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982화 (982/1,329)

8화

담낭관이 남았다.

상대적으로 처리하기 쉬운 구조물이지만 상황이 다른 환자였다. 담낭관이 끊어져 심한 염증이 동반된 담즙이 복수를 타고 퍼지면 치명적인 감염원이 될 수 있었다.

김지훈의 집중력은 결코 약해지지 않았다.

“보비! 석션! 이 정도 출혈은 클립보다 수처가 확실해.”

극도로 연약해진 조직을 수처(Suture:봉합)하는 솜씨는 가히 환상적이었다. 언뜻 개복 시와 다르지 않아 보일 정도였다.

어느새 담낭관이 깔끔하게 드러났다.

“담낭관 잡자. 클립!”

담낭관을 잘랐다.

간과 연결된 남은 조직을 제거해 담낭을 완전히 적출했다. 여전히 여러 부위에서 출혈이 발생하고 있었지만 시야가 좋아진 덕에 무난하게 해결했다.

한 시간 반이 지났다.

담낭 농양을 감안하면 상당히 빠른 진행이었지만 긴장의 연속이었다. 개복보다 훨씬 큰 피로가 느껴질 때였지만 아직 수술은 끝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익숙할 정도로 단련된 써전들이었다.

환자에게 주어진 여유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이미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간과 담도에 박힌 돌을 빠르게 해결해야 했다.

김지훈은 멈추지 않았다.

“T-tube 넣고 끝내자.”

“튜브 준비하겠습니다.”

나종진이 강한 집중력과 체력을 보였다.

감탄을 거듭하며 눈을 빛내던 송진우는 단 일 초라도 빨리 다음 과정을 보고 싶다는 열망을 드러냈다.

“켈리! 보비!”

삐이이이이!

하얀 연기가 석션을 따라 사라졌다.

담도가 드러났다.

“메스!”

표면을 살짝 절개한 후 수술용 가위로 1센티미터 정도 절개했다. 시커멓게 변한 담즙이 흘러나오며 끈적끈적한 액체 사이로 작은 알갱이들이 관찰됐다.

“지금 모두 제거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해. 석션으로 가능한 돌만 빼내고, 남은 돌은 수술 후 식염수 세척으로 해결하자.”

정확한 판단이었다.

담도를 막았던 돌이 하나둘 강한 흡입력에 빨려 나왔다. T-tube를 넣을 공간을 충분히 확보한 김지훈이 다음 과정을 이어 나갔다.

기구보다 훨씬 굵은 T-tube를 잡아 비슷한 두께의 담도에 넣는 것은 누구에게나 까다로운 과정이었다. 노련한 써전조차 때때로 애를 먹을 정도였다.

김지훈은 상당히 편안하게 진행했다.

절개된 담도를 봉합하는 과정은 말할 것도 없었다.

“수처! 가위! 컷!”

담도와 T-tube가 단단히 밀착됐다.

임상 실습 때 시작하는 수처와 타이부터 시작해 사소해 보이는 모든 기본기들이 써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여실하게 보여 주고 있었다.

복강 내를 깨끗이 씻었다.

출혈과 담즙 유출 여부를 알려 줄 드레인(Drain:심지)을 박은 후 수술을 끝냈다.

복부 봉합이 시작되기 전, 적시에 환자를 깨우기 시작한 윤서연이 안전하게 기도 내 삽관을 제거했다.

모든 손길이 상당히 노련했다.

“환자분, 눈 떠 보세요. 수술 끝났습니다.”

환자가 깨어나야 수술의 마지막 고비를 넘긴다.

수술보다 더욱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째깍! 째깍!

은연중 불안한 기운이 감돌았다.

윤서연의 손길이 바빠졌다.

“끄으으응!”

마침내 나직한 신음이 들렸다.

호흡을 따라 마취제 냄새가 진하게 퍼졌다.

환자의 들숨과 날숨이 충분하다는 의미였다.

“환자 옮겨도 됩니다.”

김지훈이 훅 숨을 내쉬었다.

윤서연의 목소리가 이토록 반가울지 몰랐다.

수술 중 보인 여유는 손의 여유일 뿐 마음의 긴장은 수술 팀과 하등 다르지 않았다. 등에 맺힌 땀은 두꺼운 수술용 덧 가운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종진과 송진우가 눈만 껌벅거렸다.

오후 8시가 살짝 넘었다.

‘최소 네 시간 가까이 걸릴 줄 알았는데, 이렇게 되면 미국에서도 수술을 많이 하셨단 말이네.’

수술 시간은 두 시간 반에 불과했다.

삼 년 만에 본 써전의 손은 녹슬기는커녕 기억과도 분명하게 달랐다. 유학 중인 이들 대부분 참관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시간에 정신 팔 때가 아니었다.

