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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1006화 (1,006/1,329)

12화

흥분도 잠시, 이혁원과 나종진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평소 하던 대로 하면 돼.”

강한 긴장과 부담을 덜어 주려 했지만 말로 해결될 상황이 아니었다. 췌장 절제술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수술이기에 개개인의 실력이 무척 중요한 탓이었다.

사실 김지훈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름의 해결책을 찾았다.

퇴근 후 고경아와 마지막 리허설을 했다. 부부가 수술 전 호흡을 맞추고, 함께 수술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힘이었다.

“경아 씨 덕에 자신감이 마구 붙네. 고마워요.”

“나도 최선을 다할 테니까 지훈 씨는 평소 하던 대로만 해요. 생각처럼 어렵지 않을 거예요.”

이혁원에게 했던 말 그대로 돌려받았다.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편해졌다.

덕분에 깊은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난 정말 행운아야. 어디서 경아 씨 같은 사람을 찾을 수 있겠어? 남편 노릇, 아빠 노릇 잘하자.’

어느새 날이 밝았다.

상당히 좋은 컨디션으로 출근했다.

회진 말미에 최인선 환자를 찾았다.

“환자분, 몸은 어떠세요?”

“견딜 만합니다.”

“약속을 잊으면 안 됩니다.”

‘데메롤에서 벗어나야 한다!’

“반드시 이겨 내겠습니다.”

“저도 반드시 성공하겠습니다.”

환자, 의사 모두에게 굳건한 각오가 필요했다.

뚜벅! 뚜벅!

수술실로 향하는 김지훈의 발걸음이 묵직했다.

이혁원과 나종진이 수없이 반복한 수술 계획을 떠올리며 눈가에 바짝 힘을 주었다.

복강경을 이용한 췌장 수술의 절대적 전환점이 될 췌장 공장 문합술을 눈앞에 두었다.

자! 지금부터 시작이다.

김지훈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오는 수술실이었다.

마취과를 비롯한 수술 팀 모두 교대로 얼굴만 바뀔 뿐 수없는 수술을 함께한 이들이었다. 아무리 간단하고, 익숙한 수술이라 해도 긴장을 늦춘 적이 없었다.

모든 것이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만 걷잡을 수 없이 몰려드는 긴장을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최인선 환자 수술이 갖는 의미를 잘 아는 수술 팀 역시 부담이 가중된 듯 눈빛을 굳힌 채 자신의 일에 전념했다.

“송진우 선생, 수술 촬영 확실하게 점검했지?”

“예. 확인했습니다.”

수술 과정 기록이 어느 때보다 중요했다.

성공하면 더할 나위 없지만 실패 또한 의미가 있었다.

정확한 기록을 통해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 혹은 애초 시도해서는 안 되는 수술이었는지 한 걸음 더 깊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김지훈이 CT를 확인하며 수술 계획을 다시 상기하는 사이 낯익은 눈빛을 가진 사람이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오창도 교수와 함께였다.

‘진충기 선생님? 참관을 원하시더니 정말 오셨네.’

“오셨습니까?”

“방해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준영 선생님께 대신 허락받았습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전 신경 쓰지 마시고 수술 꼭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진충기 교수가 조용히 구석에 자리 잡았다.

모니터가 가장 잘 보이는 자리였다.

오창도 교수가 김지훈과 수술 팀에게 응원과 격려의 눈길을 보낸 후 수술실을 나갔다. 두 어깨에 진한 아쉬움이 가득 걸려 있었다.

수술 팀이 모든 준비를 마쳤다.

드르르륵!

환자가 옮겨졌다.

앙상한 손이 달달 떨렸다.

그토록 수술을 원했건만 확연한 두려움을 보였다.

어느 환자나 보이는 예외 없는 모습이었다.

“수술실이 서늘하죠? 누구나 다 긴장할 수밖에 없지만 수술 후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상상해 보세요. 도움이 될 겁니다.”

“수술은 잘되겠죠?”

긴장이나 불안한 감정은 쉽게 전해지기 마련이었다.

백 마디 말보다 편안한 눈빛이 필요했다.

깊은 숨을 내쉬어 전신을 압박하는 긴장을 밀어낸 김지훈이 부드럽게 웃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잘될 겁니다.”

수술 시작은 마취과 영역이었다.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상황이 아니었다.

김지훈에게 눈짓을 한 윤서연이 침착하게 환자 상태를 점검했다. 오래간만에 들어온 김진호 교수의 묵직한 목소리가 듬직했다.

“윤서연 선생, 시작합시다.”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안전한 마취를 시행하기 쉽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고령, 쇠약, 흔들리는 바이탈, 심각한 염증 등 전신에 영향을 주는 요인 때문이었다.

최인선 환자 역시 다르지 않았다.

