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지우고 싶은 기억 Ⅲ (1)
이준영조차 말이다.
“준영아, 아직까지 국내는 좁다. 더 늦기 전에 다녀오는 게 좋겠다.”
갑작스러운 말이었다.
“선생님, 유학 가기에는 너무 부족합니다.”
“그래서 더 가야 해. 우리 과가 반석 위에 올라서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일반외과 발전을 위해 너를 비롯해 이혁민 선생과 신기동 선생까지 모두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재단과도 이미 결론을 낸 일이니까 준비해.”
병원에서 전공의 수련을 마친 의사 중 첫 번째 유학 대상자가 된 것이다.
허경발 교수의 힘만이 아니었다. 이준영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높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유학 혹은 연수 가는 의사 수가 많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대단한 기회임이 틀림없었다.
허경발 교수의 도움을 받으며 착실하게 모든 준비를 마쳤다.
조교수 근무 1년 만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준영아, 어떻게 네가 먼저 가니? 이건 아니다, 아니야. 내가 선배고 네가 후배 아니니? 그치? 내 말이 맞지?”
“죄송합니다.”
“선생님, 2년 후에 가는 것으로 결정됐다고 들었습니다. 유학 가는 것 자체가 거론되지도 않은 우리 앞에서 그런 말씀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혁민아,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이다. 지금은 기동이처럼 조용히 있는 게 날 위한 거야. 준영아, 나쁜 놈아, 잘 다녀와. 가서 수술 하나 못하고 오면 나한테 혼난다, 혼나. 길 잘 뚫어 놔야 한다, 잘. 그래야 내가 편하지.”
“다녀오겠습니다.”
송재덕의 눈에 흐뭇함이 가득했다.
장도에 오르는 후배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선배의 모습에 각오를 다졌다.
금경태가 보이지 않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서운함은커녕 차라리 얼굴 안 보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파트지만 각자의 길이 따로 있겠지.’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안고, 기대에 부풀었다.
막상 유학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미국 의사들의 시선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참관은 허락했지만 어시스트조차 세우질 않았다.
아내와 자식, 스승과 동료에 대한 그리움은 향수병을 걱정하게 할 지경이었다.
이를 악물었다.
1년 만에 믿음을 얻었고, 인정받았다.
신세계가 열렸다.
현격한 의학 수준 차이를 절감하며 일종의 사명감까지 느꼈다. 오로지 헛된 시간을 보내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외로움과 그리움을 이겨 냈다.
남은 1년을 치열하게 보냈다.
단 한시도 스승의 바람을 잊은 적이 없었다.
만족스러운 성과를 얻었다.
다시 한국 땅을 밟는 순간 온몸을 휘감은 강한 책임감에 긴장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한편으로 미국이나 한국이나 다를 바 없는 공기였지만 왠지 더욱 맑고 깨끗하게 느껴졌다.
부푼 희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병원에 도착한 후 자리를 축하해 주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보며 훅훅 숨을 내쉬었다.
유학 내내 그리웠던 가족의 온기, 엄하면서도 자상한 스승의 마음, 부족한 인원으로 자신의 일을 대신했을 동료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준영아, 고생했다.”
“야! 준영이가 왔으니까 이젠 내가 갈 차례구나. 혁민아, 기동아, 부럽지? 부러울 거다. 아 참! 준영아, 길 잘 뚫어 놨니? 빨리빨리 필요한 거 모두 털어놔, 모두.”
고성문까지 얼굴을 보였다.
전공의 시절 숨도 쉬기 어려울 정도로 엄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자신을 꼼꼼하게 챙겨 주었던 선배의 입가에 자랑스러움이 가득했다.
“얼굴 좋은 거 보니까 마음이 놓인다. 이 교수, 내가 언제나 응원하고 있다는 거 알지?”
그 옆에 아내와 어느새 개구쟁이가 된 아들 이혁원이 나란히 서 있었다.
서울과 원주를 오가는 일이 쉽지 않은데 시간 날 때마다 가족을 챙겨 줘 고맙기만 했다.
마치 형처럼 선배 이상의 존재였다.
“감사합니다.”
복귀 초 어수선함이 사라지며 순조롭게 근무를 시작했다. 허경발 교수마저 새로운 지식과 정보에 귀를 기울여 하루하루가 상당히 바빴다.
금경태는 좀처럼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수술실에서 마주칠 때가 거의 유일한 만남이었다.
