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1030화 (1,030/1,329)

16화

다음 날.

병원 분위기가 다소 들떠 있었다.

이제야 두 건의 생체 간 이식 수술과 세 건의 췌장 복강경 수술 성공을 알게 된 대다수 직원들이 여기저기에서 대화의 꽃을 피웠다.

모두들 장미라의 상황에 동정을 표했고, 무료 치료를 결정한 병원의 대처에 일종의 자부심까지 보였다. 물론 부정적인 반응도 있었다.

“보는 내내 눈물 나서 후원 전화 몇 통 했어.”

“일반외과만 너무 부각된 거 아니야?”

“병원이 알려지면 모든 과에 좋은 영향을 미치겠지. 치료비가 엄청날 텐데 재단도 다시 봤어.”

“에휴! 월급은 똑같은데 일만 더 늘어날 것 같아.”

“설마 그만큼 올려 주겠지. 그나저나 김지훈 교수님도 대단하지만 신현수 교수님도 사람이 아주 똑 부러지네. 이사장님 후광으로 이사가 된 것만은 아닌 것 같아.”

별별 말이 다 돌았다.

반면 일반외과는 한결같았다.

방송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이준영 교수를 비롯해 대부분은 묵묵히 일상을 이어 갔고, 송재덕 교수와 손일석은 희희낙락 즐거움을 대놓고 드러냈다.

“일석아, 너 화면 잘 받더라. 말도 아주 깔끔하게 잘했다. 잘했어. 지훈이는 왜 그렇게 웃을 줄 모르니. 말 더듬을까 봐 보는 내가 다 조마조마했다. 자기 피알 시대잖아. 자기 피알. 기회를 살려야지. 기회를. 그치? 내 말이 맞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제가 잘 가르쳐서 인터뷰 정도는 문제없도록 다듬어 놓겠습니다.”

“그래. 그래. 이제 더 바빠지겠구나. 여기저기 할 일이 더 많아질 거야. 일석아, 열심히 하자. 열심히. 넌 잘할 거야. 누구보다 잘할 거다. 암! 그렇고말고.”

송재덕 교수가 어깨까지 두드리며 유난히 손일석을 챙겼다. 언뜻 무거운 기운이 스쳤지만 특유의 너털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손일석도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어디서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장미라와 더불어 방송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김지훈은 진료에만 집중할 뿐 하루를 조용히 보냈다. 함께 외래를 본 이혁원이 의아해할 정도였다.

이유는 멀리 있지 않았다.

고민의 연속이었다.

두 명의 수혜자, 두 명의 공여자 관찰과 치료에만 최소 네 명의 전담 의사가 필요했다. 만일 췌장 수술 환자까지 겹쳤다면 현재 간담도 파트 인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귀국 후 내내 고민했던 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두 건의 생체 간 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지금이 최적의 기회임을 명심해야 했다.

‘진행하자!’

그날 오후.

회진을 끝낸 김지훈이 사인방을 모았다.

평생 같은 병원에서 함께하지 못한다 해도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상의할 수 있는 친구임이 분명했다. 간담췌 파트 문제 역시 가장 먼저 논의하는 것이 마땅했다.

김지훈이 그간 수없이 고민해 온 바를 털어놓았다.

헉! 소리 터졌다.

신현수가 안경을 고쳐 썼다.

“지훈아, 몇 명이 더 필요하다고?”

“간 이식 파트에 최소 여섯, 췌장에 둘, 간암 파트와 원 포트를 포함한 남은 분야에 셋씩, 모두 열네 명이 필요해.”

“그러니까 여덟 명을 더 뽑아야 한다는 말이지?”

“계산상 그렇지.”

손일석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한두 명 보강하는 것도 힘든 판인데 여덟 명이나? 따블도 아니고 따따블이 말이 돼?”

