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날카로운 바늘이 소장을 뚫고, 췌장을 지나 빠져나올 때까지 서늘한 감촉이 이어졌다.
마지막 세 바늘 중 첫 번째 까만 실이 조여졌다.
조여지는 매듭을 따라 소장이 봉긋하게 말리며 절개한 자리 자체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미세하나마 시야 속에 있었던 점막을 볼 수 없었다.
췌장 절개면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이 부분 처리가 핵심이다. 어떤 실수도 해선 안 돼.’
두 번째 봉합이 진행됐다.
손에 전해지는 감각과 눈에 보이는 매듭의 모습으로 김지훈은 정확한 봉합을 확신했다.
마지막 바늘만 남았다.
숱한 고비를 넘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이 한 바늘로 수술 성패가 좌우될 것이다.
모든 정신력을 끌어 올렸다.
오직 눈과 손에만 집중했다.
딱딱한 췌장을 지나 질긴 소장을 뚫는 느낌이 선명하게 전해졌다. 동시에 점막을 포함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소장을 확보하고자 노력했다.
한 번 남은 타이로 수술이 끝난다.
어떤 문제도 없을 것이란 강한 확신이 필요했다.
‘이대로 타이해도 괜찮을까? 췌장 절개면은 확실하게 통과했다. 이 정도 두께면 소장 점막도 빠질 수 없다. 확실해. 타이만 정확하게 하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
김지훈이 서서히 매듭을 조였다.
기다란 기구를 통해 딱딱하고 질긴 두 개의 감각이 이질적으로 전해졌다. 수술 내내 수없이 반복해 얻은 느낌을 상기하며 힘을 가했다.
툭!
매듭이 완전히 조여졌다.
김지훈이 외쳤다.
“카메라!”
봉합 부위를 최대한 확대했다.
미세한 출혈도 보이지 않았다.
소장과 췌장이 확실하게 밀착됐다.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완벽했다.
더 이상 건드리거나 보강할 필요가 없었다.
마침내 의국 전체가 불안과 우려를 금치 못했던 췌장 공장 문합술을 어떤 문제도 없이 끝낸 것이다.
‘해냈다!’
순간 수술 팀이 손도 까딱이지 못했다.
송진우와 진충기 교수 역시 마스크가 불룩해질 정도로 훅훅 깊은 숨만 내쉬었다.
예측하기조차 어려운 위험에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수술을 성공하기 직전이었다. 이제 스스로를 믿고 결과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김지훈이 목을 돌렸다.
아직 마무리가 남았다.
우두둑 소리와 함께 거칠게 밀려들었던 흥분이 사라졌다. 환자가 마취에서 무사히 깨어나야 비로소 수술이 끝난다는 사실이 차가운 이성을 일깨웠다.
“집중하자. 셀라인! 석션!”
찜찜한 구석은 단 하나도 남길 수 없었다.
수술 부위를 깨끗이 닦아 낸 후 수차례 확인을 반복했다. 우려할 수준의 출혈은 보이지 않았고, 문합 부위 역시 탄탄하게 밀착된 상태를 유지했다.
“이혁원 선생, 나종진 선생, 닫아도 되겠어?”
전문의라 해도 김지훈과의 실력 차이는 명확했다. 제아무리 퍼스트를 정확히 섰다 한들 집도의 이상의 판단력을 가질 수도 없었다.
더구나 최초로 시도한 수술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입을 열 수 있을까?
조용히 침묵만 지키자 김지훈이 눈가를 굳혔다.
‘나라고 해도 대답 못할 상황이다. 모든 결정권이 내게 있듯 모든 책임 역시 내게 있다.’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
시쳇말로 영혼까지 갈아 넣었다.
수술 팀의 걱정과 불안에 시간을 끈다면 마취 시간이 길어져 환자에겐 도리어 역효과만 날 뿐이었다.
김지훈이 결정을 내렸다.
“드레인 넣고 끝내자.”
수술 팀의 손이 분주해졌다.
빠르게 배 속을 정리한 후 복벽을 닫았다.
“컷!”
마지막 복부 봉합까지 끝냈다.
그토록 큰 수술을 했건만 1센티미터 남짓의 절개창 네 개만 남았다. 개복 시 필연적으로 따라올 극심한 복벽 통증은 없을 것이다.
고경아에게 모든 기구를 넘긴 김지훈이 수술대에 손을 짚으며 고개를 숙였다.
“후우!”
목덜미가 땀으로 흥건했다.
온몸에 힘이 빠질 정도로 엄청난 피로감 속에 어마어마한 흥분이 뒤섞였다.
훅훅 수술 팀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김지훈이 수술 시간을 확인했다.
여섯 시간 가까이 걸렸다.
개복보다 확실히 오래 걸렸지만 복강경의 장점이 환자에게 줄 이득은 이를 상쇄하고도 남았다. 이제부터는 무엇보다 환자의 힘과 의지가 필요했다.