곧바로 환자를 옮겼다.

수술 직후 또한 환자에겐 무척 중요하고, 위험한 때였다. 심장박동과 호흡을 측정하는 기구들이 수액과 함께 주렁주렁 매달렸다.

김지훈, 나종진, 송진우가 나란히 섰다.

“송진우 선생, 드레인 어때?”

“피가 약간 섞이는 정도입니다.”

“수술 시간이 길었고, 출혈도 적지 않았어. 오늘 하루만 중환자실에서 보자.”

‘후우! 두 시간 반도 길다고 하시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궁금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전 간만 고정시켰을 뿐입니다. 투 포트 방식으로도 가능하지 않으셨습니까?”

“할 수 있었겠지만 단순히 써전의 손 하나 더하고 빠지는 문제가 아니야. 환자에게 개복이 더욱 안전하다면 라파로를 고집해선 안 되는 이유와 같다고 할까? 우리가 가진 욕심과 잘 조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해. 이번 수술도 송진우 선생이 함께한 덕분에 빠르고 안전하게 끝났잖아.”

송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 내내 미묘하게 느껴졌던 여유는 유연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몰랐다. 경직된 사고는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

환자에게 눈을 떼지 않던 김지훈이 나종진과 송진우에게 눈길을 주었다.

수술 팀 각각에게 주어진 일이 있다.

혼자 노심초사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젠 그래서도 안 되는 위치였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가장 큰 부담을 지는 집도의는 다음 수술을 위해 휴식을 취하고, 퍼스트와 세컨은 모든 일을 시간 내에 수행해야 했다.

‘전공의가 없어 펠로우가 전공의 업무를 대신해야 한다니 마음은 놓이지만 기분은 좋지 않네.’

다만 안쓰러워도 할 말은 해야 했다. 또한 수술 팀 모두 사 년이란 수련 시간을 치열하게 보낸 끝에 전문의가 된 써전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했다.

그만큼 존중받아 마땅했다.

“나종진 선생, 잠깐 나 좀 보자. 송진우 선생도 같이 보자.”

께름칙한 느낌을 감추지 못했던 나종진이 한숨을 내쉬며 휴게실로 향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지만 썩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김지훈이 나직한 콧소리를 냈다.

당연한 일이었다.

‘펠로우라도 이젠 다 같은 전문의인데 말 잘해야겠다. 누가 누굴 태우고 탈 나이도 아니고, 난 스승님 같은 존재가 아니잖아.’

“나종진 선생, 오늘 수술 어땠어?”

“많이 배웠습니다.”

“다행이다.”

김지훈이 툭 어깨를 치며 웃었다.

“유학 다녀온 놈 실력이 어떤지 궁금했어?”

“아…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군의관 때 놀지 않은 모양이다. 사실 집도 경험이 쌓일수록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지긴 해. 자신감보다 집도의로서 받는 부담이 더 커지면 항상 불안하고, 다른 의사 손에 자꾸 눈이 갈 거야. 누구도 도와줄 수 없어. 스스로 노력해 이겨 내야 할 일이야.”

“명심하겠습니다.”

“내 수술 들어올 일이 또 있겠지? 그땐 더 잘해 보자. 나랑 손 맞춰야 하는 송진우 선생은 특히 내 말 잊으면 안 돼.”

나종진이 어색한 기침을 터트렸다.

은연중 말속에 뼈를 심었지만 김지훈은 자신을 충분히 존중했고, 고민을 이해하고 있었다. 휴게실을 찾을 때 내심 전공의처럼 대할지 모른다고 오해했던 것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오늘 같은 실수 없도록 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죄송합니다.”

“죄송할 일 아니다. 나도 그랬고, 누구나 거쳐야 하는 과정이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환자 잘 봐.”

‘나도 스승님께 많이 혼났다. 기분 나빠 하지 말고 얻어야 할 것을 마음속에 새기면 좋은 일만 있을 거야.’

기대대로 나종진의 어깨는 처지지 않았다.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은 김지훈이 휴게실을 나왔다.

마침 오늘 수술을 모두 마친 손일석과 딱 마주쳤다.

“김 교수, 빨리 끝났다.”

“다행히 운이 좋았어.”

“겸손하긴. 이준영 선생님은 봤어?”

“응? 안 들어오셨는데.”

“그 양반도 참! 그냥 퇴근하시지, 제자 얼굴도 안 볼 거면서 수술 방엔 왜 들어오신 거야? 에이! 공연히 나만 혼났네.”

손일석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왜 혼나?”

“내 말이! 내 수술 들어오신 것까지는 좋은데 스승님이 계신 마당에 왜 눈가를 찡그리시냐고. 칠지도 날고, 난 막을 수도 없고, 이준영 선생님은 불 질러 놓고 묵묵히 나가시는데 내가 전공의인 줄 알았다니까. 이 나이에 아직도 타야 되나? 어떻게 생각해?”

