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981화 (981/1,329)

7화

나종진이 걱정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간경화가 심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방사선 검사를 믿자.”

초음파, CT, MRI 모두 중등도 간경화 소견을 보였다. 그러나 기계의 한계는 종종 예상치 못한 결과를 보여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 결코 안심할 수 없었다.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삽입했다.

모니터에 복강 내부가 잡혔다.

노란색 대망이 더욱 노랗게 보였다.

소장과 대장은 창백했다.

간경화 환자의 전형적인 장기 소견이었지만 상당 부분 활력을 잃어 눈에 보이지 않는 장기와 혈관 모두 약해졌음이 분명했다.

등덜미가 서늘해졌다.

‘좋지 않다.’

우상복부 쪽으로 카메라를 밀었다.

담낭이 보였다.

심각한 염증과 부종으로 터지기 직전이었다.

담낭 농양 진단이 맞았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불과 몇 시간만 더 지났어도 담낭이 터져 심각한 패혈증을 유발하거나 범발성 복막염을 일으켰을 것이다. 온갖 위험에도 불구하고 빠른 수술 결정은 올바른 판단이었다.

답답한 탄식이 터졌다.

담낭 때문이 아니었다.

수술진의 시선이 향한 장기는 간이었다.

매끈하게 반짝여야 할 간 표면이 마치 자갈길처럼 우둘투둘 거칠게 변했다. 곳곳에서 관찰되는 하얗게 변색된 부분은 상당히 진행된 간경화 소견이었다.

방사선 소견과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더구나 간과 담낭 주변에 고인 액체는 염증으로 인한 삼출액만이 아니었다. 복강에 고인 복수 역시 예상외로 많았다.

세컨 자리에 선 송진우가 김지훈을 보았다.

“선생님, 간경화 말기 아닙니까?”

“조직검사가 가장 정확하겠지만 육안 소견만으로도 이미 말기에 들어섰다고 판단하는 것이 맞아.”

“간이 돌처럼 딱딱해 도리어 손상을 받기 쉬울 겁니다. 농양으로 진행된 담낭 역시 건드리기만 해도 찢어질 텐데 복강경으로 가능합니까?”

기술적인 문제였다.

딱딱하든 무르든 본래의 탄력을 잃은 장기는 미세한 압력에도 아주 쉽게 손상받을 수 있었다. 하물며 간경화가 발생한 간이었다.

누구나 가질 우려와 불안이었지만 김지훈이 집도의였고, 이를 간과할 송진우가 아니었다. 어쩌면 자신에게 묻는 것일지도 몰랐다.

나종진도 심각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집도의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까?’

김지훈은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수술 팀을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개복은 최악의 선택이야. 간 이식이 아니면 결국 간 부전으로 사망하겠지만 당장 환자를 위협하는 문제는 담낭과 담도 내 담석이고, 우리는 라파로가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수술에 집중하자. 메스!”

나종진이 어깨를 흔들며 집중력을 끌어 올렸다.

대가라 해도 100퍼센트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케이스였지만 김지훈을 대신할 써전은 없다고 굳게 믿었다.

‘이준영 선생님이 집도하셔도 성공 확률은 다르지 않다.’

김지훈이 눈가를 굳혔다.

상당히 불량한 전신 상태를 가진 환자였다.

시간을 소비할 상황이 아니었다.

‘의사의 욕심은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무엇보다 조직 손상을 줄이는 것이 중요했다.

환자의 목숨을 담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명확했다.

앞만 보고 달렸을 때와 달리 유연해졌다.

여전히 많은 수술에서 유효한 복부 접근 방식인 개복이 그렇듯 예전 방식 모두 비효율적이라는 말은 성립될 수 없었다. 환자에게 훨씬 더 안전하고 유용한 방법이라면 마땅히 선택해야 했다.

“쓰리 포트로 진행하자.”

유학까지 다녀온 의사가!

담낭 농양이라 해도 이미 투 포트로 충분히 수술했던 의사가!

나종진과 송진우가 깜짝 놀랐다.

누구도 생각지 못한 결정이었다.

당연히 이제는 대세가 된 투 포트로 시행할 줄 알았다. 귀국 후 첫 수술이라는 부담 때문인지, 생각 이상으로 어렵기 때문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분명한 사실은 집도의의 결정이라는 점이었다.

덕분에 송진우도 할 일이 생겼다.

10밀리미터 트로카로 우상복부에 뚫은 구멍을 통해 두 개의 기구를 삽입한 후 5밀리미터 트로카를 이용한 상복부에 한 개의 기구를 더 삽입했다.

건드리는 부위마다 피가 비쳤다.

