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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1021화 (1,021/1,329)

7화

병원 최고의 경사는 역시 건강을 회복한 환자의 퇴원이다. 우려와 불안을 감춘 김지훈이 밝은 미소로 최인선 환자를 보았다.

“안녕히 가십시오.”

“고맙습니다. 다시 뵙겠습니다.”

환자복을 벗은 환자가 웃었다.

담당 의사들과 병동 간호사들에게 음료수를 내밀며 정말 환하게 웃었다.

뚜벅! 뚜벅!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발걸음이 힘찼다.

이 주 후에도 지금 이 모습으로 보길 바랐다.

자신의 삶을 더없이 귀중하게 여긴다면 결코 스스로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복강경으로 췌장 공장 문합술을 성공한 것과는 비교조차 하기 힘든 기쁨이 될 것이다.

의사는 그런 기쁨을 먹고 산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김지훈이 훅 숨을 몰아쉬었다.

세 번째 췌장 복강경 수술 환자가 무사히 퇴원했다. 오늘의 경험과 이로 인해 축적되는 지식이 많은 환자에게 새로운 삶을 줄 것이라 확신했다.

찜찜한 점이 남았어도 카르페 디엠!

이제 환자만 오면 된다.

시원섭섭한 마음을 안고 마지막으로 남은 결정을 기다렸다. 펠로우들 모두 긴장된 얼굴로 물었지만 김지훈도 알지 못했다.

“신기동 선생님과 손일석 선생이 결정한다고 했잖아. 곧 올 거니까 조금만 기다려.”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수련 내내 동료로 일하며 경쟁보다 협력과 배려를 배워 온 탓에 분위기마저 애매했다. 이해 못할 일이 아니었지만 개입할 상황이 아니었다.

감정이 상하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문이 열렸다.

손일석이 의자에 앉으며 피식 웃었다.

“등수 가리는 자리도 아닌데 왜 이렇게 심각해? 미리 말하지만 결과를 놓고 실망할 이유가 없다. 신기동 선생님도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 문제가 아니라고 하셨어. 세부 전공이 왜 있겠어? 파트를 불문하고, 모든 수술을 다 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사람 마음이 그럴까?

더구나 누구는 예외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적용 가능한 써전이 눈앞에 있었다.

서로 친하기에 더욱 불편할 수 있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장미라 공여자 수술 퍼스트는 종진이가 서고, 정재복 환자 공여자 수술은 진우가 들어가. 신기동 선생님께서 이준영 선생님 동의하에 직접 결정하셨어.”

“저희가요?”

나종진, 송진우는 물론 김지훈도 깜짝 놀랐다.

절로 이혁원에게 눈이 돌아갔다.

‘혁원이가 일순위일 줄 알았는데 뜻밖이네. 종진이하고 진우가 훨씬 더 열심히 했나?’

순간 얼굴이 굳었던 이혁원이 애써 웃었다.

기를 쓰고 태연하게 대처하려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상당히 부자연스러웠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그만큼 큰 기대를 받아 왔기에 실망이 이만저만 아닐 것이다.

“종진아, 진우야, 축하한다. 김지훈 선생님, 부족하지만 미라 수술 세컨이라도 서게 해 주십시오.”

김지훈이 대답도 하기 전에 손일석이 끼어들었다.

“간 이식 수술이 계속 이어질 텐데 경험을 위해서라도 당연히 세컨 서야지. 공여자는 절제로 끝나지만 수혜자 수술은 완전히 다르잖아.”

“알겠습니다.”

“종진이하고 진우도 마찬가지야.”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나저나 내가 못 미더운지 신기동 선생님께서 미라 수술만 들어가고, 정재복 환자 수술은 들어가지 말라신다. 내 고급진 손을 두 번 쓰지 말라는 말씀이신가?”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누가 서?”

“써전이 나 하나냐? 혁원아, 네가 내 대신 그 자리를 맡아. 잘할 수 있지?”

“예? 제가 수혜자 수술 퍼스트를 서라고요?”

“뭘 그렇게 놀라? 김 교수, 어때?”

김지훈이 입을 열지 않았다.

이혁원이 퍼스트를 서는 사안에 대해서는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혈육이란 정에 이끌리지 않을 스승과 누구보다 냉철한 신기동 교수의 결정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손일석이었다.

이혁원을 비롯해 펠로우 모두 자격이 충분했지만 당분간 손일석과 수술하고 싶었다. 파트가 달라 호흡을 맞춘 지 오래라 해도 누구보다 손발이 잘 맞는 써전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다.

‘간 이식 수술 팀을 미리 완성시키겠다는 생각인가? 설마 신규 병원 발령을 염두에 두고 결정한 일은 아니겠지?’

“왜 말이 없어?”

“미안! 잠깐 다른 생각을 했어.”

