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지금만 같아라 Ⅱ (2)
마음은 이미 콩밭에 가 있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다 모이신 겁니까?”
“다른 게 아니라, 우리 과 일이 오늘부로 모두 결정이 돼서 알려 주려고 한다. 그 전에 니 이제 한 달 정도밖에 안 남았잖아. 예약된 수술은 4월 안에 다 해결되나?”
“예. 5월까지 밀리진 않았습니다.”
“다행이다. 수술만이 아니라 진료도 문제야. 이번 주부터 기존 예약 수술만 하고, 진료 역시 신환은 보지 마라. 혹시 수술이 필요한 환자를 보게 되더라도 오 교수에게 맡겨.”
김지훈의 관심이 잠깐 면접과 멀어졌다.
안 그래도 상의해야 할 일이었다.
이혁민 교수의 말은 반갑지만 스승에게 가중될 부담과 가장 힘들 오창도가 마음에 걸렸다. 손일석이 일부 분담한다고 해도 파트가 달라 얼마나 도움이 될지 알 수 없었다.
슬며시 스승을 보았다. 무뚝뚝한 표정뿐, 아무 말도 없었다.
‘이럴 때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알 수가 없네.’
오창도는 조금도 걱정 말라는 듯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았다. 마음을 편하게 하는 미소에 고개 숙여 고마움을 전했다.
이혁민 교수의 말이 이어졌다.
“손일석에게 당직 자리 넘기고 그만 서라. 만에 하나 손이 딸리면 그때만 도와주면 된다.”
아직 한 달이나 남았는데 당직까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손일석은 이미 들었는지 좋아 죽겠다는 얼굴로 살랑살랑 손만 흔들었다. 오성민과 김경수는 부러운 입맛만 다셨다. 몸은 고될지 몰라도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도리어 기분 좋게 다가올 때였다.
펠로우 시작한 지 이제 한 달이 지났을 뿐이었다.
군대 3년의 공백이 떠오르며 왠지 마음에 걸렸다. 갑자기 일이 많아진 상황이라 조금 더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펠로우 선생들 일정 때문에 손이 부족한데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정규 일과만 줄어도 준비할 시간은 충분합니다.”
손일석의 손이 책상 밑에서 난리가 났다.
‘김지훈, 너 왜 이래? 난 괜찮아.’
묘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과장으로서 내리는 내 마지막 결정이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내 결정이 아니라 박 교수 뜻이다.”
“박승준 선생님이요?”
“그래. 내일부터 박 교수가 정식으로 과장이 된다. 어차피 지훈이 니를 빼고 과를 운영해야 한다면 지금부터 적응하는 편이 낫다고 했고, 나도 동의한다.”
그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김지훈을 배려한 것이 분명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그동안 쌓인 피로가 결코 적지 않음을 잘 알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감사한 일이었다.
한편으로 가슴이 살짝 무거워졌다.
‘인턴 때부터 날 아껴 주셨는데, 어느새 과장 자리까지 놓으실 때가 됐나? 다른 과에 비하면 너무 빠른 것도 사실인데, 더 하시면 안 될까?’
스스로 자리 욕심보다 환자 욕심을 더 세우는 의사가 되기를 바랐는데 서운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그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이혁민 교수가 등을 툭 두드렸다.
‘이준영 선생님 아니었으면 지훈이 네가 내 파트를 이을 수도 있었는데 아쉽다. 대신 현수를 얻었으니까 손해 본 장사는 아니지.’
“박 교수가 내보다 더 잘 이끌 거다. 박 교수, 할 말 있나? 한마디 해야지.”
“열심히 하겠다는 말씀밖에 드릴 말이 없습니다. 선생님께서 어떻게 하셨는지 똑똑히 봤고, 앞으로도 누가 되지 않도록 계속 가르쳐 주십시오.”
“겸손 떨지 않아도 된다. 믿고 있어. 다들 뭐 하나?”
손일석이 재빨리 손뼉을 마주쳤다.
한동안 박수 소리가 회의실을 울렸다.
“알려 줄 일이 더 있다.”
박승준 교수만이 아니라 일반외과 전체에 경사가 겹쳤다. 한 마디 한 마디 나올 때마다 박수가 터졌다. 손바닥이 얼얼할 정도로 기쁜 일이 많았다.
송재덕 교수가 연임됐다.
“축하드립니다.”
“축하할 일 아니다. 아니야. 일할 사람이 나밖에 없는 것도 아닌데 힘들다. 힘들어. 나도 박 교수, 경석이하고 칼바람 날리고 싶은데 될지 모르겠다. 이러다 의사가 아니라 행정직 되겠어. 행정직.”
이준영 교수가 진료 부장이 됐다.
