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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1014화 (1,014/1,329)

20화

일단 장미라만을 봐야 했다.

다른 생각을 최대한 배제하고 환자 상태만을 고려해야 실타래처럼 엉킨 머릿속을 정리하고, 최선의 대책을 세울 수 있었다.

신현수가 눈가를 찌푸렸다.

“지훈아, 가뜩이나 대기자는 많고, 장기 기증은 턱없이 부족한데 어디서 간을 받아? 아이가 버틸 수 있는 시간마저 짧아.”

“뇌사자 기증은 애초에 포기해야 돼. 부모 중 한 명에게 간을 받는 수밖에 없어.”

“생체 이식을 하자고?”

신현수 목소리가 꽤 높아졌다.

신장 이식도 확고하게 자리 잡지 못한 현실을 생각할 때 간 이식, 그것도 생체 이식을 한다니 일견 무모해 보일 지경이었다.

의학적 문제부터 경제적 문제까지 모든 면에서 말이다. 무엇보다 상당한 역량이 필요한데 김지훈에게 그만한 팀을 이끈 경험이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엄밀히 말해 김지훈 개인의 능력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생체 간 이식에는 숙련된 써전으로 구성된 두 개의 수술 팀, 즉 노련한 써전이 최소 네 명 이상 필요했다.

현재 간담췌 파트는 이를 담보하지 못하는 것이 냉철한 판단이자 현실이었다.

“지금 우리 능력으로 가능해?”

“가능해. 부족한 부분은 채우면 돼.”

김지훈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 했다.

“형님, 더 이상 돈 걱정할 때가 아닙니다. 간경화 정도와 기능 검사로 볼 때 오래 버티지 못할 겁니다. 죽고 사는 문제가 걸린 이상 어떻게든 수술해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지?”

“죄송하지만 형님은 수술 비용 마련에만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우리도 수술 준비 진행하면서 병원 측과 최대한 협의하겠습니다.”

답답함을 감출 수 없었던 손일석이 관자놀이를 꾹꾹 주물렀다. 정재복 환자가 왜 간 이식을 받지 못했는지 들어 알고 있었다.

“지훈아, 생체 이식 조건이 맞을까?”

“불과 몇 년 전에 시행하기 시작했고, 아직도 기증 자체를 꺼리는 사람이 많지만 부모 자식 관계잖아. 조건이 맞을 가능성이 높고, 아이를 살릴 가장 빠른 방법이야.”

“에휴! 가능성이 높다고 해도 정재복 환자를 생각하면 운까지 따라야 하잖아. 점점 더 복잡해지네.”

“일단 부모님에게 상황 설명하고 필요한 검사부터 진행하자. 현수야, 비용이 더 들게 생겼다. 훈철이 형님만으로는 비용을 마련할 길이 없을 거야. 부탁한다.”

한 아이의 목숨이 걸렸다.

수술과 비용 모두 거대한 난관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 써전의 능력으로 돌파할 수 있었다. 유학에 배운 지식과 경험, 앞으로 나가고자 했던 방향이 바로 간 이식이기 때문이었다.

장미라를 소아 중환자실로 옮겼다.

“경철아, 내과 소아과에 컨설트 내고 오늘 밤 잘 지켜봐. 문제 생기면 바로 연락해.”

“알겠습니다.”

발을 동동 구르며 문 앞을 지키는 부모를 만났다.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었다.

장미라의 상태와 유일한 치료인 간 이식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한 후 단도직입적으로 제안했다.

“두 분 중 어느 분이라도 이식에 적합하다면 최대한 빨리 간 이식을 해야 합니다. 동의하십니까? 지금은 비용 문제를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아이 엄마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털썩 주저앉았다.

아빠의 뺨에 눈물이 줄줄 흘렀다.

“우리 딸 살려만 주세요.”

자식은 부모의 눈물을 먹고 자란다 했다.

원래 뜻이 아니지만 그 말이 맞길 바랐다.

김지훈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장기 이식은 결코 쉬운 수술이 아니었다.

특히 간 이식은 애초 환자 상태가 나쁜 경우가 많고, 수술 후 합병증 역시 치명적이었다. 그나마 간을 모조리 들어내 이식하는 뇌사자 이식이 상대적으로 안전하지만 장미라는 생체 이식을 받아야 한다.

공여자 간의 일부를 잘라 내 손상이 없도록 유지한 후 적절한 시간 내에 수혜자에게 옮겨 주는 모든 과정의 난이도 자체가 높았다.

게다가 열네 살이다.

성인보다 훨씬 작고 가느다란 혈관과 담도 등을 이어야 하기 때문에 훨씬 더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기존 수술 부위 처리를 차치하고도 말이다.

수많은 경험을 가진 써전의 조언이 필요했다.

마침 어둠이 깊어졌다.

띠이이이이! 띠리리리리!

