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989화 (989/1,329)

15화

김지훈이 잠시 마음속 걱정을 잊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오늘 볼만하겠어. 부교수라는 자리가 이렇게 마음 편한 자리였구나.’

국내 최초로 시도하는 수술이자 의학계의 관심을 유발할 수밖에 없는 원 포트 수술을 아홉 건이나 했다. 무엇보다 양성 질환으로 시달리는 환자들에게 대단한 반향을 일으킬 것이다.

천하의 비기를 갖춘 교수들이 모두 참관했다.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퍼스트를 선 써전만 일곱 명이었고, 그중 세 명이 펠로우였다. 시연에 참가한 교수들에게까지 무기를 꺼내 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폭탄은 올곧이 간담췌 파트 펠로우 몫이었다. 오창도 교수와 신현수가 두 번씩 참가하지 않았으면 희생자가 더 늘었을 것이다.

송재덕 교수가 포문을 열었다.

“나종진 선생, 나처럼 라파로 못하는 의사는 어떻게 해야 하니? 구경만 해야 하니? 동맥 처리가 무척 어려워 보이더라. 뭘 주의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해 봐. 구체적으로. 왜 말이 없어? 왜? 펠로우도 밖에 나가면 혼자 서야 하는 전문의다. 후배들은 어떻게 할 거니? 어떻게?”

나종진이 너털웃음에 나가떨어졌다.

그나마 천운이 따라 경상이었다.

송진우가 도마 위에서 잘근잘근 썰렸다.

그도 모자라 서릿발 같은 비수에 난도질을 당했다.

파트 펠로우 장을 맡고 있는 이혁원은 아버지의 불길에 한 줌 재로 변했다. 신현수와 이경석이 안도의 한숨을 쉴 정도로 처절하게 타올랐다.

물론 최대 수혜자는 부교수 김지훈이었다.

확 달아오른 분위기에 몇 안 되는 전공의들이 속수무책 휩쓸렸다. 갓 일반외과의 길에 들어선 고경철이 식은땀을 흘리며 심각하게 미래를 고민하고 말았다.

‘사 년으로 끝이 아니네. 펠로우까지 칠 년을 타야 한다면 내가 정말 제대로 선택한 걸까? 매형은 뭐가 좋아 저렇게 얼굴이 편안할까?’

김지훈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 지나온 길이었다.

변화하는 시대를 따르지 못하는 방식이라 해도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교육이었다. 사람을 치료하고, 생사를 다루기에 더욱 엄격해야 했다. 같은 이유로 교수들은 인간적인 비난과 모멸을 절대적으로 피했다.

때문에 누구도 반감을 갖지 못할 것이다.

너털웃음, 도마질, 비수, 화염방사기 덕분에 제법 긴 시간 마음의 부담을 잊었다. 아니, 펠로우를 하는 후배들 덕이었다.

‘하하하! 고마운 놈들!’

“김지훈 선생, 할 말이 있다고?”

아직도 열기가 남아 있는 이준영 교수의 목소리에 흐뭇하게 후배들을 보던 김지훈이 급 표정을 지웠다.

“예, 선생님.”

김지훈이 자세를 가다듬었다.

“먼저 아홉 건의 시연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미 보셔서 알겠지만 원 포트 수술은 상당한 숙련도를 요구합니다. 저 역시 노련한 퍼스트가 없었으면 집도 자체가 어려웠을 겁니다.”

겸손 속 자랑?

“반면 탈장, 담낭 쪽 양성 질환에 국한시켜 보면 이보다 나은 수술법은 없습니다. 앞으로 반드시 발전시켜야 할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이에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제안이란 말에 관심이 집중됐다.

“원 포트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파트, 혹은 써전을 키웠으면 합니다. 양성 질환에 한정되기 때문에 100퍼센트에 가까운 성공률을 담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수술 건수로 봐도 라파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상 의미는 충분하다고 사료됩니다.”

신현수가 곧바로 의문을 표했다.

“원 포트는 양성 질환이라고 해도 염증이 심하면 적용할 수 없는 수술법으로 보입니다. 결국 케이스 수를 떠나 기본적인 수술만 가능한데 전문 파트라니 의료 자원의 낭비 아닙니까?”

“우려 인정합니다. 하지만 라파로가 가진 본래 목적을 생각해 보면 오히려 더욱 필요한 부분입니다. 실제 삼사 일 이상을 요하는 기존 입원 시간과 더딘 회복, 특히 흉터에 대한 두려움으로 수술을 기피하다 병을 키우는 환자가 상당수입니다. 원 포트는 그런 위험을 최대한 줄일 것이라 확신합니다.”

“써전의 관점에서 보면 중증 질환에 접근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제는 보다 세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례로 간담췌 내에서도 다양한 세부 전문 분야가 요구될 것입니다. 환자의 고통이 질환의 경중과 반드시 비례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원 포트에 특화된 써전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뜻밖의 제안에 격론이 벌어졌다.

