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삶이 주는 기쁨 Ⅰ (1)
며느리를 인정하고 딸처럼 대하면 눈 녹듯 풀릴 일이었다. 지방육종 수술 후 어떤 결과와 예후를 보일지 모르는 상황이기에 반드시 마음을 바꿔야 했다.
오성민이 어떤 결심을 하고 있는지 말할 수도 없는 일이기에 더욱 안타까웠다.
‘성민이는 우리 과에 꼭 필요한 사람이야. 출국하면 일 년 이상 볼 수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홀로 남아 고민했지만 뾰족한 답은 없었다. 심각한 고부간의 갈등은 써전이 아니라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이 필요한 일이었다.
‘답이 안 보인다.’
쓴맛을 다시며 일어서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오성민의 어머니가 찾는다는 연락을 받았다.
제법 밤이 깊었기에 암 환자의 불안과 공포가 심해질 시간이었다.
이해가 되긴 했지만 수술까지 참가하는 아들을 놔두고 찾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병실을 찾았다.
오성민이 보이지 않았다.
모로 누워 눈길도 주지 않던 엄정남이 일어나 눈짓했다. 속이 까맣게 썩어 문드러졌을 며느리, 박송임이 말없이 자리를 비켰다.
‘제수씨만 하루 종일 붙어서 수발하는데 적당히 좀 하시지 분위기 여전하네. 제수씨 얼굴 볼 때마다 왜 내가 미안해지는지 모르겠다.’
찾은 이유가 있었다.
그제야 속마음이 드러났다.
이불을 잡은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바짝 마른 입술이 부르텄을 정도였다.
이상할 정도로 안쓰럽기 짝이 없었다. 위안을 줄 사람을 둘이나 앞에 두고 있으면서 스스로 마음을 닫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많이 힘드시죠?”
“정말 무섭네요. 김 교수님, 어떻게 해야 하죠? 수술만 받으면 정말 살 수 있는 건가요?”
이미 모두 설명한 내용이었다.
오성민의 어머니에게 필요한 것은 수술, 치료, 예후에 대한 지식이 아니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개인적인 말을 아껴 왔는데 어쩌면 기회일 수도 있었다.
솔직한 말이 도움이 될지 몰랐다.
김지훈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마음속 말을 과장이나 거짓 없이 담백하게 전하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최고의 수술 팀을 구성했습니다. 그래도 불안하십니까?”
“항상 불안해요.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네요.”
김지훈이 일부러 미소를 머금었다.
“모든 환자분이 두려워하고 불안에 떱니다. 이겨 낼 방법은 여러 가지겠지만, 수많은 환자를 보아 오면서 의사의 역할이 얼마나 제한적인지 알았습니다.”
“환자는 의사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데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설마 수술할 자신이 없어서 하는 말은 아니겠죠?”
내용이 아니라 존댓말이 어색했지만 왠지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한 거리가 오히려 유리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 말이 아닙니다. 항상 자신감과 자만을 구별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자기 자신과 타인을 모두 믿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엄정남이 눈가를 찌푸렸다.
듣고자 했던 말이 아닌 엉뚱한 말이었다.
“간혹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회복을 보이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자기 자신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 아닌지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은요?”
“환자분이 누군가를 신뢰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의사를 믿으셔야 수술 결과가 좋습니다. 솔직히 환자가 우릴 신뢰하지 않으면 더 불안해지고, 심한 경우 환자 탓까지 하게 됩니다. 가족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요? 서로 믿고 의지하면 서로에게 큰 힘을 주니까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제아무리 눈치 없는 사람이라도 며느리를 지칭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도 남을 것이다.
수술을 앞두고 시점을 잘못 잡았는지도 몰랐다.
믿어야 할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다.
다행히 환자를 안정시킬 큰 힘이 남아 있었다.
“제가 집도를 하고 이준영 교수님께서 퍼스트를 서지만, 어머니를 수술하는 팀의 가장 큰 힘은 성민이입니다.”
“우리 성민이가요?”
“예. 어머니 몸을 우리에게 맡기는 것만큼 강한 신뢰는 없습니다. 같은 병원에 근무한다고 해서 무작정 다 믿지는 않거든요. 성민이에게는 제수씨와 어머니가 가장 큰 힘이 아닐까요? 그래서 가족 수술은 들어가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면서까지 같이 수술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려했던 반응이 없어 뭔가 계속해야 할 것 같은데 이어 갈 말을 찾기 어려웠다.
계속하다가는 말이 꼬일 판이었다.
역시 서른 중반의 나이로 고부간의 갈등처럼 심오한 문제는 건드리기 힘든 모양이었다.
대신 오성민 어머니의 나이가 있다.
자식보다 세상 오래 살았고, 연륜이 쌓였다면 말속에 담긴 마음을 엿보았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누구를 믿고, 사랑하고, 의지해야 하는지 알기를 바랐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위해.
