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965화 (965/1,329)

10화. 동료의 힘 Ⅰ (2)

신현수가 눈가를 잔뜩 찌푸렸다.

“성민아, 오늘 응급으로 수술해야겠어. 수술 잘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 아직은 10퍼센트에 달하는 재수술 확률을 이길 실력이 아닌가 봐.”

라파로로 위절제술을 한 고도비만 환자의 배 속에 고름이 잡혔다. 과도한 내장 비만 때문에 간간이 볼 수 있는 합병증이지만 반드시 배를 열어 다시 수술해야 한다.

열과 통증에 시달렸던 환자는 입도 열지 않았다.

수술 팀에게는 극심한 스트레스였다.

함께 재수술을 마치고 나온 오성민이 피곤한 눈가를 비볐다. 무사히 해결했지만 문제가 생긴 환자의 첫 번째 수술과 재수술에서 모두 퍼스트를 섰다.

집도의가 아니라는 핑계를 댈 처지도 아니었다.

게다가 집안일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었다. 고부간의 갈등이 날로 심해져 눈가가 퉁퉁 부은 아내를 보는 일은 보통 힘든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 와이프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애까지 있는데 함부로 말씀하시면 안 되죠. 일 때문에 제대로 들어가지도 못하는데 도대체 왜 이러십니까?’

평범한 집안의 딸에게 바라는 것이 너무 많았다. 쉽지 않다고 하지만 수많은 직업 중의 하나일 뿐인 의사를 벼슬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

어쩌면 보상 심리일지도 몰랐다.

결국 반대한 결혼과 성에 차지 않는 혼수로 쌓인 불만이 미움으로 번졌고, 결혼 이후에도 내내 오성민과 아내를 괴롭게 만들었다.

마음까지 힘든 탓일까?

환자를 가리지 않고 흔히 발생하는 소소한 합병증에도 기운이 쭉 빠졌다.

이런 때는 일이라도 적으면 좋으련만 사흘마다 서야 하는 당직은 어김없이 돌아왔다.

“오늘 많이 힘들어 보인다. 당직 바꿔 줄까?”

어제 당직을 서 한눈에도 피곤에 절어 있는 손일석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을 병원으로 끌어들일 수도 없었다. 마음은 고맙지만 펠로우로서 해야 할 일을 해야 했다.

“괜찮아. 고맙다.”

따르르릉! 따르르르릉!

응급실 콜이었다.

축 처진 오성민의 어깨를 보던 손일석이 콧등을 찡그렸다.

‘자식! 어머님 문제로 정말 힘든 모양이네. 어제는 두세 시간 정도 잤는데 억지로라도 바꿀 걸 그랬나?’

한두 살 어린아이도 아니고, 친구라 해도 도울 수 있는 일은 따로 있다.

김경수 역시 몰려드는 일에 허덕이긴 마찬가지라 도울 여력이 없었다.

하루빨리 해결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왠지 겨울 밤공기가 유난히 텁텁했다.

‘눈이 올 것 같네.’

내일 아침 출근길이 진창일지, 빙판일지, 새하얀 눈길일지 알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응급실에 들른 손일석이 부리나케 지난밤 내원한 환자를 확인했다. 보고를 해야 할 오성민이 중환자실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간호사, 어떤 환자였어요?”

“교통사고로 비장 파열이 의심된다고 수술 들어가셨는데 환자분이 워낙 고령이었어요. 버티실지 모르겠어요.”

“재수 없는 소리!”

잠시 후, 보고를 받던 지동훈 교수가 조용히 물었다.

“손일석 선생, 오성민 선생하고 친하지?”

사실 대놓고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학교 다닐 때 함께 몰려다닌 적이 없었고, 전공의 때는 중간에 근무 병원까지 달라져 접촉도 거의 없었다. 펠로우를 시작하며 이제야 서로를 알아 간다고 해도 무방했다.

‘옛날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서로 가족 일까지 털어놓는데 아니라곤 말 못하지.’

“예. 친합니다.”

“요즘 무슨 일이 있는지 얼굴이 안 좋아. 이럴 때 환자까지 문제 생기면 정말 힘들어지니까 신경 써 줘.”

“걱정하지 마십시오. 일이 있긴 하지만 공사를 구분하지 못할 성민이가 아닙니다. 우리도 있고요.”

아차 싶었다.

‘일이 있다는 소리를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이런 치명적인 발언을 하다니 공력 많이 줄었네.’

“일이 있긴 있구나. 오성민 선생이 말 안 할 때는 이유가 있겠지. 우리가 있다는 말을 들으니까 무척 듬직하다. 손일석 선생만 믿는다.”

듬직하다는 말에 얼굴이 화끈거린 손일석이 재빨리 중환자실로 향했다. 송재덕 교수 귀에까지 들어가면 걱정이 하세월일 것이다.

오성민이 홀로 환자 곁을 지키고 있었다.

고령인 데다 손상까지 심해 바이탈이 여전히 불안했다.

