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974화 (974/1,329)

15화. 삶이 주는 기쁨 Ⅲ

수술 후 2일째.

엄정남의 의지가 대단했다.

수술 부위가 결코 작지 않아 무척 아프고 힘들 텐데 걷기 시작했다.

물론 보행기가 있다 해도 박송임의 손과 어깨를 빌리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강한 의지를 보이는 사람은 상당히 긍정적인 경우가 많았다.

그런 이유로 환자와 보호자 모두 서로에게 의존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는 법인데 분위기가 냉랭했다.

“내 팔 좀 잡아.”

힘겨운 말 한마디에 차가운 기운이 풀풀 날렸다.

김지훈으로서는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었다.

내심 기대를 품고 병실에 들렀다 항상 실망과 갑갑함을 안았는데 오늘도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환자를 볼 수 있는 시간은 이제 하루 남짓 남았을 뿐이었다.

수술 후 몸과 마음에 가해지는 스트레스에 그동안 했던 말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엄정남을 찾았다.

“어머니, 수술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사흘 후 미국으로 떠납니다.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아서 내일까지만 어머니를 볼 수 있네요. 다행히 경과가 생각보다 훨씬 좋으니까 지금처럼 노력하시면 좋겠습니다.”

“내일 이후엔 볼 수 없다고요?”

엄정남의 안색이 변했다.

단순히 아들보다 더 많이 본 정도가 아니었다.

올 때마다 살가운 미소를 머금으며 어떤 요구에도 친절하게 응대해 주었다. 자신을 수술한 의사라는 사실과 겹쳐 내심 꽤 의지하고 있었다.

그런 김지훈이 떠나는 것이다.

“성민이도 있고, 이준영 선생님도 무척 신경 쓰고 계시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게다가 며느님이 항상 옆을 지키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어쩌면 자신만큼 힘들었을 며느리에게 눈길을 주긴 했지만 이내 시선을 돌렸다.

박송임이 그런 눈치를 모를 리 없었다.

왠지 분위기가 서늘했고, 엄정남의 상태를 고려해야 했지만 가장 필요한 말이 남았다.

바로 자신의 병을 정확히 알고, 적절히 대처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너무 빠르지만 집도의로서만이 아니라 간병에 가장 중요한 보호자와의 관계까지 고려해야 한다.’

잠시 주저하던 김지훈이 눈가를 굳혔다.

독한 말을 해야 했다.

“어머니, 성민이는 가족이기 때문에 말하기 곤란한 면이 있습니다. 어떤 상황인지, 앞으로 어떻게 하셔야 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수술이 잘됐다는 말만 기억하던 엄정남이 입술을 깨물었다. 새삼 자신이 의사들도 보기 힘든 암에 걸린 환자라는 사실이 떠오른 것이다.

“아시다시피 어머님 병은 지방육종입니다. 매우 드문 암이라 치료법조차 확실하게 정립된 것이 없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암이라는 말에 힘을 주었다.

“다행히 모두 제거됐지만 수술 중 시행한 조직 검사 결과 병변 전체가 암이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암 세포가 남아 있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재발한다는 건가요?”

“암 환자에겐 예외가 없는 사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술 후에도 추가 치료와 검사가 매우 중요합니다. 정확한 조직 검사가 나오면 항암 치료나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엄정남이 손을 꼭 쥐며 눈가를 찌푸렸다.

머리가 빠지고, 구역질로 물도 넘기지 못한다는 말쯤은 들었을 것이다.

약제 선택에 따라 상당 부분 달라지지만 의학 지식이 없는 환자에겐 상당히 두려운 말이었다.

“암의 성격을 볼 때 항암 치료 등이 가능한 경우가 오히려 예후가 좋은 암입니다. 힘드시겠지만 치료받을 수 있는 암이길 바라고 있습니다. 어쨌든 치료만이 아니라 퇴원 후에도 각종 검사를 정기적으로 받아야 합니다.”

“어떤 검사요?”

“혈액 검사부터 초음파, 복부 CT 등이 기본적으로 시행될 겁니다. 재발 여부를 초기에 아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언제까지 받아야 하죠?”

의사도 알 수 없는 질환이었다.

“다른 암은 5년이 완치 판정 기준입니다만, 어머니의 경우는 다르다고 봐야 합니다.”

좋은 소리는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수술이 준 충격에서 벗어나지도 못한 상황을 더욱 힘들게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열거한 이유 때문에라도 가족의 정성과 따스한 손길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길 바랐다.

