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배꼽 위 첫 번째 구멍을 뚫었다.
카메라를 넣고 장기를 확인했다.
보이는 부분 모두 깨끗했지만 췌장은 위장 뒤에 위치하며 절반이 후복막에 묻혀 있는 장기다.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악성 변화가 없는지 알 수 없었다.
위와 대장을 연결하는 조직인 대망을 자르고 위를 제쳐야만 췌장에 접근할 수 있다.
두 개의 구멍을 추가로 뚫었다.
김지훈이 침착하게 대망 중간 부위를 잡았다.
단순한 연결 막이지만 혈관이 다수 분포한 조직인 데다 넓게 열어야 수술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켈리! 보비! 타이! 컷!”
삐이이이이!
보비의 날카로운 소리가 이어졌다.
하얀 연기 속에 가는 혈관은 전기 소작으로 지지고, 다소 굵은 혈관은 소작 후 타이를 시행했다.
“가위!”
막을 열었다.
위장은 우측으로, 대장은 아래쪽으로 밀어낸 후 좌측에 위치한 비장에 압력이 가해지지 않도록 연결 조직을 충분히 잘라 냈다.
췌장이 드러났다.
“병변 확인하자.”
췌장을 박리해야 하기 때문에 기구를 잡고 보조해야 하는 써전의 능력이 무척 중요했다. 객관적 판단하에 이혁원이 보다 노련해 송진우가 카메라를 맡았다.
조심스럽게 접근시켰다.
췌장이 크게 확대됐다.
두경부는 볼 수 없지만 몸통과 꼬리 부분은 명확하게 관찰됐다. 몸통 중앙에서 우측으로 치우친 부분이 다소 솟아 있었다.
낭종이 위치한 부위였다.
만일 검사에서 확인되지 않은 악성 변화가 있다면 조직 변성이 보일 것이다. 복강경 수술로 박리 가능한지 반드시 확인해야 했다.
김지훈이 직접 카메라를 잡았다.
수술 팀의 긴장이 치솟았다.
신중하게 췌장과 주변 조직을 확인한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이는 부분은 모두 괜찮아 보인다. 진행하자. 5밀리미터 트로카 주세요.”
네 번째 구멍을 뚫었다.
기구를 잡은 이혁원이 시야에 방해가 되는 위, 대장, 대망 등을 적절하게 밀어냈다.
이제 본격적인 수술에 들어간다.
낭종에서 1센티미터 정도 떨어진 부위부터 박리해 두경부와 몸통을 분리한 후 절제해야 한다.
분리 면이 대정맥과 인접했다. 또한 과도한 조작은 과다한 췌장 효소 분비나 유출을 유발해 최악의 경우 전신에 치명적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췌장 수술의 위험 중 하나였다.
김지훈이 수술 팀을 보았다.
이혁원, 송진우, 고경아는 물론 수술 중 바이탈을 책임지는 마취과까지 모두 한 몸처럼 호흡을 맞추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려운 수술이었다.
‘부탁합니다.’
“시작하자. 모스키토! 보비!”
두부처럼 말랑말랑한 췌장 조직을 살짝 잘랐다.
약간의 피가 섞인 맑은 체액이 흘러나왔다.
단백질과 지방을 녹이는 효소가 가득한 췌장관과 혈관을 놓치면 수술은 물론 수술 후에도 심각한 합병증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물까지 모두 확실하게 묶어 유출을 방지해야 했다.
“보비!”
삐이이이이!
보비로 췌장 조직을 잘랐다.
가느다란 혈관과 췌장관 분지가 타들어 가며 막혔을 테지만 문제는 소화 효소였다. 절단면을 일일이 봉합으로 막지 않으면 결국 소작된 부위를 녹일 것이다.
“수처!”
김지훈이 기구 끝에 달린 바늘과 췌장 조직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부드러운 조직을 기구로 봉합한 적은 많지만 췌장은 차원이 달랐다.
개복 시에도 땀이 나는 과정이었다.
기구를 살짝 움직여 바늘을 췌장에 찔러 넣었다.
약간이라도 과도하거나 방향이 빗나가면 췌장 조직이 아주 쉽게 찢어질 것이다. 한 번 찢어지면 시도를 거듭할수록 손상만 가중시킬 뿐이었다.
‘첫 봉합을 성공해야 정확한 감각을 유지할 수 있다. 침착하자. 절대 서두르면 안 된다.’
모든 신경을 손끝에 집중시켰다.
췌장을 파고드는 감각을 결코 놓치지 않았다.
노란 조직을 뚫고 나온 바늘이 반짝였다.
손상은 없었다.
신중하게 바늘을 빼낸 김지훈이 타이를 시도했다.
