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김지훈이 톡톡 책상을 쳤다.
내과 의뢰는 수술 여부를 판단해 달라는 경우 말고는 없다. 당장 수술을 요하는 응급일 수도, 하루 이틀 여유가 있을 수도 있지만 전자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상반된 생각이 교차했다.
‘첫날부터? 아니지, 첫날이라고 다를 게 있나?’
“진우야, 가자.”
내과 병동으로 향했다.
윤석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차트, CT를 펼치며 환자에 대해 설명했다.
김지훈의 안색이 점점 심각해졌다.
50세 남자 환자, 정재복.
일요일 저녁, 심한 복통으로 내과에 입원한 환자였다.
검사 결과 담석이 유발한 담낭염과 담도염이었다. 내시경을 이용해 담도 배출 공을 확장시켜 정체된 담즙과 담석 일부를 배출시켰다.
호전될 것이란 기대와 달리 담낭염이 급격하게 악화됐다. 급기야 패혈증 초기 증세까지 보였다. 담낭 관을 막은 담석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경과였다.
결정적인 문제가 따로 있었다.
만성 B형 간염으로 인한 간경화 환자였다.
염증을 퍼트리기 좋은 복수까지 동반됐다.
결코 경시할 수 없는 치명적 요인이었다.
그럼에도 절대 수술을 피할 수 없는 환자였다.
병실로 향했다.
온 가족이 불안해하며 초조한 기색을 보였다.
“환자분, 일반외과 김지훈입니다.”
환자가 힘없이 눈길을 맞췄다.
김지훈이 진찰을 시작했다.
우상복부를 누를 때마다 강한 통증을 호소했다.
경험상 담낭농양으로 발전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전형적 복막염 증세는 관찰되지 않았지만 약해질 대로 약해진 환자의 육체였다. 일종의 눈가림처럼 복부 강직 등의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 있었다.
신중하게 복부를 살핀 김지훈이 결론을 내렸다.
‘이런 경우 절대 복막염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항생제를 퍼부어 해결될 상태가 아니었다.
간경화가 동반된 데다 복수까지 차 불과 몇 시간 만에 치명적 상황이 초래될 수 있었다. 빠르게 대처하지 않으면 자칫 손도 쓰지 못하고 환자를 잃을 판이었다.
답은 수술뿐이었다.
문제는 수술과 마취 위험성이었다.
“보호자분, 검사 결과와 복부 소견을 볼 때 담낭염을 동반한 복막염으로 판단됩니다. 고름까지 찼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응급 수술을 요합니다.”
“수술이요?”
보호자의 눈에 강한 두려움이 스쳤다.
오랜 시간 간병하며 간경화가 얼마나 무서운 질환인지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다.
환자가 견딜 수 있는지 묻고 있었다.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송진우 선생, 환자 상태 다시 한 번 파악해.”
슬쩍 환자의 관심을 돌린 후 보호자들을 조용히 밖으로 불러냈다.
“안전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만, 내과 치료로는 더 이상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최대한 빨리 담낭과 담석을 제거해야 합니다.”
“수술을 버틸 수 있을까요?”
“전신 마취부터 수술까지 모두 위험하지만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 복강경으로 시행하면 개복보다 위험성을 크게 줄일 수 있긴 합니다.”
윤석진에게 이미 설명을 들었을 테고, 김지훈이 외과의로서 단호하게 최종 결정을 내렸지만 보호자들의 두려움이 가시지 않았다.
사랑받던 남편이자 아버지인 모양이었다.
당연히 실력 있는 집도의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간담췌 센터에 대해 대충 알고 있습니다. 수술은 누가 하시나요?”
김지훈이 순간 멈칫거렸다.
이 정도로 수술 위험이 큰 환자의 경우, 이준영 교수와 오창도 교수, 그리고 김지훈 자신만이 복강경으로 시행할 실력을 가졌다.
문제는 보호자의 의중이었다.
가장 중요한 요소인 신뢰가 걸린 문제였다.
삼 년의 공백이 마음에 걸렸다.
노련한 의사라는 믿음을 주지 못하면 자칫 환자의 불안을 유발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준영 교수는 하루 종일 수술 방에서 살았고, 아직도 수술 중이었다.
오창도 교수 역시 외래를 보느라 피로가 가중됐을 것이다. 환자 상대하는 일은 사람 상대하는 일과 다름없기에 수술만큼 힘든 시간이었다.
결정적으로 아직 일과가 끝나지 않았다.
반면 내내 놀고 있던 의사가 있다.
환자는 한시가 급했다.
고민할 여지가 없었다.
“제가 합니다.”
보호자 눈치가 이상했다.