누구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양성 질환만 전문적으로 수술하는 써전에 대한 일종의 거부감이었다. 원 포트가 가져다줄 병원 수익의 증가까지 감안해야 할 신현수도 동의하지 못했다.

김지훈이 침착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어 갔다.

“말씀드린 것처럼 100퍼센트에 근접한 성공률을 얻으려면 완벽할 정도로 특화된 써전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이를 위해 수련 중 다양한 질환과 수술을 경험해야 가능한 일인 만큼 결코 쉽게 도달할 분야가 아닙니다.”

차근차근 이해를 구했다.

전문 분야는 질환의 경중에 따라 나뉘지 않으며, 그럴 이유나 근거도 없다.

구체적인 방식을 제시하면 복강경 수술을 배우고자 하는 모든 써전을 노련한 써전의 책임하에 수련시키고, 그중 원 포트 수술 전문의를 키우면 된다.

확고한 목표 아래 움직이면 양성 질환의 메카가 될 수 있다. 실제 동일 질환 수술 건수가 가장 많은 병원이 학문적으로도 인정받지 않는가!

“마지막으로 외과 영역의 외연과 규모를 키우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리면 해당 분야 교수진 보강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생각이 깊어졌다.

솔직히 자존심 문제일 수도 있었다.

중증 질환을 전문으로 해야만 써전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명백했다.

이준영 교수가 가장 먼저 일정 부분 수긍했다.

또한 제자의 우려를 공유했다.

“만약 원 포트 전문 분야를 만든다면 노련한 써전이 양성 질환에 집중해야 할 텐데 누가 해당 파트를 맡지?”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가장 고민했던 문제였다.

중증 질환 치료를 완전히 포기할 이유는 없지만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이다.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는 현실적 우려를 불식시킬 방법도 없었다.

“저도 가장 걱정했던 부분입니다. 토론 말미에 제 생각을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선택의 폭은 좁았다.

이준영 교수, 오창도 교수, 김지훈 말고는 적임자가 없었다. 어떤 면에서는 원 포트 수술을 도입했고, 제안한 사람이 맡는 것이 당연한 순리일 수 있었다. 반대로 한 분야에 전념하기엔 아까운 인재라는 사실 또한 분명했다.

몇몇 의견이 제시됐지만 원론적인 말이었다.

오창도 교수는 끝내 자신의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묵시적 거부와 다름없었다.

결국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김 교수 말도 맞고, 신현수 선생 말도 맞다. 어렵다. 어려워. 이런 문제일수록 급하게 가면 체한다. 많이 생각하고 고민해 보자. 박 과장 의견도 무척 중요하다. 흐음! 어렵다. 어려워. 일어나자. 일어나.”

여의치 않은 상황에 송재덕 교수가 마무리를 짓고자 했다. 시간을 끈다고 해서 답이 나올 분위기도 아니기에 다들 수긍했다.

김지훈이 마지막 발언을 요청했다.

‘누군가 맡아 주길 바란 것 자체가 욕심이었다. 일천하지만 나만큼 숙련된 써전도 없다. 오창도 선생님, 잠시나마 부담을 줘 죄송했습니다.’

김지훈이 오창도 교수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눈가에 힘을 주었다.

“다음으로 미룬다고 해서 명쾌한 결론이 날 것 같지 않습니다. 개인적 목표가 있어 여러 길을 모색해 봤지만 무리한 제안이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수술법을 도입했고, 경험이 가장 많은 제가 책임지고 교육을 맡겠습니다.”

이준영 교수가 물었다.

“원 포트에만 전념할 생각은 아니겠지?”

“당연히 병행할 생각입니다.”

“업무가 과중하지 않겠어?”

“무리하지 않도록 조절하겠습니다.”

전공의, 펠로우, 조교수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향후 가고자 하는 길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일을 자청하며 김지훈이 밝게 웃자 다들 피식 웃으며 고개를 흔들고 말았다.

이준영 교수는 눈 하나 깜짝이지 않았다.

“지금 결정이 맞다.”

깔끔하게 결론을 내렸다.

집담회가 끝났다.

김지훈이 오창도 교수에게 다가갔다.

“선생님, 공연한 말 죄송했습니다.”

“아닙니다. 내가 미안하네요. 최대한 돕겠습니다.”

“그래 주시면 저야 좋죠.”

한동안 대화를 나눴다.

이해관계의 충돌로 보이지만 결국 각자 갖고 있는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앙금이 남는다면 외과 의국 전체에 영향을 주고도 남았다.

누굴 탓하고 비난할 일이 절대 아니었다.

서로를 존중하는 가운데 흉금을 털어놓았고, 이해와 양해 속에 자리를 끝냈다.

