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김지훈이 공여자의 간을 건네받았다.
좌측 간 부분 절제로도 간의 크기나 무게 모두 충분해 보였다. 아이 아빠의 부담이 그만큼 줄었다는 의미였지만 반대로 열네 살 아이가 얼마나 작은지 알려 줘 새삼 가슴이 아팠다.
장미라 배 속에 아빠의 간을 넣었다.
잘 안착되면 크기와 무게가 늘어난다는 점을 감안해 가급적 우측 간이 있던 자리 가깝게 위치시켰다.
“시작합시다.”
손일석과 함께 루뻬를 착용했다.
돋보기와 같아 수술 부위는 확대되지만 전체 시야는 도리어 제한된다. 이혁원과 송진우의 세심한 주의가 더욱 필요했다. 최근 많은 혈관 수술에 들어간 만큼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김지훈이 간정맥을 확인했다.
건강한 성인의 혈관과 오랜 기간 병에 시달린 아이의 혈관이었다. 연결면의 굵기 차이를 최대한 좁혀야 합병증 발생을 줄일 수 있었다.
무작정 이으면 봉합 간격이 균일하지 못할 뿐 아니라 혈류량이나 속도의 차이까지 발생해 출혈, 혈전 발생의 위험을 크게 높일 수밖에 없었다.
연결면의 둘레를 맞추기 위해 장미라의 간정맥 끝을 사선으로 잘랐다. 눈대중이지만 오랜 경험을 통해 허용 가능한 수준임을 알 수 있었다.
“일석아, 어때?”
“괜찮아 보인다. 진행하자.”
“수처 주세요.”
간 상부에서 연결해 시야가 좋고, 여유까지 많은 혈관과 혈관의 연결이었다. 루뻬의 도움을 받아 꼼꼼하게 연결했다. 아직 피가 흐르지 않아 납작하게 보였지만 미흡한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간문맥으로 넘어갔다.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데다 동맥이 가로막고 있어 먼저 연결해야 한다. 순서를 바꾸었다간 기구를 조작할 공간마저 잃을 것이다.
안전과 편의를 위한 순서였지만 시야는 물론 기구 조작 자체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혈관 파트 최고 써전과 함께하는 수술이었다.
“수처! 타이! 컷!”
김지훈의 손은 자연스러웠다.
손일석의 타이는 정확하고 확실했다.
정맥보다 훨씬 단단하고 꼼꼼하게 연결해야 했지만 무리한 면이 없었다. 항상 문제가 될 정도로 가장 중요한 마지막 수처와 타이도 깨끗하게 끝냈다.
“셀라인! 석션! 거즈!”
연결 부분을 깨끗이 닦아 수처 간격을 확인한 후 혈관 겸자를 살짝 풀었다. 소장 정맥에서 시작해 간문맥으로 흐른 피가 간정맥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허용 수준 이상의 출혈이 발생하면 다시 봉합해야 했다. 바늘구멍을 통해 새어 나오는 피를 제외하곤 만족스러운 결과를 보였다.
납작했던 정맥이 차츰 굵어졌다.
김지훈이 입술을 모았다.
‘이 정도면 잘 연결됐다.’
과도한 혈류는 아직 금물이었다.
혈관 겸자를 다시 조였다.
따르륵!
살짝 간문맥을 잡아 혈류를 조절했다.
이혁원과 송진우의 눈에도 상당히 수월한 진행이었다. 그러나 빠른 진행은 아니었다. 혈관 연결 자체가 간 이식의 핵심이자 성패를 결정하는 부분이기에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과정이었다.
“셀라인! 거즈! 석션!”
수술 부위를 깨끗이 씻고 마지막으로 남은 혈관인 동맥 연결에 들어갔다.
가장 가느다란 혈관이었다.
혈류가 주는 압력 또한 가장 강했다.
그 탓에 수술 후 심각한 출혈과 혈전이 가장 빈발하는 혈관이었다. 문제 발생 시 재수술을 피할 수 없었고, 최악의 경우 간을 포기해야 하는 일마저 발생할 우려가 컸다.
한 아이의 죽음이었다.
아이 아빠와 엄마의 애끓는 눈물이었다.
보호자의 분노와 원망 이상으로 다가올 수술 팀의 죄책감과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김지훈이 바짝 긴장했다.
‘마지막 고비다.’
루뻬를 끼고도 동맥은 가늘게 보였다.
안전하게 연결한다고 동맥벽을 깊게 뜨면 필연적으로 좁아진다. 혈전 발생을 유발할 수밖에 없었고, 반대로 얕게 뜨면 출혈의 위험을 증가시킬 것이다.
무엇보다 적절한 두께가 요구됐다.
이는 곧 정밀한 손이었다.
김지훈이 신중에 신중을 거듭했다.
지난 시절의 모든 경험을 떠올렸다.
그로도 부족해 맨눈으로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가느다란 실로 수처하건만 실과 바늘이 통과한 작은 틈마저 걱정할 정도였다.
