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삶이 주는 기쁨 Ⅱ (1)
오성민은 아예 고개를 숙인 채 입도 열지 못했다.
김지훈이 헛기침을 하며 손일석을 보았다.
‘예상대로 나왔지만 정말 기분이 착잡하네.’
“일석아, 손이 필요할지 모르니까 대기하고 있어.”
이준영 교수는 이미 손을 소독하러 나갔다.
잠시 후, 새로운 수술 팀이 모두 자리에 섰다.
더 이상 말은 필요 없었다.
지방육종을 모두 들어내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혈관과 들러붙고, 간을 침범한 암을 모조리 제거해야 한다. 문제는 기구를 조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고 좁은 부위만이 아니었다.
지방육종이 발생한 후복막은 불행히도 역시 후복막에 일부가 묻혀 있는 십이지장 아랫면이었다. 더구나 신장 동맥을 비롯해 여러 동맥과 바짝 붙어 있어 완벽한 박리를 장담할 수도 없었다.
최고의 수술 팀을 꾸렸고, 이미 경험한 수술이라는 점만이 의지할 수 있는 위안이었다.
이준영 교수가 퍼스트 자리에 섰다.
스승의 수술을 받아 집도의 자리에 선 적은 많았지만 자신의 수술에서 스승이 퍼스트를 서는 일은 처음이었다. 마주 선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알 수 없는 힘과 자신감이 치솟았다.
김지훈이 입술을 꽉 물었다.
‘문제없이 완벽하게 해낼 수 있다.’
“시작하겠습니다.”
일단 후복막에 접근해야 한다.
간부터 절제하면 후복막 육종을 제거할 때 절제 면에 손상을 줄 수 있는 데다, 만에 하나 출혈 발생 시 수술 시야를 완전히 가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가장 윗부분을 덮고 있는 대장을 제쳤다.
위와 연결된 십이지장 초입부가 보였다.
공장과 이어지는 부분까지 박리해 복강 중앙 쪽으로 제쳐야 수술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십이지장 박리 시작합니다.”
단순한 소장의 일부가 아니다.
췌장액과 담즙이 나오는 관과 연결돼 있고, 위에서 내려오는 강력한 위산에 노출되는 장기다. 조그만 손상에도 수술 후 감당 못할 합병증이 유발될 수 있다.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십이지장이 아니더라도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과정은 단 하나도 없었다.
김지훈이 신중하게 조직 일부를 절개했다.
“켈리, 라이트 앵글.”
십이지장을 덮고 있는 후복막 박리를 시작했다.
가느다란 혈관이 무수하게 손을 가로막았다.
때론 보비로, 때론 수처와 타이로 출혈을 제어했다.
서서히 십이지장 초입이 후복막과 분리되며 담즙, 췌장액이 나오는 관과 연결된 부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극도로 조심해야 할 부위였다.
대가의 손이 퍼스트다.
누구보다 많이 경험한 과정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마조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보비! 타이!”
커다란 손이 무리 없이 움직였다.
점점이 발생한 출혈이 순식간에 잡혔다.
어느새 후복막 속에 단단히 묻혀 있던 십이지장 전체가 안전하게 떨어져 나왔다.
누구나 땀을 뻘뻘 흘릴 만큼 어려운 과정이 너무도 순조롭게 끝났다.
두근거리던 심장이 고요해졌다.
큰 힘이 될 줄 알았지만 스승의 존재가 이렇듯 강력할 줄은 몰랐다.
십이지장을 수술용 천으로 덮은 후 대장 쪽으로 제쳤다. 그 밑 더 깊은 곳에 위치한 후복막이 숨어 있는 장기로 인해 불룩했다.
우측 콩팥이 자리한 부분이다.
바로 인접해 지방육종이 발생했다.
육안으로 확인해 봐야 하지만 검사상 콩팥에 전이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로 인해 더 큰 난관이 기다릴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단단한 콩팥을 덮고 있는 후복막을 절개했다.
수술 팀의 긴장이 치솟았다.
김지훈이 수술 전 한 말 때문이었다.
조금씩 조금씩 열리던 후복막이 충분히 열렸다.
검붉은 색의 건강한 콩팥이 보였다.
그때 안도의 한숨이 들리기는커녕 답답한 신음 소리가 터졌다. 이준영 교수마저 눈가에 주름을 만들며 심각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최악을 상정했던 예측이 현실로 변했다.
지방육종이 콩팥 혈관을 완전히 감싼 채 노란빛을 뿌리고 있었다. 박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콩팥을 떼어 내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만큼 회복이 더뎌지고, 예후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모두들 김지훈에게 눈길을 주었다.
오성민의 눈에는 간절함이 배어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김지훈이 신중하게 혈관 주변을 살폈다.
조심스럽게 지방육종의 단단한 정도와 박리 가능 여부를 확인했다. 눈가와 코 등에 잡힌 주름이 곤혹스러움을 말해 주고 있었다.
