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미소 짓게 만드는 사람 Ⅰ (1)
스승이 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준영아, 재단에서 낙후 지역 기여 차원으로 음성에 작은 병원 하나를 인수하기로 했다. 중한 환자를 볼 시설이 갖춰지기 전까지 큰 부담은 없을 거야. 그때까지 네 자신을 다시 돌아보고, 네가 살려야 하는 환자를 보며 반드시 이겨 내야 한다.”
듣자마자 거부했다.
의사는 천직이 아니라는 생각만 들었다.
스승이 불같이 화를 냈다.
생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온갖 수술을 다 했던 제자, 자신의 뒤를 이어 간담도 분야를 더욱 발전시킬 것이라 기대했던 제자였다.
그런 제자를 변변한 시설조차 없는 병원에 보내야 하는 스승의 마음이 어떨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갈등하는 모습에 선후배 모두 질책했다.
고성문은 아예 작정을 하고 서울에 와 어르고 달래며 마음을 돌리려 애썼다.
유학 떠나야 할 날이 코앞에 다가온 송재덕도 자신의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이준영이 제자리로 돌아오길 바라는 간절함이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아마도 마음 한구석에 미련이 남았던 모양이었다.
‘내가 다시 복귀할 수 있을까?’
결국 음성 병원으로 떠났다.
가장 빨리 조교수가 됐고, 유학까지 다녀온 의사가 중환자실조차 구비되지 않아 기본적인 수술만 가능한 작은 병원으로 말이다.
어쩌면 아내와 아들의 얼굴을 볼 면목조차 없어 도피했는지도 몰랐다.
모두들 안타까워하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단 한 사람만이 다른 희망을 품었다.
금경태에겐 다시없을 기회였다.
이준영의 유학 때와 또 달랐다.
빈자리가 어마어마해 한동안 적응하느라 기를 써야 할 지경이었다.
허경발 교수의 눈초리는 여전했지만 이준영의 절망적 상황은 결코 불리할 일이 아니었다.
이제 남은 목표는 단 하나였다.
바로 허경발 교수의 뒤를 이어 간담도 대가가 되는 것이다. 그 소리만 듣는다면 의사가 된 이후 가졌던 모든 야망을 이룰 수 있었다.
과장을 넘어 원장이 될 것이다.
일반외과 학회를 한 손에 움켜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준영의 얼굴도 다시 볼 일이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돈, 명예, 권위를 모두 얻을 수 있었다.
이를 위해 허경발 교수의 마음과 신뢰를 반드시 얻어야 했다. 이준영의 방황과 좌절이 계속된다면 결국 제자는 자신이 될 것이라 여겼다.
‘아직도 허경발 선생님의 제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멈추질 않다니 우습군.’
금경태도 스스로 이해 못할 감정이었다.
한편으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다.
수백 병상의 대형 병원에서 촉망받던 일반외과 의사가 고작 이삼십 병상에 불과한 조그만 병원으로 갈 줄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앞서가던 자신이 뒤처지고, 다시 앞서고.
무엇이 이유든 끝까지 살아남아 자신의 목표를 이룬 자가 승리하는 세상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라 여겼다.
눈앞에 온 기회를 결코 놓칠 수 없었다.
‘허경발 선생님이 끝까지 날 거부한다면 나도 생각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대가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해도 결국 환자나 의사들 사이의 권위일 뿐이다. 재단! 이사장님! 내가 잡아야 할 줄은 얼마든지 있다.’
금경태의 두 주먹에 힘이 꽉 들어갔다.
***
음성 병원을 떠올리던 이준영 교수가 뭔가를 찾았다.
한 장의 사진.
일반외과 학회에 갔을 때 기념으로 찍은 사진이었다. 그 속에 제자와 아들의 얼굴이 있었다. 단둘이 찍은 사진 한 장 없다는 사실에 묘한 느낌이 들었다.
‘나나 지훈이나 혁원이 이놈이나!’
그러고 보니 알게 모르게 스승과 제자는 닮은꼴이 있는 모양이었다.
마치 부모와 자식처럼.
마침 진료를 모두 마쳤고, 아직 수술이 끝날 때가 되지 않았다.
이준영 교수가 수술 방을 찾았다.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스승과 제자들이 수술에 집중하고 있었다.
원장 일로 바쁜 송재덕 교수도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경석과 한창 수술 중이었다.
“경석아, 넌 이렇게 하는구나. 괜찮네, 괜찮아. 나도 배워야겠다. 이 수술 예약된 거 없니? 그때는 회의고 뭐고 수술부터 들어와야겠다. 우리 경석이가 수술 잘하니까 정말 좋다, 좋아.”
“선생님, 왜 이러세요? 전에 알려 주신 거잖아요?”
“내가? 내가 언제 그랬니? 하도 잘하니까 아예 다른 수술로 보인다. 야! 너 유학 가면 나 심심해서 뭐 하고 사니? 응? 경석아, 나 뭐 하고 살까?”
“원장님 쭉 하셔야죠.”