“무리처럼 보이지만 간 이식 센터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야. 관련 인력이 대여섯 명에 불과하면 센터라고 할 수도 없어. 너 같으면 그런 병원에서 간 이식을 받고 싶겠어? 그나마 내가 간 이식, 췌장, 원 포트에 모두 관여한다는 가정하에서 상정한 인원이야. 장미라와 정재복 환자 수술은 예외적인 경우라고 생각해야 돼.”

“어떤 생각인지 잘 알겠는데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겠어?”

“그래서 더더욱 대폭적인 인원 보강이 필요해. 인원도, 장비도 모두 부족한 상태에서 간 이식 한답시고 수술하다 사람 죽이고 싶지 않다. 미라 수술은 둘째 치고 생체 이식 수술의 표준이라 할 수 있는 정재복 환자에게 몇 명이 매달리는지 눈으로 보고 있잖아?”

절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다른 수술과 확실하게 구분해야 했다.

뇌사자 장기 기증이라 해도 결국 공여자 수술이기 때문에 무조건 한 팀이 추가로 필요하다. 더구나 수혜자 수술은 아무리 숙달돼도 여덟 시간 이내로 단축하지 못한다.

간 이식 수술 하나로 하루를 꼬박 투자해야 하는 데다 무엇보다 수술 후 치료가 더욱 중요해 수술 팀 인원이 그대로 매달려야 한다.

물론 현실적 여건상 매주 벌어질 수 없는 수술이었다. 하지만 의료진이 부족하면 환자가 올 리 만무했다. 결국 현 상태에서는 수술 건수가 전무하거나 줄어들 테고, 수술이 없으면 간 이식 센터의 존재 가치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무엇이 선결 조건인지 논란조차 무의미했다.

아무리 절박하다고 해도 환자는 병원과 의료진의 질적 양적 수준을 보고 판단할 것이다. 생체 간 이식은 특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말로만 만들어진 센터는 결코 원하는 목적을 이룰 수 없었다.

실제 뼈아픈 경험도 있었다.

“신기동 선생님이 주관하셨지만 장기 이식 활성화 자체를 실패했어. 개인의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야. 미비한 제도와 더불어 환자가 선택할 만한 여건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던 것이 원인이야.”

김지훈이 열변을 토했다.

“먼저 규모를 키워야 해. 그래야 합당한 결과물을 낼 수 있어. 또 한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이 있어. 간 이식 수술이 활성화되면 그것으로 끝날까? 지금은 시도조차 하지 않지만 담도 이식, 췌장 이식까지 이끌어 낼 수 있어.”

“그래서 수술이 상당히 드문 췌장 파트까지 두 명을 뽑겠다는 거야?”

“췌장 질환과 특정 수술에만 국한시킬 이유가 없어. 개복, 라파로, 이식까지 모두 한다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해. 생각 같아서는 우리 네 명 모두 다시 배우는 한이 있더라도 센터 소속으로 만들고 싶을 정도야.”

손일석이 묘한 웃음을 터트렸다.

“아주 달변이네. 인터뷰 때도 이렇게 줄줄 쏟아 냈으면 얼마나 좋아? 그건 그렇고, 유학 가서 도대체 뭘 배운 거야? 꿈이 커도 너무 커. 근데 왜 솔깃하지? 미라하고 정재복 환자 때문에 그런지 이거 꼭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마구 드는 내가 이상한가? 경석이 형, 어때요?”

“다 맞는 말이야. 하지만 신규 병원 건립까지 걸린 마당에 재단이 과연 그만한 투자를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여덟 명이나 되는 인원을 어디서 찾아 뽑아? 모두 펠로우로 채우려는 생각은 아니겠지?”

김지훈에게 시선이 쏠렸다.

말만 번지르르했다면 욕먹고도 남았다.

“지금부터 인력 보강을 추진할 생각이에요. 일단 합류 의사를 확인하면서 이준영 선생님과 과장님께 보고드리는 것이 맞는다고 봐요.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지만 더 이상 늦췄다간 오는 환자도 수용하지 못할 거예요.”

신현수 표정이 묘했다.

바라 마지않던 일이었다.