피곤에 절은 얼굴이었지만 전공의들은 아침 일과 준비로 정신없이 뛰어다닐 시간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왠지 어깨가 더욱 무거워 보였다.

“성민아, 환자 어때?”

“출혈은 없는데 고령에 전신 상태까지 안 좋아서 불안해. 아직 의식도 깨끗하지 않은 상태야. 요새 왜 이렇게 문제 생긴 환자가 많은지 모르겠다. 집도를 하나 퍼스트를 서나 차이가 없네.”

“천안 칼잡이 출신이 왜 이래? 누가 수술했어도 피하기 어려운 일이야. 잘 회복될 거야.”

“전공의 때는 교수님들이 뒤에 계셔서 별생각 없었는데 펠로우가 되니까 확실히 달라. 근데 넌 회진 준비 안 하고 여긴 왜 왔어?”

무심코 시계를 본 오성민이 깜짝 놀랐다.

“아! 응급실 보고 해야 되는데 늦었다.”

“내가 했어.”

“고맙다.”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오성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얼굴을 펴지 못했다. 환자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쩌면 지난밤 어머니나 와이프와 힘든 전화 통화를 했는지도 몰랐다.

꼬치꼬치 캐물을 일이 아니었다.

잠시 환자에 대해 상의하며 자리를 지킨 손일석이 조용히 병동으로 향했다.

자신의 일에 집중해야 할 펠로우, 오성민의 어깨에 일 못지않은 짐이 얹힌 것 같았다.

‘너무 힘들어하네. 어떻게 해야 하지?’

가랑비에 옷 젖듯 가족에게 받는 오성민의 심적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말 몇 마디와 가끔 중환자실에 들러 환자를 함께 보는 것 이외에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김경수도 시간 나는 대로 상황 봐 가며 함께 걱정했지만 누구도 해결해 주지 못할 일이었다. 스스로 극복해 나가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오성민에겐 지독히도 운이 없는 달이었다.

점점 말수가 적어졌고, 웃음을 찾기 어려웠다.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며 자신의 일에 집중했지만 무거운 마음이 눈에 보일 지경이었다.

걱정이 안 될 수 없었다.

모처럼 펠로우만의 술자리를 가졌다.

“성민아, 무슨 일이 또 생긴 거야?”

“어머니가 둘 중 한 명을 택하란다. 말이 되냐? 게다가 몸도 안 좋아 보여서 검사 좀 하자고 했더니, 집안이 이 꼴인데 그게 무슨 소용이 있냐고 버럭버럭 화만 내시더라.”

손일석이 눈만 멀뚱거렸다.

‘그 정도였어?’

가족에게 감정이 쌓이면 더한 배신감을 느낀다지만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오성민과 아내에겐 고통의 나날일 테고, 조부모의 사랑을 모를 어린 자식은 눈물일 것이다.

고작 맥주 한 잔에 눈시울을 붉히는 오성민을 보면서도 손일석이 변변한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비워 가는 잔에 맥주를 따를 뿐이었다.

“너무 화가 나서 그러셨을 거야. 힘내, 인마.”

“너하고 경수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이런 일엔 입 무겁지?”

“그럼. 뭐 좋은 일이라고 떠들고 다니겠어? 우리가 있어서 다행이 아니라 제수씨가 네 곁에 있어서 다행이야. 더 이상 나빠질 일이 없다는 것도 행운이다.”

“행운? 최악인 게 행운이라고?”

오성민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김경수가 슬며시 팔을 잡았다.

손일석이 내친김에 속마음을 터트렸다.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으면 올라갈 일밖에 더 남아? 최소한 지금보다 나쁠 일은 없다는 말이잖아. 그럼 무서울 게 뭐가 있어. 네가 원하는 걸 말하고 밀어붙여.”

“밀어붙이라고? 우리 어머니 바늘도 안 들어갈 사람이다.”

“무턱대고 밀면 안 되지. 방법은 네가 찾아야 하지만 하나만 잊지 마. 자식으로 태어난 건 선택할 수 없는 일이야. 반대로 제수씨와 자식은 네 선택의 결과야. 성민아, 우리가 사랑에 무책임한 놈들은 아니잖아? 나 같으면 택일하고 최후통첩 날린다.”

위로의 말이라기보다 자기 자신 일이라면 어떤 답이 필요한지 고민한 손일석의 생각이었다.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결정을 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일석이 말이 맞아. 네 어머니 일이라서 그동안 말하기 어려웠지만, 똑같은 상황이었다면 나도 와이프하고 아이부터 챙길 것 같다.”

정말 말로만 쉬운 일이었다.

오성민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에이! 요즘 같아선 정말 못해 먹겠다. 집안이나 병원이나 마음 편한 곳이 하나도 없어. 비장 절제술 한 환자까지 무슨 문제가 이렇게 한꺼번에 터지냐.”

“비장 환자는 왜?”

“고령인 데다 폐까지 안 좋아. 오늘도 일 터질까 봐 찜찜해 죽겠는데 너무 답답해서 나왔다.”

당사자와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은 다를 것이다. 가족이 관련된 일만큼 힘든 일도 없을 텐데 조금이나마 힘이 됐기를 바라며 술자리를 끝냈다.