타이는 말할 것도 없었다.
끊어 먹는 순간 이차 손상이 불가피했다.
합병증 발생이나 다름없었다.
“수처! 타이!”
혈관에는 누구보다 자신만만했던 손일석이 극도의 긴장 속에 타이를 시행했다. 한 바늘 한 바늘 진행될 때마다 눈을 부릅뜨고 매듭을 확인했다.
‘단단하지 않으면 압력 때문에 풀린다.’
간동맥 내부가 차츰차츰 시야에서 사라졌다.
마지막 한 바늘이 남았다.
동맥 내부를 확인할 수 없어 가장 실수가 많이 발생하는 부분이었다. 경험 많은 써전은 충분히 피해 가지만 간 이식 성패가 달렸다.
혈관 또한 모든 층을 뜨지 못하면 아물지 않는다. 바늘구멍보다 조금 더 큰 틈만 발생해도 배를 다시 열어야 하는 일을 피할 수 없었다.
김지훈의 손이 전에 없이 신중했다.
극도의 주의를 기울여 마지막 바늘을 찔렀다.
수차례 확인한 후에야 타이를 진행시켰다.
손일석의 이마에 새로운 땀이 맺혔다.
눈가를 잔뜩 찡그린 채 손으로 전해지는 감촉과 압력을 놓치지 않았다.
매듭이 지어졌다.
더 이상 안전을 담보할 방법은 없었다.
모든 혈관이 정확하게 연결돼 간 내 혈류를 정상적으로 유지시키는지 확인하는 일만 남았다. 반드시 해결해야 할 출혈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김지훈과 손일석의 눈이 마주쳤다.
“혈관 겸자 푼다.”
“후우! 풀자.”
간문맥을 잡았던 겸자를 완전히 풀었다.
정맥이 불룩해졌다.
동맥을 잡았던 겸자를 풀었다.
심장에서 출발한 강력한 혈류가 동맥에 강한 박동을 전했다. 간을 통과한 피가 정맥으로 빠져나가며 모든 혈관에 팽팽한 압력을 가했다.
허용 수준 이상의 출혈이 없어야 했다.
수술 팀의 시선이 세 개의 혈관 연결 부위에 집중됐다. 출혈량을 확인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가져간 거즈 끝이 달달 떨릴 정도였다.
바늘과 실이 통과한 모든 부분을 살폈다.
거즈로 일일이 닦아 가며 다시 봉합해야 하는지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불가피한 출혈만 관찰됐다.
산발적인 데다 미세해 혈액 응고 기능이 조금이라도 개선되면 해결될 수준으로 보였다.
안심할 단계가 아니었다.
철저한 확인이 남았다.
원활한 혈류가 지속적으로 유지돼야 이식된 간이 안착할 수 있다. 검붉게 변한 간이 선홍색으로 물들어야만 안도할 수 있었다.
장미라의 심장에서 출발한 뜨거운 피를 받아 팽팽해진 혈관은 잘 버텨 주었다. 이제 충분한 혈류가 이식된 간에 새로운 생명력을 주어야 한다.
숨 막히는 순간이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째깍! 째깍!
시계 초침이 툭 다음 시간을 가리키는 순간 김지훈이 훅 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손일석, 이혁원, 송진우 모두 거칠었던 숨을 달랬다.
간이 선홍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말랑말랑했던 간 조직이 탄탄해졌다.
절단면을 따라 흐르는 약간의 피가 반가울 정도였다.
적어도 물리적으로는 어떤 문제도 보이지 않았다.
‘됐어. 이제 담도만 연결하면 된다.’
순간의 흥분을 억누른 김지훈이 수술 팀을 보며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진행해도 되겠지?”
“담도만 연결하면 끝이네. 이혁원, 송진우, 마지막까지 긴장 풀지 말자.”
김지훈이 살짝 누그러졌던 긴장을 끌어 올렸다.
담도 처리가 가장 무난했지만 상대적일 뿐이었다.
기존 담도 처리보다 상당히 나쁜 시야.
크기가 맞지 않는 두 개의 담도.
췌장관과 더욱 가까워진 위치.
기존에 연결한 혈관을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되는 상황까지 모든 요소가 불리했다.
간담췌 분야에 가장 큰 강점을 가진 김지훈도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마지막까지 절대 방심하면 안 된다.’
“수처!”
굵은 담도와 가느다란 담도가 연결되기 시작했다.
보다 정밀한 수술을 위해 루뻬를 벗지 않았다.
담즙이 새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적당한 간격을 유지했다. 차츰차츰 아버지와 딸의 담도가 하나로 이어지며 제 모습을 갖췄다.
“수처! 타이! 컷!”
“셀라인! 석션! 거즈!”
나직한 목소리만 들렸다.
드디어 담도까지 모두 연결했다.
안정적으로 위치시킨 간과 수술 부위 전체를 면밀하게 살핀 결과 당장 해결해야 할 출혈도 관찰되지 않았다.