혈액 응고 기능에 이상이 생기고도 남을 간경화 환자였다. 물리적인 방법으로 완벽하게 막을 수 없는 일이기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는 수밖에 없었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나종진 선생, 시야 제대로 확보해. 송진우 선생, 간 확실하게 고정시켜. 환자에게 가장 안전한 접근이자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되는 수술이기 때문에 쓰리 포트로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 시작하자.”

김지훈에게도 상당히 부담되는 수술이 분명했다. 절대라는 말에 더욱 긴장이 고조된 송진우가 조심스럽게 결합 조직을 잡아 간을 들어 올렸다.

나종진이 카메라를 전진시켰다.

수술 부위를 정확하게 확보했다.

그간 쌓은 경험이 묻어났다.

김지훈이 눈가를 굳혔다.

‘귀국 후 첫 수술이라는 사실은 잊자. 내가 가져야 할 부담은 환자를 위해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것뿐이다.’

켈리(Kelly:수술용 집게)로 담낭을 잡았다.

살짝 가한 힘에도 조직이 손상되며 염증으로 인한 삼출액이 흘러나왔다. 정확한 힘과 세심한 조작이 아니면 약해질 대로 약해진 간과 담낭이 쭉 찢어질 것이다.

반드시 피해야 할 개복이 불가피해진다.

김지훈은 침착했다.

조심스럽게 담낭을 당겨 돌덩이로 변한 간과 붙어 있는 담낭 벽을 노출시켰다. 아무리 조직 변성이 왔다고 해도 무혈관에 가까운 층이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었다.

갈고리 모양 기구를 가져갔다.

“보비(Bovie:전기 소작기)!”

삐이이이이! 타닥!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며 강한 열기에 지져진 담낭 벽이 갈라졌다. 노란 조직 사이로 심각한 부종을 유발한 염증성 체액이 줄줄 흘러나왔다.

검붉은 피가 뒤섞였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석션(Suction:흡입)! 보비!”

시야를 확보하며 박리 층을 따라 절개를 진행했다.

미처 상부 부분도 분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예측했던 난관 이상의 어려움에 직면했다.

돌처럼 딱딱해져 탄력을 잃은 간은 미세한 흔들림에도 찢어지기 충분한 압력을 받았다. 어느 때보다 간을 고정시켜야 하는 송진우의 긴장과 집중이 필요했다.

김지훈 역시 다르지 않았다.

담낭 벽은 지극히 사소한 조작에도 쉽게 손상을 받았다. 혈관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층을 따라 진행했건만 툭하면 피가 터져 나왔다.

“석션! 보비! 거즈!”

보비 강도까지 높여 지혈을 시도했다.

좁은 시야 탓에 미세 출혈마저 수술 시야를 방해할 상황이었다. 출혈 부위에 거즈를 대고 눌러 우징(Oozing)처럼 스멀스멀 새어 나오는 피를 막아야 했다.

제법 시간을 소비했지만 완전히 멈추지 않았다.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가장 우려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송진우가 모니터에 눈을 박은 채 입을 열었다.

“선생님, 간경화로 인해 혈액 응고 인자마저 부족한 것이 분명합니다. 무혈관층 구조도 무너진 것으로 보이는데 차라리 미니콜레가 어떻습니까?”

말을 하다 말고 얼굴이 벌게졌다.

‘내 생각일 뿐이고, 수술 실력에 관한 한 이준영 선생님과 비등하다는 김지훈 선생님이 집도의인데 너무 건방진 말을 했나?’

비록 직접 경험한 일은 아니었지만 수술 방법에 대한 의견 개진이 월권이나 집도의를 무시하는 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심하면 얼굴 붉히는 일까지 벌어졌다.

뛰어날수록, 경력이 화려할수록 흔히 보는 모습이었다. 특히 젊은 나이에 이루기 어려운 성공 가도를 달리면 더욱 그런 경향을 보이기 마련이었다.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여겼지만 모든 조건이 김지훈과 부합됐다. 삼 년이란 세월이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지 모를 일이었다.

김지훈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입을 열었다.

“개복을 하자? 지금보다 이점이 더 클까? 자칫 절개창 출혈도 못 막을 수 있어. 나종진 선생은 어떻게 생각해?”

나종진이 곧바로 대답했다.

“라파로가 가장 안전한 환자입니다. 시야가 좋아진다고 해서 쉽게 막을 수 있는 출혈도 아닙니다.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이대로 진행해야 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송진우 선생, 좋은 의견이지만 미니콜레는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 두고 진행하자. 아니, 아예 지우는 게 낫겠다. 보비! 석션!”

김지훈은 별다른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수술진의 우려를 잘못된 판단이라 여긴 집도의가 흔히 가하는 핀잔이나 질책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한 조언이라는 표정이었다.

