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1033화 (1,033/1,329)

19화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됐다.

고경아의 치밀한 준비와 이미 동행이 약속된 고경희의 실행력으로 주말여행이 확정됐다. 오 일만 근무하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다가올 것이다.

따라서 완벽한 한 주가 되어야 했다.

월요일은 하루 종일 수술 방에서 살았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윤석진을 만났다.

초미의 관심사는 정재복 환자였다.

상이한 혈액형에도 불구하고 초급성 거부 반응이 발생하지 않았고, 수술 후 경과도 상당히 좋았다. 이미 물을 먹기 시작한 환자도 중환자실을 벗어나길 간절히 원했다.

“석진아, 내일은 올라갈 수 있겠지?”

“가능할 것 같아.”

윤석진이 복사물 몇 장을 내밀었다.

정재복 환자에게 투여된 면역 억제제와 그에 따른 반응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었다. 미국 병원의 임상 경험과 더불어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꼼꼼히 환자 상태를 파악했다.

외과적으로도, 내과적으로도 집중 치료를 요하는 문제가 없었다. 아이나 어른이나 중환자실이 무섭긴 마찬가지였다. 특히 의식이 명료한 경우에는 심각한 불면과 불안까지 유발했다.

역효과만 유발할 상황이었다.

김지훈이 결정을 내렸다.

“환자분, 내일 병실로 올라가도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재복 환자가 웃었다.

수술 후 처음 보는 환한 웃음이었다.

보호자 역시 다르지 않았다.

간을 공여한 아들의 퇴원 날까지 정해졌다. 드디어 두 번째 간 이식 수술을 받은 한 가족과 수술을 시행한 의료진이 마음의 부담을 덜 첫걸음을 뗀 것이다.

‘이번 주만 잘 넘기면 정재복 환자도 퇴원이 가능하겠어. 두 건 모두 무사히 끝나 다행이다.’

한시름 덜었다.

시간이 늦어 오창도 교수를 만나지 못했다.

화요일이다.

예약 환자가 제법 많았다.

부지런히 움직였지만 점심시간까지 빠듯했다.

규정 진료 시간이 지나서야 그동안 근황이 꽤 궁금했던 얼굴을 보았다. 수술은 물론 입원 중에도 상당히 애를 먹은 만큼 무척 반가웠다.

“최인선 환자분, 검사 결과는 아주 좋습니다. 데메롤은 몇 차례나 맞으셨죠?”

“일주일에 한두 차례 맞았습니다.”

응급실로 내원해 윤석진의 진찰하에 투여했다. 차트에 빤히 기록된 일이었지만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최인선 환자의 목소리에 담긴 의지까지 엿볼 수 있었다.

“복통의 빈도가 그 정도인가요?”

“더 이상 발생하진 않았습니다.”

“다른 병원을 찾진 않으셨죠?”

“절대 그럴 일은 없습니다.”

“좋습니다. 슬슬 시간 여유가 있는 일을 구하셔도 되지 않을까요? 집에 있는 것보다 사회생활을 하시는 것이 데메롤 조절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안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의사의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확신할 수 없어도 최인선 환자만큼은 일상에 대해 듣고, 물어야 했다. 만성 췌장염의 통증 빈도가 확연히 줄어든 이상 그토록 원했던 삶을 영위하길 바랐다.

오늘로 의사와 환자 간의 직접적 관계도 끝났다.

“외과적으로는 더 이상 치료할 것이 없습니다. 앞으로 윤석진 선생님과 함께 잘 치료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최인선 환자가 슬그머니 음료수 한 상자를 책상 옆으로 밀었다. 환자의 성의와 마음이 담긴 이 정도 선물은 받아도 좋았다. 마침 음료수도 딱 떨어져 외래 간호사도 좋아할 것이다.

마지막 환자가 남았다.

허진아 환자였다.

오창도 교수가 함께 들어왔다.

“사모님, 컨디션은 어떠세요?”

“아주 좋아요. 검사 결과는 괜찮은가요?”

“아주 좋습니다. 최종 조직 검사 결과도 모두 양성인 것으로 나왔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동료 교수의 아내라는 특별한 인연에 최초로 췌장 복강경을 시행한 환자였다. 사람인 이상 더욱 각별한 관심을 둘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행여 놓치는 부분이 있을지 몰라 꼼꼼하게 문진을 하는 김지훈의 모습에 오창도 교수가 미소만 머금었다.

복부 진찰을 끝으로 진료를 마쳤다.

의사와 환자 자주 보아 좋을 일이 없었지만 췌장 종물을 제거한 환자였다. 최인선 환자와 달리 정기적인 검진을 받아야 했다.

