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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959화 (959/1,329)

7화. 지우고 싶은 기억 Ⅲ (2)

중환자실 환자는 한 명뿐이었다.

노련한 간호사들조차 감당하지 못할 문제가 생겼다는 외침이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인턴, 전공의를 포함해도 중환자실 인력 자체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가슴 절절이 와닿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며 정신없이 뛰어 들어갔다.

띠띠띠띠띠띠띠띠!

어머니의 심장이 헐떡였다.

온기가 돌던 얼굴이 수술 전보다 더 창백해졌다.

어떤 자극에도 반응하지 못했다.

“어떻게 된 거야?”

다급하게 터져 나온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30분 전만 해도 괜찮았는데 갑자기 바이탈이 흔들렸어요. 출혈이 발생한 것 같아요.”

간호사가 꺼내 든 거즈가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어머니의 몸속에 박힌 드레인을 감쌌던 바로 그 거즈였다.

‘수술 부위가 잘못됐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간신히 입을 열어 재수술을 준비했다.

혈액이 주렁주렁 달리고, 수액은 철철 쏟아지는 수돗물처럼 어머니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잠시 후 달려온 당직 전공의들이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혈압이 수술이 가능한 최저치를 간당간당 넘겼다.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었다.

출혈을 막지 못하면 이대로 사망할 것이다.

바짝 마른 입술로 재수술을 시작했다.

배를 열었다.

온통 피로 가득 차 있었다.

비장 절제 부위를 확인했다.

혈관 하나를 묶은 실이 풀려 있었다.

뻥 뚫린 구멍을 따라 줄줄 피가 흘러나왔다.

동맥이 분명한데 마치 정맥처럼 혈류가 약했다.

혈압이 거의 잡히지 않는다는 신호였다.

자책할 사이도 없었다.

그대로 손을 뻗어 동맥을 잡은 후 다시 묶었다.

또 있을지 모르는 출혈 부위를 찾기 위해 샅샅이 뒤졌다. 다행히 더 이상의 문제는 없었다. 혈압만 돌아온다면 다시 회복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분명히 그래야 했다.

그때 믿을 수 없는 소리가 들렸다.

띠이이이이! 띠이이이이!

심전도가 일직선으로 변했다.

산소포화도가 뚝뚝 떨어졌다.

“어레스트! 어레스트!”

머릿속이 텅 비었다.

본능적으로 심장 마사지를 하고 있었지만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땀이 뚝뚝 떨어졌다.

우두둑! 우두둑!

어머니의 약한 갈비뼈가 부러져 나갔다.

째깍! 째깍!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지 못했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었다.

어머니의 심장은 돌아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데 팔, 다리,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통증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깟 고통도 못 이기고 의자에 주저앉았다.

띠이이이이! 띠이이이이!

들려야 할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어머니의 가슴을 압박하는 전공의와 인공호흡을 유지하는 마취과 의사의 모습을 멍청하게 보고 있었다.

“한, 둘, 셋, 넷……. 슛!”

슈우욱! 슈우욱!

돌연 마음 한구석에서 시작된 두려움이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덜덜덜 손이 떨리며 압박을 받을 때만 삐죽삐죽 솟는 심전도 그래프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전공의의 이마가 흠뻑 젖었다.

다시 심장 마사지를 시작했다.

전신이 저려 오건만 어머니의 심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것을, 어머니의 고통만 가중된다는 것을 빤히 알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기적처럼 살아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졌다.

송재덕이었다.

이제 그만하라는 눈빛을 보였다.

이혁민과 신기동은 무거운 안색으로 입조차 열지 못했다.

“준영아! 준영아!”

“선생님! 이대로 끝낼 수는 없습니다. 제 어머니입니다.”

“준영아! 안다, 알아. 하지만…….”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어머니의 창백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인공호흡을 따라 힘없이 오르내리는 가슴은 더 이상 스스로 움직일 힘이 없었다.

이준영이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울음도 눈물도 나지 않았다.

자신의 손으로 수술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시리도록 하얀 국화를 보는 순간.

찬란했던 세상이 온통 어둠으로 변했다.

어떻게 하루하루가 흘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스승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윙윙 울렸지만 무슨 말을 들었는지 알 수도, 생각나지도 않았다.

***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갑자기 울린 전화벨 소리에 기억 속 어둠에서 빠져나왔다. 너무도 생생한 탓에 이준영 교수의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국제전화였다.

이마에 흐른 땀을 씻은 이준영 교수가 나직한 한숨을 내쉬며 숨을 돌렸다.

(스승님, 김지훈입니다.)

“무슨 일이야?”