‘와! 스승님이 진료 부장을 맡으셨다고? 이러다 곧 원장님 하시는 거 아니야?’
가장 자리 욕심이 없는 스승이기에 깜짝 놀랄 일이었지만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실력이 있다고 해도 인망이 두텁지 못한 의사는 대가라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 간담도 학회를 주관할 정도로 외부에서도 큰 신뢰를 받는 스승이었다.
병원 내부에서 가만 놔둘 상황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등 떠밀려 맡았을 테지만, 수락한 이상 결코 자신의 일을 방기하거나 소홀할 스승이 아니었다.
김지훈 입장에선 ‘빵빠레’라도 울려야 할 경사였다.
“축하드립니다.”
아무 말도 없이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들뜬 목소리에 입가가 살짝 움직이긴 했다.
신기동 교수가 올해 본격적으로 가동될 간 센터 센터장이 됐다. 축하드린다는 김지훈과 손일석을 날카로운 눈매로 번갈아 보며 혀를 찼다.
“하필이면 이때 유학을 가? 김지훈, 준비가 여의치 않으면 일이 년 더 일하고 가라.”
“예? 일이 년 후예요?”
“신 교수, 농담으로 받아들일 사람이 아니다.”
이제야 이준영 교수가 입을 열었다.
김지훈 너무 무시했다. 농담인 줄 다 알고 있다.
도리어 가장 눈치 빠른 손일석이 섬뜩했다는 듯 부르르 어깨를 떨었다. 스승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에 앞뒤 맥락을 잊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동훈 교수가 응급실 부장이 됐다. 김지훈, 신현수, 펠로우 선생들이 잘 적응하고 있으니까 그만 나와. 앞으로 아침 일찍 송재덕 선생님과 이준영 선생님 볼 일 없을 거야. 부담 덜어서 마음까지 더 편해지겠다.”
“이 과장, 왜 이래? 왜? 쟤들은 나 못 보면 입에 가시가 돋는 애들이야. 준영이하고 얼마나 즐겁게 일했는데,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지훈아, 현수야, 경석아, 교수들아, 내 말이 맞지? 그치?”
“예. 선생님 덕분에 편하게 일했습니다.”
“거봐. 일석아, 지 교수하고 나까지 다 보면 좋겠지? 안 좋니? 왜 똥 씹은 얼굴이니?”
“그럴 리가 있습니까? 연세도 있으신데 매일 아침 일찍 나오시면 힘드실까 봐 걱정이 되긴 합니다.”
“연세? 내 나이가 어때서. 나이 먹었다고 무시하는 거야? 너도 내 나이 돼 봐. 아침에 잠 안 와. 잠이. 새벽에 눈이 발딱발딱 떠져. 나쁜 놈아!”
잔뜩 핀잔먹은 손일석이 자라목을 했다.
어쨌든 정말 기분 좋은 날이었다.
특히 스승의 일은 가슴마저 벅차게 했다.
‘스승님, 축하드립니다.’
어마어마한 소식에 도취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불현듯 다가온 서늘함에 시계를 본 김지훈이 화들짝 놀랐다.
이준영 교수가 손짓을 했다.
“지금 가면 보겠다. 먼저 일어나.”
꾸벅 인사하고 발표 장소로 달려갔다.
뒤따라 붙은 즐거운 웃음소리가 무색하지 않도록 최고의 결과가 나오기를 바랐다.
숨을 헐떡이며 막 도착하는 순간 고경아도 부리나케 달려오고 있었다.
함께 눈만 마주친 후 발표부터 확인했다.
이름 하나가 눈에 딱 띄었다.
고경아!
최종 합격이다.
무시무시한 경쟁률을 뚫고, 불과 5명만이 얻는 연수 기회를 잡았다. 이제 온 가족이 함께 유학길을 떠날 수 있다. 어마어마한 감동이 밀려들었다.
고경아와 함께 각자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달릴 수 있다는 사실에 전율이 느껴질 정도였다.
희연이를 떼어 놓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축복이자 더없는 행복이었다.
“경아 씨, 축하해요. 최고야, 최고.”
고경아가 상기된 얼굴로 입을 열지 못했다.
누구보다 가슴이 뜨겁고, 감동적이고, 기쁠 것이다.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고경아의 손을 꼭 잡았다.
병원 식구들이 지나가며 힐끗힐끗 눈길을 주었다.
가운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가 직장에서 서로에 대한 애정을 가감 없이 내보였다. 안면이 있든 없든 이상하긴 할 것이다. 사실 보는 눈 없었으면 진한 사랑의 키스를 퍼부었을 김지훈이었다.
4월 첫 번째 주, 최고의 선물이 잇달았다.
여세를 몰아 주말을 충분히 즐겼다.
