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김지훈이 몇 분 지나기도 전에 초음파를 끝냈다.
“정상 이상으로 굵어진 부대 혈관이 상당히 많이 관찰되지만 이 부분 밑으로 간동맥과 문맥이 지나가네. 여기서부터 시작하자.”
수술 팀 모두 다소 놀랐다.
준비 단계부터 초음파를 언급했지만 도플러까지 손쉽게 볼 줄은 몰랐다. 유학 중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부문은 모두 배운 모양이었다.
상당한 수준까지 말이다.
고경아만 당연하다는 표정이었다.
그 덕에 일차 목표가 무척 쉽게 정해졌다.
김지훈이 손을 내밀었다.
“모스키토! 보비!”
조직을 벌리고 소작했다.
삐이이이이!
날카로운 기계음이 반복됐다.
박리 속도는 느리기 짝이 없었다.
간이 돌처럼 딱딱해지면 간 내 혈압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결국 동맥과 문맥의 혈류가 우회하며 간경화 특유의 부대 혈관 발달이 발생하게 된다.
혈관 망이 거미줄처럼 변할뿐더러 하나하나의 굵기마저 두꺼워진다. 응고 장애와 맞물려 심각한 출혈의 빌미가 되는 것이다.
곳곳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동맥 분지인지, 문맥 분지인지는 상관없었다.
무조건 잡아야 했다.
모든 조건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매듭 강도가 약하면 출혈을 막을 수 없고, 강하면 단단한 조직을 찢고 들어가 새로운 출혈을 야기할 상황이었다. 노련한 써전이라 해도 결코 만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수처! 타이! 일석아, 보이는 것 이상으로 조직이 단단해. 타이 정말 조심해야 돼.”
“후우!”
반복되는 수처와 타이에 극도의 부담이 가해졌다.
손일석의 이마가 땀으로 흠뻑 젖었다.
혈관 위치를 아는 것과 확보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 문제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간동맥을 찾으면 그 바로 밑에 간문맥이 있다는 사실 정도였다. 하지만 간문맥 주행이 췌장을 관통하는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동맥 이상으로 주의를 요구했다.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동맥이 어디 있는지 빤히 알면서도 접근하기 이렇게 힘들다니, 초음파 아니었으면 수술 자체가 불가능할 뻔했다.’
“수처! 타이! 보비!”
손톱만큼 파고드는 것조차 힘들었다.
양을 떠나 지속적 출혈에 시야마저 좋지 않았다. 집도의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적절하게 보조하는 이혁원과 송진우 아니었으면 진행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출혈량이 적지 않았다.
“전혈 두 팩, 혈소판 두 팩 더 시킵시다.”
똑! 똑! 똑!
새로운 수혈이 시작됐다.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삐이이이이!
“컷! 셀라인! 석션!”
조금씩, 조금씩 유착 조직을 파고들던 김지훈이 손을 멈췄다. 언뜻 하얀 조직이 보이며 박동에 따른 규칙적 움직임을 보였다.
드디어 동맥을 찾았다.
김지훈은 서두르지 않았다.
기계를 맹신하면 실수하기 마련이었다.
오판의 결과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었다.
단 하나의 구조물이라도 착각하는 순간 간 이식은 결코 성공할 수 없었다. 굵어진 부대 혈관이 간동맥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모든 조직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열네 살 아이의 혈관이라는 점까지 감안해야 했다.
수술 팀의 판단을 물었다.
“김 교수, 간동맥 맞아.”
손일석이 동의했다.
모든 조건이 간동맥임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바로 밑에서 주행하는 문맥까지 확인해야 보다 확실해진다. 그때까지 혈관 처리를 서두르면 안 된다.’
“동맥 박리하면서 문맥까지 확보하자.”
간동맥을 따라 공여자 간의 혈관에 연결하기 충분할 정도로 박리해야 했다. 동시에 깊이 파고들어 문맥을 노출시키는 것이 관건이었다.
원래 존재하는 분지처럼 굵어졌을 부대 혈관을 모두 묶어 출혈을 막아야 했다. 단단한 조직 속에 숨어 결찰 자체가 쉽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출혈과의 싸움이 될 것이다.
혈관을 묶기 전에 정확한 판단인지 두 번 세 번 확인해야 했다.
김지훈이 숨을 골랐다.
“박리 시작하자. 보비!”
삐이이이이!
수술 팀의 긴장이 치솟았다.
기구 조작 하나하나가 살얼음판이었다.
아무리 가늘어도 눈에 보이는 혈관을 놓치는 순간 피바다가 될 상황이었다. 박리해 찾아내는 김지훈도, 이를 타이해야 할 손일석도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했다.