답은 멀리 있지 않았다.

속마음이 바뀌지 않는 한,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하지 않는 한 박송임이 아닌 누구라도 5년이 넘는 긴 세월을 버티지 못한다.

만일 오성민이 자신의 결정을 실행한다면 기회조차 잡을 수 없을 것이다.

이미 시기 빠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앞으로도 가족의 도움이 많이 필요합니다. 지금처럼 한두 명의 힘으로는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각자 해야 할 일이 있지 않겠습니까? 병간호에만 매달리는 가족은 정말 보기 드뭅니다.”

이쯤에서 엄정남이 박송임에게 눈길을 주었으면 했다. 그러나 기대일 뿐이었다. 더 이상은 주제넘은 일이자 관여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슬기롭게 대처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제수씨, 성민이와 잘 상의해서 가장 편하고 유리한 대로 결정하세요.’

“제수씨, 그동안 많이 힘들었죠? 성민이가 없으면 일석이를 찾으시고, 일석이도 없으면 이준영 선생님을 찾으셔도 됩니다. 절대 귀찮아하실 선생님이 아니니까 부담 갖지 마세요.”

내일이 마지막이란 생각에 수시로 병실을 찾았다.

그렇게 수술 후 2일째 주간을 보냈다.

이제 교수, 동기, 후배들을 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시간 되는 사람 모두 모여 마지막 식사를 했다. 오성민이 보이지 않아 서운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떠들썩한 자리가 이어졌다.

“경아야, 잘 다녀와. 들어올 일이 또 있으면 좋겠다. 그때 지훈이 손도 보고, 희연이 얼굴도 보고 좋다. 좋아. 건강해야 한다.”

“필요한 물건은 다 챙겼지? 환자 때문에 지훈이 시간 뺏어서 미안하다.”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고경아와 함께할 때면 소외감이 느껴지곤 했다.

스승의 나긋한 목소리를 들으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들곤 했다.

장인어른과 교수들의 관계, 같은 의료인이자 직장 동료라는 사실까지 여러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중 가장 중요한 이유는 김지훈과의 인연일 텐데, 정작 본인은 항상 뒤로 밀렸다.

그런데 항상 기분 좋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인지 모를 일이었다.

김지훈에게도 고경아에게도 아쉽지만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준영 교수를 비롯해 평생 인연을 쌓아 가야 할 동료들 모두 자리를 즐기고 있었다.

“김지훈, 이번 같은 수술 또 기대한다.”

역시 스승이다.

강렬한 한마디 말에 붕 떠올랐다.

간만에 외쳤다.

까르페 디엠!

수술 후 3일째.

오후 근무가 끝날 즈음 뜻하지 않은 병원 생활도 끝이다.

마지막이란 생각에 엄정남을 부축하고 한동안 복도를 걸었다. 헉헉 거친 숨소리를 내면서도 결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의지가 상당하시네. 그래서 고집도 세신가?’

이럴 때 그나마 여유를 가져도 좋을 박송임이 내내 뒤를 따랐다.

그러고 보니 근 일주일 동안 박송임의 목소리를 몇 번 듣지 못했다.

친구 아내와 개인적으로 할 말이 많을 수 없지만, 의사와 보호자로서 나눠야 할 말이 많았는데 아쉬운 일이었다.

친구 어머니일 뿐인데 박송임을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이유일지도 몰랐다.

‘제수씨도 참 강한 사람이네.’

“어머니, 이제 마지막이네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제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제수씨, 원래 환자만큼 보호자도 힘들다는 말이 있어요. 특히 하루 종일 간병하는 사람은 없던 병도 생기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힘든 거 빤히 보면서도 도와주지 못해 미안했습니다.”

“아니에요.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어요.”

엄정남에게 들으라는 말인데 별 반응이 없었다.

하긴 결혼 전부터 시작된 갈등과 미움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미움의 깊이라도 얕아질 수 있을 텐데, 시어머니가 마음을 열지 않으니 누가 보아도 답답한 일이었다.

한동안 주의할 점을 설명하며 시간을 보낸 후 마지막 인사를 했다.

엄정남의 표정이 무척 복잡해 보였다.