(꼭 일이 있어야 전화하나요? 사실은 큰일이 있긴 있습니다. 저 본격적으로 수술 팀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미처 말씀드리지 못했는데 집도를 몇 번 했거든요.)

밝은 목소리였다.

이미 손일석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더없이 즐거웠고, 뿌듯해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였다. 시험 잘 봤다고 자랑하는 어린 자식 같았다.

자신감일까? 자만일까?

그 무엇도 아니었다.

(손 기술은 미국 의사들도 우리나라 의사에 비하면 별거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전에는 별생각 없이 했던 수술조차 상당히 진지하게 대하는 태도를 비롯해 꼭 배워야 할 점이 의외로 많습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있습니다.)

자랑처럼 들리는 말속에 겸손함이 가득했다. 스승으로서 한시도 늦추지 못하게 했던 자만에 대한 경계가 확실하게 녹아 있었다.

‘그래. 내가 느꼈던 자신감은 자만이 분명했어. 지훈아, 넌 절대 이런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열심히 해.”

어머니를 떠올리며 느낀 감정이 전해진 것일까?

(오늘은 목소리가 왠지 이상하시네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경아 씨하고 저 정말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절대 스승님 실망시킬 일은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다행이고.”

(스승님, 혹시 안 좋은 일 있으셨습니까? 누가 속이라도 썩입니까? 제게 말씀만 하세요. 당장 달려가서 그냥 작살을 내놓겠습니다.)

아직도 감정에 휘말려 있는데 피식 웃음이 나왔다.

김지훈이 제자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 이상의 존재로 자리 잡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간만에 고경아와도 안부를 주고받았다. 엄마 아빠를 찾는 희연이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그 덕인지 잠시 답답함에서 벗어났다.

뭐 그렇게 할 말이 많은지 김지훈의 목소리가 또 들렸다.

(혁원이는 집에 자주 오나요?)

“친구 만나느라 바쁜 모양이다.”

(자식이 군대 가서도 철이 안 들었네요. 제가 돌아가서 따끔하게 혼내겠습니다. 스승님과 사모님을 외롭게 하면 안 되죠.)

“시간 꽤 지났다. 끊자.”

(스승님, 설마 제자한테 쓰는 돈인데 아까워하는 건 아니시죠? 하하하! 오늘 모처럼 시간이 있는데 해 주실 말씀 없으신가요?)

‘뻔뻔한 놈!’

예쁜 놈은 무슨 짓을 해도 예쁘다.

결국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하지만 한 번 떠오른 기억의 질주는 멈추지 않았다. 오래전 기억 속 확신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수술을 자청한 것은 자만이었다. 말로는 신뢰한다고 하면서 선배도 후배도 믿지 않았던 것이 분명했다.

어머니를 차가운 땅속으로 보낸 후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렸다. 벌떡벌떡 뛰는 동맥을 아무리 굵은 실로 묶으려 해도 손만 대면 끊어졌다.

악몽의 마지막은 항상 검게 죽은 피로 끝났다.

퍼스트를 선 이혁민을 원망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내 분명한 사실을 기억해 냈다. 풀린 동맥은 이혁민의 손이 아니라 아들인 자신의 손으로 묶었던 혈관이었다.

‘자만의 대가치고는 너무 컸어.’

후회하기엔 너무 늦었었다.

어느 날 음성 병원에 나타난 제자를 보며 수없이 자만을 경계하라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절대 자신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염려였다.

해 줄 말이 있는지 물었던가?

“자만은 금물이다.”

(당연하죠. 스승님에게 혼날 일은 철저하게 피하고 있습니다. 가끔 마음이 풀어지면 스승님 손을 떠올리곤 합니다.)

“내 손은 왜?”

일반외과 의사의 실력을 말하는 것일까?

(스승님 주먹 안 무서워하는 사람 없습니다. 화염방사기는 더 무섭고요. 생각만 해도 몸이 떨리는데 어떻게 방심할 수 있겠습니까? 하하하!)

통화할 때마다 웃음과 농담을 빼놓지 않았다.

이준영 교수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감돌았다.

‘화염방사기? 설마 날 말하는 건가?’

서로 얼굴 볼 때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는데, 스승도 제자도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허경발 교수와도 그랬었던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완벽했었다.

정말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어머니의 죽음에서 헤어나지 못한 그 시간까지.

자식의 자만으로 어머니를 보낸 그 시간까지.

“특별히 할 말이 없으면 끊자.”

(특별한 일 있습니다. 간 절제에 아주 유용한 기구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효과가 입증되는 대로 필요한 자료와 함께 보내 드리겠습니다.)

“기다리마.”