과는 달라도 간경화에 담석증까지 앓고 있는 환자가 가족이었다. 센터 존재까지 언급한 이상 간담췌 대가, 이준영 교수를 알고도 남았다.
최고의 실력을 가진 의사를 요구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보호자가 주저하며 입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다른 선생님은…….”
김지훈이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일과가 끝나지 않아 기다려야 합니다. 그때는 늦습니다. 무엇을 걱정하시는지 잘 압니다만, 의사는 환자를 두고 절대 모험을 하지 않습니다. 저를 믿으세요.”
윤석진이 거들었다.
“보호자분, 최근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간담췌 센터 부센터장을 맡은 선생님입니다. 믿고 맡기시면 됩니다.”
유학이란 말 자체가 의외로 큰 영향력을 가졌던 때였다. 게다가 부센터장이라면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경력을 가진 의사란 의미였다.
김지훈을 보며 고민하던 보호자가 결국 동의했다.
사실 집도의를 선택할 상황도 아니었다.
“잘 부탁드려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내가 딱 그 짝이네. 어쨌든 빨리 수술하게 돼서 다행이다.’
약간은 떨떠름한 일이었지만 빠른 결정에 도움이 된다면 마다할 일이 아니었다. 이로써 근무 첫날, 졸지에 응급 수술을 하게 됐다.
상당히 힘든 수술이 될 공산이 컸다.
즉시 수술 준비가 시작됐다.
한결같은 반응에 직면했다.
“응급 수술? 게다가 간경화 환자라고? 김지훈 선생, 오자마자 이게 무슨 만행이야? 뚝딱하면 마취가 되는 줄 알아? 오늘 당직이 누구더라? 하여튼 부담 큰 환자니까 보호자에게 테이블 데쓰(Table Death:수술 중 사망)까지 확실하게 설명해.”
과장을 바라보고 있는 김진호 교수가 짐짓 눈가를 찡그리면서도 오케이 도장을 힘차게 찍었다. 맥주 한 박스라는 추억의 윤활유 예약에 입이 찢어졌다.
“어머!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김지훈 선생님, 너무해요. 오늘 수술이 얼마나 많았는지 아세요?”
수술 방 간호사들의 원성이 빗발쳤다.
이준영 교수가 집도한다면 모르지만, 간경화에 담낭 농양도 모자라 담도 내 담석까지 제거하려면 통상 서너 시간 내에 끝날 수술이 아니었다.
칼바람 날렸던 명성은 옛일에 불과했고, 삼 년 만에 돌아온 김지훈의 실력은 미지수에 가까웠다. 환자에겐 통했지만 유학과 실력이 무조건 비례한다고 여길 리도 없었다.
스트레스가 눈에 보였다.
이해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이런 일 자주 벌어질 공산이 컸다.
위급한 환자를 수술할 때마다 긴장만을 요구한다면 강철이라 해도 며칠 버티지 못할 것이다. 소소하지만 분위기 풀어 줄 간식거리가 다량 필요했다.
무사히 수술이 준비됐지만 고경아의 매서운 눈빛은 피하지 못할 무서운 난관이었다.
“이준영 선생님은 그렇다 쳐도 오창도 선생님이 있잖아요. 당직도 아닌데 왜 하필 지훈 씨예요? 첫날부터 희연이 우는 얼굴 보고 싶어요?”
“경아 씨, 나도 어떻게든 다른 방법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환자 상태가 너무 나빠서…….”
“됐고요. 수술이나 잘 끝내세요. 환자에게 문제 생기면 나한테 한 소리 들을 줄 알아요.”
굳이 수술을 자청한 꼴이었다.
병원 상황을 잘 알기에 도리어 쉽게 수긍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째려보기 한 판으로 흔쾌히 넘어갔다. 같은 의료인이란 사실, 무엇보다 다른 사람 아닌 고경아가 아내라는 사실이 정말 고마웠다.
오후 5시다.
드르르륵!
환자가 수술 방 앞에 도착했다.
불과 한 시간 만에 보호자도 알 정도로 환자 상태가 더 나빠졌다. 의사에게 환자의 생명을 맡긴 가족의 절박함만큼 무겁고, 무서운 것은 없었다.
“잘 부탁드려요.”
애타는 목소리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눈가를 굳힌 김지훈이 수술복으로 갈아입었다.
차가운 공기가 온몸을 일깨웠다.
때마침 혈관 수술을 시행하기 위해 수술 방을 찾은 신기동 교수와 손일석의 눈이 동그래졌다.
“김지훈 선생, 여기서 뭐 해?”
“응급 수술이 있습니다.”
“응급 수술? 어떤 수술이야?”
“담낭 농양이 발생한 간경화 환자입니다.”