작고 통통한 스승과 마르고 제법 키 큰 제자.
공통점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데 넉넉한 마음, 타인에 대한 깊은 배려는 확실하게 같았다.
대비될 정도로 상반된 급하고 여유 있는 성격과 달리 빠른 손까지 비슷해 확실히 통하는 면이 많았다.
눈길을 돌렸다.
이혁민 교수와 신현수가 뭔가 상의 중이었다.
“내일 있을 환자 꽤 진행됐는데 가능하겠나?”
“전이가 문제지만 제거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지동훈 선생님과도 상의 끝냈습니다.”
“그래? 잘했다. 내 아는 사람이라 신경이 많이 쓰이네. 잘 부탁한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외모만 다를 뿐 거의 판박이다.
이론을 중시하고, 냉철함을 유지하며, 섬세한 손까지 거의 다를 바가 없었다. 의사 직무 외적인 능력마저 갖춰 정말 어울리는 사제지간이었다.
마지막 한 쌍이 남았다.
“손일석, 너 이거밖에 못해?”
“죄송합니다. 그 부분에서 바짝 신경 써야 했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어서 지나쳤습니다.”
“어휴! 이런 놈을 믿고 내가 간이식 수술을 진행해야 하나?”
“선생님, 열심히 확실하게 하고 있습니다.”
“하여튼 말로는 누구보다 더 잘하지?”
가장 상이한 스승과 제자다.
전공의 때부터 날카롭고 예리한 성격은 여전했고, 무엇이든 칼처럼 정확함을 추구하는 신기동 교수였다.
그런 스승이 유쾌하다 못해 때론 덜렁거리는 것 같은 손일석을 제자로 삼다니 일견 의아한 일이었다.
아마도 열정과 노력이라는 가장 중요한 덕목을 공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마치 부부처럼 서로에게 모자란 부분을 채우는지도 몰랐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또 다른 면이 아닐까?
절로 즐거운 웃음이 나오는 모습이었다.
‘지훈이와 나는 어떤 것을 공유하고 있을까?’
스스로 말하기 어려웠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10년에 걸친 기나긴 어둠과 지독하게 자신을 괴롭혔던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다름 아닌 김지훈이란 후배였다.
어두웠던 기억의 끝자락에서 한 줄기 희망이 보였다.
한참 어린 젊은 의사의 열정과 열의는 빛이었다.
***
음성 병원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송재덕은 유학을 갔고, 이혁민마저 단기 해외 연수를 가 신기동과 허경발 교수가 음성 병원을 몇 번 찾았다.
스승의 기대와 격려에도 한숨과 절망은 끈덕지게 떨어지지 않았다.
행정적 업무까지 맡아야 하는 까닭에 무척 바쁜 고성문이 시간 날 때마다 들렀지만 온 세상이 온통 암흑뿐이었다.
가족과도 연락을 끊다시피 왕래를 기피했다.
볼 낯이 없었던 탓이었다.
죽지 못한 삶이 지속됐다.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 속에 잠긴 어머니의 창백한 얼굴이 지워지질 않았지만 일반외과 의사로서 살고자 했다.
그나마 잠재적인 의식 때문인지 외래나 주간에 응급실로 내원한 환자는 충실히 보았고, 지켜야 할 것을 잊지 않았었다.
다행이라고 말해야 할까?
그럴 리 없었다.
너무 박약한 의지였던 모양이었다.
여전히 중증 외상 환자를 볼 수 없었다.
피에 대한 두려움도 여전했다.
수술이라고 해야 아뻬나 탈장 정도만 가능했다.
그나마 손이 죽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것만으로도 희망을 본 것일까?
스승은 마지막 기대를 걸었다.
“준영아, 조금만 더 노력해 다오. 두려움을 이기고 나와야 한다. 내게 예전처럼 돌아올 수 있다는 단 하나의 희망만 보여 준다면 복귀할 수 있도록 노력하마.”
노력한다고 했다.
희망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마음 한구석, 복귀할 수 있다는 기대까지 품었다.
그러나 끝내 한때 친구였던 금경태가 앞을 가로막았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허경발 교수가 언성을 높일 정도로 크게 화를 냈다는 말만 들었다.
‘이 상태로는 복귀해 봐야 대학 병원에서 요구하는 수술은 쳐다보지도 못한다. 더 이상 폐를 끼치면 제자의 도리가 아니다. 제자? 이렇게 망가진 내가 제자라고 말할 수나 있는 걸까?’
결국 간신히 뗀 발을 채 내딛지도 못하고 또다시 주저앉았다.
당시에는 금경태를 탓하며 술로 속을 달랬지만 이제 와 보니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의 문제였다.
‘나도 내 잘못, 내 책임을 금경태에게 모두 미뤘던 것 같다. 결국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한다는 것을 왜 깨닫지 못했을까?’
그렇게 10년을 소비했다.
음성 병원에서 최선을 다했다면 결코 소비라 할 수 없겠지만 충실한 적도 없었다.
