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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1007화 (1,007/1,329)

13화

정체된 소화액을 소장으로 배출시키는 것이 수술의 목적이었다. 췌장과 공장을 이어 주는 과정도 결국 배출 통로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따라서 췌장관을 최대한 열어 주어야 한다.

문제는 췌장관의 확장과 협착이 반복되는 만성 췌장염의 특징이었다. 넓은 부분이야 어려울 일이 없지만 좁아진 부분을 과도하게 남기면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개복 수술의 주요 단점 중 하나였다.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었다.

복강경의 장점이 대두되기 직전이었다.

고비를 넘긴 것도 아니었고, 어려움이 더욱 가중될 과정이 남았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힘이 솟았다.

‘수술 부위를 확대해서 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장점이다. 이 부분 또한 라파로를 시도한 이유다.’

“나종진 선생, 카메라 더 접근시켜. 이혁원 선생은 췌장관 주변 부위 확실하게 확보해.”

복강경 시도의 당위성을 확인한 때문인지 뜻밖에도 극도의 긴장이 완화됐다. 김지훈의 손이 더욱 신중해졌지만 자연스러운 과감함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보비!”

삐이이이! 삐이이이!

“수처! 타이! 수술 부위가 너무 좁아. 컷 조심하자.”

긴장이 줄어들었을 뿐 위험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남은 절개 부위가 적어질수록 시야가 좁아져 더욱 강한 집중이 요구됐다.

마침내 예정한 절개 부위를 모두 열었다.

수술복은 이미 축축해졌다.

보기에 따라 6센티미터가 작아 보이지만 췌장이라는 장기 특성상 대수술과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로 어려운 과정이었다.

단 한 번의 실수가 있었을 뿐이었다.

운이 좋아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때론 그런 운도 필요한 법이었다. 사실 개복 수술 시 숱하게 발생하는 문제기에 도리어 복강경의 안정성을 확인했다.

‘절대 무리한 시도가 아니다.’

이제 절개면을 확인한 후 공장을 연결하는 과정이 남았다. 지금보다 훨씬 어렵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지만 절개만으로도 김지훈의 실력을 입증하기 충분했다.

이혁원과 나종진이 때 이른 감탄을 터트렸다.

수술 과정을 모두 지켜본 송진우 역시 손에 땀을 쥐고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누가 이렇게 진행할 수 있을까?’

고경아도 다소 흥분된 눈빛을 보였다.

‘지훈 씨, 조금만 더 힘내세요.’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기 전 반드시 확인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 실수가 실수로 끝나지 않으려면 필히 거쳐야 할 순서였다.

“나종진 선생, 아까 실수했던 부위 확인하자.”

문제가 됐던 부분을 정확하게 비추는 나종진을 보던 이혁원이 콧등을 찡그렸다. 솔직하게 실수임을 인정하는 집도의의 자세는 기필코 배워야 할 면모였다.

‘난 저런 용기를 보일 수 있을까?’

“이혁원 선생, 나종진 선생, 어때?”

“괜찮습니다.”

김지훈이 훅 숨을 내쉬며 기구를 뺐다.

“오 분간 쉬자.”

강철 체력으로 유명했던 김지훈도 과도한 긴장에 힘이 부치는지 잠시 휴식을 취했다.

채 일 분도 지나지 않았다.

김지훈이 뷰박스에 걸린 CT에 눈을 박았다.

절개 길이가 적당했는지 확인하며 다음 과정을 대비하고 있었다. 수술이 끝나지 않은 한 집도의는 물론 퍼스트가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었다.

이혁원이 서둘러 옆에 서며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시도 수술에서 벗어나질 않으시는구나! 이건 단순히 체력 문제가 아니다. 배워야 할 자세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던 김지훈이 돌아서다 말고 흠칫 놀랐다. 진충기 교수도 의외인지 살짝 당황한 눈치였다.

이준영 교수가 송재덕 교수와 함께 수술실로 들어왔다.

귀국한 이후 복도에서 스치듯 얼굴을 비쳤을 뿐 직접 수술실에 들어온 적이 없었다. 심지어 췌장 절제술 때마저 창밖에서 지켜보았을 뿐이었다.

이유는 분명했다.

제자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이번 수술의 위험과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또한 단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존재가 김지훈에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준영 교수의 눈이 모니터에 머물렀다.

‘생각 이상으로 깔끔하게 절개했구나. 잘하고 있다. 남은 과정이 더 어렵고 힘든 만큼 집중력을 잃지 마라.’

여전히 무뚝뚝한 얼굴이었다.

“김 교수, 절개는 다 끝났어?”

“예. 문합만 남았습니다.”

“환자 실망시키지 마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송재덕 교수가 힐끗 째려보며 입을 열었다.

“가만히 있는 사람 졸라 수술 보자고 하더니 말투가 그게 뭐니? 그게. 눈에 붙은 흐뭇함이나 지워라. 나이를 어디로 먹는지 변하질 않아요. 부드럽게 힘을 북돋아 주면 누가 잡아가? 응? 그래?”

