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937화 (937/1,329)

5화. 최고의 써전 Ⅱ (2)

가장 핵심적인 과정이 끝났지만 아직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혈액형이 일치한다고 해도 인간의 육체는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 모른다.

이식 수술에서 가장 두려운 합병증 중 하나인 초급성 거부반응이 남았다.

급격한 혈액 응고로 인한 혈류 저하, 이식한 간의 변색, 육안으로 보일 정도의 빠른 염증 반응이 혈관 연결 후 수 분 이내에 나타난다.

이런 증상이 전신으로 파급된다.

수개월에서 수년 후까지 나타날 수 있는 급성 거부반응과는 차원이 다르다.

어떤 약물도 효과가 없다. 환자의 목숨을 위협하기에 해결 방법은 단 하나, 이식 간을 곧바로 제거하는 것뿐이다.

“5분만 기다리자.”

수술 팀 전체가 숨을 죽였다.

째깍! 째깍!

1분, 2분, 3분.

입이 바짝바짝 탔다.

마치 내 몸을 보는 것처럼 심장이 헐떡였다.

터질 것 같은 긴장 속에 5분이 흘렀다.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혈류는 힘찼고, 이식된 간은 탄탄했다.

“바이탈 안정적입니다.”

김진호 교수의 말과 함께 폭발 직전까지 치솟았던 긴장이 다소 완화됐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목과 어깨가 뻐근해 이리저리 돌려야 했다.

아직 갈 길이 남았다.

신기동 교수의 눈길 한 번으로 흔들렸던 집중력이 되살아났다.

담도와 담도를 연결했다.

간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기존 담관에 T-tube를 넣었다. 이식된 간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는지 확인한 후 배 속을 깨끗이 씻었다.

이제 모든 수술이 끝났다.

마무리만 남았다.

신기동 교수도 국내로 돌아와 처음으로 시행한 간이식 수술이 벅찬지 잠시 손을 멈추고 수술 부위를 보았다. 아들의 간은 아버지의 간이 있던 자리를 정확하고 깔끔하게 대신하고 있었다.

함께 점점 검붉은 색으로 탄력을 찾아 가는 간을 보던 김지훈이 흠칫 놀라며 T-tube를 잡았다.

주르륵!

투명한 T-tube를 따라 한 줄기 맑은 갈색 담즙이 흘렀다.

아들의 간에 남아 있던 담즙이겠지만 담도를 연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이토록 원활한 흐름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신호였다.

의미는 명확했다.

아들의 간이 완벽하게 아버지의 몸에 이식됐다.

다시 한 번 성공을 확신하는 순간이었다.

2주에 가까운 준비와 노력 끝에 써전이 반드시 얻어야 할 결과물을 본 것이다.

여기저기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어느 틈에 들어온 이준영 교수와 신현수까지 일반외과 의사는 물론, 결과가 궁금할 수밖에 없는 내과 의사들까지 수술실이 의료진으로 가득했다.

이제 기능이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급만성 거부반응을 비롯해 수많은 난관이 남았지만 완벽에 가까운 수술은 그만큼 위험을 줄여 줄 것이다.

“컷!”

피부 봉합까지 마무리됐다.

마취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것 이외에 더 이상 써전이 할 일은 없었다. 아들의 건강한 간을 받은 아버지가 무사히 눈을 뜨길 바랄 뿐이었다.

김진호 교수가 신중하게 환자 상태를 확인했다.

간부전은 지금도 영향을 끼치고 있을 것이다.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아무도 자리를 뜨지 못했다.

마침내 묵직한 목소리가 수술실을 울렸다.

“산소 풀(Full)로 올리고, 인공호흡기 뺍시다.”

공기 주머니를 짜며 약하게 돌아오는 환자 호흡을 보강하는 김진호 교수의 눈이 긴장으로 가득했다.

째깍! 째깍!

슈우욱! 슈우욱!

공기를 밀어 넣을 때마다 환자의 가슴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산소포화도가 정상적으로 유지되며 코를 자극하는 마취제 냄새가 퍼졌다.

“끄으으응!”

나직한 신음 소리와 함께 환자의 눈꺼풀이 부르르 떨렸다. 앙상한 손가락이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부들부들 떨렸다.

이상옥 환자가 깨어났다.

죽음 직전까지 몰렸던 정신과 육신이 6시간이 넘는 수술을 견디고, 세상으로 돌아왔다.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불끈 쥔 주먹을 흔들었다.

무수하게 봐 왔고, 당연하게 여겼던 순간인데 감동이 다가왔다. 간부전 환자라는 사실 때문인지, 간이식 수술을 성공했다는 사실 때문인지 알 길이 없었다.

‘후! 첫 번째 간이식 수술인데 모든 게 순조로워서 정말 다행이다.’