‘마취에서 잘 깨야 하는데.’
“환자분, 눈 떠 보세요.”
윤서연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쇠약해진 육신에 데메롤 의존성까지 보인 환자의 회복력이 걱정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원하던 소리가 들렸다.
“끄으응!”
“환자분, 눈 떠 보세요. 수술 잘 끝났습니다. 그래요. 눈 잘 뜨시네. 크게 숨 쉬세요. 이혁원 선생님, 나종진 선생님, 환자 옮겨도 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 제가 환자 옮기겠습니다.”
뜻밖의 목소리가 들렸다.
‘경철이?’
언제 들어왔는지 고경철이 송진우를 도와 부지런히 환자를 간이침대에 옮겼다. 제법 오랜 시간 수술을 지켜보았는지 입을 쩍 벌린 채였다.
김지훈을 비롯해 수술 팀을 보는 눈빛에 경이로움이 담겨 있었다.
‘와! 정말 대단한 수술이다. 매형, 이제부터는 제가 진짜 적극적으로 먼저 덤비겠습니다.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누나, 고생했어요. 최고의 어시스트였어요.’
일반외과를 선택할 때보다 더 강한 각오를 보였다.
감동한 것 같기도 했다.
기구 정리를 모두 끝낸 고경아가 흐뭇한 눈으로 같은 길을 시작한 동료이자 동생인 고경철에게 뜨거운 응원의 마음을 보냈다.
김지훈도 열정을 느꼈는지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전공의 일 년 차다.
인턴에게만 하늘일 뿐 외과의 막내였다.
“경철아, 환자 회복실로 옮긴 후 바로 빵하고 우유 좀 가져와. 네 사람 거. 아 참! 진충기 선생님, 끼니가 될지 모르지만 선생님도 드시겠습니까?”
“하하! 아닙니다. 전 나가서 먹겠습니다.”
넷이나 다섯이나!
김지훈의 부당한 오더에 저항도 하지 못하고 잰 발걸음을 놀려야 했다.
고경철이 물끄러미 휴게실 탁자를 바라보았다.
짧은 지식으로 봐도 정말 경이로운 수술이었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는 순간을 지켜본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렸다. 김지훈과 함께한 수술 팀의 기분이 어떨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잠시지만 무뚝뚝하기 짝이 없는 이준영 교수가 두 번이나 들어와 수술을 지켜봤다. 파트를 불문하고 수술 방을 출입한 모든 일반외과 구성원들이 초미의 관심을 보였다. 참관을 위해 H 병원에서 온 선배 의사가 보인 열정 또한 무척 인상적이었다.
“외과의 신기원이다. 신기원. 이렇게 나가면 휘플도 문제없겠어. 현수야, 일석아, 경석아, 다 너희들 덕이다. 너희들 덕이야.”
“우리가 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로지 김 교수 능력과 실력입니다.”
“현수야, 그랬니? 그렇구나. 그래서 툭하면 함께 모여 왜 머리 맞댔니? 밤늦게까지 수술 계획 짠 것도 아무 일 아니었구나. 그랬구나. 그랬어. 어쨌든 수고했다. 수고했어. 늙어 죽을 때까지 사인방이라고 불렸으면 좋겠다. 그렇게 할 수 있지? 그치?”
송재덕 교수의 말이 의미심장했다.
건강한 경쟁이야말로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까마득한 선배들이 각자 자신의 파트의 주역으로 활동하며 시너지 효과가 무엇인지 몸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실제로 위장관, 대장, 혈관 모두 간담췌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쟁쟁했다.
‘가장 깐깐하고 무서운 신현수 선생님도 매형만은 확실하게 인정하네. 아! 이런 선생님들께 배우는 것 자체로 행운이다. 열심히 하자.’
많은 말이 오갔지만 정작 오늘의 주인공들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건드리지도 않은 빵과 빈 우유갑 세 개가 눈에 들어왔다.
최인선 환자가 병실로 옮겨질 때까지 전문의 세 명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수시로 바이탈과 드레인을 확인하며 오더를 상의하는 모습이 진지하기 짝이 없었다.
특히 환자를 대하는 김지훈의 태도가 새삼스러웠다.
가장 피곤할 수밖에 없는 집도의건만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비몽사몽 같은 말을 반복하며 수술을 묻는 환자에게 웃으며 꼬박꼬박 답을 했다.
“잘됐습니다. 크게 숨 쉬세요.”
환자 앞에서 먹고 마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과의 끝도 아니었다.
결국 세 명 모두 달랑 우유 하나씩 비우고 다음 수술에 들어갔다. 송진우 역시 뭐가 그리 바쁜지 빵은 건드리지도 못했다.
‘배고프실 텐데.’
걱정 어린 눈으로 수술실을 보던 고경철이 자신도 모르게 한입 가득 빵을 물었다.
사실 가장 배고픈 사람은 전공의 일 년 차다.
게다가 오늘 첫 끼였다.