***
하나하나 정리할 시점이었다.
부분적으로 맡았던 혈관 파트를 손일석에게 모두 넘겼다. 퍼스트를 서며 부족한 부분을 상기시켰고, 신기동 교수는 지켜만 보았다.
송진우와 강병옥은 예정대로 라파로 집도를 했다.
수술이 끝난 후 휴게실에서 혀를 빼물었지만 두 눈은 활짝 웃고 있었다. 시간과 조건만 맞는다면 한 번 더 해 보고 싶다는 강렬한 의지를 보였다.
기분 좋은 열정이었다.
일상이 어색할 정도로 편해졌다.
예약된 수술만 시행했고, 진료는 재진 환자만 담당해 스트레스받을 일이 없었다.
예정됐던 당직 날, 손일석이 손사래를 치며 밀어내 4월 내내 따박따박 퇴근할 수 있었다.
병원과 협의하에 유학 갈 병원이 정해졌다.
간호사 연수 병원이었고, 국내에서도 간간이 소개돼 웬만하면 들어 봄 직한 곳이었다. 일반외과에 상당한 강점이 있어 천만다행이었다.
떠나기 전 인사해야 할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모두들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주고, 한동안 못 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아쉬워했다. 쌓이고 쌓인 인연의 정이 적지 않음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지훈아, 배울 것이 정말 많을 게야. 지금까지 네가 가져왔던 마음가짐이면 다른 문제는 없을 테니, 경아와 함께 몸 건강히 잘 다녀와.”
‘큰 스승님, 항상 건강에 유념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준영아, 무뚝뚝하게 보고 있지만 말고 고 원장과 상의해서 부족한 점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예, 스승님.”
허경발 교수님의 허리는 여전히 꼿꼿했다.
젊은 시절의 호랑이 같은 기운이 오래도록 남아 있기를 바랐다. 일반외과를 반석에 올려놓은 노대가는 살아 있는 가르침 그 자체이기 때문이었다.
“김 서방, 빠진 거 없이 다 챙겼지? 경아야, 혹시 부족한 게 있으면 바로바로 연락해. 희연이 잘 키우고.”
“김 서방, 경아야, 잘 다녀와. 우리 희연이 얼굴 한동안 못 볼 걸 생각하니까 할미 마음이 아파요. 희연아!”
제부! 형부! 동서! 매형!
“지훈아, 간만에 이름 한번 불러 보자. 건강하게 잘 다녀와. 혹시 미국으로 출장 갈 일 있으면 연락할게. 승희가 너 보고 싶어 했는데 학원이다 뭐다 바쁘네. 요샌 애들이 어떻게 된 게 더 바쁘다.”
8년 전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앞으로도 쭉 이어질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감사한 일이었다.
“지훈아, 교수야, 이제 정말 떠나는구나. 전에 내가 한 말 잊지 않았지? 대장 이식도 가능한지 잘 봐. 될지, 안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뭐 그건 그거고, 돌아와서 대장 하자. 대장. 너 여기까지 오는 데 내 공이 제일 큰 거 알지? 그치? 내 말이 맞지?”
“타국 땅이다. 무엇보다 건강에 유념해라.”
“남들 다 가는 유학인데 뭘 인사까지 해? 유학 가는 그 동네가 아마 꽤 따뜻할 거야. 놀러 다닐 생각 말고 열심히 해. 다녀와서 보자.”
여전한 교수들이었다.
“김 교수, 잘 지내. 지 교수랑 나랑 응원할게.”
“김지훈 선생님, 무엇보다 건강이 제일인 거 알죠? 그쪽 분위기 따라 절대 무리하지 말아요.”
새로운 인연으로 이어진 교수들 역시 고언을 아끼지 않았다.
“지훈아, 내가 해 준 말 잊지 마. 미국 의사들 상당히 냉정해. 밖에서는 웃다가도 일과 관계되면 굉장히 이성적이니까 적절하게 처신해.”
“나도 유학이란 거 한번 가 보자. 어떻게 일하고 살아야 하는지 꼼꼼하게 기억해.”
“선생님, 안녕히 다녀오십시오.”
“선생님! 저 수련 끝나기 전에 꼭 오셔야 돼요. 라파로 주셔야죠.”
변함없는 동기와 후배들이었다.
생각보다 남은 사람이 많았다.
최철한, 유석재를 비롯해 군대 가 있는 후배들은 물론 고향 친구들과 최소한 전화 한 통이라도 해야 했다. 선후배 사이 이상으로 깊은 정이 든 이혁원과는 꽤 긴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선생님, 저 인턴 때 아버지를 다시 볼 수 있게 도와주신 일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 말이 유독 가슴에 와닿았다.