“Dr. James.”

(Oh! Dr. Kim.)

다행히 전화가 연결됐다.

반가운 인사를 나눈 후 생체 간 이식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한숨을 내쉴 정도로 답답해하며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충실히 답을 줬다.

말로 충분할 상황이 아니었다.

대신 문명의 이기, 메일이 있다.

관심이 있다면 모를까, 의사 본연의 업무와 써전의 일상을 볼 때 적극적인 인터넷 활용이 딱히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기본적인 사용은 가능한 김지훈이었다.

메일 주소 알려 주고, 짧은 안부를 전한 후 통화를 마쳤다. 미국에서도 알아주는 간담도 고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큰 자신감을 주었다.

‘아직 발표하지 않은 최신 증례까지 모두 보내 준다니, 제임스 같은 의사를 만난 것이 정말 행운이다.’

왠지 처졌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

다음 날.

김지훈의 분주한 일상이 더욱 바빠졌다.

장미라의 상태를 수시로 확인했다.

내과 윤석진은 물론 소아과에도 도움을 청해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항생제 사용과 수액 종류부터 투여 속도까지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았다.

좀처럼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대신 절대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써전이 있었다.

이준영 교수와 최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생체 간 이식이면 공여자 수술 팀도 중요해.”

“오창도 선생님이 계시지만 스승님께서 직접 맡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한다면 해야지. 수혜자 수술은?”

“다른 어떤 수술보다 혈관 처리가 중요합니다. 신기동 선생님이 계시지만 일석이에게 퍼스트를 부탁할 생각입니다.”

“일석이는 충분한 실력과 능력을 갖춘 써전이야. 잘 생각했어. 마음에 걸리는 일이 하나 더 있다. 비용이 많이 들 텐데?”

“현수와 훈철 형님을 믿고 있습니다. 이경석 선생이 원장님께도 말씀드릴 겁니다. 저 역시 적절한 시기에 이사장님을 만나 뵐 생각입니다.”

“나도 도우마. 돈 때문에 환자를 잃는 일은 없도록 하자.”

이준영 교수가 때 아닌 커피를 찾았다.

더없이 믿음직한 제자였다.

안타까움 속에서도 커피 타는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의사로서, 한 인간으로서 절대 타인을 외면하지 않는 김지훈이었다.

사인방 또한 다르지 않았다.

‘예외적인 경우라 해도 모두들 내 바람 이상으로 성장했구나. 고맙다. 정훈철 PD에게도 술 한 잔 사야겠어.’

김지훈이 따뜻한 커피를 내오며 물었다.

한결 마음이 편해졌지만 핵심은 결국 각 수술 팀의 집도의였다. 스승의 공여자 수술은 완벽할 것이다. 반면 더 어렵고, 중요한 수혜자 수술을 맡고도 충분한 자신감을 가질 수 없었다.

복강경의 최고 실력자라 불려도 무방할 손을 가졌지만 간 이식이었다. 유학 동안 보고 배운 분야건만, 그 이상의 심적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수술에 관한 한 자신감과 겸손함은 양립하기 어려운 감정이기도 했다.

“스승님,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나도 수술을 들어갈 때마다 떨려.”

“그런 말씀이 아니지 않습니까?”

‘나도 상당한 부담을 느끼겠지만 너무 과해. 어울리지 않는 긴장이야.’

“어떤 수술이든 기본과 원칙은 다르지 않아. 너보다 적임자는 없다.”

스승의 확고한 믿음이었다.

이제야 김지훈의 얼굴이 다소 풀렸다.

“감사합니다.”

“메일 오면 내게도 보내.”

묵직한 목소리가 따라붙었다.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스승님도 인터넷 하십니까?”

“뭐?”

왠지 무수한 뒷말이 생략된 것 같았다.

아! 실수했다.

최신 전자 기기나 인터넷에 관심 없는 사람 흔하지 않은 세상이 도래했다. 무뚝뚝하다고 해서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김지훈이 휘리릭 사라졌다.

‘왠지 어울리지 않아. 혹시 인터넷으로 주식 하시나?’

별 시답잖은 생각으로 피식 웃던 김지훈이 퇴근을 앞두고 장미라를 다시 찾았다. 다행히 의식은 명료해 보였지만 팔다리에 소름이 돋아 있었다. 추위나 오한이 아닌 중환자실 그 자체가 주는 두려움이었다.

어린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미라야, 무섭니?”

“무서워요.”

“하루만 더 참아. 곧 병실로 올라갈 거야.”

장미라가 자신은 괜찮다는 듯 애써 웃었다.

아픔을 달고 살며 성장한 아이의 얼굴이었다.

안쓰럽고 애처로웠다.

김지훈이 마치 아빠처럼 장미라의 손을 잡았다.

그 시간, 신현수도 바삐 움직였다.