부르기 전에 찾아 주는 의사가 떠나니 이젠 며느리에게 더 의존해야 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박송임이 김지훈의 뒷모습에 눈길을 주다 말고 갑자기 오성민을 찾았다. 무언가 결심한 듯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수술한 의사가 끝까지 책임져야 하지만 누가 김지훈 선생님을 잡을 수 있을까? 떠나야 할 사람은 떠나는 게 맞아. 지금 아니면 말할 기회가 없어.’

시어머니, 며느리, 아들이 자리를 가졌다.

누구보다 친근해야 할 관계였지만 어색함만이 흘렀다. 할 얘기가 있다는 박송임의 말에도 눈길조차 마주치지 않으려는 듯 엄정남이 등을 진 까닭이었다.

“어머니, 성민 씨가 한 결정이 있어요. 그동안 반대해 왔지만 더 이상 제 자신을 속이고 싶지 않아요.”

힘이 없는 것이 아니라 착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그제야 엄정남이 눈길을 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년에 병원을 그만두고 지방으로 가자는 말을 들었어요. 저도 퇴원하실 때까지만 어머니 수발을 들 생각이에요. 제게도 부모님이 계시고, 아이가 있어요. 이젠 우리 가족에게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난 가족이 아니란 말이야? 내가 그래서 널 들이지 말라고…….”

“알고 있어요. 미워하셨죠. 노력하면 할수록 더 미워하셨죠. 지금까지 어머니가 사랑하는 사람들 대신 하루 종일 곁을 지켜도 미워하셨죠.”

얼굴이 벌게진 엄정남이 발끈하려다 배를 잡으며 눈가를 찡그렸다.

수술 부위에서 전해지는 통증이 꽤 심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부축하던 박송임이 손끝 하나 까딱이지 않았다.

박송임의 뺨에 눈물이 흘렀다.

한 번도 보이지 않아 독하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으려 참아 왔던 눈물이었다.

“성민 씨 친구인 김지훈 선생님이 어머니보다 절 더 생각하는 걸 보며 생각 많이 했어요. 더 이상은 안 되겠어요. 성민 씨가 힘들어하는 모습도 보고 싶지 않아요.”

“성민아, 얘 말하는 거 들었지? 내가 그래서 반대한 거야. 쟤 눈에 시어미는 안중에도 없는 걸 보고도 가만있는 거야? 성민아!”

오성민이 훅 숨을 내뱉었다.

박송임이 가슴속에 담았던 말을 터트리자 도리어 개운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내의 눈물을 또 보고 싶지도 않았다.

“와이프 말 틀린 거 하나도 없습니다. 도리어 제 결정을 따라 주어 고마울 뿐입니다. 앞으로 그렇게 사랑하는 딸에게 의지하세요.”

“너, 너, 그게 무슨 말이야?”

“화를 내기 전에 어머니가 어떻게 했는지 먼저 생각하세요. 멀리 갈 필요 없습니다. 방금 전만 떠올려도 됩니다. 제 친구들 눈에 보일 정도면 아니라고 말하지 못할 겁니다. 곧 펠로우 그만두고 떠날 겁니다.”

오성민이 박송임의 손을 잡았다.

“여보! 말 잘했어. 고마워. 간병인 구하면 되니까 퇴원하실 때까지 있을 필요 없어. 이러다 우리 준호가 엄마 얼굴 잊어 먹겠다.”

엄정남이 소리쳤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어머니도 미워하는 사람 볼 이유가 없지 않아요? 차라리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 간병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넌 내 아들이야.”

“자식은 부모 소유가 아닙니다. 며느리는 더더욱 아니고요. 미워할 줄만 알지 남의 집 귀한 딸을 데려왔다는 생각은 왜 안 하십니까?”

엄정남의 손이 달달 떨렸다.

몸은 여전히 참기 힘들 정도로 아프고 힘들었다.

마음은 두려움과 불안으로 편한 적이 없었다.

그런 상황인데 아들과 며느리가 가슴에 대못을 박은 것이다.

복부에서 전해지는 통증이 배신감과 분노를 키웠다. 이럴 수는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아들과 며느리의 표정은 변함없었다.

묵묵히 듣고 있던 오성민이 별안간 아내의 짐을 쌌다.

옷 몇 벌과 간단한 화장품이 다였다.

민낯이 아니더라도 얼굴에 서린 근심과 걱정은 무엇으로도 가릴 수 없었다.

‘미안해. 나만 생각했어.’