밥값 하자는 생각에 기본적인 수술만 했고, 피에 대한 두려움도 마지막까지 떨쳐 내지 못했다.
당시 보았던 환자에게 미안했다.
함께 근무했던 의료진도 이준영이란 사람을 일반외과 의사로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겉으로는 대우했지만 속마음은 단연코 달랐을 것이다.
무엇보다 스승을 볼 면목이 없었다.
어느새 하얗게 물들어 가는 머리,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는데 60을 바라보는 스승에게 몹쓸 짓만 하고 있었다.
‘스승님, 죄송합니다. 이젠 여기가 제 자리가 됐습니다. 송재덕 선생님, 고성문 선생님, 죄송합니다. 혁민아, 기동아, 스승님을 부탁한다.’
모든 것을 포기하니 도리어 마음이 편했다.
가족, 동료들과 간간이 연락하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아들인 이혁원이 더없이 안쓰러웠지만 할머니가 어떻게 곁을 떠났는지 모르기에 도리어 입을 다물어야 했다.
어느 틈엔가 아들에겐 결코 보고 싶지 않은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가장 힘들고 어려워 방황할 수 있는 시기조차 함께하지 못한 사람은 더 이상 아버지가 아니었다.
가슴을 후벼 파는 아픔이었다.
아내와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을 한 잔의 술로 대신했다. 때때로 흐르는 눈물은 스스로에 대한 위안일 뿐이었다.
‘여보! 혁원아! 미안하다. 내가 정말 미안하다.’
그렇게 모든 관계를 정리해 갔건만 금경태는 예외였다.
선배 교수들을 제치고 과장이 됐다는 소리에 어이가 없었다. 허경발 교수마저 막지 못했다면 십중팔구 재단과 이사회의 힘이 분명했다.
‘그놈의 행동 어디 가지 않는구나.’
스승님의 은퇴가 멀지 않았기에 송재덕, 이혁민, 신기동이 일반외과를 굳건하게 지켜 주길 바랐다.
이준영 교수가 가슴을 문질렀다.
지금도 아린 것처럼 지난 기억이 아팠다. 그런데 10년 세월의 끝에 다다르는 순간 웃음이 뒤따라 나왔다. 아주 행복한 웃음이 말이다.
한 사람의 등장이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킬 줄은 몰랐다.
불현듯 김지훈을 처음 보던 날, 어머니가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꿈에 나타났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알고 계셨던 것일까?’
미소 속에 그리움 가득한 눈물 한 방울이 맺혔다.
처음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변할 것이 없었다.
단지 음성 병원 원장에게 한마디 통보만 들었다.
‘10년 동안 의사 몇 명으로 끌어온 병원에 전공의를 보낸다고? 다른 과야 과장직을 대신한다지만 이제 막 1년 차 된 놈을 보내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 금경태 그 자식이 또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거지?’
콧방귀를 뀌었지만 어떤 대응도 할 수 없었다.
인생 역전된 지 이미 오래였다.
대가 소리를 들은 지 오랜 허경발 교수가 몇 년 전 부원장에 이어 원장이 되면서 금경태가 과장을 맡았다. 먼저 부임한 교수들을 제치고 말이다.
그럴 재목이 될까?
음성 병원 의사의 생각에 좌우될 일이 아니기에 신경 끊는 편이 속 편했다. 지금도 나락에서 허우적거리는 자신을 보며 즐거워할 테지만 말이다.
돌이켜 보면 번번이 앞을 가로막았는데 이제 와 자신에게 도움 될 일을 할 리 만무했다. 그렇다면 음성으로 오는 1년 차에게 문제가 있다는 말이었다.
‘온다는 놈은 뭘 잘못해서 트레이닝 자체가 불가능한 병원에 보내는 거야? 실력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금경태를 생각하면 개판일지도 모르겠군. 어쨌든 단단히 찍힌 모양이야. 불쌍한 놈.’
생각과 달리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차피 3개월 동안 곁을 스쳐 가는 의사 중 한 명일 뿐이었다. 금경태와의 관계가 어떤지 상관할 일도 아니었다. 가르치고 자시고 할 일조차 없다는 생각만 들었다.
시간은 예정대로 흘렀다.
전공의 4년 차였던 마취과 김진호, 정형외과 김대성이 먼저 내려왔다. 까마득한 후배라 여겼는데 김진호의 나이가 의외로 많아 어쩔 수 없이 술자리를 했다.
단지 술자리가 좋았을 수도 있었다.
예상외로 멋진 후배들이었다.
‘지훈이 이름을 그 자리에서 처음 들었나?’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아 내심 기대했는지도 몰랐다. 단단히 찍혔거나 실력이 없을 것이란 예상과 달라 의아함을 품었다.
일주일 후, 여느 때와 다름없는 주말을 맞이했다.
뜻밖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1년 차 김지훈입니다.)
김지훈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날이었건만, 대답 대신 자신도 모르게 달력을 보았다.
‘이 자식이 왜 오늘?’
상식적이지 않은 일에 눈만 멀뚱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