바늘이 조직을 자른다면 실은 아예 조직을 끊어 버린다. 느슨해도 효소가 유출된다. 수처보다 더욱 집중해 적정한 압력을 확인하며 유지해야 했다.
기구를 통해 전해지는 감각이 생소했다.
김지훈이 호흡을 조절했다.
미세하게 전해지는 저항을 느끼며 매듭을 지었다.
“가위! 컷!”
새끼손톱 반의반도 안 되는 절단면을 묶은 하얀 실이 보였다. 개복 시 보았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아 확실하게 봉합됐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 느낌, 이 감각을 끝까지 유지해야 한다.’
생각과 달리 결코 쉽지 않았다.
첫 봉합부터 땀이 맺힐 지경이었다.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한 번에 많은 조직을 자르고 묶을 수 없다.
두경부에 면한 부위만이 아니라 췌장 특성상 제거될 몸통 쪽까지 봉합으로 막아야 했다.
이런 과정을 무수히 반복해야 한다.
간 절제와도 비교하지 못할 어렵고 힘든 과정이 지속될 것이다. 극도의 긴장을 조절하지 못하면 육체적, 정신적으로 극한까지 몰릴 가능성이 높았다.
김지훈이 훅 숨을 내쉬어 과도한 긴장을 덜어 냈다.
“보비! 수처! 타이! 컷!”
같은 과정의 반복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단순한 봉합일 뿐이었지만 조직을 뚫고 묶는 바늘과 실은 섬뜩함의 연속이었다. 매번 제대로 수처가 됐는지, 유출 기미는 보이지 않는지 마음을 졸여야 했다.
아무리 정교해도 봉합 자체가 조직 손상이었다.
미세한 출혈과 효소 유출을 피할 도리가 없었다.
강한 압력을 가진 석션으로 해결하려다간 췌장 조직에 추가 손상을 입힐 수밖에 없어 거즈를 이용해 피를 닦고 출혈 여부를 확인했다. 기구를 통해서 넣고 빼야 해 수술 시간이 길어지는 이유 중 하나로 작용했다.
또한 주의해야 할 사항이었다.
“거즈 카운트 정확하게 해야 합니다.”
“일일이 세고 있어요. 현재까지 거즈 수 일치합니다.”
고경아의 노련함과 침착함은 큰 힘이었다.
“보비! 수처! 타이! 컷!”
김지훈이 침착하게 절제를 이어 갔다.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삼분의 일 정도 잘랐다.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구조물이 나타날 때가 됐다.
소화 효소가 흐르는 췌장관이다.
더욱더 신중하게 절개하며 절단면을 살폈다.
최대한 근접시킨 카메라가 미세한 구조물 하나하나를 크게 확대시켰다. 이내 동그란 모양의 관이 개복 때와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확연하게 보였다.
‘그래! 이런 점이 바로 라파로로 시도해야 하는 이유다. 위험한 면 이상으로 안전함도 준다.’
“췌장관 처리합시다. 두경부 쪽은 수처로, 몸통 쪽은 클립으로 잡겠습니다. 준비해 주세요.”
결코 풀려서는 안 되는 구조물이었다.
이중 삼중으로 타이해 단단히 막고, 어차피 절제되어야 할 몸통 쪽은 클립으로 해결했다. 무척 주의해야 할 과정이었지만 워낙 어려운 과정을 거친 탓에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느껴졌다.
곧바로 절개를 이어 갔다.
점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후복막에 묻히지 않은 전면부에 불과했다. 더구나 동그란 낭종과 가장 인접한 부분 절제를 앞두었다. 집중력을 잃으면 바늘이 낭종을 찌를 수 있는 상황이었고, 결과는 개복으로의 전환이었다.
이미 등짝이 축축했다.
확인 겸 휴식이 필요했다.
“오 분간 쉽시다.”
강철 체력을 자랑했던 김지훈에게 무척 예외적인 일이었지만 모두들 당연한 표정이었다.
이혁원과 송진우가 목을 돌렸다.
카메라를 잡고, 시야를 확보했을 뿐인데 우두둑우두둑 거친 소리가 들렸다. 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압박과 긴장에 시달리고 있었다.
“송진우 선생은 수술 부위 잡고 있고, 이혁원 선생은 CT 확인하자.”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은 김지훈이 CT가 걸린 뷰박스로 다가갔다. 언제 들어왔는지 수술실 구석에 선 송재덕 교수가 응원의 눈빛을 보냈다.
특유의 몇 마디 말이 들려야 했건만 침묵만 지켰다. 긴장을 풀어 주기보다 집중력이 흐트러질까 우려하는 것이 분명했다.
‘감사합니다.’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김지훈이 찬찬히 CT와 모니터를 번갈아 보며 입을 열었다.
“이혁원 선생, 정확하게 접근하고 있지?”