“흠흠!”

“김 교수, 그래서 내가 대장 하라고 한 거야. 대장. 얼마나 즐거웠겠니? 어쨌든 과도한 긴장은 도움이 안 된다. 조금만 더 쉬고 바짝 고삐를 죄는 게 맞다. 지훈아, 수술은 잘되고 있는 거지? 그치?”

“현재까진 문제없습니다.”

“그래. 그래. 김 교수가 혁원이 종진이하고 함께 수술하는데 어떤 문제가 있겠니? 혁원아, 종진아, 진우야, 너희들도 눈 크게 뜨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잘하고 있다. 잘하고 있어. 우리 진 교수님은 내내 서 있기 불편하지 않아요? 힘들면 앉아서 봐요. 앉아서.”

수술 중 잡담은 금물이었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송재덕 교수가 약간의 시간을 끌며 너스레를 떨었다. 수술 팀 어깨에 걸린 과도한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한 배려였다.

짧은 휴식과 몇 마디 말이 도움이 됐다.

“이 교수, 우리가 있으면 방해만 될 거야. 셋이 알아서 잘할 테니 가자. 가자.”

이준영 교수가 눈길 한 번 주고는 수술실에서 나갔다.

‘김지훈, 환자만 생각해. 그러면 성공한다.’

손을 앞으로 모아 오염을 피하던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었다. 스승의 말은 힘이었고, 송재덕 교수의 말은 격려이자 응원이었다.

덕분에 과도한 긴장을 덜어 냈다.

‘반드시 성공하겠습니다.’

“시작하자.”

목소리에 힘이 팍팍 실렸다.

띠! 띠! 띠! 띠!

환자의 심박동 소리가 안정적이었다.

산소 포화도는 98퍼센트를 유지했다.

혈압은 정상적이었고, 소변량도 적절했다.

가장 중요한 수술 부위의 출혈과 손상 역시 관찰되지 않았다. 수술 팀 전체가 새로운 활력과 힘으로 훨씬 어렵게 진행될 다음 과정을 시작했다.

김지훈이 소장의 일부인 공장을 잡아 췌장 절개면에 대보며 적정한 부위를 찾았다. 연결 후 약간의 압력만 가해져도 문합부 유출 가능성이 높아져 신중한 선택이 필요했다.

십이지장과의 간격이 무척 중요했다.

“여기쯤이 적당할 것 같은데 어때?”

“십이지장 쪽으로 당겨질 위험이 없어 보이고, 지나치게 많이 남아 위나 대장 사이로 꼬여 들어갈 가능성도 희박해 보입니다.”

“오케이! 이 부분과 췌장을 연결하자. 장 겸자.”

장 겸자를 넣어 10센티미터 정도 간격을 두고 공장 양 끝을 잡았다.

“보비! 멧젬(수술용 가위)!”

정중앙부를 보비로 살짝 지진 후 멧젬을 이용해 주행 방향을 따라 대략 7센티미터 정도 공장을 열었다. 워낙 식사를 못한 데다 수술 전 금식 덕에 내용물이 많지 않았다.

감염은 연결부 유출의 주요 원인이 된다.

“거즈! 석션! 베타딘(소독제)!”

내용물을 제거하고 소장 내부를 최대한 소독했다. 분홍빛이 감도는 것으로 보아 소장의 기능과 건강성이 충분해 보였다.

다행이었다.

이제 연결만 남았다.

수처, 타이, 출혈과의 싸움이었다.

써전의 실력, 집중, 적절한 긴장, 경험까지 모든 것을 동원해야만 성공 가능한 과정이었다.

‘연결 부위가 새면 구십구, 아니 백 퍼센트 집도의의 책임이다. 지금까지 배우고, 쌓아 온 지식과 경험을 모두 녹여 내야 한다.’

누구에게도 책임을 돌릴 수 없는 영역이었다.

어금니를 꽉 문 김지훈이 손을 내밀었다.

“수처!”

기구를 건네는 고경아의 손에 김지훈이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강한 힘이 담겼다. 소장과 췌장의 적정한 간격을 유지해야 하는 이혁원과 확실한 수술 시야를 책임진 나종진의 눈이 번쩍였다.

집도의에 대한 신뢰였다.

자신을 향한 믿음이었다.

‘가자!’

김지훈이 첫 수처를 시작했다.

어떤 수술이든 점막을 함께 봉합하지 못하면 같은 소장끼리도 100퍼센트 붙지 않는다. 더구나 췌장은 소장과 전혀 다른 구조를 가진 장기였다.

신중하게 점막을 잡아 바늘을 찔렀다.

날카로운 바늘이 소장을 통과했다.

외부 자극에 약한 췌장은 함부로 조작할 수 없다.