우걱! 우걱! 꾸깃! 꾸깃!
고경철이 남은 빵 세 개를 가운 주머니에 욱여넣다 말고 화들짝 놀라며 바람처럼 사라졌다. 경이적인 수술과 송재덕 교수의 말에 취해 산더미로 남은 일을 잊었다.
‘으악! 죽었다.’
사 년 차 치프의 분노에 찬 얼굴이 아른거렸다.
걸음아 나 살려라!
그 시간.
병원을 나서는 진충기 교수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연이은 두 번의 수술은 가히 충격이라 할 정도로 강한 자극이었다. 김지훈을 배제한 최고의 써전, 대가가 되겠다는 목표는 무의미했다.
욕심을 앞세울 일이 아니었다.
이미 저질렀던 실수를 만회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 발 한 발 묵묵히 전진하며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해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김지훈 선생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행운이다. 지금은 뒤처졌지만 앞날은 누구도 모른다. 우리 병원 외과만큼 실력 있는 외과는 없다.’
진충기 교수가 진정 무서운 라이벌로 거듭나고 있었다. 외과 전체의 발전을 위해 이보다 바람직한 일은 없었다.
오후 3시 30분.
우유 하나로 끼니를 때운 김지훈이 나종진과 함께 남은 수술 세 개를 연달아 시행했다. 고경철이 추가로 필요한 자리를 담당했다.
각각 개복, 원 포트, 투 포트 하나씩이었다.
“나종진 선생, 오늘처럼 의미 있고 다양한 스케줄은 없을 거야. 나름의 장단점과 가장 기본이 되는 부분이 무엇인지, 나종진 선생과 내 스타일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확인할 기회야.”
수술 전 김지훈이 한 말을 새긴 나종진이 수술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았다. 세부 전공과 최종적으로 가야 할 길을 택하는 초석이 될 것이다.
‘내 눈에는 모든 수술이 완벽해 보인다. 이런 실력을 어떻게 쌓으신 걸까? 역시 누구보다 탄탄한 기본기 때문일까?’
깊은 고민과 함께 마지막 수술이 끝났다.
오후 7시 30분이 넘었다.
간담도 파트 전담인 고경아를 비롯해 주간 담당 간호사들은 한 시간 전에 교대한 후 퇴근했지만 써전에게 칼퇴근은 언감생심이었다.
꼬박 열 시간 반 넘게 수술실에서 살았다.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니었지만 첫 수술의 여파가 워낙 강해 온몸이 피로로 뒤덮였다. 눈가가 휑해진 나종진은 물론 강철 체력 김지훈에게도 휴식이 필요했다.
“나종진 선생, 삼십 분 후 회진 돈다고 송진우 선생에게 연락하자. 아! 힘들다. 나도 이제 늙었나 봐.”
힘이 쪽 빠져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 힘든 나종진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전 어쩌라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같은 전문의라도 위아래가 있다.
더구나 펠로우 일 년 차였다.
나종진이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송진우와 함께 회진 준비를 시작했다. 당직인 고경철이 쪼르르 달려와 거들었다. 가뜩이나 힘든 마당에 인원까지 부족한 전공의 일 년 차에게 짐을 넘길 수도 없었다.
‘쩝! 어쩌다 전공의 일 년 차가 제일 귀한 존재가 됐을까? 하긴 전문의가 돼도 몸만 힘들고, 갈수록 대우도 제대로 못 받는데 누가 좋아할까?’
구조적 문제였다.
적정하지 못한 자원 분배가 결정적이었다.
의료 수가 문제로 적자를 면하면 다행인 일선 병원은 일반외과 확장을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었다. 흉부외과, 산부인과와 더불어 대표적 기피 과가 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개개인의 생각과 불평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 오늘 하루 반드시 일 년 차를 배려해야 하는 결정적 이유가 따로 있었다.
“경철아, 오늘 오창도 선생님이 당직이지? 꼬박 밤샐 수도 있으니까 할 일 빨리 끝내고 일단 쉬어.”
“괜찮습니다.”
첫 수술 내내 참관만 했지만 몰골 별반 다를 바 없는 송진우가 피식 웃었다. 이준영 교수와 오창도 교수가 버티고 있는 한 어디에 있든 결코 편할 수 없는 간담췌 파트의 현실이었다.
“넌 왜 웃어?”
“오늘 당직 펠로우가 누군지 잊으셨어요?”
순간 다가온 불길한 느낌에 달달 흔들리는 눈빛으로 달력을 확인한 나종진이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헉! 오늘이 내 당직이었나? 죽었다! 아니지. 최인선 환자도 봐야 하니까 좋게 생각하자. 가뜩이나 주의를 요하는 데다 수술 첫날이 가장 위험하니까 도리어 잘됐어.’
왜 한숨이 멈추지 않을까?
차트를 보며 애써 좋은 방향으로 당직의 의미를 해석하던 나종진이 돌연 입가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