제법 굵은 혈관을 처리할 때마다 부대 혈관을 간동맥으로 착각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같은 판단을 내렸던 손일석도 신중에 신중을 거듭했다.
서서히 동맥이 드러났다.
이제 간문맥이 보여야 한다.
혈관과 혈관 사이를 조심스럽게 박리했다.
유착 조직과 다른 양상이 보였다.
김지훈이 바싹 마른 입술에 침을 축였다.
‘문맥일까? 문맥이라면 과도한 힘은 금물이다.’
마치 췌장을 절제할 때처럼 신중한 손길로 파고들었다. 스멀스멀 새어 나오는 피를 제거하며 고도의 집중력으로 박리를 진행했다.
구조물 벽면 일부를 완전히 노출시켰다.
손일석이 훅 숨을 내쉬었다.
“문맥이네. 후우!”
간동맥을 확인시켜 줄 간문맥이 분명했다.
극도의 긴장에 짓눌렸던 김지훈이 고개를 살짝 돌려 뻣뻣해진 몸을 풀었다.
두 개의 혈관 박리가 시작됐다.
문맥 역시 동맥만큼 많은 피가 흐르고, 비교적 강한 혈류를 가졌다. 반면 혈관 벽은 상대적으로 약해 사소한 압력으로도 쉽게 찢어질 수 있었다.
입 안이 바짝바짝 탔다.
축축해진 등짝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오직 기구와 혈관에 집중해야 했다.
“타이! 컷!”
그뿐이 아니었다.
최대한 손상 없이 혈관을 확보해야 공여자 혈관과 연결한 후에도 문제를 일으킬 확률을 줄일 수 있었다. 자칫 거칠게 처리된 면이 재수술의 주요 원인인 출혈은 물론 혈전 생성까지 유발하기 때문이었다.
김지훈이 힐끗 시계를 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여자 간이 절제될 것이다.
시간은 수혜자 편이 아니었다.
잠시도 쉴 수 없었다.
수술 팀에게 초조함은 치명적이었다.
오직 집도의가 감당해야 할 일이었다.
‘침착하자. 예정 시간 내에 끝낼 수 있다.’
스스로 확신을 가졌다.
차츰차츰 드러나는 동맥과 문맥을 보며 호흡을 가다듬고, 조급해지는 마음을 조절했다. 극도의 긴장 속 지난한 과정을 반복했다.
절대 손상돼서는 안 될 췌장마저 가까워졌다.
출혈은 여전히 발목을 잡았다.
한마디로 악전고투였다.
‘조금만 더 확보하면 된다.’
김지훈과 손일석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오직 성공만을 머릿속에 담았다.
마침내 두 개의 혈관을 원하는 만큼 노출시켰다.
췌장에 근접하기 직전에 적절한 길이를 얻었다.
절로 안도의 한숨이 터졌다.
“혈관 겸자!”
동맥, 문맥을 차례로 묶고 잘랐다.
혈류가 모두 끊어진 간이 서서히 검붉게 변했다.
이제 마지막 구조물을 찾아야 했다.
간 이식까지 발생하게 만든 원인, 바로 담도였다.
초음파를 통해 이미 정상적으로 남아 있는 담도의 위치를 어느 정도 가늠했다. 췌장관과 합류하는 지점까지 바짝 박리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지만 최고의 수술 팀과 함께하고 있었다.
“담도 확보합시다.”
뻐근한 몸을 추스르지도 못한 채 다음 과정에 돌입했다. 담도만 남은 상태였고, 어차피 제거해야 할 간이기에 주변 조직과 연결된 유착 조직을 박리할 이유가 없었다.
모두 제거하면 된다.
김지훈이 후복막과 면한 부분부터 시작해 눈에 보이는 부분까지 한 덩어리로 제거하기 시작했다. 만에 하나 담도가 있을지 몰라 신중하기 짝이 없었지만 위치를 착각할 써전이 아니었다.
정상적인 담도가 들어 있을 리 없었다.
서서히 남은 조직이 줄어들었다.
조금씩, 조금씩 간에서 나온 담도가 췌장관과 합류하는 부위에 가까워졌다.
김지훈의 손이 급격하게 느려졌다.
“일석아, 곧 나올 것 같다.”
“지금 박리하는 부분 바로 옆일 가능성이 높아.”
“모스키토!”
마치 간을 자르는 것처럼 남은 조직을 파고들었다. 단단하고 질긴 조직이 벌어지며 피가 맺혔다. 시야에 방해되지 않도록 지혈해 가며 이질적인 감촉을 찾았다.