실력은 여전했지만 쟁쟁한 의사들 사이에서 서서히 빛을 잃고 있었다.
금경태에게 지난 2년은 최악이었다.
이준영의 유학 결정에 극도로 우울했지만 달리 생각하면 절호의 기회였다. 허경발 교수 혼자 감당하기 힘든 간담도 파트를 유능하게 뒷받침한다면 자신을 보는 시선이 달라질 것이라 여겼다.
전공의 시절처럼 열심히 일했다.
특별한 문제 하나 생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선은 달라지지 않았다.
무엇 때문일까?
다른 이유는 없었다.
누구도 아닌 스스로 자초한 일이었다.
밝은 미래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발전의 원동력이기에 절대 탓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다만 그 속에 반드시 동반되어야 할 것이 있었다.
바로 환자와 일반외과였다.
이기와 이타의 절묘한 조화일지도 몰랐다.
그 점을 알고, 마음으로 실천했다면 분명 모든 것이 달라졌을 것이다.
허경발 교수에게 인정받고, 동료들과 의료진의 신뢰를 얻는 것이 곧 자신이 빛나는 일임을 아직도 깨닫지 못했다.
결과는 제자리였다.
어쩌면 더욱 치명적인 상황에 직면했는지도 몰랐다.
그 탓에 이준영의 유학 여파가 더욱 강렬해졌다.
누가 보아도 결코 헛되지 않은 유학 생활이었다.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권위까지 얻는 양상이 이어졌다.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지며 날이 갈수록 자신감이 치솟는 모습이 역력했다.
분명 잘못된 자세나 태도는 아니었다.
어려운 수술을 척척 해냈다.
환자에게도 결코 소홀하지 않았다.
금경태를 뺀 동료들과의 관계 역시 더없이 좋았다.
스승의 웃음이 이를 잘 말해 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생이란 놈이 치명적인 심술을 부렸다.
누군가의 시샘과 질투가 아니라 평생 두려워하며 멀리해야 할 자만이 초래한 일이 분명했다.
왜애애앵! 왜애애앵!
오늘따라 요란한 앰뷸런스 소리에 이준영이 가슴을 탁탁 쳤다. 가끔은 과중한 업무 탓인지 사이렌 소리에 깜짝 놀랄 때가 있었다.
다행히 일반외과 환자가 아니었다.
‘오늘 당직인데 왜 이렇게 불안하지?’
슬슬 퇴근 준비를 하며 마무리만 앞둔 새로운 논문을 잠시 뒤적이는 사이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여보! 큰일 났어요. 어머님이 교통사고를 당하셨어요.)
아내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뭐? 어디야? 어디를 다치셨어?”
(지금 응급실로 가고 있어요. 곧 도착하니까 빨리 내려와요. 수술이 필요할지도 모른대요.)
공연한 느낌이 아니었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응급실로 내려갔다. 사이렌 소리가 들릴 때마다 부리나케 달려 나갔지만 어머니를 이송하는 차량이 아니었다.
일 분이 한 시간 같았다.
어떻게 알았는지 송재덕, 이혁민, 신기동이 다 나와 있었다. 한참 유학 준비에 여념이 없는 송재덕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
“별일 없을 거다. 걱정하지 마.”
“단순한 교통사고일 겁니다. 이마에서 피만 나도 다들 깜짝 놀라 걱정하잖아요.”
“그래. 혁민이 말이 맞다. 자주 보잖아.”
함께 걱정하며 자리를 지키는 모습에 위안이 됐지만 마음속 불안감은 조금도 가시지 않았다.
왜애애앵! 왜애애앵!
사이렌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간이침대에 실려 오는 환자를 보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너무도 낯익은 얼굴, 볼 때마다 차 조심하라던 어머니가 핏기를 잃은 채 눈도 뜨지 못했다.
겁에 질린 아내와 멈추지 않는 아들의 울음소리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여느 보호자와 다름없었을 것이다.
며칠 전 밝은 목소리로 통화했기에 더욱 믿어지지 않았다.
하나하나 검사 결과가 나올 때마다 걱정과 불안이 치솟았다.
“빨리 바이탈 체크하고, 수액 답시다. CT 준비해요.”
산산이 부서진 비장을 보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릴 지경이었다.
그러나 자식이면서 의사임을 잊지 않았다. 필요한 조치를 바로 취해 혈압을 잡은 후 곧바로 수술을 준비했다.
수술실로 올라가려는 순간 송재덕이 팔을 잡았다.