맥주 한두 잔에 제법 주량이 센 오성민의 얼굴이 벌겠다.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 때문일까?

아니면 참을 수 없는 눈물일까?

어떤 일이든 또 다른 문제가 생기면 오성민이 버틸 수 없을지도 몰랐다. 누가 봐도 최악의 상황이었기에 아무 일 없어야 했다.

간절한 바람과 달리.

며칠 후, 응급실이 이른 아침부터 교수들로 북적였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가시질 않았다.

이경석과 신현수는 답답한 한숨만 내쉬었고, 손일석과 김경수는 자책하고 있었다.

송재덕 교수가 눈가를 찡그렸다.

“경석아, 현수야, 성민이는 어디 있니? 어디?”

“보호자 만나고 있습니다.”

비장을 절제한 고령의 환자가 끝내 회복되지 못했다.

큰 사고를 당해 동반 손상이 적지 않았던 데다 평소 만성 기관지염을 앓고 있었다. 결국 폐렴이 발생하며 급격히 상태가 악화된 결과였다.

추가 합병증 발생 가능성이 큰 고령, 만성 질환 등의 위험 요소를 가진 중증 외상 환자에겐 비일비재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의사가 받는 충격은 다를 바가 없었다.

특히 집도의에겐 더욱 크게 다가온다.

물론 경험이 쌓일수록 충격에서 벗어나는 시간이 빨라진다. 암을 정복하지 못하듯 인간의 육신 역시 의사의 의지와 뜻대로만 치료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가항력이라는 단어가 적용되는 경우에는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다만 다른 요인이 없다는 전제하의 말일 뿐이다.

오성민에게 가해지는 압력은 통상의 경우와 비교할 수 없었다. 보호자를 만난 직후 신현수와 지동훈 교수에게 양해를 구하고 연구실에 틀어박혔을 때 눈치챘어야 했다.

오성민이 고개를 들지 못했다.

창밖에 어둠이 깔렸지만 불도 켜지 않았다.

꼬투리 잡을 일만 생기면 전화해 목소리를 높이는 어머니, 방관자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아버지가 주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해라도 되면 해결 방도가 보이겠지만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자신을 낳고 키워 준 부모의 행동이기에 더욱 답답한 일이었다.

행복의 기준이 어디일까?

아내를 볼 면목이 없었다.

차라리 화를 내며 불평불만을 터트렸으면 그나마 덜 미안했을 텐데, 눈물로 자신의 속을 삭이는 아내를 볼 때면 이유 모를 화가 치밀었다.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아이는 무슨 죄를 진 걸까?

그것만으로도 견디기 힘들었다. 그런데 환자까지 연이어 문제가 생기다 못해 급기야 사망까지 한 것이다. 과실이나 사고가 아니라는 말은 위로조차 되지 못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오성민이 눈가를 비볐다.

극단적인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후우! 다 싫다. 더 이상 내 욕심만 앞세울 수는 없어. 멀리 떠나서 와이프와 아이들만 보고 살자.’

부모와 연을 끊은 것만큼 힘든 일도 없을 테지만, 그 이상으로 소중한 가족의 행복이 걸렸다.

펼치고 싶은 꿈을 버려야 한다고 해도 일반외과 의사로서 살아갈 방도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성급한 판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남았는지 오성민의 고민이 이어졌다.

수술 중에는 집중력을 잃지 않았지만 툭하면 멍한 상태에 빠져들었다.

“성민아, 네 잘못이 아니잖아. 치료 중에 사망하는 환자를 본 게 한두 번이 아닌데 왜 이래?”

“경수야, 나 정말 많이 지쳤다. 환자가 주는 스트레스마저 힘들어. 그냥 조용한 곳에서 살고 싶다.”

손일석이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환자 문제라면 모르지만 가족이 관련된 일까지 겹쳤기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한편으로 오성민의 꿈을 잘 알고 있어 말뿐일 것이라 여겼다.

“성민아, 힘내. 네가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잖아.”

“이런 상황에서 내 꿈만 이루면 뭐 해? 와이프하고 아이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그 고생을 시켜? 어차피 할아버지, 할머니 정도 못 받는데 아쉬울 것도 없다.”

걱정될 정도로 심각한 반응이었다.

날이 갈수록 오성민의 안색은 어둡기만 했다.

결국 폭탄 발언을 듣고 말았다.

“일석아, 경수야, 올해까지만 함께할게. 당장 그만두고 싶지만 인원도 없는데 그럴 수는 없고, 내년에 펠로우 보강하면 선생님들도 이해해 주실 것 같다.”

“무슨 소리야?”

“고민 많이 하고 내린 결론이야. 미안하지만 이미 지방 병원 취직자리도 알아보고 있어.”

손일석과 김경수가 멍하니 오성민만 바라보았다.

친구이자 유능한 일반외과 의사가 자신의 길을 포기한 것이다. 다른 이유도 아닌 어머니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서 비롯된 일이기에 더욱 당황스러웠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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