“주변 구조물을 비교해 볼 때 낭종과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낭종 밑 부분에 도달하면 바로 대정맥과 인접한 부위가 나올 텐데 여기가 관건이야.”
“박리할 간격이 너무 좁네요.”
“간격도 간격이지만 경험상 낭종으로 인한 부분적 췌장염 발생을 배제할 수 없어. CT에서 보이는 것처럼 깨끗했으면 좋겠다.”
염증은 어느 장기에 발생해도 문제가 되지만 췌장 염증은 특히 수술에 큰 영향을 끼친다. 효소 누출로 조직 강도가 더욱 물러지거나 도리어 딱딱해져 박리, 절제, 출혈 조절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대정맥과 인접한 부위라면 생각조차 하기 싫은 일이었다.
김지훈이 어깨를 흔들어 풀며 자리에 섰다.
“시작하자. 보비!”
삐이이이이!
날카로운 동작 음이 끊임없이 울렸다.
낭종과 적절한 간격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바늘을 너무 깊게, 혹은 너무 얕게 찔러 넣지 않기 위해 모든 주의를 다했다. 단 한 번이라도 타이를 실패하면 다시 봉합할 수 없어 한시도 긴장을 풀 수 없었다.
불과 이삼 센티미터를 절제하는 동안 기구를 잡은 손과 어깨가 뻣뻣해질 지경이었다. 마취과 간호사에게 이마를 적신 땀을 닦아 달라는 요청까지 해야 했다.
‘후우! 개복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다행히 이 부분 역시 이전 절개한 조직과 다르지 않다. 낭종만 조심하면 된다.’
은빛 바늘과 하얀 실의 섬뜩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마침내 목표 부위에 도달했다.
절로 안도의 한숨이 터졌다.
어떤 손상도 입히지 않고 낭종과 면한 부위를 모두 절개했지만 전문의 세 명으로 이루어진 수술 팀에게도 상당히 어려운 과정이었다.
이제 대정맥과 접한 부분을 박리해 절개하면 두경부와 몸통이 완전히 분리된다. 그러나 수술 전 가장 큰 우려를 불러일으킨 최고 난이도를 가진 과정이었다.
두경부 쪽 조직은 남겨야 하지만 몸통 쪽은 단 하나의 세포도 남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제거해야 한다. 문제는 이를 위해 대정맥에 바짝 붙여 조직을 박리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여전히 전기를 이용하는 보비를 사용해야 한다.
대정맥 벽이 과도하게 소작되면 수술 후 약해진 부분이 터져 대량 출혈을 유발할 수 있었다. 재수술은 문제도 되지 않을 치명적 합병증이다.
수처와 타이도 피할 수 없었다.
바늘구멍 하나라도 대정맥에 손상이 발생하면 복강경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손상 정도에 따라 개복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김지훈이 눈가에 바짝 힘을 주었다.
‘집중만이 답이다. 조직을 확대해서 본다는 이점을 믿고 자신감을 잃지 말자.’
“보비!”
조심스럽게 췌장 조직을 자르던 김지훈이 돌연 멈칫거렸다. 보비를 통해 전해지는 느낌, 흘러나오는 체액과 붉은 피의 양상이 확연하게 변했다.
‘설마 염증이?’
“카메라 최대한 접근시켜.”
췌장 조직이 확대됐다.
답답한 신음이 터졌다.
붉은색을 띠는 미세한 반점과 함께 균일해 보이지 않는 면이 관찰됐다. 보비로 조직을 자를 때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손상이 아니었다.
췌장염의 흔적이었다.
잠시 수술을 멈춘 김지훈이 이를 악물었다.
‘하필이면 대정맥과 붙은 부분에서.’
모든 조직이 더욱 쉽게 찢어질 수밖에 없었다. 가느다란 혈관마저 염증 반응으로 전보다 훨씬 많은 피를 쏟아 낼 것이다.
이제껏 손으로 느낀 감각마저 모두 무용지물이 됐다.
막막할 정도로 난감했다.
이혁원이 불안 섞인 눈초리로 물었다.
“선생님, 개복 시에도 문제가 되는 양상입니다. 대정맥에 바짝 붙여 박리해야 하는데 계속 진행하실 겁니까?”
당연한 질문이었다.
개복으로 전환해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섰다.
김지훈이 고민에 잠겼다.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해야 했다.
신중하게 조직 상태를 파악했다.
분명 사전에 예측했던 문제였다.
복강경을 반대했던 써전들의 주요 근거였지만 감당하지 못할 상황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능력 밖이면 개복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염증 없이 진행하는 췌장 수술은 거의 없다. 지금 해결하지 못하면 어떤 병변도 라파로로는 불가능하다. 이 정도 난관은 반드시 뚫고 나가야 한다.’
때론 도전이 필요하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려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책임이자 부담을 회피하고 싶지 않았다.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