“그럼 육 개월 후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눈치를 보니 외식이라도 할 모양이었다.

오창도 교수와의 자리가 또 뒤로 밀렸다.

수요일은 수술과 당직이 겹쳐 정신없이 바빴다.

목요일은 아예 여유 시간이 나질 않았다.

일전 복강경을 문의하며 진료를 받았던 췌장암 환자를 다시 진료했다. 정식으로 수술 날짜를 잡고, 상세히 설명하느라 꽤 시간을 잡아먹었다.

결정적으로 췌장 종물 환자가 내원해 철저히 진료해야 했다. 환자가 복강경에 동의한다면 대략 두 달 만에 세 번째 수술을 하게 될 것이다. 췌장 질환 빈도를 생각할 때 한 달에 한 건만 복강경으로 시행할 수 있어도 엄청난 성과임이 분명했다.

바라 마지않던 일이었다.

‘간 이식, 췌장 라파로를 한 달에 네 건 이상은 해야 강력하게 요구할 수 있을 텐데 가능할까?’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었다.

윤석진의 요청하에 새로운 가족을 포함한 환자 몇 명과 자리를 가졌다. 간암, 만성 간염 등등 다양한 기저 질환으로 모두가 간 이식을 필요로 했다.

이식을 결정하는 간담회가 아니라 수술 방법에 대해 소개하는 자리였다. 열심히 설명하고 진지하게 들었지만 현실의 벽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기대할 수 없는 뇌사자 장기 기증.

생체 이식에 따르는 부담.

막대한 비용.

돈과 바람만으로는 도저히 시행할 수 없는 수술이었다. 뇌사자 장기 기증은 가물에 콩 나듯 드물었고, 생체 간 이식은 여러 이유로 불가능했다.

“가족이라 해도 공여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동의했다 해도 중간에 마음이 바뀌는 경우가 허다할 겁니다. 힘드시겠지만 조금만 더 힘을 내셨으면 합니다.”

도움이 됐을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간 이식을 비롯해 장기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가 얼마나 많은지 확인하는 계기였다. 비록 현실은 열악하고 미흡하기 짝이 없었지만 일말의 희망도 보았다.

희귀 질환 특집 방송 이 부가 방영됐다.

장미라의 수술 과정이 생생하게 방영됐다.

정재복 환자의 준비 모습까지 이어졌다.

ARS 번호 옆에 표시된 숫자가 가파르게 증가했다. 밀려드는 후원의 손길만큼 장기 기증에 대한 관심도 증폭될 것이라 믿었다.

방송 도중 정훈철에게 연락했다.

“형님, 고맙습니다.”

(밤 시간인데 예상외로 시청률이 높아서 내가 고마워. 후원금이 상당히 많이 들어와 미라네 걱정도 덜 수 있을 것 같다. 당분간은 가족 모두 건강에만 신경 쓸 수 있을 거야. 미라는 언제 퇴원해?)

“내일 퇴원합니다.”

(촬영도 거의 다 끝났는데 불편하지 않았나? 조심한다고 해도 병원이라 어땠는지 모르겠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일간 연락드리겠습니다. 현수가 술 한 잔 산대요.”

(김 교수는?)

“저야 당연한 일이죠.”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 하나 더 늘었다.

오늘은 오창도 교수 얼굴도 못 봤다.

금요일 아침.

김지훈이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드디어 장미라가 퇴원하는 날이다.

또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고 야윈 아이였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응급실로 실려 와 어른도 견디지 못할 대수술을 받았다.

입원 대부분 중환자실에 있었다.

무서워 벌벌 떨어야 할 아이가 부모부터 생각했다. 아픔으로 커 버린 자식을 봐야 했던 부모 역시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그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마침내 두 발로 서 병실을 나왔다.

까맣기만 했던 미라의 뺨이 빨갰다.

앙상했던 팔다리에 분명 살이 붙었다.

볼록 솟았던 배가 쑥 꺼졌다.

무엇보다 환하게 웃었다.

급성, 만성으로 발생하는 거부 반응 때문에 평생 면역 억제제를 달고 살아야 하지만 이제 목숨을 위협하는 요소는 없을 것이다.

반드시 별일 없어야 했다.

건강해졌다는 사실 또한 분명했다.

미라가 쪼르르 달려왔다.

“선생님.”

“벌써 옷 갈아입었네? 그렇게 빨리 가고 싶어?”

“예.”

“엄마, 아빠랑 짜장면 맛있게 먹어. 그다음에는 뭐 하고 싶어?”

“학교요.”

사 년 동안 입원을 반복하며 온종일 누워 있었다.