‘가능할까? 콩팥까지 제거해야 한다면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까? 아니야. 살릴 수 있다면 살려야 돼.’
대가에게 원하는 것은 손만이 아니었다.
“선생님, 확인해 보시죠.”
이준영 교수가 동일한 과정을 반복했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알 수 없었다.
“김 교수, 판단은 집도의 몫이야.”
스승이 제자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순간 스승의 입에서 교수라는 말이 나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정신을 분산시킬 때가 아니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신뢰였다. 혹은 어떤 결정을 내려도 잘못된 판단이 아니며, 자신도 똑같은 결정을 내렸을 것이란 의미기도 했다.
더욱 신중해야 했다.
‘당장은 절제가 도리어 수술하기에 편하지만, 수술 후 회복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어. 보존할 수 있을까? 절제를 염두에 두고 박리를 진행한다면 중도에 쉽게 포기할 수도 있다.’
기타 장단점을 철저하게 비교했다.
어느 쪽이 더 안전하고 확실한지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 그렇다면 환자 입장에서 보아야 하고, 답은 의외로 간단명료했다.
김지훈의 입이 서서히 열렸다.
“콩팥을 살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준영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성민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에 힘을 주고 있었다.
밉든 곱든 어머니라는 사실은 변할 수 없기에 수술이 더 커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한편으로 왜 자신을 세컨으로 수술에 참가시켰는지 알았다.
‘금기를 깬 이유를 모두 알 수 없지만 퍼스트 이상의 자리는 서지 않는 것이 맞아. 난 객관적이고 적절한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을 거야.’
어쨌든 결정됐다.
최고의 써전이 집도의와 퍼스트지만 사투나 다름없는 과정이 진행될 것이다. 세컨과 써드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것이 마땅했다.
오성민이 오하석에게 눈짓을 하며 리트랙터를 강하게 끌어 수술 시야를 최대한 확보했다.
“박리 시작합니다. 모스키토!”
지방육종 역시 지방이다.
다른 조직에 비해 상당히 약하고, 암 세포에 영양을 공급하는 미세 혈관이 무수하게 분포할 것이다.
악성이기에 최대한 손상을 줄여야 해 얼마나 어려울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모스키토 끝이 콩팥 혈관을 감싼 육종을 파고들었다.
예상보다 더욱 약했다.
살짝 힘을 주었을 뿐인데 지방조직이 너무 쉽게 갈라지며 숨어 있던 혈관까지 끊어졌다.
출혈이 문제가 아니었다. 피든, 박리 중 떨어져 나온 눈에 안 보이는 지방조직이든 모두 암의 씨앗으로 작용할 수 있다.
김지훈이 빠르게 수처하자 이준영 교수가 곧바로 타이를 이어 갔다. 실매듭이 지방조직 속 깊숙이 사라지며 피가 멈췄다.
지방조직 손상은 없었다.
더없이 적정한 힘을 가했다.
대가의 손 덕분에 집도의의 부담을 상당 부분 덜었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혈관 주변 박리 내내 동일한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김지훈의 손이 극도로 신중해졌다.
언뜻 빨간 선처럼 보이는 미세 혈관이 나타나면 터지지 않도록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반면 과감하게 박리해야 하는 부분에선 추호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럼에도 더딘 진행을 보였다.
신장 기능 특성상 동맥과 정맥을 안전하게 보존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결국 혈관 노출까지 길이 5~6센티미터, 깊이 1~2센티미터에 불과한 부분을 박리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모됐다.
벌떡! 벌떡!
동맥이 힘찬 움직임을 보였다.
그 밑으로 더 굵지만 약한 정맥이 주행할 것이다.
지금까지 중 가장 위험한 과정을 앞뒀다.
혈관에 붙은 지방육종이 조금도 남지 않도록 완벽하게 박리하며 절대 손상을 입히면 안 된다.
어마어마한 혈류가 통과하는 혈관이기에 사소한 손상마저 문제를 일으킬 수 있었다.
이준영 교수의 눈가에 긴장이 감돌았다.
박리를 진행하는 김지훈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수술을 많이 했고 유학까지 갔지만, 이럴 때 느껴지는 긴장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매번 그렇듯 등짝이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수처! 타이! 보비!”
기구 물리고 열리는 소리와 나직한 목소리만이 울렸다.
벌떡벌떡 뛰는 동맥 주변을 박리하는 손을 보던 손일석이 내심 탄성을 터트렸다.
오성민은 왜 교수들이 김지훈에게 집도를 맡길 수 있었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마치 이준영 교수의 손이 4개인 것 같았다.
수없이 호흡을 맞춰 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두 손이 너무 잘 어울렸다.
스승과 제자는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고도 집도의가 무엇을 하려는지, 퍼스트에게 어떤 부분이 필요한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대단하다.’
