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조그만 복부를 길게 절개했다.
바짝 마른 배의 지방층은 얇았다.
단단해야 할 근육은 연약하기 짝이 없었다.
이제 배를 열었을 뿐인데 거즈 여러 장이 붉게 물들었다. 간경화로 약해진 혈액 응고 기능 탓이기에 수술 내내 상당한 주의를 요했다.
배 속 장기를 확인했다.
생후 두 달 만에 수술을 받았다.
지나온 세월이 수술 흔적을 더욱 짙게 만들었다.
장기 유착이 예상보다 훨씬 심했다.
대장과 소장 일부, 첫 수술 당시에도 찾기 힘들었을 담도가 포함된 부분까지 모두 한 덩어리로 변해 단단하게 뭉쳐 있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처음부터 정말 쉽지 않겠어.’
간을 확실하게 확보하기 위해 기존 수술 부위 윗부분을 덮고 있는 대장과 소장의 유착부터 해결해야 했다.
장과 장 사이의 약한 유착은 손가락으로 박리하는 것이 안전하지만 단단하게 붙어 있는 부분은 수술용 가위와 보비가 필요했다.
김지훈의 손이 능숙하게 움직였다.
“멧젬(수술용 가위)! 보비!”
삐이이이!
대장과 소장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실타래처럼 꾸불꾸불 엉켜 붙은 장을 일일이 풀어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담도와 공장을 연결한 부위에 가까워질수록 유착 조직이 단단하게 변해 박리가 결코 수월하지 않았다.
출혈이 거의 발생하지 않아야 할 과정이었지만 또다시 몇 장의 거즈가 피를 흠뻑 머금었다. 작은 육신을 가진 아이에겐 상당한 위협이었다.
‘좋지 않다.’
김지훈이 힐끗 수액 폴(Pole)대를 보았다.
이미 수혈이 시작됐다.
오랜 경험을 가진 김진호 교수기에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적절하게 대비할 것이다. 수술 중 바이탈은 마취과의 몫이기도 했다.
오직 수술에만 집중해야 했다.
유착 부위를 절반 이상 풀었다.
더 이상 장과 장 사이의 박리가 아니었다.
기존 수술 부위, 간, 총수담관, 심지어 췌장과도 일부분 달라붙어 있는 장을 모두 떼어 내야 했다. 장과 주변 장기에 불필요한 손상을 입히면 더 큰 문제를 야기하기에 한시도 방심할 수 없었다.
“보비! 수처! 타이!”
삐이이이이!
“컷! 모스키토!”
이미 이마는 흥건해졌다.
써전 세 명의 손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단 한 명의 사소한 실수가 얼마나 큰 문제를 야기할지 잘 아는 손일석과 이혁원 역시 극도의 주의를 기울였다.
너무 단단하게 붙어 쉽지 않았다.
수술 부위마저 협소했다.
그 탓에 필요 없다고 여겼던 써드의 역할마저 강하게 요구됐다. 수술 부위에 눈을 고정한 김지훈이 이혁원과 송진우의 집중을 유지시켰다.
“간과 유착된 부위 박리 시작합니다. 얼마 안 되지만 간에 손상을 주면 출혈을 막기 힘드니까 긴장 유지합시다.”
수술 기구만 조용히 오고 갔다.
피 묻은 거즈가 쌓여 갔다.
수술 상황을 지켜보며 출혈량을 계산한 김진호 교수가 수혈 속도를 조절했다.
삐이이이이! 삐이이이이!
하얀 연기 사이로 간에 붙었던 장이 모두 떨어졌다.
안도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일렀다.
췌장과 붙은 부분이 남았다.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렸다.
‘너무 심하게 붙었다.’
“시야 확실하게 확보하자.”
박리 내내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
작고 가는 모스키토 끝이 췌장과 장 사이의 유착 조직을 파고들 때마다 피가 새어 나왔다.
조심스럽게 전기 소작을 시도했다.
멈추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봉합으로 막아야 했다. 은빛 바늘이 췌장 주변을 파고들 때마다 수술 팀은 물론 김지훈마저 극도의 긴장에 휩싸였다.
악전고투와 다름없었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장과 췌장을 모두 지켜야 했다.
사각! 사각!
“피 닦고.”
“췌장 부분 박리하는 동안 보비 파워 낮춥시다.”
“셀라인! 석션!”
찌이이이이!
벌건 핏물이 석션을 따라 사라졌다.
손상 유무를 확인하고 또 확인한 후에야 다음 부위로 넘어갔다. 몇 센티미터에 불과한 박리에 온몸이 축축하게 젖었다.
그러나 노련한 수술 팀이었다.
김지훈은 간과 췌장에 특화된 써전이었다.
멈추지 않았다.
유착된 췌장의 끝이 보였다.
대개 한 과정을 마무리할 때 실수하기 마련이었다. 손톱 끝보다 작은 조직이 찢어지며 생각지도 못한 출혈을 일으키기도 했다.