신기동 교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라파로(복강경)로 해도 답이 아니네. 귀국 후 첫 수술이란 생각 하지 말고 평소처럼 수술해.”
손일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리 김 교수님 참 한결같으시네요. 삼 년이나 지났는데 변한 게 없어요. 응급실에서도 그렇고 이런 일복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처형 눈빛 좀 봐. 어떻게 하나도 안 부럽지?”
“나도 심란해. 어쩔 수 없었어.”
“어쩔 수 없긴. 이준영 선생님과 오창도 선생님이 피곤하다고 마다할 분이냐? 솔직히 말해. 수술하고 싶어 죽겠지? 어려운 케이스니까 더 하고 싶지?”
“기다릴 여유가 없어서 그런 거야.”
말과 달리 김지훈이 쓴 입맛을 다셨다.
손일석의 말이 맞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환자는 의사를 선택할 수 있어도 의사는 환자를 입맛에 따라 선택하면 안 된다. 의사를 필요로 한 그 장소, 그 시간에 김지훈, 자신이 있었을 뿐이었다.
“수술 쉬워 보이지 않네. 신기동 선생님 말씀처럼 부담 갖지 말고 깔끔하게 해결해. 파이팅!”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위험성이 커 능력 있는 수술 팀이 필요했다.
펠로우 체계 덕에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외래가 한산해질 시간이기에 오창도 교수에게 이미 나종진을 요청했다. 같은 일 년 차 펠로우지만 송진우는 공백 기간이 있었다.
나종진이 퍼스트를 서는 것이 마땅했다.
복부에 구멍 두 개를 뚫는 투 포트 방식으로 진행하면 세컨은 덧 가운 걸치고 참관만 하면 된다. 송진우의 아쉬움이 눈에 보인 탓인지 김지훈이 뜻밖의 말을 했다.
“송진우 선생,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들어와.”
의아한 일이었다.
개복을 염두에 둔 탓일까?
어떤 의도건 수술 팀은 이미 구성됐다.
오직 환자에게 집중할 때였다.
띠! 띠! 띠! 띠!
심박동 소리가 정상치를 넘어섰다.
앙상한 팔다리, 복수가 차 다소 팽창된 복부, 황달 섞인 까만 피부가 강한 긴장을 불러왔다. 배 속은 더욱 엉망이기에 수술 중 사망을 비롯해 수술 후 합병증까지 숱한 고비를 넘어야 할 환자였다.
약간은 차고 건조한 공기, 백색의 무영등, 생징후를 표시하는 각종 기구, 부지런히 준비 중인 의료진까지 모든 것이 낯선 듯 친근했다.
‘내가 서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자리!’
목적은 오직 하나, 환자를 살리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유학을 다녀온 이유였다.
최소 침습 수술인 복강경 수술 성공만이 최선이자 집도의의 책임이었다. 위험도를 크게 증가시킬 개복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윤서연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들렸다.
“마취 시작합니다. 환자분, 편안하게 숨 쉬세요.”
정맥 마취제가 투여됐다.
환자의 눈이 스르르 감기며 턱 힘이 빠졌다.
능숙한 손길 아래 호흡 튜브가 삽입됐다.
슈욱! 슈욱!
인공호흡기가 규칙적으로 숨을 불어넣었다.
“시작하셔도 됩니다.”
김지훈이 집도의 자리에 섰다.
‘환자 목숨과 무관한 수술은 단 하나도 없다. 모든 수술을 첫 수술 때처럼 임해야 한다.’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날카로운 메스가 무영등 불빛에 반짝였다.
이제 환자의 생명은 의료진에게 달렸다.
배꼽 위를 절개했다.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정맥이 잘린 탓이었지만 예상보다 심각한 간경화를 암시하는 징후일 수 있었다. 본격적인 수술이 시작되기도 전에 긴장이 고조됐다.
공기 주입용 바늘을 찔렀다.
지방층을 지나 단단한 복부 연결 조직인 백색선의 강한 저항이 느껴졌다. 한 번 더 힘을 가하자 뭉뚝한 바늘에 걸렸던 저항이 사라졌다.
정확한 곳을 안전하게 뚫었다.
“에어 온(Air On).”
처컥! 처컥!
이산화탄소가 주성분인 공기가 복강 내로 주입됐다.
환자 복부가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삐이이이익!
적정 압력에 도달했다는 신호음이 울렸다.
“트로카(Troca).”
두껍고 뾰족한 끝을 안전장치로 보강한 10밀리미터 트로카를 찔러 넣어 카메라가 들어갈 통로를 확보했다. 복강경 수술 성패의 핵심인 간과 담낭 상태가 관건이었다.
확인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