개운한 얼굴이었다.

상당한 부담으로 어깨가 처질 법도 한 김지훈이 밝게 웃었다.

신현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 그렇게 좋아?”

“이게 순리잖아. 스승님이 깔끔하게 결정해 주시고, 오창도 선생님도 최대한 돕겠다고 하시니까 마음이 한결 편해. 그런데 네 반응이 의외야.”

“뭐가?”

“원 포트가 활성화되면 환자가 더 많아질 테고, 병상 회전까지 빠르니까 병원 수익에 훨씬 도움이 될 텐데 결사적으로 반대했잖아.”

신현수가 피식 웃었다.

“반대는 무슨! 잘못된 제안이 아니라는 걸 빤히 아는데 아직 재단 이사보다 써전이길 바라는 모양이다.”

“뭐? 너 재단 이사였어?”

절레절레.

“소문은 듣고 다니면서 남들 다 아는 사실은 몰라? 병원 살림까지 걱정하는 김지훈과 지금 김지훈 중 어느 쪽이 진짜야? 일석아, 넌 어떻게 생각해?”

“묻긴 뭘 물어. 보이는 그대로지. 아둔한 놈! 강호에선 단 하루도 버티지 못할 놈!”

이경석까지 가세했다.

“허술한 구석 하나쯤은 있어야 인간적이지.”

“하나뿐인가?”

삼천포로 빠져 물고 씹고 웃고.

김지훈이 주말에도 원 포트 수술에 관한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개운하게 결정됐다고 여겼는데 껄끄러운 마음이 남았던 모양이었다.

솔직히 부담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고경아가 가고자 하는 길, 결코 누구 혼자 감당해서는 안 될 가사와 육아 부담까지 고려해야 했다. 유학 때보다 고민해야 할 일이 더 많아졌다.

모든 사실을 감안해도 원칙은 분명했다.

결자해지(結者解之)!

‘이렇게 된 이상 최선을 다하자. 솔직히 편했던 적도 없었잖아.’

또 한 주가 그렇게 끝났다.

김지훈의 결정은 간담췌 파트 구성원에게 각기 다른 의미의 고민을 안겨 주었다.

펠로우 모두 교육 대상이었다.

자신의 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과 보다 어려운 분야로 가고자 하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원 포트 수술의 제약 조건은 하루아침에 사라질 거부감이 아니었다.

오창도 교수의 고민이 특히 깊었다.

김지훈의 결정으로 부담이 오히려 커졌다.

미묘한 입장도 여전했다.

같은 부교수에 나이도 많지만 경력 면에서 도리어 김지훈에게 뒤졌다. 반면 단지 그런 이유로 원 포트 수술에 전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숙련될 때까지 배워야 한다는 부담감, 그만큼 중증 질환 환자가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컸지만 경쟁의식에서 비롯된 자존심도 한몫했다.

무엇보다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자신이 없었다.

원 포트 수술과 기존 업무를 병행해야 한다면 엄청난 시간 투자가 필요했다. 현실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불가능해 보였다. 현 상황과 위치를 고수할지, 타협점을 모색할지조차 결정하지 못했다.

이준영 교수는 일언반구 말이 없었다.

‘상의해야 할 문제는 분명하지만, 김지훈 선생이 맡겠다고 한 이상 굳이 먼저 꺼낼 이유가 있을까? 도움을 청하면 그때 응하는 것이 서로에게 편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를 모를 김지훈이 아니었다.

가만히 있는 사람 불 지른 당사자였다.

끝난 문제라고 해도 ‘나 몰라라’ 하면 그보다 비겁한 일은 없었다. 스스로 수습하지 못할 일을 벌여 놓고 뒷짐 진 꼴이 될 것이다.

커피 하나 들고 다시 오창도 교수를 찾았다.

“선생님, 제 욕심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고민하실 필요도, 부담 가지실 이유도 없습니다.”

“결정이 나니까 도리어 고민이 더 되네요.”

아직도 존대를 하는 오창도 교수였다.

때문에 더욱 난감할 것이다.

“선생님 입장이 어떨지 알면서도 모든 일을 미리 상의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제게 맡기십시오.”

“힘들지 않겠습니까?”

“도와주신다면서요. 당분간 중증 환자 볼 일이 많지 않을 테고, 펠로우에게 케이스를 줄 정도의 경험을 가진 사람도 저밖에 없지 않습니까?”

“미안합니다.”

걱정 반 미안함 반이었다.

김지훈이 활짝 웃었다.

공연한 일이었고, 절대 부담을 줄 수 없었다.

“제가 가장 젊고, 일도 제일 없는데 힘들 일이 있나요. 닦달질을 해서라도 펠로우 선생들 확실하게 가르치겠습니다. 다들 뛰어나니까 몇 달이면 되지 않을까요?”

오창도 교수가 눈가를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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