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마냥 환영할 일이 아니었다.
정상적 인지 능력을 가졌다면 환자의 결정을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예외적이라는 점을 절대 경시해서는 안 됐다.
단점보다 장점이 더 귀에 들어왔을 것이다. 의사인 남편의 말보다 개복 수술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큰 상황이니 감정이 앞섰을 가능성이 높았다.
객관적 관점에서 충분히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가뜩이나 합병증이 빈발하는 수술이기에 검증된 방법을 택하길 원하는 오창도 교수도 아내 스스로 확실하게 결정하길 바라는지도 몰랐다.
그래야 어떤 일이 벌어져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김지훈이 이준영 교수의 허락을 구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지금 만나죠.”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반대에 부딪쳐 다음 기회로 미뤘지만 환자 생각이 다르다는 사실을 듣자 상당한 부담이 느껴졌다. 이준영 교수의 말을 결코 잊지 말아야 했다.
‘과도한 욕심을 내는 순간 실패한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가감 없이 설명해야 한다.’
정확한 정보도 제공하지 않은 채 환자가 섣부른 결정을 내리게 할 수는 없었다. 한 사람의 삶을 좌우할 수술에 감상이 끼어들 틈은 없기 때문이었다.
허진아 환자를 만났다.
그새 많이 수척해졌다.
두 눈에 숨은 두려움이 눈에 보였다.
김지훈이 침착하게 말문을 열었다.
“사모님, 복강경으로 수술받길 원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이십니까?”
“예. 가능하다면 복강경으로 수술받고 싶어요.”
“제가 알기론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시도한 적이 없는 수술입니다. 최초 시도라는 말속에 숨은 위험을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어요.”
“감정으로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두 가지 수술법의 장단점을 모두 설명드릴 테니 심사숙고하신 후 현명하게 결정하셔야 합니다.”
개복과 복강경의 차이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나 스스로도 확신하기 힘든 시도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라파로의 장점만을 강조하면 환자를 기만하는 것과 다름없다. 차라리 치우치는 것이 낫다.’
개인적 욕심을 버리고 복강경이 가진 단점과 위험성을 수차례 설명해 감정에 치우치지 않도록 했다. 이준영 교수를 비롯해 현 수술진이 얼마나 믿을 만한지 강조해 개복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고자 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신중하게 결정하셔야 합니다. 수술 팀 중 누구도 복강경으로 췌장을 수술한 경험이 없다는 사실 잊지 마세요.”
“어떤 선생님이 수술하시나요?”
“복강경은 제가 합니다.”
어떤 수술이든 이준영 교수가 주관한다고 생각했는지 다소 의외라는 눈치였다. 집도의가 선택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언제까지 결정해야 하나요?”
“모레 아침 첫 수술입니다. 가급적 빨리 결정하셔야 수술 팀도 충분히 준비할 수 있습니다.”
모든 정보를 제공받은 허진아 환자가 한동안 고민에 잠겼다. 분위기가 애매해 김지훈은 물론 이준영 교수까지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허진아가 오창도 교수와 눈을 마주쳤다.
“여보, 선생님 모두 믿을 수 있다고 했죠? 평소 김지훈 선생님 얘기도 정말 많이 했잖아요.”
오창도 교수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수술 후에도 무척 힘들다고 들었어요. 고통에 시달리고 싶지 않아요. 저도 김지훈 선생님을 믿고 싶어요.”
“여보, 누구도 시도해 본 적이 없는 수술이야.”
“삶의 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 건 당신이에요. 난 앞으로도 모든 일상을 당신과 아이들과 함께 정상적으로 누리고 싶어요.”
놀랄 수밖에 없는 결정이었다.
다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허진아 환자만 바라보았다. 침착한 눈빛으로 상황을 살핀 이준영 교수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환자분, 확실하게 결정하신 겁니까?”
“예. 김지훈 선생님께 수술을 받고 싶어요.”
“좋습니다. 의료진 모두 최선을 다해 반드시 성공할 겁니다. 오 교수, 아내분의 결정을 존중했으면 해. 김 교수, 수술 팀 다시 구성하고, 철저히 준비해.”
확실하게 마무리했다.
상황이 급박하게 변했다.
김지훈이 나직한 숨을 내뱉었다.
내심 복강경 수술을 택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결정이었다. 무엇이 허진아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알 수 없어도 반드시 보답해야 했다.
상당한 긴장이 다가왔다.
비상이다.
일종의 예행연습이 실전으로 바뀌었다.
수술을 해야 하는 의료진의 판단이 아닌 환자의 결정이자 삶이 걸린 일이었다. 더구나 주치의였던 이준영 교수가 전권을 부여했다.
“일과 끝난 후 모두 모여.”
준비할 사항이 많았다.