영어 회화 수업이 끝났다.
김지훈이나 고경아나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살며 부대끼며 익히면 될 것이다.
신현수와 윤서연의 조언을 따라 짐은 꼭 필요한 것만 챙겼다. 돈으로 대신해야 하지만 저축하기 위해 떠나는 유학과 연수가 아니었다.
“비행기 타는 시간이 꽤 길 텐데, 희연이가 괜찮을지 모르겠어요.”
“경아 씨하고 나랑 번갈아 달래는 수밖에 더 있겠어요? 며칠 안 남았는데 의외로 덤덤하네.”
고경아도 아직 실감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뒤적뒤적 짐 가방을 뒤지던 김지훈이 시계를 보았다. 고경아도 어느새 희연이와 외출 채비를 마쳤다.
“가죠.”
약속된 식당 앞에 선 김지훈이 긴 숨을 내쉬었다.
내뱉는 숨마다 아쉬움이 잔뜩 실렸다.
기약할 수 없는 스승과의 마지막 식사 자리였다.
“앉아.”
천천히 평소와 다름없이 밥을 먹었다.
고경아와 사모의 나직한 대화 소리는 끊이질 않았지만 스승과 제자는 묵묵히 수저질만 했다.
밥그릇이 비워질 무렵, 그동안 주로 맥주만 마시던 스승이 웬일인지 소주를 시켰다.
“마시자.”
한 잔, 두 잔.
한 병, 두 병.
김지훈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스승이 이렇게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은 처음 보았다.
점점 벌게지는 눈 속에 지난 세월의 아쉬움, 제자를 보는 대견함, 고경아와 희연이에게 전하는 애틋함까지 수많은 감정이 뒤섞였다.
사모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말리지 못했다.
스승은 잔만 권할 뿐 아무 말도 없었다.
마지막 잔을 비웠다.
“일어나자.”
스승의 몸이 살짝 흔들렸다.
괜찮다는 듯 손을 들며 김지훈을 보았다. 희미한 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김지훈이 꾸벅 인사를 했다.
“조심해서 들어가십시오. 다녀오겠습니다.”
“다음에 보자.”
무수하게 많은 말이 떠올랐지만 단 한마디밖에 할 수 없었다. 스승도 여느 때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할 얘기 많았을 텐데 좀 하지. 지훈 씨나 선생님이나 어떨 때 보면 똑같은 사람 같아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스승님, 감사합니다.’
내딛는 걸음마다 짙은 어둠이 내려앉았지만 무슨 이유인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스승도 편안한 밤이 되길 바랐다.
***
떠나야 하는 날이 밝았다.
장인어른, 장모님, 스승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손일석과 고경희가 함께했다.
“김 교수, 이 차 정말 좋다. 일요일 아침이라고 길도 하나 안 막히네. 꽤 불안한 눈친데, 잘 관리할 테니까 걱정 꽉 붙들어 매셔.”
“형부하고 언니는 좋겠다.”
“놀러 가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부러워해? 처제, 우리 손 교수도 전임 끝나면 유학 가게 될 거야.”
“그렇겠죠? 오빠! 열심히 해야 돼.”
“어후! 고경희 씨, 내가 지금 김 교수 일을 그대로 맡아 얼마나 힘든지 아시면서 왜 이러십니까? 운전하는 것만으로도 쓰러질 지경입니다.”
가는 내내 수다를 떨었다.
미지의 생활에 대한 기대로 들뜨기도 했지만 서운함을 감추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차 좋다는 소리 연발하는 손일석의 너스레에 웃음만 나왔다.
공항에 도착했다.
수속부터 하고 한국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했다.
점점 기분이 묘해졌다.
고경아는 희연이를 안은 채 약간은 긴장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커피 한잔하는 사이 출국장으로 가야 할 시간이 됐다. 길게 늘어선 줄을 따라 걷는 동안 온갖 상념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여권을 확인하고, 출국장에 첫발을 내디뎠다.
손일석과 고경희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뒤에 스승과 교수와 동기들이, 장인어른과 가족들, 그리고 정훈철이 있는 것 같았다. 2년 후에나 볼 수 있는 얼굴들이었다.
김지훈과 고경아가 손을 들며 훅 숨을 내쉬었다.
여기까지다.
이젠 새로운 세상, 새로운 생활에 전념하고 집중해야 할 때였다. 유학과 연수를 마치고 돌아오면 지금과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결코 2년이라는 세월이 무의미하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할 것이다.
육중한 기체가 떠오르며 묵직한 느낌을 전했다. 태어나 평생 살아온 땅이 발아래 펼쳐졌다.
자! 날아오르자.
우리에겐 꿈꿀 수 있는 미래가 있다.
2부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