“여보! 내가 있을 테니까 준호한테 가. 앞으로는 시간 있을 때만 들러. 내키지 않으면 안 와도 돼.”

박송임이 가방을 받아 들었다.

가슴속에 맺힌 말을 다 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의 어머니라는 사실이 발목을 잡은 때문인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엄정남은 벌게진 얼굴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어떤 말도 들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딸깍! 박송임이 문을 여는 순간.

“애미야!”

갈라진 목소리가 들렸다.

인사해야 할 사람은 다 했다.

오성민 한 명만 남았다.

한동안 연구실에서 기다렸건만 고요하기만 했다.

“자식이 어디 있는 거야? 응급실에 있나?”

응급실이 부산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엄정남 때문에 더욱 신경 쓰였지만 고경아와 함께 원주로 가야 한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희연이가 기다리고 있는데 더는 지체할 틈이 없었다.

병원을 나섰다.

그때 누군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지훈아, 가는 거야?”

“아이고! 얼굴 못 보고 가는 줄 알았다.”

만일 펠로우를 그만둔다면 언제 또 볼지 알 수 없었다.

잠시 이런저런 말을 나누며 아쉬움을 달래던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민아, 좋은 일 있어? 표정이 밝아졌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러네. 하여튼 덕분에 고마웠다.”

“친구끼리 고맙다는 소리 하는 거 아니다. 일석이한테 혼나. 아쉽지만 이제 가 봐야겠다. 잘 지내고, 나 돌아온 뒤에 얼굴 꼭 보길 바란다.”

김지훈이 후다닥 집으로 향했다.

바쁜 하루가 흘렀다.

밤늦게 원주에 도착해 희연이 자는 모습 들여다보다 눈 한 번 감았는데 아침이었다.

챙겨야 할 것들 챙기고, 저녁에 처갓집 식구들과 식사를 했다.

화목함이 함박눈처럼 어깨에 내려앉았다.

다음 날, 아침.

이제 공항으로 가 비행기를 타면 일 년 반 후에나 돌아올 것이다. 고성문과 최문옥 여사가 서운함을 토로하며 공항까지 동행했다.

사위와 딸 때문인 줄 알았다.

“희연아, 할아버지 얼굴 잊으면 안 된다. 어이구! 내 새끼 보내려니 마음이 다 아프네.”

“희연아, 할머니다, 할머니.”

그동안 손녀를 물고 빨았다.

보채지도 않고 잘 놀았는데, 엄마 아빠 품에서 떨어지지 않는 모습에 꽤나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이 또한 자식 사랑일 것이다.

정말 마음이 따뜻해졌다.

문득 엄정남이 떠올랐다.

‘이런 행복을 맛보셨으면 좋겠네요.’

잠시 후, 손일석과 고경희가 도착했다.

SM520을 인수인계하고 출국장으로 향했다.

“일석아, 잘 지내.”

“걱정하지 마시고 다녀오셔. 참! 성민이하고 제수씨 얼굴 많이 밝아졌어.”

“응? 그저께 뭔가 이상했는데 무슨 일 있었어?”

손일석이 씨익 웃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보고 웃는 모습 처음 봤다. 상당히 어색해서 웃는 건지, 우는 건지 헷갈렸지만 보기 좋더라. 닫힌 문이 열렸나 봐. 항간의 소문으로는 큰 소리가 오고 갔다는 말이 있는데, 그냥 콱 푼 것 같아.”

마지막까지 남았던 찜찜함이 사라졌다.

오성민과 동료로서 평생 함께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임시 귀국 동안 뜻하지 않은 수술로 많은 시간을 빼앗겼지만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출국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힘이 팍팍 들어갔다.

그런데 방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고경아의 눈가가 벌게졌다. 고경희와 최문옥 여사도 다르지 않았다.

“다시 못 올 길 가는 것도 아닌데 왜 울어?”

타박을 하는 고성문도 헛기침으로 자신의 감정을 숨겼다.

그 모습을 보며 불현듯 예전에 읽었던 글귀 하나가 뇌리를 스쳤다.

‘우리가 장미라 부르는 꽃은 어떤 이름으로 불려도 달콤한 향기는 변하지 않는다.’

사람도 똑같지 않을까?

각자가 가진 향기를 잃지 않길 바랐다.

비행기 창문 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푸르렀다.

무수히 반복되는 하루였지만 오늘 역시 새로운 시작이었다.

힘차게 외쳤다.

까르페 디엠!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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