신현수와 이경석을 찾았다.
크게 놀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오늘 마지막 점검을 할 생각인데 위장과 대장 처리 때문에 상의할 일이 있어. 시간 좀 내줘.”
“이번 수술이 얼마나 어려울지 잘 알지만 간담도 말고도 라파로 한두 번 해 본 게 아니잖아. 굳이 우리 의견까지 필요해?”
“사소한 실수도 용납할 수 없는 수술이야. 도와줘.”
“알았어. 일단 참석할게.”
수술 방을 찾았다.
간담췌 파트 전담 간호사인 고경아 역시 깜짝 놀랐다.
수술 팀의 일원으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했다. 집도의와 호흡이 맞지 않으면 어려움이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포 포트로 할 예정이에요. 필요한 기구 목록 작성했으니까 하나도 빠짐없이 준비해 줘요. 일과 끝난 후 마지막 회의가 있는데 희연이 때문에 참석할 수가 없겠죠? 오늘내일 집에서 손 맞춰 보죠.”
“준비는 걱정 말아요. 그보다 오창도 선생님 부인인데 괜찮겠어요?”
“특별한 관계가 있다고 해도 결국 똑같은 환자예요. 수술과 관련 없는 부담은 버리고 최선을 다해야죠. 부탁해요.”
혈관 수술을 준비 중인 손일석도 만났다.
불길한 예감은 버려야 하지만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이 마땅했다.
“일석아, 췌장 낭종이 대정맥과 근접해 발생했다는 사실 들었지? 만에 하나를 대비해 대정맥 처리에 대해 논의할 게 있어. 수술 끝나는 대로 내 교수실로 와.”
“정말 라파로로 수술받겠대?”
“오창도 선생님은 여전히 불안해하셔. 막판에 마음이 바뀔지 모르지만 해야 하는 대비는 다 해야지.”
“야! 여담이지만 최초라는 타이틀 참 많이 단다. 반드시 성공해. 실패하면 여기저기에서 무리한 시도였다고 비난할 수도 있어. 췌장은 다른 장기하고 다르다는 사실 잘 알잖아. 경력에 흠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
“경력을 위해 하는 수술이 아니야.”
“그걸 누가 인정할까? 세상 사람들 눈 무시하지 마. 득 될 게 없다. 친구는 못 만들어도 적이 되진 말아야지.”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질시와 시기는 의료계 어디나 존재한다.
젊은 의사가 위기를 느낄 정도로 치고 올라오면 기존 의료계나 경쟁 병원에서 견제할 가능성이 높았다. 성공의 대가는 황홀할 정도로 달콤하겠지만 실패의 대가 역시 그 이상 쓰고 아플 것이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한테는 손일석이 있잖아.”
농담으로 부담을 덜어 냈다.
부산한 가운데 일과를 마쳤다.
환자의 경중은 없지만 정재복 환자 또한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여전히 회복을 가늠하기 힘들었다. 장기 입원 환자를 쉽게 볼 수 없는 일반외과 특성 때문인지 심적으로 무척 강한 압박까지 느꼈다.
‘내과로 보낼 수 있을지조차 모르겠네. 후우! 일단 지금은 허진아 환자에게 집중하자.’
오후 여섯 시 반.
무려 여덟 명의 써전이 모였다.
최종 점검을 하는 내내 예상되는 난관과 문제를 제시하며 해결책을 찾았다. 막판 손일석까지 참석해 혈관 문제를 대비한 후에야 논의가 끝났다.
펠로우들의 눈이 반짝였다.
이런 과정이 결국 어렵고 복잡한 수술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환자에게 최선임은 굳이 강조할 필요조차 없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김 교수, 파이팅!”
머릿속이 차근차근 정리되고, 동료들의 응원도 뜨거웠지만 마음은 개운하지 않았다.
오창도 교수 때문이었다.
병실을 찾았다.
허진아 환자와 대화를 나누며 상태를 확인했다.
뺨이 수척할 정도로 허약했고, 스스로 결정했지만 두려움과 불안을 숨기지 못했다. 대수술을 앞둔 환자의 반응이라 넘어가기에는 상황이 특별했다.
오창도 교수는 묵묵히 자리만 지켰다.
어느 때보다 의사와 환자 간의 신뢰가 필요했다.
“선생님도 불안하세요?”
“불안하지 않은 수술은 없습니다.”
“남편과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다행이네요. 잘 끝나겠죠?”
“우리 과 전체가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췌장 낭종은 확실하게 제거될 테니 편하게 생각하세요.”
상당 시간 투자했다.
모두에게 휴식이 필요한 시간이 됐다.
가벼운 미소로 인사를 대신한 김지훈이 병실을 나오자 오창도 교수가 바로 따라 나왔다.
“김지훈 선생님, 논의는 잘 끝났습니까?”