“내가 빠진다고 너무 상심하지 마. 이 자식들 혈관 수술 보는 눈이 정말 무서웠다. 실력은 충분해. 같은 파트 후배들을 빨리 키워야 너도 힘이 덜 들 거 아니야?”

“그렇긴 한데…….”

“티미하긴. 네가 무슨 생각 하는지 알 것 같다. 딱히 틀린 생각은 아니니까 혁원이부터 잘 가르쳐. 나종진, 송진우, 너희들도 곧 수혜자 수술 들어가야 할 테니까 열심히 해.”

“예.”

“그런 의미에서 오늘부터 차원 다른 분위기를 선사해 주마. 앞으로 내 수술 들어오기 전에 죽었다고 복창 세 번 하고 들어와. 하하하!”

손일석의 웃음에도 즐겁지 않았다.

졸지에 가장 어려운 자리에 서게 된 이혁원이 애매모호한 김지훈의 태도에 바짝 긴장했다. 아버지이기 전에 엄격한 스승의 결정인데도 말이다.

이제야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장미라 공여자 수술은 나종진, 고경철이 들어가고, 수혜자 수술은 손일석, 이혁원으로 결정하자.”

송진우가 김지훈을 보며 슬쩍 손을 들었다.

“선생님, 수혜자 수술에 저도 들어가면 안 되겠습니까? 써드라도 서고 싶습니다.”

“써드를?”

열린 복부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 손으로 리트랙터(끌개)를 끌 때는 네 명이 필요했다. 하지만 개량된 기계식 리트랙터가 도입된 이후 대수술이라 해도 셋이면 충분했다.

써드가 필요 없어진 것이다.

“참관만으로는 수술 과정을 상세히 보기 어렵습니다. 써드 자리에 서서 수술을 배우고 싶습니다.”

“하는 일 없이 열 시간 이상 버티기 힘들다. 멀뚱멀뚱 서 있다 수술에 방해가 돼서도 안 돼.”

“걱정하지 마십시오.”

“좋아. 대신 병동이나 응급실 콜이 오면 바로 나가야 된다. 미라 수술 날 다른 수술이 없고, 이준영 선생님도 진료를 단축하셨지만 언제나 손이 부족하잖아.”

뜻밖의 요청인 데다 불안하고 힘든 요소가 적지 않게 떠올랐다. 반면 송진우의 열정을 생각할 때 조금도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도리어 강한 활력을 줄 것이다.

이로써 장미라 수술 팀이 모두 결정됐다.

저마다 자신의 역할을 생각하며 깊은 고민에 잠겼다. 집도의는 물론 수술 팀 누구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수술이었다.

지금까지 해 온 모든 수술을 압도하는 긴장과 부담 속에 하루하루가 흘렀다.

수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전원이 모여 마지막 점검을 하는 것으로 모든 준비를 마치면 곧바로 실전이었다. 장미라와 아이 아빠의 안정된 상태가 필수불가결한 조건이었다.

수술 팀은 물론 간 이식에 관한 한 절대적 협조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내과 역시 단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그도 모자라 소아과와도 충분한 협진 체계를 유지했다.

차르르르! 번쩍번쩍!

시시때때 카메라가 따라붙었다.

정신을 분산시키는 요소였지만 서로 약속한 바가 있고, 결국 환자를 위한 길이기에 감수해야 할 일이었다.

째깍! 째깍!

쉬지 않고 흐른 시계 초침이 이틀 후 여덟 시를 가리켰다. 김지훈이 이준영 교수를 비롯한 수술 팀 전원과 함께 병실을 찾았다.

“김 교수, 마지막 검사 결과 어때?”

“큰 변화 없습니다. 진행해도 됩니다.”

다인실에 입원한 아이 아빠가 살짝 불안한 기색을 보이면서도 자식을 살릴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이준영 교수보다 김지훈에게 더 눈길을 주는 것처럼 보였다.

“선생님, 우리 미라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고맙습니다.”

그저 고개만 숙였다.

주름진 이마, 햇빛에 그을린 까만 얼굴, 마디마디 툭툭 불거진 손가락, 손에 박여 있는 투박한 굳은살이 살아온 인생을 알려 주었다.

삶의 고단함만이 아니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의 무게였다.

빈한한 생활도 모자라 자식에게 아픈 몸까지 주어야 했던 아버지의 미안함이었다. 고맙다는 말 이외에 단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모습이 도리어 강한 책임감을 주었다.

‘반드시 미라의 건강을 찾아 주겠습니다.’

하루 전 일인실로 옮겨진 장미라를 찾았다.

때 이르게 성숙했어도 아이는 아이였다.

의료진은 도저히 채워 줄 수 없는 엄마의 마음과 온기로도 가시지 않는 두려움에 바들바들 떨었다.

딸을 보는 엄마의 눈시울이 붉었다.