밀린 학업은 따라갈 가능성이나 있다지만 한때 친구였던 아이들은 더 이상 곁에 없을 것이다. 열네 살 아이의 삶은 여전히 불완전했다.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요 조그만 놈이 끝까지 눈물 나게 하네.’

헛기침을 하며 웃어야 했다.

“일단 밥 잘 먹어야 한다. 다음에 볼 때 얼마나 컸는지, 몸무게가 얼마나 늘었는지 다 확인할 거야. 살 안 쪘으면 혼날 줄 알아.”

“잘 먹을게요.”

김지훈이 미라를 가만히 안았다.

토닥토닥 등을 두드리는 것으로 마음을 전했다.

곧 수술을 시작해야 할 시간이었다.

대부분 마지막 퇴원 모습을 보지 못했건만 오늘은 유난히 아쉬웠다. 그저 건강하게 잘 자라 자신의 삶을 영위했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잠시 후, 손일석을 비롯해 이준영 교수까지 장미라를 찾아 축하의 말을 건넸다. 많지 않은 짐을 챙긴 미라 엄마가 죄지은 사람처럼 허리를 숙였다.

병원은 단 일 원도 청구하지 않았다.

무료로 치료받았다는 사실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세상에 뻔뻔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절대 미안해할 일이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한 방울의 눈물과 고맙다는 말 한마디로 충분했다.

수술 방으로 향하던 김지훈이 훅 숨을 내쉬었다.

질환의 경중은 있어도 환자의 차이는 없었다. 최선을 다해 수술하고 치료해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시키는 것이 의사에게 주어진 책무였다.

‘오늘도 열심히!’

역시나 바쁜 하루였다.

더구나 간만에 맞이하는 연휴를 앞뒀다.

정말 치명적일 정도로 재수가 없는 당직을 빼면 모두 마음이 들뜰 시간이었다. 오창도 교수에게 고민거리를 줄 때가 아니었다.

“오창도 선생님, 모처럼 연휴인데 어디 가시나요?”

“와이프와 바람이나 쐴 생각입니다.”

“아! 그러시구나.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손일석 선생하고 놀러 가신다면서요? 김지훈 선생님도 재충전하시길 바랍니다.”

어쩌면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간 이식 센터 문제를 꺼내지 않길 잘했다. 행여 마음이 심란해지면 부부 동반 여행의 행복에 금이 갈지도 몰랐다. 정신 사나워질 수 있는 일은 무조건 피해야 했다.

드디어 퇴근이다!

손일석과 작전을 짰다.

“변산반도까지 얼마나 걸리지?”

“아침 여섯 시 전에 출발하면 차는 안 밀릴 거야. 호남 탔다가 빠지는 게 제일 빠른데, 그래도 네 시간 이상 잡아야 해. 휴게실도 들러야 하잖아.”

“그냥 다섯 시간 잡아야 하겠네. 내소사, 직소폭포, 격포 해수욕장은 하루에 다 들를 수 있겠지?”

“그래야 일요일 아침에 출발할 수 있지. 문제는 여행의 꽃이자 핵심은 먹는 건데 정보가 없어서 큰일이네.”

김지훈이 씨익 웃었다.

“밥집의 원칙만 지키면 돼.”

“뭔데?”

“일단 백이면 구십구는 실패하는 관광지 앞 식당은 피할 것. 현지 사람에게 최대한 정보를 빼내고, 허름한 집이라도 차가 많으면 일순위로 고려할 것. 횟집은 해수욕장 근처가 아닌 항구가 있는 동네에서 고를 것.”

“어쭈! 꽤 다녀 본 사람처럼 말하네.”

“간접 경험이라는 게 있잖아.”

“오케이! 일일 보험 들어 놨으니까 운전은 교대로 하고, 술자리 끝난 후에는 반드시 처형이나 우리 와이프에게 밀어야 한다. 배신하면 죽어.”

김지훈이 주먹을 치켜들었다.

“와이프나 처제나 술에는 젬병인데 당연하지. 근데 비상금은 좀 있냐?”

“있겠어? 월요일에 송금하고 피눈물 흘렸다. 넌?”

“일주일 내내 손가락 빨았다.”

입맛이 꽤 썼다.

멀쩡한 직업을 가진 성인 남성이 무일푼이라니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경제권을 빼앗긴 유부남의 한계이자, 가정의 평화를 위해 기꺼이 감수해야 할 일이었다.

돈 걱정은 와이프들 몫이다.

여행에 대한 기대도 크게 가질 필요가 없었다. 적당히 기대하며 운전하고, 걷고, 밥 먹고, 구경하고, 술 먹는 것을 즐기면 된다.

하룻밤 남았다.

빨리 자야 하는데 티브이는 왜 이리 재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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