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1003화 (1,003/1,329)

9화

마지막 준비만 남았다.

양 병원 간담췌 파트 써전들이 참석한 가운데 최종 리허설이 진행됐다. 대부분 직접 수술에 참가하지 못하지만 미래의 집도의로서 단 한마디도 놓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 번도 손을 맞춰 보지 못한 김지훈과 진충기 교수였다. 각자의 실력만 믿고 진행할 수 없는 수술이기에 무엇보다 동일한 호흡이 중요했다.

“이 부분에서는 제가 좌측에서 접근하고, 카메라는 하방에서 비추는 것이 안전하다는 말씀이시죠?”

“예. 기구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접근인데 더 좋은 생각이 있으십니까?”

깊이 있는 대화가 오갔다.

서로가 서로에게 감탄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마냥 논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의문점이 있으면 추후 상의하기로 했다.

수술 전 마지막으로 환자를 만났다.

김지훈의 침착한 설명이 이어졌다.

두려움을 이겨 내기 위한 절대적 요소는 확실히 신뢰였다. 수술의 위험성이 변했을 리 없건만 서민자 환자와 보호자의 눈빛이 상당히 편해졌다.

진충기 교수의 눈가에 잔주름이 생겼다.

‘김지훈 선생이 다녀간 후 환자와 보호자 태도가 변했다. 내게 연락도 없이 환자를 따로 만나 무슨 말을 했을까? 마음과 진정일까?’

충분한 대화를 끝으로 H 병원을 나섰다.

이로써 불안했던 요소들이 상당 부분 사라졌다.

최상의 조건이 형성됐다.

양 병원 써전들이 모여 한 사람의 건강을 찾아 줄 일만 남았다. 불과 하루도 남지 않았지만 남은 시간 내내 각자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할 것이다.

그 또한 써전의 의무였다.

어느새 토요일 아침, 시연의 날이 밝았다.

오전 8시.

H 병원에 S 병원 수술 팀이 도착했다.

이준영 교수, 송재덕 교수, 오창도 교수, 김지훈, 신현수, 손일석, 이혁원, 송진우까지 써전만 무려 여덟 명이었다. 인원도 인원이었지만 간담췌 대가와 서울 병원 원장인 송재덕 교수까지 함께해 분위기가 대단했다.

위압적이랄까?

손일석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개개인만 경쟁하는 의사 사회가 아니었다.

‘내 분야는 아니지만 오길 잘했네. 이 정도면 집도와 시연 아니더라도 가장 강력한 라이벌인 H 병원 코를 확 눌러 버리겠어. 지훈아, 시작은 함께하지만 마무리는 온전히 네 몫이다. 명예를 걸고 반드시 성공해. 형수도 파이팅!’

뜻밖에도 김지훈 옆에 고경아의 얼굴이 보였다.

하루 전 진충기 교수의 갑작스러운 합류 요청이 있었다. H 병원 역시 전담 간호사가 있지만 성공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싶은 의도기에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지훈 씨, 시설은 H 병원이 훨씬 좋아 보이네요.”

“우리 병원 건물이 오래되긴 했죠. 희연이 잘 있겠죠?”

“걱정 말아요. 지훈 씨보다 경희하고 더 친해요.”

“설마? 이모보다 아빠지.”

고경아가 힐끗 째려보았다.

“얼굴을 자주 봐야 아빠죠. 희연이 신경 쓰지 말고 오늘 수술에 집중하세요. 전담 간호사가 기분 나빠하진 않겠죠?”

“진충기 선생님이 잘 말했을 거예요.”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회의실에 도착했다.

S 병원 수술 팀을 기다리고 있던 의사들이 일제히 일어나 일행을 반겼다. 낯선 얼굴이 다수 섞여 외부인만 이십여 명에 달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정도가 아니라 가히 소규모 학회 수준이었다.

다들 상당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집도의를 초빙한 꼴인데 다른 병원 교수님들에게도 알린 건가? 자존심을 완전히 접었다는 말이네. 이거 H 병원 분위기 다시 생각해야겠어.’

김지훈에게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성공을 바라는 호의적 시선만 있을 리 없었다. 견제는 아니더라도 복강경 췌장 수술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진 의사도 다수 있을 것이다. 실패하면 비판을 넘어 비난의 화살이 쏟아질 수도 있었다.

‘양날의 검이네.’

살짝 줄어들었던 부담이 도리어 가중됐다.

이준영 교수를 본 진충기 교수가 급히 달려왔다.

“어서 오십시오. 다른 병원 교수님들도 오늘 수술을 보고 싶다고 하셔서 허락 없이 모셨습니다. 죄송합니다.”

“함께 보는 게 좋겠죠.”

대가이자 간담췌 학회 임원인 이준영 교수였다.

외부 인사라 해도 대부분 익히 아는 얼굴들이기에 반갑게 인사하며 수술 팀을 소개했다.

당연히 집도의에게 이목이 집중됐다.

전공의 때부터 학회 발표를 통해 주목받은 덕에 상당수 의사들이 김지훈을 알아보았다.