아빠만큼 거친 손, 살아온 흔적이 잔뜩 묻은 얼굴이 무척 애처로웠다.

‘엄마는 건강하신가?’

불안은 두려움만 키울 뿐이었다.

김지훈이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미라야, 무서워할 거 없어. 잠 한 번 자고 나면 돼.”

“수술하고 나면 중환자실에 또 가야 해요?”

아이에겐 정말 무서운 장소였다.

누군가 주책없이 말한 모양이었다.

“미안해. 건강해지려면 그쯤은 참아 줘야 돼. 여기서는 치료가 불가능하거든.”

고개를 끄덕이던 장미라가 아빠를 찾았다.

“아빠는요? 혼자 있으면 무서울 텐데.”

“잘 계시니까 걱정 마.”

아직은 응석을 부려도 될 나이였다.

제 한 몸 가누기도 힘든 아이가 아빠 걱정이라니 너무 빨리 컸다. 차라리 사춘기 소녀의 감당하지 못할 짜증을 보는 편이 나았다.

대견하기보다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또래보다 한참 작은 아이의 몸, 누가 보아도 건강하지 못한 얼굴까지 하나하나 모두 유난히 눈에 박혔다.

‘반드시 건강을 되찾아 줄게. 우릴 믿어 줘.’

김지훈이 단단히 각오를 다졌다.

드르르륵!

장미라가 먼저 수술 방 앞에 도착했다.

작은 몸에 주렁주렁 매달린 온갖 줄 때문인지 애처롭다 못해 슬프게 보였다. 성인들도 두려움을 느낄 때와 장소를 아이가 이겨 낼 수는 없었다.

엄마도, 아이도 쉽사리 손을 놓지 못했다.

좀처럼 보이지 않던 눈물까지 흘렸다.

“엄마!”

“미라야, 괜찮아. 괜찮아.”

지금도 카메라가 돌고 있었다.

매정하게 보였지만 가장 중요한 장면일지도 몰랐다. 고스란히 드러난 엄마와 딸의 감정만큼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환자의 안정 이상으로 중요한 요소는 없었다.

감정적 동요는 해로울 뿐이었다.

시간을 주어 도움 될 일이 없었다.

“어머니, 이제 들어가야 합니다.”

송진우가 직접 장미라를 수술실로 옮겼다.

내내 눈을 뜨지 못했다.

김지훈이 손을 잡아 따스한 온기와 용기를 전하며 CT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배 속 가장 깊숙한 곳에서 점점 좁아지다 마침내 막혀 버린 담도와 연결돼 있을 소장, 주변 장기와 들러붙은 채 그 위를 덮고 있을 소장과 대장은 첫 번째 과정부터 얼마나 험난할지 알려 주고 있었다.

‘CT 소견상 간 유착도 문제지만 췌장과도 유착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절대적으로 주의해야 된다.’

곰곰이 생각에 잠긴 사이 마취가 시작됐다.

마취과에게도 결코 평범한 환자가 아니었다.

수술의 중요도와 위험성, 환아의 상태까지 모두 고려한 김진호 교수가 직접 마취를 주재했다. 그동안 간담췌 수술을 맡았던 윤서연은 공여자 수술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미라야, 눈 떠 볼까? 여기 무서운 사람 없어요.”

특유의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장미라를 안심시켰는지 파르르 떨리던 눈꺼풀이 살짝 열렸다.

“그렇지. 미라 열네 살 맞지?”

“예.”

“우는 애들도 있는데 씩씩하네. 주사 많이 맞아 봤지? 팔이 조금 아파도 참아요. 자! 마취제 투여합시다.”

통상 사용하는 용량의 삼분의 일에 불과했다.

작은 아이의 몸이 아주 쉽게 수면에 빠져들었다.

“인투베이션 튜브!”

가느다란 튜브가 기도에 삽입됐다.

인공호흡기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다.

“수액 속도 확인하세요. 전혈 두 팩 준비됐죠?”

수혈 대비는 필수였다.

유리병 같은 아이의 몸은 사소한 출혈이 이어지는 것만으로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기존 수술 부위 제거 과정 중 적지 않은 출혈이 예상되는 수술이었다.

김진호 교수가 꼼꼼하게 최종 점검을 끝낸 후에야 시작 신호를 주었다.

“수술 시작하셔도 됩니다.”

김지훈이 집도의 자리에 섰다.

퍼스트 자리에 선 손일석이 가볍게 어깨를 흔들었다. 세컨, 써드 자리에 들어온 이혁원과 송진우의 긴장이 슬슬 높아지기 시작했다.

고경아도 상당히 긴장된 기색이었다.

김지훈이 일일이 눈을 마주쳤다.

‘모두 집중합시다.’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드디어 선천성 담도 폐쇄로 간경화가 발생한 아이와 자식을 키우는 내내 애간장이 탔을 아빠 간의 생체 간 이식 수술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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