병실을 나서려던 김지훈이 다시 눈길을 주었다.
할 말이 하나 더 남았다.
기분이 어떨지 모르지만 사실일 뿐이었다.
“마음 편히 가지세요. 수술 전부터 하루 종일 환자 곁을 지키는 보호자는 정말 보기 힘듭니다.”
나직한 한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수술 결과를 떠나 며느리, 아들, 어머니의 마음이 편해지기를 바랐다. 그래야 모두가 몸과 마음의 안정을 얻어 순조롭게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복도에서 오성민 부부를 만났다.
무슨 말을 나눴는지 궁금한 눈치였지만 따지고 보면 특별한 말도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오성민의 아내가 환자 못지않게 힘든 보호자라는 사실도 무척 중요했다.
“제수씨, 많이 힘드시죠?”
몸도 마음도 다 피곤할 것이다.
힘없이 웃기만 했다.
무척 선해 보였다.
“성민아, 일도 좋고 다 좋지만 제수씨 식사는 제때 챙겨 드려. 간병하면서 세끼 밥 먹기 얼마나 힘든지 너도 잘 알잖아?”
“걱정 마.”
“제수씨, 성민이하고 수술 잘 끝내서 빨리 퇴원하시게 할 테니까 조금만 더 고생하세요.”
“고맙습니다.”
상황으로 알고 있어서인지 할 말 참 궁색했다.
미리 보았다면, 동료로서 더욱 깊은 친분을 쌓았다면 주고받을 말이 많았을 것이다. 잘 해결되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가볍게 인사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오성민이 어깨를 탁 치며 병원 밖을 가리켰다. 아내 앞이라 그런지 밝은 표정을 지으려 애쓰고 있었다.
“너 지금 응급실 가려고 하는 거지? 일석이가 응급실 근처에도 오지 말래. 바로 퇴근해.”
“그게 무슨 소리야?”
“오늘 일석이가 당직에 일복 수위를 다투는 오창도 선생님이 백듀티야. 게다가 너 온 뒤로 응급실 환자가 더 늘은 것 같아. 당직들 잠 좀 자게 놔둬.”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당직 표에 이름도 없는데 일복 발동됐을 리 없었다.
손일석의 과장 섞인 입담이 분명했다.
‘응급실에 오지 말라고? 성민이도 일석이 닮아 가나? 그나저나 오창도 선생님이 이상하게 바빠서 얼굴도 제대로 못 봤는데, 혹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법이다.
손일석이 당직이라 집에 가 본들 불 꺼진 적막함만이 기다릴 것이다. 역시 써전에겐 아수라장일지라도 응급실의 치열함이 어울린다.
슬그머니 고개를 들이밀었다.
어째 간호사들의 눈빛이 살벌했다.
오래간만에 얼굴 본 약발이 다 떨어진 모양이었다.
‘빨리도 떨어진다. 일석이는 어디 있나? 설마 환자 없다고 혼자 퇴근한 건 아니겠지?’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처치실에서 손일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차상수와 함께 달려 나와 부리나케 수술실로 향했다.
“간호사, 환자 급해요. 준비되는 대로 바로 올려요.”
김지훈을 보며 순간 흠칫 놀라긴 했다.
중한 환자 한 명이 수술실로 올라가자 이내 평화가 찾아왔다.
역시 당직이 아닌 이상 일복 발휘될 이유가 없었다.
착각은 자유다.
불과 10분도 안 돼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환자다.
또 환자다.
으악! 큰 사고가 터져 단체로 실려 왔다.
결국 오창도까지 불려 나왔다.
연이어 하기엔 환자가 많아 양방이 불가피했다.
손일석과 전공의.
오창도와 김지훈.
각기 짝을 이뤄 밤새 응급실과 수술실을 오갔다.
일이 바빠 보기 힘들었던 오창도의 얼굴 실컷 봤다.
그간 못 나눴던 회포까지 거나하게 풀었다.
“김지훈 선생님, 여전하네요.”
“에휴! 선생님 때문이죠. 그런데 왜 말을 안 놓으세요?”
“서먹서먹해서 그럴까요? 하하하!”
전문의 두 명이 환하게 밝아 오는 아침 해를 미처 보지 못하고 코를 골았다.
김지훈만 살아남았고, 상당한 피로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버티고 있었다.
강인한 체력에 시차까지 별게 다 작용했다.
“어? 김지훈 선생, 이 시간에 웬일이야?”
“손일석 선생이 보고해야 하는데 지난밤에 많이 바빴습니다. 조금 더 자게 놔두시죠.”
간호사가 한숨을 푹푹 쉬었다.
“지동훈 선생님, 김지훈 선생님 좀 말려 주세요. 요 며칠 한숨도 못 자게 하더니 이제는 오창도 선생님까지 당직실에서 주무시고 계세요.”
지동훈 교수가 웃고 말았다.