“김지훈 선생, 오늘 수술 꼭 성공하길 바랍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교수님, 뿌듯하시겠습니다.”

“제가 고맙죠.”

“어이구! 원장님도 오셨네요.”

“뜻 깊은 자리인데 제가 직접 와서 인사드려야죠. 우리 김 교수, 오 교수가 준비 많이 했습니다. 많이. 이미 한 번 성공했으니까 이번에도 성공할 겁니다. 마음 편히 지켜보세요. 마음 편히.”

덕담을 나누기엔 시간이 빠듯했다.

참석자들에게 재빨리 인사한 김지훈이 진충기 교수와 함께 병실로 향했다. 준비할 것이 많은 수술 팀은 고경아와 함께 수술 방으로 올라갔다.

병실에 도착했다.

으레 그렇듯 분위기가 무거웠다.

그동안 거의 말이 없었던 서민자 환자마저 김지훈의 손을 꼭 잡은 채 놓지 않았다. 수술과 마취에 대비해 주렁주렁 매달린 각종 줄이 초래하는 불편과 수술 당일이 주는 불안이 눈에 보였다.

이는 곧 두려움이었다.

김지훈이 편안한 미소를 머금었다.

“어머님, 마음 편히 가지세요.”

“의사 선생님, 자식들 얼굴 꼭 보게 해 주세요.”

“별걸 다 걱정하시네요. 한잠 주무시고 일어나면 다 끝나 있을 겁니다. 실력 있는 의사들이 다 모여 수술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애써 큰소리쳤지만 서민자 환자의 말이 가슴에 박혔다. 어떤 수술을 하든 평생 들어야 할 말이지만 절대 무감각해지면 안 되는 환자의 감정이었다.

걱정 가득한 보호자의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째깍! 째깍!

오전 8시 40분.

수술과 마취 준비로 수술실이 분주했다.

김지훈이 나직한 숨을 내쉬었다.

인공호흡기, 바이탈 체크 기구, 모니터를 비롯한 복강경 장비까지 생소한 듯 낯익었다. 병원과 환경이 다른 탓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수술 팀에 눈길이 갔다.

퍼스트, 진충기 교수.

세컨, 오창도 교수.

고경아와 H 병원 전담 간호사.

처음 보는 마취과 의사와 간호사.

한 번도 손을 맞춰 보지 못한 팀이었지만 양 병원에서 인정받는 의료진이었다. 충분한 경험을 가졌기에 어떤 문제에도 빠르게 대처할 것이라 확신했다.

‘누구 한 명 노련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문제가 생긴다면 집도의인 내 책임이다. 정신 바짝 차리고 최선을 다하자.’

그 시간 수술 방 끝에 위치한 참관실도 의사들로 북적였다. 커다란 TV를 통해 수술실 상황을 지켜보며 저마다 자신의 견해를 주고받았다.

주된 논점은 역시 복강경 수술의 유용성과 위험성이었다. 필요성을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췌장 질환을 복강경으로 접근한다는 사실에 의구심을 갖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오늘 수술하는 걸 보면 받아들여야 할 수술일지, 위험만 가중시키는 수술일지 답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진충기 선생에게 얼핏 들은 말로는 곧 췌장 공장 문합술까지 시도한답니다. 이준영 교수와 김지훈 선생이 과욕을 부리는 것은 아닌지 불안합니다.”

“허! 과감함 하나는 점수를 줘야겠군요.”

이준영 교수와 송재덕 교수는 말이 없었다.

조용히 TV만 지켜볼 뿐이었다.

‘김지훈, 최선을 다하면 문제없다.’

‘지훈아, 진충기와 함께 수술하기로 결정한 순간 이미 많은 이목이 쏠린 거나 다름없다. 순수한 지적 호기심도 있을 테고, 질시하는 사람도 있을 수밖에 없어. 명예나 명성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무시할 것도 아니야. 반드시 성공해 네 실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우리 외과 수준이 이 정도라는 것을 보여야 한다.’

“준영아, 안 떨리니?”

“이미 한 차례 성공한 수술입니다.”

“그래서 더 떨린다. 더 떨려. 참관하는 의사 면면을 봐라. 이 사람들이 다 호의적인 것은 아닐 거다. 아닐 거야.”

“원래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 그렇지. 넌 참 좋겠다. 좋겠어. 벼락이 쳐도 눈 하나 깜짝이지 않을 거야. 어떻게 몇 년 동안 센터장을 해도 변하질 않니? 부럽다. 부러워.”

송재덕 교수가 혀를 차며 옆구리를 툭 쳤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언제나 무덤덤한 이준영 교수였다.

신현수와 손일석도 진지한 얼굴로 나직한 대화를 나눴다. 탁월한 행정 능력을 지닌 의사와 주변 상황을 잘 파악하는 의사가 만났으니 송재덕 교수와 비슷한 견해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지훈이가 외부 시각에 신경이나 쓸까?”

“퍽이나! 이준영 선생님과 왜 찰떡궁합이겠어? 사실 그런 문제는 우리가 맡고, 지훈이는 오로지 환자만 신경 쓰는 게 맞지. 에휴! 말해야 입만 아프다.”