김지훈이 외과 발전과 확장에 적극적으로 나서 준다면 한결 짐을 덜 수 있었다. 라이벌의 도약 또한 강한 자극으로 돌아와 스스로를 발전시킬 것이라 믿었다.

반면 의사 여덟은 차치하고 지원 파트 인원만 그 몇 배가 필요했다. 작은 병원을 새로 만들어도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예산이 드는 일이었다.

여기에 신규 병원 문제까지 걸렸다.

외과 소속으로 누구보다 발전과 확장을 원하지만 행정에 관여하는 이상 재원 문제를 반드시 고려해야 했다. 보다 구체적이지 않으면 허황된 상상에 그칠 뿐이었다.

“누구에게 합류를 요청할지 생각했어?”

“우리 김 교수가 아무 계획 없이 무작정 일을 벌이는 스타일이 아니잖아. 이 정도 말이 나왔다는 건 귀국 직후부터 음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단 얘기야. 설마 나는 아니겠지? 아무리 간곡히 부탁해도 최연소 과장, 병원장이란 타이틀이 너무 탐나서 난 사양이야.”

손일석이 너스레를 떨었다.

‘설마 네 본심은 아닐 테고, 사실 널 제일 먼저 생각했다. 현수나 경석이 형도 마찬가지야.’

아쉬움을 감춘 김지훈이 입을 열었다.

“검증된 써전과 시작해야겠지. 천안 병원과 구미 병원에서 근무하는 도진이, 도훈이, 호석이, 유석재 선생님까지 네 명을 먼저 만나 볼 생각이야. 남은 네 명은 병원 사정을 생각해서 내년에 펠로우로 선발했으면 해.”

“병원 사정을 고려한다고? 야! 무시무시한 일 벌여 놓고 이게 웬 망발이야. 고양이 쥐 생각하는 거 아니냐? 어쨌든 파트도 같고, 믿을 수 있는 써전들은 확실하네.”

이제 논의를 시작한 것과 다름없었다. 상당히 심각해지는 분위기를 풀려는 손일석의 의도와 달리 신현수의 매서운 눈빛이 풀리지 않았다.

“우리 과만 확보해선 센터가 굴러가지 않을 텐데.”

“내과는 석진이와 공정식, 마취과는 윤서연에게 말해 볼까 해. 방사선과도 한 명 필요하고, 간호과는 우리 파트 전담을 확장해서 그대로 맡으면 어떨까 해.”

‘바로바로 나오는 거 보니까 고민 많이 했네. 그렇다면 우리 과 내부 문제도 대비했겠지?’

“이준영 선생님은 계획만으로도 환영하시겠지만, 오창도 선생님 입장이 이상해질 수도 있어.”

“오창도 선생님? 아! 내가 말 안 했구나. 이식 파트를 하시겠다면 당연히 일 순위지. 새로 확보된 인원이 오창도 선생님 파트를 맡으면 되잖아.”

신현수가 팔짱을 꼈다.

더 이상 물어볼 사항이 없었다.

실현 가능성만 남았다.

이경석이 콧김을 내뿜었다.

“정리해 보자. 간 이식과 췌장 파트에 필요한 의사만 이 과 저 과 다 해서 최소 열두 명에 간호사를 포함한 지원 인력도 두 배 이상 필요하겠지? 거기다 무균실까지 있어야 하니까 추가 공간도 예상외로 많이 잡아먹을 거야. 야! 생각만으로 골치 아프네.”

“결국 돈이죠, 돈. 미라 수술비 마련하는 데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지훈아, 절충할 방안은 없을까? 현수 얼굴 창백해지는 거 봐라.”

“절충안보다 또 다른 선택이 있긴 하지.”

“뭔데?”

“아까 말했지만, 간 이식 센터는 누가 봐도 전문적이지 않으면 환자가 오질 않아. 돈이 넘쳐나는 미국에서도 그런 사례를 제법 많이 봤어.”

“그러니까 하는 말 아니야?”

“완전히 포기하면 돼.”

다들 흠칫 놀랐다.