“가뜩이나 응급 수술 많은데 기름을 부었네. 그래도 실력 있는 써전이 세 명이나 있었으니까 특별한 문제는 없었겠네요.”
“환자야 좋죠. 우리가 문제지.”
간호사들 눈가에 다크서클까지 걸려 있었다.
툭하면 새벽잠 없다며 응급실에 출몰하는 송재덕 교수가 마침 얼굴을 보였다.
“좋은 아침! 응? 지훈이구나. 굿모닝! 내 발음 어떠니? 어때? 근데 왜 다들 얼굴이 삭았어? 무슨 일 있었니?”
“원장님, 우리 수당을 올려 주시든지, 김지훈 선생님이 응급실에 발도 디디지 못하게 하든지 둘 중의 하나 해 주세요.”
상황 모를 사람이 아니었건만 얼렁뚱땅 넘어갔다.
“지훈아, 왜 그랬니? 왜? 천천히 하자, 천천히. 일주일 더 있다 가지? 일주일 더. 천천히 하자. 시간 많다, 많아.”
어째 불을 더 지르는 것 같았다.
간호사들의 눈길이 사나워지자 원장 체면이고 뭐고 후다닥 응급실을 빠져나갔다.
다리 길이가 꽤 차이 나는데, 항상 후다닥 뛰어다니던 김지훈과 발걸음이 착착 맞았다.
귀국 후 첫 번째이자 마지막일 주말 집담회에 참석했다.
마음이 넉넉했다.
누군가를 태울 일도, 탈 일도 없었다.
노곤하게 밀려오는 피로에 몸을 맡기자 슬슬 눈이 감겼다. 삐질삐질 땀 흘리는 펠로우들의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강 건너 불이었다.
손일석이 칠지도에 손 한번 쓰지 못하고 전사했다.
김경수가 동네 아저씨 웃음소리를 따라 쓰러졌다.
오성민도 예외가 아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논리의 도마 위에 올라타 잘근잘근 다져진 후 작은 그릇에 소복하게 담겼다. 예외를 두는 것이 도리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이제 끝인가?
흐릿한 눈길 너머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김지훈, 다음 주 토요일에 출발이지?”
스승님 목소리다.
정신이 확 돌아왔다.
“예, 선생님.”
“그럼 이번 주에 하자.”
뭘 하자는 말일까?
지방육종이 매우 드문 질환이라는 사실, 집도를 한다는 사실, 스승에게 퍼스트를 부탁하고 답도 듣기 전에 도망쳐 나온 사실을 모두 잊고 있었다.
화르륵! 화염방사기가 불을 내뿜었다.
까맣게 그슬린 전신을 칠지도가 스쳐 지나갔다.
온몸에 난 상흔을 따라 논리가 파고들었다.
이어진 동네 아저씨 웃음소리가 서늘했다.
마지막으로 확인이라도 하듯 다시 혀를 날름거리는 불길에 결국 한 줌 재가 되고 말았다.
완벽한 패배였다.
주말 집담회는 유학 중이든 아니든, 조교수건 펠로우건 자리에 앉는 순간 누구도 예외가 아니라는 현실을 너무도 처절하게 깨달았다.
정신을 수습하고 나니 손일석이 혀를 차고 있었다.
“방심의 대가는 죽음이라는 걸 알려 준 놈이 가장 심하게 탔네. 자식! 이따 원주 갈 때 난 운전 못하니까 정신 차릴 거 없이 내처 자.”
“알았어.”
“임시 보험은 들었지?”
“들었어. 너 내 차 똥차 만들어 놨으면 죽는다.”
“반짝반짝 빛나고 있으니까 걱정 접어 두셔. 밥 먹을 시간도 없었는데 똥차 만들 시간이 있었겠어?”
회진 시간을 기다려 오성민 어머니를 찾았다.
주말이 지나면 바로 수술이기에 이준영 교수를 비롯해 수술 팀이 모두 병실로 들어섰다.
거구의 의사 뒤에 서 있던 김지훈이 묵직한 눈길에 앞으로 나섰다.
‘김지훈, 집도의는 너야.’
스승 앞에서 환자에게 설명을 하려니 어색하다 못해 쑥스러웠다. 명예나 체면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은 반드시 배워야 할 점이었다.
마지막에 들은 말은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환자분, 우리가 가장 믿는 써전인 김지훈 선생과 오성민 선생이 수술합니다. 우리 모두 힘을 보태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오성민의 어머니도 의료진이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때문에 분위기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박송임이나 엄정남이나 표정 변화는 없었다.
하루 이틀 내에 해결되기 힘든 일일 수도 있었지만 빠른 변화가 있기를 바랐다.
어머니의 마음만 변한다면 오성민과 박송임은 웃음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또한 엄정남 자신에게도 최선임이 분명해 보였다.
때문인지 은근한 압박감이 다가왔다.
이제 주말만 지나면 수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