이제 배만 닫으면 끝난다.
김지훈의 눈이 번쩍였다.
확실하게 연결된 혈관과 담도.
선홍색을 유지하는 간.
안정적인 바이탈.
지금까지 수술 팀 전체가 흘린 땀의 결과였다.
‘수술은 잘됐다.’
“배 닫자.”
드레인을 넣은 후 빠르게 수처를 진행했다.
“컷!”
김지훈이 시계를 보았다.
네 명의 써전, 한 명의 마취과 전문의, 두 명의 수술실 간호사의 사투가 열한 시간 만에 끝났다.
수고했다는 말이 들리지 않았다.
수술만 종료됐을 뿐이었다.
부산히 수술 기구를 치우는 모습을 보면서도 덧 가운조차 벗지 않았다. 수술 팀의 시선이 바이탈을 표시하는 기계에 집중됐다.
김진호 교수가 장미라 상태를 확인했다.
‘잘 버텼다. 고맙다.’
“김 교수, 환자 옮겨도 되겠지?”
“예. 모두 끝났습니다.”
“오케이! 중환자실 베드 들어오라고 하세요. 모두 수고했습니다.”
간 이식을 받은 환자는 모든 면에서 엄청난 부담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수술 후 처치 또한 신속하게 이어져야 했다. 바이탈 점검만 가능한 회복실에서 마취를 깨길 기다리는 것 자체가 위험했다.
기도 내 삽관조차 제거하지 않았다.
장미라는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드르르륵!
육중하고 둔탁한 베드를 수술대 옆에 세우고 수액과 수혈 중인 피, 소변 주머니까지 모두 옮겼다. 불안정한 호흡을 돕기 위해 김진호 교수가 직접 앰부(Ambu:손으로 호흡을 유지시키는 공기 주머니)를 잡았다.
삐익! 삐익!
자발 호흡과 인공호흡이 충돌하며 좁은 틈으로 삐져나오는 공기가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열한 시간이 넘는 마취를 견디고 있다는 의미였다.
‘미라야, 힘내자.’
“옮깁시다. 하나! 둘!”
장미라의 가냘픈 몸이 힘없이 흔들렸다.
남편 곁을 지키다 말고 달려온 아이 엄마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수술이 끝난 후 마취를 유지한 채 중환자실로 옮긴다고 수차례 말했건만 까맣게 잊었다.
“선생님, 우리 미라 잘못된 건 아니죠? 미라야!”
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두려움까지 보였다.
엄마의 아픔이자 한없는 사랑이었다.
“수술 잘 끝났습니다. 손일석 선생, 수술 전에 한 말 모두 잊으신 모양이다. 설명 부탁해.”
“어머니, 걱정하지 마시고 이리 오시죠.”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베드를 붙잡고 있는 엄마의 손을 간신히 떼어 냈다.
곧바로 미리 마련된 중환자실 자리로 이송했다.
간호사들이 재빨리 바이탈을 측정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 서서히 돌아오는 자발 호흡에 맞춰 앰부를 잡고 있던 김진호 교수가 침착하게 장미라를 깨우기 시작했다.
이혁원과 송진우가 부지런히 움직였다.
수술 후 오더를 작성하는 한편 수액과 전혈 투입 속도를 조절했다. 산소 포화도는 적당한지, 소변은 잘 나오는지, 드레인에 이상 소견은 없는지 꼼꼼하게 점검했다.
잠시 후 윤석진까지 달려왔다.
“김 교수, 수술 잘됐지?”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아.”
“면역억제제 투여는 이혁원 선생, 송진우 선생하고 상의할게. 혹시라도 이상 반응이 의심되면 바로 연락 줘.”
고개를 끄덕이는 김지훈의 눈이 장미라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엄청난 마취 시간을 버텼지만 그보다 더 힘든 시간을 앞뒀다.
김진호 교수가 앰부 배깅(Bagging)을 멈췄다.
신중하게 자발 호흡 정도를 확인하며 산소 포화도 변화에 집중했다. 훅훅 숨소리가 들릴 때마다 호흡 튜브를 따라 하얀 김이 맺혔다.
결코 약하지 않았다.
마침내 눈을 떴다.
초점 없는 눈으로 목구멍을 막고 있는 튜브와 복부에서 전해지는 통증에 몸을 비틀었다. 본능에 따라 튜브를 빼려 입으로 손을 가져갔다.
재빨리 막은 김지훈이 숨을 몰아쉬었다.
제법 힘이 실려 있었다.
‘이 정도면 됐어.’
태어날 때부터 선천 질환에 시달렸고, 급기야 간경화까지 앓은 열네 살 아이의 생명력은 놀라웠다. 열두 시간 가까운 마취와 수술을 모두 이겨 냈다.
대가는 충분했다.
그저 고마웠다.
가슴이 뭉클하다 못해 먹먹할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