턱!
무언가 다른 느낌이 전해졌다.
췌장관과 합류되는 부위 직상부였다.
더욱 신중해진 김지훈을 본 손일석이 최대한 시야를 넓혀 주기 위해 조심스럽게 주변 조직을 벌렸다.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담도가 분명했다.
“담도 맞아. 담도와 합쳐지는 췌장관이 바로 밑에 있어. 손상받지 않도록 신중하게 박리하자.”
이차 손상 경고에 손일석이 뻑뻑해진 손가락을 놀렸다. 지금까지 해 온 이상으로 수처와 타이가 힘들 수밖에 없었다. 보비 또한 정교하지 못하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몰랐다.
“수처! 타이! 컷! 보비!”
“셀라인! 석션!”
서서히 담도가 드러났다.
분지가 없는 구조물이지만 근접한 췌장과 대정맥의 위치 때문에 한 치의 방심도 하락하지 않았다. 김지훈을 비롯한 수술 팀 전체가 마지막 한 방울의 땀까지 쥐어짰다.
드디어 담도가 노출됐다.
일 센티미터가 채 넘지 않는 길이, 선천적 질환에 영향을 받은 탓에 만족하기 힘든 굵기까지 불안하기 짝이 없었지만 더 이상 확보할 방법이 없었다.
‘또래보다 작은 열네 살 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으로도 만족해야 한다.’
담도를 잘랐다.
간과 연결된 조직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십사 년 동안 한 아이의 몸속에 있었던 장기를 통째로 들어냈다. 모든 사람에게 삶의 원천이지만 선천성 질환이 동반되며 죽음의 원인으로 변했기에 도리어 귀중한 자료였다. 훗날 똑같은 질환을 앓는 아이의 삶에 도움이 될 각종 검사가 시행될 것이다.
고경아에게 간을 건네던 김지훈이 멈칫거렸다.
눈도 깜빡이지 못했다.
휑하니 빈 공간을 보는 순간 한 아이의 생사가 의료진의 손에 달렸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단순히 성공과 실패라는 말로 표현될 수술이 아니었다.
‘실패하면 열네 살 아이가 죽는다.’
섬뜩한 기분에 몸을 추스르며 정신 바짝 차렸다.
곧 공여자 간이 옮겨질 시간이었다.
그 전에 세 개의 혈관과 한 개의 담도에 달라붙어 있는 조직을 깨끗하게 다듬어야 했다. 절단면까지 확실하게 처리했을 때쯤 수술실 문이 열렸다.
절묘하게 시간을 맞췄다.
김지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뜻밖에도 신현수가 공여자 간을 가져왔다.
잘게 간 얼음 속에 담은 간에 혈액을 대신한 관류액을 순환시키며 입을 열었다.
“이준영 선생님께서 손보라는 부위가 있어. 십 분 정도 걸릴 거야.”
김지훈이 목을 돌리며 말했다.
“십 분간 쉬자.”
수술 팀의 마스크가 불룩해졌다.
마취 시작한 지 여덟 시간, 수술 시작한 지 일곱 시간 반 만에 처음 취하는 휴식이었다. 마스크 사이 빨대로 먹는 하얀 우유가 지친 심신을 달래 주었다.
어느덧 오후 다섯 시가 넘었다.
간담췌 파트 담당 새로운 간호사가 들어왔다.
주의할 점과 진행 상황을 알려 준 고경아가 미안한 눈빛으로 손을 바꿨다.
정시 교대는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수술 팀도 다른 처우를 받을 이유가 없었다.
‘고생했어요.’
물론 집도의에게는 절대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갈증을 해결하는 사이 이식 준비가 모두 끝났다.
“삼분의 일만 남았네. 힘내.”
신현수의 응원 속에 수술 팀이 다시 자세를 가다듬었다. 이제 혈관과 담도를 이어 주는 과정만 남았다. 지금까지 흘린 땀은 바로 이때를 위한 노력이었다.
성공을 위한 마지막 단계!
김지훈이 간호사를 보았다.
“루뻬 준비해 주세요.”
간 이식 수술의 최종적 성패는 혈관 연결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장미라의 체격과 나이를 생각하면 반드시 혈관 수술 부분을 확대해 봐야 했다.
루뻬를 착용하기 전 휑하니 빈 수술 부위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더 이상 지혈하기 힘든 미세 출혈 이외에 다른 문제는 없었다.
김진호 교수가 있는 한 바이탈도 문제없을 것이다.
김지훈의 입이 열렸다.
“수술 시작합니다.”
마지막 과정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