송진우가 안도하면서도 콧등을 찡그렸다.

수술 팀의 의견을 존중하면서도 단호하고 정확한 결정을 내리는 모습 때문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안목이 변한 것처럼 김지훈도 분명 무엇인가 변했다.

손끝, 목소리, 눈빛에서 느껴지는 그 무엇!

‘예전에도 이렇게 여유를 잃지 않으셨었나?’

삐이이이!

보비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결코 쉽게 박리되는 부분은 없었다.

기구를 조작하는 모든 과정이 살얼음판이었다.

김지훈에게 망설임은 없었다.

모니터를 보는 눈빛이 흔들리지 않았다.

어려운 상황을 이겨 내 반드시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의지와 열정이 가득했다.

“클립!”

전기 소작으로 감당하기 힘든 출혈은 클립으로 해결했다. 원하는 부위를 단번에 잡아 지혈하는 모습은 김지훈이 왜 자타가 공인하는 외과의인지 여실하게 알려 주었다.

담낭이 조금씩 떨어져 나왔다.

단 한시도 방심할 수 없었다.

수술진의 몸은 이미 땀으로 푹 젖었다.

“곧 동맥 나온다. 집중해.”

어느 누구도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기구를 잡은 손에 실어야 할 극도의 긴장과 집중이 잠시도 풀어지지 않았다.

마침내 담낭 동맥이 위치한 부위에 도달했다.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다.

단순 담낭염이었다면 이십 분도 채 안 걸려 끝낼 수 있는 과정이 무려 한 시간 이상 걸렸지만 김지훈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동맥을 찾는 손길이 여간 섬세한 것이 아니었다.

툭 작은 혈관 하나가 끊어졌다.

주변 조직이 순식간에 피에 물들어 구분을 어렵게 했지만 김지훈은 당황하지 않았다.

“동맥 분지에 불과해. 주 동맥은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 항상 눈을 믿어야 하지만 손끝에 전해지는 감각 또한 중요하단 사실을 명심해.”

사각! 사각!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주변 조직을 박리하던 김지훈이 손을 멈췄다.

지방과 확연히 다른 감촉이 전해진 것이다.

김지훈의 손이 더욱 느려졌다.

하얀색 구조물이 나타났다.

담낭 동맥이 확실했다.

“모스키토(Mosquito:수술용 집게)!”

켈리보다 작은 기구로 동맥 주변을 박리하기 시작했다.

간경화는 모든 장기에 영향을 주었다.

정맥과 다르지 않을 정도로 동맥벽이 약했다.

지속되는 출혈에 전기 소작을 멈출 수 없었다. 자칫 동맥벽에 손상을 가하면 지금까지 발생한 출혈과 양상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땀이 맺혔다.

담낭 동맥이 드러날수록 긴장이 극도로 고조됐다.

사각! 사각!

삐이이이이!

섬세했던 김지훈의 손이 과감해졌다.

나종진이 마른침을 삼켰다.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며 동맥 주변 조직이 타들어 갈 때마다 섬뜩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군의관 시절 통합 병원에 근무하며 손을 놀리지 않았다.

집도 경험이 쌓일수록 더욱 강해지는 느낌이었다.

‘난 이 부분을 과감하게 처리할 수 있을까?’

오직 자신감만이 탈출구였다.

오히려 송진우와 수술 상황을 보며 환자의 생징후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할 마취과가 별다른 동요 없이 환자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이유는 멀리 있지 않았다.

웬만한 써전은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능숙하고 과감하면서도 섬세한 진행 때문이었다. 또한 김지훈에 대한 확고한 신뢰였다.

‘나도 이런 신뢰를 얻어야 한다.’

카메라가 흔들렸을까?

“집중하자.”

순간 들려온 말에 나종진이 바짝 굳었다.

동맥이 완전히 노출됐다.

“클립!”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동맥을 묶었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무척 깔끔하게 정리했다.

‘생각했던 것 이상이다. 간경화가 동반된 담낭농양 수술을 이 정도로 쉽게 처리하시다니 어떻게든 배워야 한다. 전공의 수련을 다시 하는 것처럼 죽을 동 살 동 따라붙어야 혁원이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김지훈의 눈이 매서워졌다.

어떤 생각을 하든 수술과 관련이 없다면 잡생각이다.

“나종진 선생, 수술 중이다.”

연달아 샛길로 빠졌던 나종진이 흠칫 놀랐다.

목소리 속에 담긴 경고가 서늘했다.

전공의 때 무수히 경험했던 김지훈의 살벌한 예리함에 묵직함까지 더해졌다. 왜 리틀 이준영이라 불렸는지 다시 한 번 뼈저리게 실감했다.

나종진의 이마에 땀 한 방울이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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