김지훈이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하며 카메라 불빛을 받아 반짝이는 바늘 끝을 췌장 속으로 밀어 넣었다. 딱딱해진 췌장 조직이 찢어지지 않도록 마치 결이라도 있는 것처럼 부드럽게 기구를 돌렸다.

바늘을 따라 검은 실이 빠져나왔다.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지만 조금도 안심할 수 없었다. 봉합 중 생기는 손상은 바늘이 아니라 매듭을 지을 때 발생할 가능성이 훨씬 높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소장은 질기지만 부드럽기 짝이 없다.

반면 정상이어도 부족할 췌장은 딱딱하게 변성됐다.

이질적 구조와 강도를 가진 장기를 안전하게 타이할 여건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소장에 맞추면 췌장이 버티지 못한다. 췌장에 가해지는 힘과 소장이 조여지는 정도를 동시에 보고 느껴야 한다.’

김지훈이 서서히 매듭진 실을 당겼다.

췌장이 손상받지 않을 정도의 힘을 유지하며 소장을 바짝 붙이는 것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손이 아닌 기구가 주는 대표적 제약이었다.

한 방울의 땀이 맺혔다.

매듭이 완전히 조여질 때까지 숨 한번 내뱉지 못했다.

예상은 했지만 타이 하나가 이토록 강한 긴장을 유발할지 몰랐다. 복강경으로 췌장 절제를 하며 봉합한 경험이 없었다면 십중팔구 손상을 가했을 것이다.

“후우! 컷!”

이제 한 바늘 꿰맸다.

조밀한 간격을 유지해야 하는 탓에 얼마나 같은 과정을 반복해야 할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란 사실 하나는 확실했다.

“수처!”

두 번째, 세 번째.

숨 쉬기도 어려운 긴장 속에 수처를 진행했다.

동일한 과정을 반복하면 감각이 손에 익어 약간이라도 편해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만성 췌장염 환자의 췌장은 결코 익숙함을 허락하지 않았다.

‘후우! 후우!’

매번 호흡을 조절해야 했다.

남은 부위가 적어질수록 기구를 조작할 공간마저 좁아져 바늘과 실을 제어하기도 쉽지 않았다. 설상가상 기구의 각도마저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이마에 땀이 흥건했다.

난생처음 마취과 간호사에게 이마를 내밀었다.

“땀 닦아 주세요.”

보는 것만으로도 살벌했다.

이혁원과 나종진 역시 땀에 젖은 지 오래였다.

최고 난이도 과정에 들어선 이후 이준영 교수와 송재덕 교수를 비롯해 사인방까지 시간 나는 대로 참관했지만 누구 한 명 고개조차 돌리지 못했다.

진충기 교수는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수술 팀 이상의 집중력을 유지했다. 단 한 번 주어진 참관의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을 것이다.

김지훈이 바짝 마른 입술에 침을 묻혔다.

한쪽만 6센티미터를 연결해야 했다.

반대편과 가장자리를 합치면 12센티미터가 훌쩍 넘었다. 그만큼 실수할 확률이 높은 상황에서 수술 시야마저 좁아졌다.

“수처! 타이! 컷!”

김지훈은 멈추지 않았다.

휴식보다 손에 전해지는 감각을 유지해야 했다.

출혈이 없는 것만으로도 천운이었다.

몸에 맺힌 땀이 수술복을 흠뻑 적셨다.

한 바늘, 한 바늘.

연이어지는 위험을 피하고 극복하며,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꾸준히 전진했다. 오직 기구 끝에 걸린 바늘과 실, 췌장과 소장에만 집중했다.

집도의에겐 이보다 힘든 과정이 없었지만 아슬아슬 췌장에 손상을 가하지 않으며 소장과 연결하는 솜씨는 가히 경이적이었다.

드디어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커다랗게 입을 벌렸던 췌장과 소장이 길쭉하게 이어지며 마지막 부분만 남았다.

불과 1센티미터 남짓이었지만 문합부 유출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부분이었다. 수술 부위가 워낙 좁아져 소장 내부를 볼 수 없을 정도로 시야가 완전히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눈을 감은 채 수술하는 꼴과 다름없었다.

아무리 성능 좋은 카메라라 해도 소용없었다.

개복 시에도 피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야말로 집도의의 감각과 숱한 복강경 수술 경험을 토대로 쌓은 진정한 실력이 필요했다.

결코 평범함을 허락하지 않았다.

“마지막 세 바늘 남았다. 긴장 늦추지 마.”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김지훈이 모든 신경을 기구와 손에 쏟아부었다. 고도의 집중력으로 췌장과 소장이 전하는 감각을 느끼며 봉합을 시도했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다.

일단 찔렀던 바늘을 매듭도 짓지 못하고 다시 빼는 순간 그 자체가 봉합이 아니라 손상이었다. 바늘구멍으로 새어 나온 소량의 췌장액마저 소장을 녹이고도 남았다.

은빛 바늘이 번쩍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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