신현수가 투덜거리던 손일석을 툭 쳤다.

모니터 속 수술실 문이 열렸다.

참관실이 조용해졌다.

오전 8시 50분.

서민자 환자가 수술실로 옮겨졌다.

조그만 몸이 불안으로 떨렸다.

유난히 차갑게 느껴질 수술실 공기에 눈도 뜨지 못했다.

띠띠띠띠띠!

심박동마저 빨랐다.

“환자분, 마음 편히 먹으세요.”

능숙한 손길하에 마취가 시작됐다.

긴장으로 잔경련을 일으키던 눈꺼풀이 잠잠해졌다. 의식이 흐려지며 자발 호흡까지 잃은 서민자 환자가 깊은 수면 속으로 빠져들었다.

슈욱! 슈욱!

인공호흡기 소리를 따라 작은 가슴이 규칙적으로 오르내렸다. 노인의 폐였지만 충분한 산소 포화도를 보여 예정대로 진행이 가능했다.

김지훈이 집도의 자리에 섰다.

진충기 교수와 오창도 교수가 자신의 위치를 잡았다.

깊은 마취 상태를 확인한 마취과 의사가 기대 어린 눈초리로 김지훈을 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수술 시작하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김지훈이 심호흡을 했다.

드디어 복강경을 이용한 두 번째 췌장 종물 집도를 시작한다. 타 병원 환자라는 사실이 주는 부담도 모자라 쟁쟁한 의사들이 참관하고 있다.

성공과 실패의 여파는 극과 극일 것이다.

김지훈이 힐끗 참관실과 연결된 카메라에 눈길을 주며 손을 내밀었다. 강한 긴장과 함께 느껴지는 막중한 책임감을 잊어야 했다.

‘다른 생각은 다 필요 없다. 수술 내내 오로지 환자만 생각해야 한다. 내 손과 수술 팀을 믿자.’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H 병원 메스 역시 예리하고 날카로웠다.

오전 9시 정각.

두 번째 췌장 종물 제거 수술이 시작됐다.

처컥! 처컥!

환자의 배가 빵빵해졌다.

네 개의 절개창으로 필요한 기구를 삽입했다.

비쩍 마른 75세 여자 환자의 배 속은 기름기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앙상했다. 수술에는 상당히 유리한 요소였지만 그만큼 환자가 약하다는 말이기도 했다.

“대망 절개한 후 위, 대장, 비장 쪽 차례로 처리해 수술 시야 확보합니다.”

김지훈이 나직한 말로 이어지는 과정을 알렸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우면서도 과감하게 기구를 조작했다. 췌장 접근 전이지만 김지훈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기 충분했다.

진충기 교수의 손이 적절하게 움직였다.

이미 녹화 테이프를 통해 첫 번째 수술 과정을 철저하게 머리에 담았다. 더구나 수많은 경험을 가진 노련하고 숙련된 써전이었다.

확실히 달랐다.

오창도 교수의 카메라 조작 역시 나무랄 데가 없었다.

기구가 가야 할 부위를 정확하게 잡아냈다.

처음 손을 맞추며 발생하는 어색함조차 보이지 않았다. 수술 초반도 지나지 않아 노련한 써전들이 하나의 수술 팀을 이룬 장점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보비! 수처! 타이! 컷!”

규칙적인 기계음 속에 김지훈의 목소리만 흘렀다.

췌장이 노출됐다.

초미의 관심사인 박리와 절제가 시작됐다.

성공한다 한들 어느 한 부분이라도 무리하게 보인다면 참관 의사들 모두 비판적 입장으로 돌아설 것이다. 특히 대정맥 인접 부위가 관건이었다.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었다.

‘긴장하지 말자. 오직 집중만이 필요하다.’

조그만 기구 끝이 쉼 없이 움직였다.

췌장의 노랗고 부드러운 조직이 노출되기 시작했다.

부분 박리 후 부분 절제가 이어졌다.

사각! 사각!

마치 조직 잘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수술 팀의 긴장이 확연하게 높아졌다.

김지훈은 침착했다.

첫 번째 수술 때 얻은 감각과 경험을 끊임없이 상기하며 고도의 집중과 적절한 긴장을 유지했다.

최대 고비가 될 대동맥이 드러났다.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이었다.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보비! 수처! 타이! 컷! 클립!”

서서히 췌장과 대정맥이 분리됐다.

심장박동에 따른 움직임 하나 없었지만 가장 굵은 혈관인 대정맥이 주는 압박감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보비든 바늘이든 손상을 주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김지훈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퍼스트를 서는 진충기 교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카메라를 최대한 접근시켜 수술 부위를 확대시킨 오창도 교수의 입술이 바짝 말랐다.

“대정맥 분리 마지막 부분입니다.”

긴장과 집중의 끈을 유지하라는 집도의의 확고한 오더였다. 수술 팀 전체가 모니터에 눈을 박은 채 어떤 실수도 허용하지 않았다.

마침내 대정맥과 췌장이 완전히 분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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