비쩍 마를 정도로 쇠약해진 데다 전신 상태마저 상당히 불량해 고도의 주의가 요구됐다. 그러나 마취과의 임무는 수술 내내 바이탈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다. 또한 어떤 의미가 있는 수술인지 잘 알기에 마취 역시 최상의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김지훈, 환자 상태는 걱정하지 말고 수술에만 집중해. 꼭 성공하길 바라.’

윤서연이 주의해야 할 점을 상기하며 신중하게 마취를 시작했다.

“환자분, 마취 시작합니다. 마음 편히 가지세요. 정맥 마취제 투여하세요.”

작은 주사기 반도 안 되는 마취제가 혈관을 타고 흘렀다. 허약해진 육신이 힘없이 무너졌다. 눈꺼풀이 천근만근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근이완제가 투여됐다.

본능적인 저항조차 사라졌다.

굵은 튜브가 목을 통해 기도에 삽입됐다.

슈욱! 슈욱!

인공호흡기를 따라 환자 체격과 체중에 맞춘 최적의 호흡 유지가 시작됐다. 98퍼센트를 넘나드는 산소포화도가 심리적 안정감을 전했다.

윤서연이 김지훈을 보았다.

“수술 시작하셔도 됩니다.”

모든 준비를 마친 김지훈이 살짝 고개 숙여 인사를 한 후 수술 팀에게 눈길을 주었다.

퍼스트, 이혁원.

세컨, 나종진.

책임 간호사, 고경아.

수술 기록을 담당하며 대기하는 송진우.

약간의 시차를 두고 병원 생활을 시작했다.

몸으로 부대끼며 함께 성장했다.

이제는 각자의 자리를 확고히 매김하고 있었다.

스승인 이준영 교수, 간담췌 파트의 핵심인 오창도 교수가 아닌 펠로우와 전담 간호사로 구성했지만 최고의 수술 팀이 분명했다.

‘완벽하지 않겠지만 내가 바라던 수술 팀이다. 오늘 수술 역시 성공할 것이다. 믿고 가자.’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바짝 마른 복부에 네 개의 절개창이 생겼다.

빨갛게 흐르는 피만큼 뜨거운 열정을 바칠 것이다.

처컥! 처컥!

위와 대장을 젖혔다.

비장 주변을 안전하게 처리했다.

숱한 개복 경험과 두 번의 복강경 수술 덕에 별다른 문제 없이 췌장을 노출시켰다.

답답한 콧소리가 터졌다.

CT로 판단했던 상태와 사뭇 달랐다.

노란색을 띠며 두부처럼 말랑말랑해야 할 정상 조직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조직 대부분이 울퉁불퉁 제 모습을 잃어 육안만으로도 염증 소견이 무척 심해 보였다.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조직 강도를 확인했다.

딱딱하게 변한 부분이 대부분인 가운데 정상적으로 보이는 조직이 부분, 부분 관찰됐다. 미약하나마 췌장 기능이 유지된 이유였지만 집도의에겐 최악의 상황이었다.

‘딱딱한 부분에선 적절했던 힘이 연약한 부분에서는 과도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절개부터 수처까지 매번 기구에 가하는 힘과 강도를 달리해야 한다. 약간의 부주의마저 췌장에 손상을 가할 수 있다.’

더욱이 제거만 하면 되는 절제 수술이 아니었다.

췌장을 횡으로 절개해 배출되지 못한 소화액이 고여 있는 췌장관을 열어야 한다. 이후 소장의 일부인 공장을 끌어와 절개된 췌장과 이어야 한다.

장과 장을 이어도 환자 상태가 나쁘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실수를 하면 연결 부위가 터진다. 가뜩이나 환자 상태가 더 나쁜데 이질적인 두 개의 장기를 연결해야 한다.

절개면이 매끄럽지 못하면 공장과 이어야 할 부분이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연결 부위에 틈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결국 췌장액과 소장 내용물이 유출될 것이다.

치명적인 복막염을 피할 수 없다.

재수술은 복강경으로 불가능하다.

개복해 기존 연결 부위를 제거하고 새롭게 연결해야 한다. 가뜩이나 염증이 심한 상황에서 다시 칼을 대야 한다면 유출 위험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악순환이다.

그 자체로 절망적이었다.

환자의 삶이 무너지는 것도 모자라 목숨까지 위협할 수 있었다. 많은 의사들이 복강경을 이용한 췌장 공장 문합술을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결정적 이유였다.

이제 와 되돌릴 수는 없었다.

김지훈이 지그시 어금니를 물었다.

‘생각 이상으로 심하지만 어차피 예상했던 상황이다. 계획대로 가자!’

“시작하자. 보비!”

삐이이이! 삐이이이이!

췌장을 덮고 있는 얇은 막을 가로로 지졌다.

몸통 부분 중앙을 따라 6센티미터에 달하는 가로 선을 만들었다. 안으로 파고들어 췌장관을 노출시킨 후 공장을 연결시켜야 하는 기준선이었다.