신현수도 뜨거운 눈길을 보냈다.

의료진 모두 다르지 않았다.

묵직하게 다가오는 벅참과 흥분 한편으로 가슴을 관통하는 차가운 감각에 흠칫 몸을 떨어야 했다.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는 두 명의 의사의 냉철한 이성이었다.

이준영 교수의 무뚝뚝한 눈길, 신기동 교수의 매서운 눈초리가 등짝에 꽂히고 있었다.

‘아직 안심할 때가 아니다. 환자에게 집중하자.’

“회복실로 옮깁시다.”

드르르르! 드르르르!

간이침대 바퀴 소리가 수술 방 복도를 울렸다.

힘없이 흔들리는 환자의 손목에 정신 바짝 차렸다.

이상옥 환자가 가까스로 눈을 떴다. 마취 기운이 남아 있는 눈길이 김지훈에게 향했다.

“우리 철우는?”

이제 회복실로 옮겼다.

첫마디가 아들이었다.

순간 울컥하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가족 사이에 흐르는 뜨거운 사랑이 진하게 와닿았다. 그런 사랑이 사라지지 않는 한 죽음과 같은 간부전을 아들의 간을 빌려 이겨 낼 것이다.

“수술 잘 끝나서 병실로 올라갔습니다. 환자분은 오늘 하루 중환자실에 계신 후, 문제없으면 기존 병실로 가시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마취 기운이 남은 환자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나직한 숨소리가 시시때때 불규칙해졌다. 가뜩이나 쇠약했던 환자에게 가해지는 수술 후 스트레스와 통증 때문일 것이다.

이 역시 잘 이겨 낼 것이다.

드르르르! 드르르르르!

마취가 충분히 풀린 후 중환자실로 옮겼다.

수술 후 필요한 각종 검사가 진행됐다.

손가락 하나 까딱이기 힘들 텐데 잘 버텼다.

아들을 수술한 팀과 아버지를 수술한 팀 모두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걱정과 불안 속에 무사히 회복되기를 바라는 기대와 수술 성공의 흥분이 어지럽게 교차했다.

송진우가 드레싱을 했다.

드레인은 물론 T-tube까지 깨끗했다.

집도의의 정확하고 깔끔한 손 덕분이었다.

검사 결과를 확인하며 환자 상태를 주시하던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리며 생각에 잠겼다.

스승의 간 절제와 신기동 교수의 간이식 과정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마치 지금도 수술 중인 것 같았다.

간담도 대가가 혈관을 자유자재로 다뤘다. 혈관 대가는 간을 너무도 익숙하고 쉽게 절제하고, 연결했다. 두 교수에게 다른 분야가 가져오는 제한은 없었다.

여전히 충격적이었다.

그동안 피상적으로 생각했다.

대가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제야 실감나게 다가왔다. 평생의 목표인 최고의 써전이 어떤 써전인지 손에 잡힐 것 같았다.

이렇게 깊게 다가온 적은 없었다.

‘스승님과 신기동 선생님의 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렸다.

실로 범접도 못할 실력이었다.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었다.

다른 교수들은 다를까?

송재덕 교수, 이혁민 교수를 비롯해 모든 교수들이 자신의 분야에 관한 한 모두 최고의 써전이라 생각했다. 지금까지 그렇게 여겨 왔는데 틀린 생각이었다.

대가는 환자를 가리지 않듯 자신의 분야에 국한되지도 않았다. 환자의 육신, 하나의 배 속에 담긴 장기를 다루는 손길에 특별함과 보편성이 공존하고 있었다.

8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보아 왔으면서, 최고의 써전을 지향하면서도 정작 피부로 느끼지 못했다.

‘제네랄! 그레이트! 그 속에 담긴 뜻을 제대로 안 적이 없었네. 내가 택한 분야에만 매달린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어. 바보 같은 놈!’

어이가 없다 못해 머리가 헝클어질 지경이었다.

찬찬히 다시 정리했다.

자부심과 자만은 한 끗 차이에 불과했다.

동기보다 조금 더 나은 실력으로 방심한다면 자만일 테고, 부족함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유학은 배움의 연장선이다.

병원에서 모든 비용을 대 준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조그만 인정이자 분에 넘치는 배려일 뿐이었다. 혹은 미래에 대한 투자의 연속일 뿐이었다.

교수와 동기들 모두 물심양면으로 가르치고 도우며, 방심하지 않도록 경계한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그 속에 담긴 의미야말로 평생 잊지 말아야 할 일이었다.

‘난 아직 멀었어.’

물끄러미 환자를 보며 상념에 잠겼던 김지훈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직도 스승과 신기동 교수의 경이적인 손이 눈에 선했지만 감탄이나 자책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환자였다.