“수처! 타이! 이혁원 선생, 췌장 끝 박리한다. 피 닦을 때 압력이 가해지면 안 돼.”
섬세한 혈관 수술을 무수히 한 손일석조차 타이를 하는 내내 눈 한번 깜짝이지 못했다.
“후우! 컷!”
마침내 가장 위험한 유착 부분이 모두 박리됐다.
기존 수술 부위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선천적 폐쇄가 유발된 담도가 있을 만한 위치에 소장이 오메가(Ω) 모양으로 연결돼 있었다. 담도를 찾아 소장을 직접 연결한 것이 아니라 담즙이 묻는 부위와 거칠게 이어 준 것이다.
카사이 수술의 핵심이자 단점이었다.
김지훈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담도와 이어진 장을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소장을 자르고 다시 연결해 주는 편이 훨씬 안전하겠어.’
“손일석 선생, 담도와 연결된 소장을 모두 제거하는 것이 안전하겠지?”
“기존 수술 부위의 분리는 무의미해. 심각한 출혈이 발생할 수도 있고. 시간만 잡아먹을 것 같아.”
“이혁원 선생, 송진우 선생, 어때?”
“저희 판단도 같습니다.”
“오케이! 기존 수술 부위 통째로 들어내고 소장은 새로 이어 주자. 장겸자!”
보이지 않는 담도와 연결된 채 단단히 붙어 있는 부분을 남기고 소장을 양끝에서 잘랐다. 충분한 금식 기간과 워낙 잘 먹지 못해 소장 내부가 깨끗해 보일 지경이었다.
소장 회복에는 도리어 유리할 것이다.
“수처! 타이! 컷!”
소장 연결은 일반외과 영역의 기본이었다.
상대적으로 가늘고 약하다는 점은 하등 장해 요소가 아니었다. 김지훈의 정확한 수처와 손일석의 깔끔한 타이가 빛을 발했다.
담도와 연결된 소장 조각만 남긴 채 소장과 소장이 깨끗하게 이어졌다. 절대 음식물이나 소화액이 유출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셀라인! 석션!”
수술 부위를 씻어 내 손상 여부를 확인했다.
어떤 문제도 없었다.
첫 번째 과정을 끝냈다.
이제 간을 모두 들어내야 한다.
간 절제보다 훨씬 빠르지만 장미라는 예외였다.
기존 수술 부위 유착의 여파는 광범위했다.
간정맥, 간문맥, 간동맥의 적절한 확보를 방해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정상 크기의 담도를 찾는 일에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짐작조차 불가능했다.
수술 전 예측보다 훨씬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작정 수혜자 수술을 기준으로 진행할 상황이 아니었다. 공여자에게서 절제된 간을 외부 환경에 오래 노출시킬 수도 없었다.
모든 사항을 고려해야 했다.
‘가뜩이나 마취 시간이 길다. 섣불리 공여자 수술을 조정하다가 타이밍이 안 맞으면 이식될 간은 물론 미라에게 가해지는 스트레스가 너무 커진다. 스승님의 수술은 절대 세 시간을 넘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그 시간 내에 간을 제거하고, 혈관과 담도를 모두 확보해야 한다.’
김지훈이 마취과 간호사를 찾았다.
“병실에서 공여자 내리세요. 지금 간 제거 들어간다고 이준영 선생님과 수술 팀에게 연락해 주세요.”
빠듯했다.
김지훈이 곧바로 간 제거에 들어갔다.
드르르륵!
얼마 후 아이 아빠가 수술실로 옮겨졌다.
곧 결코 별개 수술이라 할 수 없는 두 개의 수술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공여자 수술 팀도 분주히 움직일 것이다.
이준영 교수가 신중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좌측 간 부분 절제임에도 불구하고 공여자 간이 절제되기까지 세 시간 남짓 걸릴 것이다.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단순 절제에서는 필요 없는 과정인 수혜자에게 이식할 간의 간정맥, 간문맥, 간동맥과 담도를 일정 길이 이상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핵심은 공여자 수술과 수혜자 수술 시간의 적절한 조화였다. 절제된 간을 최대한 빠르게 이식해 조직 손상을 막는 것이 관건이었다.
두 명의 노련한 써전이 집도한다.
간을 제거하고 혈관과 담도를 이어 주는 시간을 더 이상 줄일 방법은 없었다. 결국 절제된 간이 체외에 머무는 시간을 줄여야 했다.
이미 장미라의 간 제거가 시작됐다.
기존 수술로 발생한 유착이 혈관과 담도를 확보하는 내내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점을 모두 고려해 장기를 대기시키는 시간을 줄여야 했다.
‘유착이 심해 소장까지 잘라야 했다면 간 제거 역시 세 시간 이상 걸릴 수밖에 없겠군. 장미라의 총 마취 시간을 감안할 때 대기 시간은 가급적 삼십 분을 넘지 말아야 한다. 공여자에게 여유가 있어 다행이야.’