이미 원무과를 찾아 비용을 파악했다.

보험 적용 요구가 빗발쳤지만 정부와 의료보험 공단은 재원 문제를 거론하며 여전히 논의 중이었다.

당연히 억대 이상이 들었다.

생체 간 이식 비용은 보험을 적용해 계산해도 오천만 원 가까이 드니 놀랄 일도 아니었다. 수술, 중환자실과 무균 상태를 유지하는 일인실 사용, 약제까지 모두 고가가 아닌 치료가 없었다.

신현수가 지끈거리는 이마를 꾹꾹 눌렀다.

‘후우! 일단 일은 벌였는데 시간은 없고, 수습할 길도 안 보이네.’

몇몇이 결정하기에는 액수가 너무 컸다.

일단 서울 병원 원장단부터 설득해야 했다. 이후 중앙 의료원을 거쳐 재단 이사회의 승낙까지 얻어야 최종적으로 결정이 날 것이다.

그것도 단시일 내에 말이다.

방송국의 간접 홍보와 맞바꾸자는 손일석의 말도 현실성이 떨어졌다. 내원 환자가 얼마나 늘지 예측할 수 없을뿐더러 병원이나 재단 운영에 꼭 필요한 일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또한 병원은 비영리지만 자선단체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 형편 어려운 환자를 챙기다 보면 한 달도 못 가 파산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터전인 병원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첩첩산중, 진퇴양난!

손일석, 이경석과 함께 머리를 맞댔지만 무거운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경석이 형, 원장님께 말씀은 드렸어요?”

“벌써 드렸지. 굉장히 호의적이시지만 우리와 똑같은 걱정을 하셨어. 중앙 의료원은 그렇다 쳐도 재단은 원장님 소관 밖이잖아. 도리어 재단 이사인 네 발언권이 더 셀 거야.”

“열한 명 중 한 명에 불과합니다.”

손일석이 끙끙 답답한 소리를 냈다.

“경석이 형, 원장님 목이 재단에 달렸는데 말씀하시기 힘들 거예요. 거부할 수 없는 명분이 있거나, 그에 준하는 이득밖에 답이 없어요.”

“어찌 됐든 의료 법인이고, 감성에 호소해야 하지만 어느 정도 명분은 있어. 문제는 역시 병원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이야. 홍보 효과 정도로 될까?”

“에휴! 걱정만 할 때가 아니네. 장미라를 입원시킨 이상 무슨 수를 쓰든 밀어붙여야 합니다. 아니면 치료 모두 끝난 후 야반도주하게 하든지.”

신현수로서도 뾰족한 답이 없었다.

질질 시간만 끌 자리였다.

“오늘은 일단 퇴근하죠. 훈철 형님을 만나 어떤 식으로 협조받을 수 있는지 알고 난 후에 원장단 선생님들부터 차근차근 설득해 보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이사장님은?”

“바로 말씀드릴 생각인데 빠른 결정은 기대하지 마. 요즘 돈 들어갈 데가 많잖아.”

손일석의 눈이 반짝였다.

“신규 브랜치?”

“포함해서.”

신현수가 짧게 끊으며 일어섰다.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신규 병원 외과 구성을 상의해야 헸지만 아직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았다. 확실한 윤곽이 보일 때 제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났다.

장미라 입원 이틀째였다.

김지훈이 좀처럼 얼굴을 펴지 못했다.

지난밤, 하도 답답해 고경아까지 붙잡고 상의했지만 답이 나올 리 없었다. 가급적 거리를 두어야 할 직장 일을 집 안으로 끌어들인 꼴이었다.

어쨌든 돈은 핵심 중 하나지만 부차적인 문제였다.

장미라의 수술, 간 이식에 먼저 집중해야 했다.

‘오늘 중 자료를 볼 수 있을까?’

어떤 환자든 아파 온 사람들이었다.

주어진 일과 치료에 최선을 다해 하루 일과를 마쳤다.

오후 회진을 마치자마자 부리나케 교수실로 올라간 김지훈이 메일을 확인했다. Dr. James도 마침 간 이식에 관한 자료를 취합하는 중이었는지 하루도 안 돼 메일을 보냈다.

‘땡큐!’

분량이 적지 않았다.

최대한 꼼꼼하게 자료를 살폈다.

째깍! 째깍!

눈가를 좁힌 채 하나하나 화면을 넘기며 내용을 확인하던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돌연 눈을 반짝였다.

‘어? 이런 증례가 세 건씩이나 있었네?’

존스 홉킨스가 아닌 다른 병원의 간 이식 수술 보고였다. 각 수술의 어려움은 제각각이어도 방법 자체는 다를 바 없었다.

핵심은 불가능의 가능이었다.

입가를 매만지며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김지훈이 벌떡 일어났다. 원장단과 재단을 설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을 찾았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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