“준영아, 직접 수술할 생각은 아니지? 오늘 당직은 너지만 혁민이나 기동이에게 맡겨. 다른 환자처럼 문제없이 잘해 낼 거야.”
“선생님, 제 어머니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야. 가족은 수술하는 거 아니다. 아무리 냉철한 사람이라도 마음이 앞설 수밖에 없잖아. 만에 하나…….”
송재덕이 말을 잇지 못했다.
의사도 사람이다.
어떤 환자에게든 불가피한 일이 생길 수 있고, 수술 중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환자에게도 죄책감에 시달리는데 하물며 어머니였다.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할 수도 있었다.
하기에 가족 수술은 일종의 금기였다.
“아닙니다. 제가 수술하겠습니다.”
신기동까지 막았다.
“선생님, 의식까지 흐려서 걱정이 크시다는 건 알지만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맡기십시오.”
모두들 만류했다.
집도를 맡겨야 할까?
하필이면 가장 냉철한 판단을 내려 줄 스승과 연락이 되질 않았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라 집 앞 가게에만 나가도 연락할 방법이 없으니 다른 방도도 없었다.
갈등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준영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응급실에 있는 교수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나다고 믿었다. 비장 절제가 극히 어려운 수술은 아니었지만 의외로 큰 문제를 만들기도 했다.
‘어머니에겐 내 손이 필요해.’
모든 의료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술대 앞에 섰다.
확고하게 신뢰하는 써전인 이혁민이 퍼스트를 자청했고, 전공의들의 경험도 결코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모두가 인정하는 가운데 조교수가 된 자신이 수술하기에 살릴 자신이 있었다. 어떤 경우가 닥쳐도 반드시 살릴 수 있다고 믿었다.
어머니이기에 다른 생각은 할 수도 없었다.
띠띠띠띠띠띠!
급박한 심박동 소리.
바이탈을 유지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마취과.
온통 피로 찬 배 속과 핏기 잃은 피부.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조각난 비장.
순간순간 불안이 다가왔지만 최고의 수술 팀을 꾸렸다.
이혁민과는 눈빛만으로도 의사를 전할 수 있을 정도로 호흡을 맞춰 왔다.
빠르게 비장을 제거하고 출혈 부위를 묶었다.
다른 장기 손상 여부까지 확인한 후, 배를 닫기까지 불과 한 시간 반도 걸리지 않았다. 드레인을 따라 나오는 삼출물에 피도 거의 섞이지 않았고, 자식의 마음을 느꼈는지 어머니가 눈을 떴다.
“어머니!”
“준영아, 난 괜찮아.”
최소한 반나절 이상은 의식이 또렷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수술 직후인데도 천운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빠른 반응이었다.
한결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송재덕이 고개를 흔들며 답답한 숨을 털어 냈다.
혹시 있을지 모를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해 중환자실로 옮겼다.
한참 동안 함께 있던 교수들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분주함이 사라지자 침대 앞에 앉아 어머니를 지키는 내내 말로 표현하지 못할 감정에 휩싸였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다신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을지도 몰랐다. 일반외과 의사가 돼 최선을 다해 실력을 쌓아 온 것이 이토록 고맙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어머니, 수술 잘됐습니다. 곧 일어나실 겁니다.’
그때 간호사가 다가왔다.
“선생님, 응급실에 환자 있대요.”
“알았습니다.”
다시 한 번 어머니 상태를 꼼꼼하게 확인한 후 응급실로 내려갔다. 안정적인 바이탈, 어느 수술이나 그렇듯 약간의 피만 섞였을 뿐 조금도 문제가 없는 드레인까지 어머니의 회복은 시간에 달린 일이었다.
‘오늘 같은 날은 환자가 없었으면 좋겠는데.’
바람과 달리 수술을 요하는 환자는 어머니만이 아니었다. 연이어 수술을 해야 했고, 당직 전공의 모두 수술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어느새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밤을 꼬박 새웠다.
마지막 수술까지 무사히 모두 끝냈다.
평소였다면 몸은 피곤해도 환자의 생을 지켜 냈다는 보람에 마음의 피로를 잊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느 때와 비교할 수조차 없는 극심한 긴장을 느낀 밤이었다.
무거운 다리를 끌며 중환자실로 향했다.
그때 중환자실 문이 벌컥 열렸다.
허겁지겁 달려오던 간호사가 소리쳤다.
“이준영 선생님!”
간호사의 목소리가 비명처럼 복도를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