더구나 간을 주고받은 아버지와 아들이다. 속이 타다 못해 애간장이 녹아내렸을 보호자 역시 의료진이 치료해야 할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이준영 교수, 신기동 교수의 회진을 따라 돌던 김지훈이 귀를 기울이면서도 뒤로 한발 물러섰다.

지금은 의사마다 조금이라도 말이 다르면 안 되는 시기였다. 환자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했다고 해도 집도의이자 주치의인 교수들의 판단과 말을 넘어서면 안 된다. 간이식 후 어떤 말을 하고, 어떻게 치료하는지 확실하게 배우는 것이 먼저였다.

가뜩이나 심난한데 이철우가 기름을 부었다.

“선생님, 아버지는 괜찮으세요?”

복부에 난 절개창이 결코 작지 않다.

근육 힘이 상당히 강한 나이기에 도리어 통증이 심할 수 있었다. 간 절제 면에서 옆구리로 뺀 드레인이 뻘겋게 물든 채였다.

“오늘 하루 중환자실에서 볼 겁니다.”

“예? 혹시 수술이 잘못됐나요?”

수술 전 이미 설명했던 일이었다.

절대안정이란 팻말을 빤히 보면서도 일어나려 애썼다. 급격하게 느껴지는 통증으로 찌푸린 눈가에 아버지에 대한 걱정만 보였다.

“이철우 씨, 수술 전 분명히 수술 후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절대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을 텐데요. 함부로 움직이면 수술 부위가 터집니다.”

“그래도 아버지부터…….”

이준영 교수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이철우 씨, 아버님 수술은 잘됐습니다. 치료는 우리에게 맡기고 지시를 따르세요. 이식 성공 여부 확정 전에 본인부터 회복돼야 아버님도 무사히 건강을 되찾으실 겁니다.”

단호한 말에 이철우가 마지못한 얼굴로 누웠다.

왠지 마음이 먹먹하면서도 따뜻했다.

어머니마저 중환자실 앞을 지키느라 아무도 없는 병실이건만 가족 모두가 함께 있는 느낌이었다. 쉽게 볼 수 있는 가족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이준영 교수가 신신당부하고 병실을 나갔다.

“운동하라는 지시가 있을 때까지 꼼짝도 하면 안 됩니다.”

뒤따르는 순간 이철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우리 아버지 꼭 회복되셔야 합니다. 저보다 아버지를 부탁드립니다.”

22살이란 나이가 많을까?

험한 세상을 알기에,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이 무엇인지 알기에 긴 세월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철우에겐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었다.

‘정말 많은 것을 나눈 가족인 모양이다.’

단란하거나 애틋하거나 사랑이 넘치는 가족의 모습에 유난히 감정적 동요가 심한 김지훈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눈가가 붉어지는 순간이었다.

어느새 치열했던 하루가 끝을 보였다.

두 명의 대가가 보여 준 힘은 일반외과 전체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엄청난 수술을 본 덕인지 오창도를 비롯해 수술에 참가했던 모든 의료진의 얼굴이 자못 심각했다.

김지훈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더욱 심난해지는 순간이었다.

이준영 교수, 신기동 교수, 신현수와 함께 마지막으로 환자를 찾았다.

꼼꼼하게 상태를 확인한 신기동 교수가 힐끗 김지훈과 신현수를 보았다.

최고의 써전을 꿈꾸는 의사!

자신이 꾸었던 꿈이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기에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를 수 없었다. 솔직히 이준영 교수는 아직도 넘고 싶은 산이었다.

‘수술 끝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심각하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야 떨어지지 않는 법이다. 지금까지 잘해 왔다고 스스로 증명했으니까 고민할 일 아니다.’

“경아 덕분에 수술이 상당히 편했다. 많아야 한두 건이겠지만, 연수 가기 전까지 쭉 들어와야겠어. 시험과 면접은 실전적인 면이 상당 부분 차지한다니까 걱정할 일 없다.”

고경아에 대한 관심과 칭찬에 김지훈의 입이 슬며시 찢어졌다. 다른 때 같았으면 좋아 어쩔 줄 몰랐겠지만 오늘 받은 충격에 심난함과 찜찜함이 가로막았다.

속마음을 알기라도 한 것일까?

“김지훈, 너도 열심히 했다. 마음에 든다. 유학 가기 전에 손일석 손도 만들어 봐. 기대한다.”

이준영 교수의 입가가 슬쩍 말렸다.

“신 교수, 기분 좋은 모양이다. 신현수, 열심히 한 게 눈에 보인다. 나도 기대하마.”

귀를 의심해야 했다.

‘지금 우리를 칭찬하고, 인정하신 건가? 두 분이 동시에?’

눈만 껌벅거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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