췌장 겉면을 따라 신중하게 절개를 시작했다.

김지훈이 두 차례의 절제 수술을 통해 얻은 경험을 따라 조심스럽게 기구를 조작했다.

극도의 주의를 기해 아주 작은 부분을 잘랐다.

이제 시작이건만 정상 조직과 확연하게 다른 느낌에 굳은 얼굴이 풀리지 않았다.

‘너무 단단해 절개 자체가 쉽지 않다.’

도처에 난관이 도사리고 있었다.

만성 염증으로 혈관이 변성돼 단단해진 췌장 조직과 달리 무척 약해진 상태였다. 가벼운 조작으로도 출혈이 발생했고, 지혈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 모든 요인이 한 번에 자를 수 있는 조직 크기까지 제한했다. 더딜 수밖에 없는 상황과 맞물려 절개면을 처리하는 과정 자체가 긴장의 연속이었다.

가느다란 췌장관 분지를 묶을 때마다 손이 떨렸다.

잘린 혈관을 처리할 때면 저항조차 전해지지 않아 섬뜩한 느낌이 목덜미를 서늘하게 했다.

수술 모자가 진한 땀으로 젖었다.

“보비! 수처! 타이! 컷!”

집중, 오직 집중뿐이었다.

단단한 부분 절개는 보다 강한 힘이 필요했다.

반면 질긴 실이 탄력 잃은 조직을 파고들 수 있어 절개면 타이는 최대한 부드럽게 시행해야 했다. 그나마 정상적으로 보이는 부분이 있었지만 앞선 경험이 무용지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느낌이 달랐다.

‘염증이 안 퍼진 부위가 없다. 정상으로 보이는 부위는 도리어 훨씬 약해졌다.’

모니터에서 단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기구로 전해지는 감각에 모든 신경을 쏟아부어야 했다. 수시로 심호흡을 해 과도한 긴장을 풀려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순조로울 리 없었다.

절개를 진행하며 절개면 처리에 전력을 다하던 김지훈이 흠칫 놀라며 손을 멈췄다. 단단할 것으로 판단한 부분이 예상외로 약해 바늘이 깊게 박혔다.

보이지 않는 부분에 무엇이 숨어 있을지, 어떤 조직을 찔렀을지 예상조차 불가능했다.

‘혹시 혈관을 찌른 것은 아니겠지?’

순간 입 안이 바짝 말랐다.

바늘을 빼 다시 수처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었다.

그대로 타이하는 것 이외에 다른 길은 없었다.

혈관 손상이 없기를 바랄 뿐이었다.

절로 욕이 터졌다.

‘눈으로는 조직 강도를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을 빤히 알면서 이런 실수를 하다니, 바보 같은 놈!’

스스로를 향한 질책이었다.

“잠시 멈추자.”

이혁원과 나종진도 상황을 파악했다.

이유를 설명하기도 전에 카메라를 바짝 접근시켜 시야를 최대한 확보했다.

췌장 조직이 벌겋게 물들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출혈이 발생했다는 말이었다. 오직 수처만으로 해결해야 하지만 바늘을 찌르는 과정 자체가 위험했다.

찌르고 묶고, 또 찔러야 한다면?

고도의 주의력을 유지하지 못해 심각한 손상을 인위적으로 유발하는 꼴이었다. 아직 절반도 절개하지 못한 상태에서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었다.

식은땀이 절로 맺혔다.

‘절대 출혈만은 안 돼.’

째깍! 째깍!

일분일초가 한없이 길게 느껴졌다.

카메라를 잡은 나종진이 입을 열었다.

“선생님, 괜찮아 보입니다.”

이혁원도 동의의 눈빛을 보였다.

전문의 세 명의 판단이 일치했다.

절로 안도의 한숨이 터졌다.

“다행이다. 뒤늦게 출혈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어, 공장을 잇기 전에 반드시 출혈 여부를 확인해야 하니까 절대 잊지 마.”

김지훈이 목을 돌렸다.

수술에 도움이 되지 않을 정도로 지나치게 긴장했다.

우두둑! 우두둑!

뻑뻑한 목을 풀던 김지훈이 이혁원과 나종진을 보았다. 새삼 신뢰할 수 있는 수술 팀을 꾸렸다는 사실, 수술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집도의가 짊어져야 하는 책임도 잊지 않았다.

‘고맙다.’

“진행하자.”

삐이이이! 삐이이이!

6센티미터에 달했던 절개 부위가 서서히 속을 드러냈다. 지난한 진행 속 마침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확장된 췌장관이 노출됐다.

이제 췌장관과 조직을 동시에 절개해야 한다.

절개할 조직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

췌장 중심부에 위치한 췌장관을 따라 역삼각형 모양이 되도록 절개해야 하기 때문에 시야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어려움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김지훈이 훅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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