최종적으로 김지훈 수술을 직접 확인한 이준영 교수가 눈가를 좁혔다. 상당한 어려움이 눈에 보였지만 예정대로 진행하고 있었다.
김지훈과 손일석의 힘이었다.
공여자 수술을 늦출 상황이 아니었다.
수술 방 간호사를 찾았다.
“김 교수 수술 진행 과정을 수시로 알려 주세요. 마취과, 진행해도 되겠습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대기하던 윤서연이 곧바로 마취를 시작했다. 이준영 교수가 집도의 자리에 서자 재빨리 자리 잡은 나종진과 고경철이 훅 숨을 내쉬었다.
공여자 좌측 간의 삼분의 이를 절제한다.
절제 과정은 물론 혈관과 담도를 어떻게 찾아 어떤 식으로 처리하는지 눈에 불을 켜고 봐야 했다. 하나라도 놓치면 다음 수술의 어려움 역시 지금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잠시 후 이준영 교수의 묵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장미라 수술이 시작된 지 네 시간이 넘어서야 공여자 수술이 시작됐다. 통상의 간 이식 수술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순서였다.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었다.
장미라의 간을 다시 확인했다.
전체가 돌덩이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일부분이라도 살릴 생각이 아니었다.
간경화 정도를 파악해 제거 시 얼마나 유의해야 하는지 가늠하고자 할 의도였다.
‘혈액 응고 기능 저하만 문제가 아니다. 간경화 발생 후 내내 간에 걸린 높은 혈압 때문에 부대 혈관까지 무수하게 많아졌을 것이다. 지금부터가 관건이다. 정말 주의해야 한다.’
순조로운 과정은 순간이었다.
횡격막, 후복막 등과 연결된 간의 지지하는 조직을 자를 때뿐이었다. 혈관 확보 중 가장 쉽다고 할 수 있는 간정맥 분리부터 난감함의 시작이었다.
간 상부에서 나와 대정맥으로 들어가는 여러 개의 간정맥 중 하나를 골라 남겨야 한다. 보통 가장 길고 굵은 우측 간정맥을 남기지만 상태가 좋지 못했다.
빠른 판단이 필요했다.
“좌측 간정맥을 남기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 어때? 길이는 충분하겠지?”
“내가 보기에도 좌측이 더 건강해 보여.”
“오케이!”
수술에 관한 한 혈관 아니더라도 무엇이든 상의할 수 있는 손일석이었다. 설령 독자적인 판단이 가능하다 해도 두 명의 의견이 일치한다면 보다 안전한 결정일 것이다.
제거하기로 한 간정맥을 대정맥에 최대한 붙여 일일이 묶었다. 유일하게 남은 좌측 간정맥을 세심하게 마무리한 후 안전한 부분에 위치시켰다.
상부에서 간을 고정시키고 있던 대정맥과의 연결이 모두 끊어졌다. 수술 내내 지속되는 간 내 혈류가 빠져나갈 통로가 막혔지만 어차피 살리지 않을 간이었다.
중간 부위 지지조직까지 제거했다.
작은 힘으로도 간이 쉽게 움직였다.
적절한 조작이 가능해진 반면 혈관, 담도와 단단하게 연결된 하부의 손상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신중한 접근만이 안전을 담보할 것이다.
순조로운 과정은 끝났다.
이제 기존 수술 부위와 유착이 심하게 발생한 간 하부를 박리해 간문맥과 간동맥을 찾아야 한다. 어차피 간은 제 기능을 잃은 데다 심각한 출혈을 막기 위해 동맥부터 찾아 묶어야 했다.
바늘 하나 찌르기 힘들 정도로 꽉 달라붙은 조직이 섬뜩하기만 했다. 그 속에 반드시 확보해야 할 혈관과 담도가 숨어 있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무조건 찾아야 했다.
어떤 손상도 없이 최대한 정확하게 말이다.
장미라의 경우 유착이 심해 박리하며 눈으로만 확인하기에 너무 위험했다. 그동안 초음파를 배우고 익힌 이유는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이런 경우 또한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초음파 준비해 주세요.”
기술의 발전은 초음파 기기에 도플러를 장착해 정맥과 동맥을 구분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훗날 3D도 가능하겠지만 현재로서는 최신 기술이라 할 수 있었다.
원리는 간단했다.
혈류가 멀어지면 붉은색, 가까워지면 푸른색으로 나타난다. 이를 이용해 동맥과 정맥은 물론 분지의 성격까지 알 수 있었다.
김지훈이 소독된 초음파 기기를 조심스럽게 유착 부위에 가져갔다. 수많은 붉고 푸른 점과 선을 보며 신중하게 간동맥과 간문맥을 찾았다.
조용히 결과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