“부족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많이 불안해하신다는 사실 잘 알고 있습니다. 사모님 마음이 변하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개복을 언급하자 오창도 교수가 웃었다.
슬픈 듯, 애써 태연한 듯.
“이제 와 수술 방법을 바꾼다면 오히려 더 큰 문제가 생길 겁니다. 김지훈 선생님, 우리 와이프 맡기겠습니다. 그동안 환자와 집도의 결정에 전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원칙을 잊었던 모양입니다. 미안합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마음이 편해지네요. 고맙습니다. 절대 실패하지 않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목소리가 떨렸다.
절박한 마음이 느껴졌다.
오창도 교수 역시 여느 보호자와 다르지 않았다.
하루 남았다.
수술 스케줄도 내기 전에 복강경을 이용한 췌장 수술 시도가 몇몇 동료 의사들 귀에 들어갔다. 관련 환자가 많은 내과에서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윤석진이 직접 찾아올 정도였다.
“김 교수, 소식 들었는데 정말이야?”
“내일 수술 들어갈 예정이야.”
“라파로로 사이즈가 3센티미터나 되는 췌장 낭종을 제거한다니 멋있다.”
“성공해야 의미가 있지.”
“이준영 선생님도 생각하지 못한 수술이잖아. 그만큼 어렵다는 말인데 시도 자체만으로도 대단하다. 췌장 쪽 병변을 쭉 라파로로 시도할 생각이야?”
“이번 수술로 나만이 아니라 우리 과 선생들 모두 귀중한 경험을 얻게 될 거야. 케이스가 적당하다면 환자에게 권유할 가치가 충분해.”
윤석진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역시 김지훈이다. 우리 과도 이번 수술에 관심 있는 선생님들이 많아. 꼭 성공해.”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써전은 수술로 말하고, 내과는 약으로 말하지만 경계선에 선 환자들도 제법 많았다. 제한적인 약물 효과에도 불구하고 여러 이유로 개복 수술을 시행하지 못하는 환자에게 복강경은 좋은 대안이 될 수도 있었다.
과가 다르고, 치료 방법 자체가 상이한 이상 상호 신뢰가 더욱 중요했다. 그만한 성과를 보여야 한다는 전제가 성립돼야 가능한 일이었다.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수술이 하나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정말 많은 의미가 담긴 수술이라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환자와 김지훈 자신은 물론 일반외과 전체에 미치는 영향도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원 포트 수술에 이어 췌장 병변까지 먼저 제안해 책임이 무거웠지만 이제야 걸음마를 떼는 수준이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용두사미가 될 것이다.
끔찍한 일이었다.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다.
바쁘면서도 차분한 일상 속에 하루의 시간이 지나 운명의 날 아침이 밝았다. 허진아 환자와 오창도 교수를 만나 최종 확인을 하고 수술 방으로 향했다.
드르륵!
많은 환자들이 속속 수술 방 앞에 도착했다.
두려움과 불안에 떠는 환자, 걱정 가득한 보호자, 침착하게 수술을 준비하는 의료진까지 매번 보는 모습이었지만 유달리 가슴에 와닿았다.
허진아가 오창도 교수의 손을 놓지 못했다.
눈시울이 붉었다.
숨 쉴 때마다 목을 자극하는 코 줄, 결코 자연스럽지 않은 소변 줄, 주렁주렁 매달린 수액, 차가운 수술 방 공기까지 모든 것이 불안할 것이다.
“여보, 한잠 자고 일어나면 끝나 있을 거야. 마음 편히 먹어. 김지훈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사모님, 걱정하지 마세요.”
김지훈의 눈짓에 이혁원과 송진우가 간이침대를 잡고 수술실로 향했다. 두 눈을 꼭 감은 허진아의 창백한 손이 달달 떨렸다.
띠! 띠! 띠! 띠!
“바이탈 체크하고, 소변 모두 비워요. 산소 포화도 괜찮죠? 라인 잘 확보됐는지 확인하세요. 출혈에 대비한 혈액 두 팩 준비됐나요?”
마취과의 분주한 움직임 속에 수술 팀 모두 손을 소독하고 수술실로 들어왔다. 하얀 덧 가운을 입고 수술용 장갑을 꼈다.
“마취 시작합니다. 환자분, 숨 크게 쉬세요.”
정맥 마취제가 투여된 직후 근 이완제가 혈관을 타고 들어갔다. 무력화된 육신은 굵은 호흡 튜브에 조금도 저항하지 못했다.
호흡 마취가 이어졌다.
인공호흡기가 규칙적으로 움직였다.
윤서연이 김지훈을 보았다.
“수술 시작하셔도 됩니다.”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무영등 불빛 아래 은색 메스가 날카로운 빛을 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