동맥이 단단하고 하얀 살을 모두 드러냈다.
한층 주의해야 할 정맥도 수족의 일부인 양 움직이는 기구 앞에 검붉은 벽을 확실하게 보였다.
지방육종은 별다른 손상 없이 브이(V) 자로 벌어진 채 콩팥 혈관과 완전히 분리됐다.
이로써 수술 전 김지훈이 가장 우려했던 문제 중 하나인 신장을 지켰다.
과도한 긴장과 피로는 수술의 적이다.
“후우! 5분간 쉬겠습니다.”
우유 하나로 갈증을 면하고 수술을 재개했다.
후복막과 지방육종의 경계 면을 정확하게 박리해야 한다. 암 수술의 원칙에 따라 간에 침범한 부분을 포함해 한 덩어리로 들어내야 인위적인 암 전이를 막을 수 있다.
모스키토를 잡은 김지훈의 눈에 긴장이 감돌았다.
언제나 가슴 떨리게 하는 후복막 부위다.
수많은 혈관과 신경을 피해 암 덩어리만 절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이미 보아 알고 있었다.
수술 경험이 있다지만 집도의가 아니었고, 두 번에 불과했다.
자신, 스승, 수술 팀을 확고하게 믿고 진행해야 했다.
“경계 부분 박리 시작합니다.”
작은 모스키토로 조금씩 경계 면을 벌렸다.
지방육종과 연결된 혈관이 툭툭 끊어졌다.
“보비!”
삐이이이! 삐이이이!
날카로운 소리 속에 혈관 끝이 타들어 갔다.
암치고 상당히 약한 조직은 조금만 힘이 과해도 쭉쭉 갈라지며 손상을 받았다.
근원이 지방인 탓에 혈류가 막힌 부분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노랗게 물든 거즈가 그 증거였다.
“수처! 타이!”
확인 즉시 봉합해 녹은 지방이 퍼지는 것을 막았다.
그 속에 있을지 모를 암 세포 하나라도 놓치면 재발의 원인이 될 수 있었다.
지난한 과정이 무수히 반복됐다.
점점 수술 부위가 깊어지며 시야가 극도로 좁아졌다.
대장 쪽으로 밀어 놓은 십이지장, 노출된 콩팥 혈관에 압박이 가해지면 안 되는 탓에 무턱대고 시야를 확보할 수도 없었다.
“롱 라이트 앵글(Long Right Angle).”
가장 긴 기구를 사용해야 했다.
끝 부분이 다소 커 정교한 박리가 불가능했지만 달리 선택할 기구가 없었다.
고도의 집중과 무수한 경험이 눈과 손끝으로 전하는 감각에 의지했다.
서서히 노란 지방육종이 후복막과 분리됐다.
반복되는 출혈에 상당 부분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결코 바람직한 징후가 아니었다.
‘너무 느리게 진행하고 있나?’
시간이 아니라 정확함이 생명인 수술이었다.
수술 중 으레 다가오는 조급함을 떨쳐야 했다.
따르륵! 따가각!
기구에 달린 톱니바퀴가 물리고 풀어질 때마다 지방육종이 떨어져 나왔다.
다른 수술 같으면 보다 쉬워져야 했지만 완전히 반대였다.
타이를 하는 이준영 교수의 수술 모자가 흠뻑 젖을 정도였다. 김지훈은 두말할 것도 없이 온몸이 땀으로 젖은 지 오래였다.
째깍! 째깍!
어느새 2시가 넘었다.
5시간째 수술이 진행되고 있지만 후복막 속 지방육종은 여전히 상당 부분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간까지 절제해야 한다.
수술 시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휴식 시간도 갖지 않고 그대로 진행했다.
“모스키토, 타이!”
마침내 3시가 넘어서야 지방육종을 후복막과 완전히 분리했다. 무려 6시간 가까이 걸렸지만 아직 암이 침범한 간이 남아 있었다.
시간이 지체되면 분리된 지방육종 일부가 녹아내릴 것이다. 이제는 정확함과 시간 모두 생명이 됐다.
김지훈이 힐끗 수술 팀의 상황을 살폈다.
이준영 교수마저 빠르게 손을 놀리며 쉴 여유가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게다가 가장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이점이 남아 있다.
“그대로 진행하겠습니다.”
곧바로 간 절제를 시작했다.
암 조직에서 최소 1센티미터 이상 간격을 두고 잘라야 한다. 그럴 바엔 해부학적으로 나뉜 구역 하나를 다 절제하는 편이 훨씬 안전했다.
“켈리! 모스키토! 보비! 수처! 타이!”
서걱! 서걱!
삐이이이이! 삐이이이이!
간담도 대가와 대가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 스승과 제자가 자신들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했다.
단단하게 간의 일부를 이뤘던 간 조직이 툭툭 떨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