“그래서 성질나?”

손일석이 애먼 문을 툭 쳤다.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한 담낭을 깔끔하게 뗀 놈이 앞에 있는데 성질나지. 간만에 확실하게 긴장 타고 있다, 이 자식아!’

“모자란 나를 원망해야지 누굴 원망하겠냐? 성질나는 건 왜 너는 아무 일도 안 당했느냐는 거야. 차별! 그거 좋지 않아.”

김지훈이 씨익 웃었다.

“스승님이나 신기동 선생님이나 이유 없이 그러실 분들이 아니잖아. 나중에 크게 웃을 일이 있을 거다.”

대부분 스쳐 지나갈 말이었지만 넉살 속에 김지훈 못지않은 예리함을 감춘 손일석이었다.

무심코 지나칠 리 없었다.

손일석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크게 웃는다. 뭔가 있구나? 뭐야? 뭘 감추고 있는 거야? 네가 얘기한 그 어설픈 계획 속에 나도 있는 거야?”

“어설프진 않아, 인마. 열심히 하면 해 뜰 날 온다는 소리지 있긴 뭐가 있어?”

“아닌데. 내 예리한 촉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데. 분명 중요한 뭔가를 맡아야 한다는 소리로 들려. 맞지? 내 말이 맞지?”

“네가 송재덕 선생님이냐? 말 반복하지 마.”

“그 반복이랑 이 반복이 같아? 말 끝나지도 않았는데 어디 가?”

김지훈이 정색을 하며 서둘러 중환자실로 향했다.

뭔가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띠! 띠! 띠! 띠! 띠! 띠!

슈욱! 슈욱!

심박동 소리와 인공호흡기 소리.

조용히 움직이는 의료진.

중환자실 특유의 적막감 속에 숨은 생사의 갈림길은 언제나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적막이 깨지는 순간 누군가 생을 달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젠 적응할 때도 되지 않았나?’

환자를 찾던 김지훈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종진과 송진우 옆에 이혁원이 보였다.

진지한 얼굴로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눈길 끝에 환자에 관한 자료들이 걸려 있었다.

얼핏 기구 사용과 수술 과정을 묻고 답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삼 년 만에 돌아온 김지훈의 손이 무척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물론 그 이상의 목적도 있을 것이다.

“이혁원 선생, 이 시간에 웬일이야?”

“일이 있어 들렀습니다.”

“중환자실에 환자 있어?”

“아… 아닙니다.”

김지훈이 피식 웃었다.

얼버무리는 말속에 열정이 가득했다.

무슨 생각인지 빤히 보였지만 굳이 물을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펠로우 세 명의 관심이 환자를 더욱 빠르게 회복시킬 것이다.

“송진우 선생, 환자 상태는?”

“바이탈 스테이블(Stable)하고, 드레인은 약간 핏기가 돕니다만 출혈 징후는 보이지 않습니다. 수술 후 검사는 아직 안 나왔습니다.”

습관적으로 차트를 집던 김지훈이 헛기침을 터트렸다.

전공의가 아닌 펠로우이자 전문의가 치료를 담당하고 있다. 누구보다 믿을 수 있는 후배기에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 마땅했다.

‘예전이었으면 독자적으로 환자를 보고, 수술했을 위치라는 걸 자꾸 잊네. 스승님이 내게 모든 걸 믿고 맡기신 것처럼 나도 그렇게 해야 한다.’

전문의와 전공의는 공력 자체가 다르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아야 했다. 오더(Order) 확인도 귀로 하고, 환자 잘 보라는 말은 아예 필요 없는 후배들이었다.

안심하고 보호자를 만났다.

안절부절 집도의만 기다리고 있었다.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상외로 간경화가 무척 심한 상태였습니다.”

무사히 회복된다고 해도 고도 간경화 환자는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의사나 가족 모두에게 답답하고, 암담한 상황이 이어질 것이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설명했지만 희망을 가질 만한 말은 없었다. 오늘 밤 당장 수술 후 어떤 합병증이 발생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아내의 붉어진 눈시울이 눈에 밟혔다.

왠지 미안한 감정이 든 김지훈이 나직한 한숨을 내쉬며 귀국 후 첫날의 첫 진료, 첫 수술을 모두 마치고 첫 퇴근을 했다. 뿌듯하면서도 약간의 답답함이 이어졌다.

‘후우! 잘 회복될까? 괜찮아야 할 텐데.’

괜찮다! 괜찮다?

순간 뭔가 서늘한 기운이 뇌리를 스쳤다.

10시가 훌쩍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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