포기란 말조차 쉽게 할 김지훈이 아니었다.

손일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건 또 무슨 망발이야? 그다음에는?”

김지훈이 힐끗 신현수를 보았다.

‘미안하지만 밀어붙여야 할 사람은 다 밀어붙일 수밖에 없다. 재단 이사인 이상 친구인 너도 마찬가지야. 마음에 없는 말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병원에 신세 진 거 해결하고, 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병원으로 떠야지. 면접 보기 싫지만 췌장 라파로까지 들고 가면 받아 주는 병원이 있지 않겠어?”

“진심이야?”

“나 아직 젊고, 스승님도 동의하실 거야. 아니지. 스승님과 함께 가면 조건이 더 좋아질 수도 있겠네.”

신현수가 안경을 벗어 깨끗이 닦았다.

확실한 반응이었다.

“그런 농담 재미없다.”

“농담으로만 받아들이면 안 될 것 같다.”

“병원에 돈 넘쳐나지 않아.”

“그만큼 벌어 준다니까.”

“확신할 수 있어?”

“아까 말한 것처럼 전담 의료진이 충분하다고 해도 내가 간 이식만 고집할 이유가 없어.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고. 바람이지만 일석이하고 경석이 형까지 합류한다면 100퍼센트 확신해.”

손일석이 귀를 쫑긋거렸다.

“어허! 나는 또 왜 끌고 들어가시나. 뭐, 혈관에 관한 한 내가 출중하긴 하지. 지훈이 일복도 천년만년 갈 테니 틀린 말도 아니네.”

“지훈아, 대장 하는 나는 왜?”

“경석이 형, 췌장 라파로도 중요합니다. 능력 되고, 박승준 선생님 계시고, 펠로우 새로 뽑으면 되는데 기존 파트가 무슨 상관이겠어요? 간 이식까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것과 다름없어요.”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임을 잘 알았지만 김지훈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요구되는 능력을 충분히 갖고도 남는 사인방이기도 했다.

신현수가 피식 웃었다.

“난 왜 빼?”

“신규 병원은 어떻게 하고? 사실 너까지 간 이식 센터에 합류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다. 최고의 수술 팀이 저절로 만들어지잖아.”

“입에 발린 소리 그만하고 현실적으로 생각하자. 아직 난 확신이 없어. 일단 지훈이 네가 오창도 선생님, 도진이, 도훈이, 호석이, 석재 형까지 모두 만나 봐. 그 정도는 해야 하겠지? 그 후에 결과 보고 이사장님께 말씀드려 볼게.”

이 정도면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김지훈의 입이 쫙 찢어졌다.

“역시 현수답다. 고맙다.”

“아직 일러. 간 이식 이전에 췌장 부분부터 확실한 실적이 손에 잡혀야 할 거야.”

“내 일복 알잖아? 훈철이 형님이 홍보까지 확실하게 해 줬는데 환자 안 오겠어?”

“원 포트는 제외다.”

“빡빡한 자식!”

손일석과 이경석이 웃었다.

‘네 열정 참 부럽다.’

“지훈아, 우리가 도울 일은 없을까?”

“왜 없겠어요? 후배들 섭외할 때 도와주세요.”

“지훈아, 석재 형은 내가 맡을게. 학교 후배여도 트레이닝 선배인데 형이 말하기에는 좀 깝깝하지 않겠어? 그럼 이걸로 시작하는 건가?”

마무리하려는 찰나.

신현수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틀을 먼저 만들고 사람을 채우는 상황이 아니야. 만들어지지도 않은 틀에 어떻게 사람을 채울 거야? 설마 선후배의 의리나 정에 호소하는 건 아니겠지?”

구미는 몰라도 천안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들이 마냥 서울 병원을 선호하는 시절이 아니었다. 경제적으로 윤택해지는 것도 아닌 데다 삶의 터전을 옮기고, 새로운 사람과 관계를 쌓아 가는 일이 말처럼 쉽지도 않다.

지금 제시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였다.

먼저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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