(예. 스승님, 건강 조심하십시오. 오늘도 수신자 부담입니다. 희연이 분윳값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분윳값?’

누군가 자신을 그렇게 챙겨 주었던 사람이 있었다.

고성문이다.

유학 간 동안에도, 돌아온 후에도 경제적 도움이 아니라 정말 자신과 가족을 피붙이처럼 대했다.

그런 인연이 김지훈과 고경아까지 이어졌다.

생각해 보니 고성문만이 아니었다.

절망의 나락에 빠져 있었을 때, 그중 단 한 명의 목소리만이라도 귀 기울였다면 더없이 귀중한 10년을 허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럴 수 있었을까?’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이준영 교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빠른 시간 내에 절망에서 벗어났다면, 음성 병원이 아니었다면 김지훈을 제자로 삼을 수 있었을까?

금경태와는 또 어떻게 됐을까?

빛과 어둠은 공존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와 정면으로 맞닥트리면 다른 하나는 볼 수 없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

자만의 결과는 참혹했다.

밑도 끝도 없는 어둠의 연속이었다.

환자 얼굴을 볼 때마다 어머니가 떠오르며 죄책감과 자책이 두려움으로 변했다.

갑작스럽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 바이탈을 알려 주는 기계음, 구급차 사이렌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급기야 수술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명색이 대학병원 의사인데 간단한 수술 이외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절개 면을 따라 흐르는 피에도 섬뜩한 두려움이 느껴질 뿐이었다.

일상마저 무너졌다.

매일매일 술기운을 빌려 잠들어야 했다.

스스로 아내와의 대화를 거부했다.

툭하면 할머니를 찾는 아들, 이혁원을 보면 억장이 무너지며 자신에 대한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다.

어느 한 명 이준영이 받았을 충격을 모르지 않기에 조용히 아주 조심스럽게 위로와 위안의 말을 전했다.

“준영아, 힘든 건 안다만 이겨 내야 된다. 어머니도 결코 바라시지 않을 거야. 두려움은 선택일 뿐이다. 내가 곁에 있어 주마.”

스승의 안타까움!

“준영아, 혁원이와 제수씨 생각을 해.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도 있잖아.”

“그래. 고성문 선생님 말씀이 맞다. 네 손으로 살려야 하는 환자들이 널 기다리고 있어.”

선배들의 간절한 바람!

“선생님, 힘내십시오. 술은 답이 아닙니다.”

“선생님, 누구보다 강하신 분이었는데 왜 이러십니까? 이제는 돌아오실 때가 지났습니다. 운다고, 후회한다고 어머님이 돌아오실 수 있습니까?”

후배들의 안타까운 지적!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죄책감은 온몸과 정신을 무력하게만 만들었다.

‘어머니를 돌아가시게 한 내가 무슨 자격으로 수술을 한단 말인가? 난 더 이상 일반외과 의사 자격이 없어.’

결국 모든 자신감을 잃었다.

누군가에게는 기회였다.

미움은 어둠을 먹고 살며 커 간다.

라이벌의 몰락에 숨죽이고 있던 금경태가 움직였다.

누군가 정상 직전에서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졌다면 누군가는 깊은 골에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상황 자체가 유학과는 달랐다. 지금이야말로 이준영을 몰아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다른 사람의 죽음과 위기에 마음 약해지면 안 된다. 준영이가 폐인처럼 변해 가는 지금이야말로 냉정해야 할 때다.’

“과장님, 불행하게도 이준영 교수는 더 이상 교수직을 수행할 상황이 아닙니다. 대책을 세우셔야 합니다.”

궁지에 몰리다시피 입지가 좁아진 과장까지 움직였다.

“이사님, 병원에서 간담도 파트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허경발 선생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 방치하시면 안 됩니다.”

너무도 기대가 컸기에 망설이던 재단도 결국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수술하지 못하는 의사는 더 이상 일반외과 구성원이 될 수 없었다.

온갖 환자를 마지막으로 방어해 내야 하는 대학병원에 이준영의 자리는 없었다.

내부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을지 모르지만 금경태라는 대안도 있었다.

반면 허경발 교수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준영아, 이대로 주저앉으면 안 된다.’

진심은 전해졌건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주변에서 아무리 도와준다고 한들 제자 스스로 나락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손쓸 도리가 없었다.

어느 날 유학을 앞둔 송재덕이 찾아와 불같이 화를 냈다.

“야야야!”

그 말속에 담긴 의미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이준영이었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천근만근 바위보다 더 무거운 어둠이 더욱 진해질 뿐이었다.

모두가 상심에 빠져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때 마지막일지 모를 기회가 찾아왔다.

허경발 교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제자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도 잘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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