호흡을 맞췄다.

김지훈이 마지막 바늘을 뜨며 눈가를 굳혔다.

‘수술 팀 모두에게 간 이식 수술 경험이 정말 큰 도움이 됐다. 혈관 처리까지 정말 훌륭했어. 스승님의 간암 수술에 공여자 수술까지 많이 해 본 덕일까? 이렇게만 가자.’

눈은 오직 수술 부위에 가 있었다.

“컷!”

수술이 모두 끝났다.

이제 최후의 고비가 남았다.

환자는 응급실에서 이미 쇼크 상태에 빠진 채 수술을 받았다. 수술 중반까지 혈압을 잡기 힘들 정도로 낮았고, 간의 삼분의 이를 잃었다. 수술이 아무리 잘됐다 한들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어떤 의미도 없었다.

긴장이 치솟았다.

기관 내 튜브도 빼지 못한 상태였다.

마취과 당직의의 눈이 심각했다.

“환자분, 눈 떠 보세요.”

반응이 없었다.

띠! 띠! 띠! 띠! 띠!

안정된 심박동, 불규칙하지만 스스로 내쉬는 숨, 점차 혈색이 돌아오는 팔다리, 똑똑 떨어지는 소변까지 모든 소견이 육체의 표현일 뿐이었다. 눈을 뜨기 전까지 뇌손상 여부는 알 수 없었다.

발가락을 꼬집고, 가슴을 때려 자극을 주었다.

여전히 무반응이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렸다.

‘설마?’

가슴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해졌다.

그때 환자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마침내 고통스러운 기침을 터트리며 눈을 떴다. 초점을 잡지 못했지만 동공반사가 명확하게 관찰됐다. 호흡을 따라 진한 마취제 냄새가 퍼졌다.

환자가 깨어났다.

수술실이 안도의 한숨으로 뒤덮였다.

낭떠러지 끝에서 돌아선 기분이었다.

김지훈이 고경철을 보았다.

그동안 킵의 생활화를 몸소 실천했다.

금이 가기 직전의 유리병과 다름없는 이번 환자는 그 덕을 톡톡히 볼 것이다.

“안정될 때까지 삽관 유지하면서 중환자실에서 보자. 이 환자는 노티 없이 재우면 안 된다.”

“알겠습니다.”

당연한 일이라는 듯, 이젠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는 듯 고경철이 이혁원을 제치고 먼저 대답했다.

드르르륵!

환자가 회복실을 지나 곧장 중환자실로 향했다.

긴장으로 뻐근해진 어깨를 풀며 뒤따르던 김지훈이 이마를 푹 적신 식은땀을 닦았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이런 상황에서 겁먹지 않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후우! 운이 좋았어.’

바싹 마른 입술에 침을 축이다 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건너편 수술실에서 신경외과 수술이 벌어지고 있었다. 응급 수술이야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지만 뜻밖의 의사가 집도의였다.

‘열두 시가 다 됐는데 어떤 환자기에 신경외과 과장님이 직접 수술을 하시지? 평소 과장님 모습을 생각하면 VIP라고 해도 이상하네.’

사정이 있을 것이다.

다른 과 일에 왈가왈부할 상황도 아니었다.

김지훈이 무심코 준 눈길을 거뒀다.

보호자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곰곰이 고민하며 수술 방을 나서다 흠칫 놀라고 말았다.

복도가 온통 의사들로 바글바글했다.

대부분 보직을 가진 교수였다.

신경외과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송재덕 교수를 비롯해 신현수, 윤서연까지 보였다.

“현수야, 무슨 일이야?”

“아버님이… 아버님이…….”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응급 수술은 분명 신경외과 수술뿐이었다.

순간 김지훈의 머리가 멍해졌다.

“설마 이사장님이?”

신현수의 눈가가 붉어졌다.

윤서연은 거의 소리 내 울기 직전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도대체 왜?”

송재덕 교수가 다가왔다.

“지훈아, 방금 전에 수술한 환자부터 봐. 중환자실에 있잖니? 아직 누구도 결과를 모르니까, 이사장님 상태는 그 후에 물어보는 것이 맞다.”

김지훈이 이를 악물었다.

‘외부 출장 중이라고 했는데 사고가 났나? 뇌출혈인가? 환자도 봐야 하는데 어쩌지? 이사회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방금 수술한 환자와 신동철 이사장에 대한 걱정이 뒤섞였다. 그 와중에 이사회 결과를 궁금해하는 자신의 모습에 자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이젠 손일석 못지않은 친구인 신현수의 아버지였다.

답답하기 짝이 없었지만 송재덕 교수의 말이 맞았다. 어떤 경우에도 의사의 책임을 방기하지 않아야 했다. 사경을 헤맬지도 모르는 환자를 중환자실에 두고 마냥 자리를 지킬 수는 없었다.

솔직히 적당한 핑계를 대고 수술실을 들어가 상황을 지켜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직접 수술을 지켜볼 수 있는 의사들마저 신경외과 과장에게 가해질 부담을 우려해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신현수까지 말이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

“현수야, 걱정하지 마. 잘될 거야.”

고개만 끄덕였다.

김지훈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온갖 생각이 스쳤다.

집중하기 쉽지 않았다.

수술 후 시행한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그렇게 길 수 없었다. 그나마 환자를 보느라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는 이혁원과 고경철이 있어 다행이었다.

“고경철 선생, 어때?”

“전반적으로 좋지 않습니다만, 특별한 문제도 없는 상태입니다. 세 시간 후 다시 검사 내보내고 조치하겠습니다.”

“오늘은 인투베이션 유지하고, 잘 지켜봐.”

김지훈이 보호자를 찾았다.

우측 간을 대부분 제거했다는 말에 울음바다로 변했다. 환자의 부인은 거의 실신 지경에 빠져 부축하지 않으면 서 있지도 못할 정도였다.

“우리 남편 괜찮은 거죠? 선생님, 제발 살려 주세요. 아이 아빠를 살려 주세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환자 부인이 펑펑 울었다.

귀를 파고드는 절규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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