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936화 (936/1,329)

5화. 최고의 써전 Ⅱ (1)

이미 환자를 옮긴 후였다.

김진호 교수가 간호사와 함께 심각한 표정으로 마취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고경아 역시 눈가에 잔뜩 힘을 준 채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환자 앞에 섰다.

앙상하게 마른 손을 잡는 순간 폭발적인 긴장감이 느껴졌다. 건장한 사람도 버티기 힘든 수술이다. 간부전에 빠진 지 오랜 환자가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능숙한 손길 아래 마취가 끝났다.

“선생님, 수술 시작하셔도 됩니다.”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신기동 교수가 메스를 드는 순간 스승의 얼굴이 겹쳤다. 완벽하게 퍼스트를 서야 한다는 생각을 비롯해 모든 것을 잊고 오직 수술에만 집중해야 할 때였다.

날카로운 메스가 예리한 빛을 뿌렸다.

바짝 마른 배는 너무 쉽게 속살을 보였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보비! 수처! 타이!”

빠르게 복벽이 열렸다.

어딘가 핏기를 잃은 것 같은 장기가 드러났다.

만성 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보이는 전형적 특징이었다. 보이는 것 이상으로 무척 약하다는 의미기에 동작 하나하나를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는 분명한 경고였다.

모든 장기를 샅샅이 확인했다.

이상 없다는 결론 아래 간을 노출시켰다.

정상적인 간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줄어든 간.

자갈을 깔아 놓은 것처럼 거친 표면.

검붉은 색으로 반짝반짝 빛나며 탄력을 보여야 할 간 대신 혈색을 잃어 허옇게 변한 간.

이상옥 환자를 죽음 직전까지 밀어붙이고 있는 장기가 환히 드러났다. 이제 쓸모없어진 간을 제거하고, 아들의 간을 그 자리에 넣어야 한다.

신기동 교수의 담담한 목소리가 수술실을 울렸다.

“간 전체 제거 시작합니다. 멧젬!”

이식 수술의 첫 번째 과정이 시작됐다.

간 전체 적출이다.

간은 인체에서 가장 크고 무거운 장기다. 따라서 지지하는 연결 조직이 많다.

횡격막, 위, 십이지장, 담도, 혈관은 물론 대장까지 얇은 막으로 연결돼 있다. 그 모든 연결 조직을 잘라야 간을 모두 들어낼 수 있다.

3차에 걸친 공식 점검을 마쳤다.

어떻게 진행할지 머릿속에 각인돼 있다.

간을 모두 제거한다고 해서 간 손상을 입혀도 좋다는 말은 아니었다. 도리어 간부전으로 인한 지혈 기능 저하 때문에 출혈 제어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

좌측 간과 위 사이의 연결 조직부터 잘랐다.

“켈리! 타이!”

연약한 지방조직 속에 굵은 혈관이 숨어 있다.

신기동 교수의 눈에는 환히 보이는지 거침없었다.

켈리로 조직을 잡고 자른 후 타이가 이어졌다.

시야가 좋은 부위라 힘들 이유가 없었지만 약하지 않은 부위가 없다. 실이 아니라 조직과 혈관이 끊어지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했다.

빠르게 위와의 연결이 끊어졌다.

간과 가장 길고 넓게 연결된 횡격막 부분으로 넘어갔다. 마치 힘줄처럼 상당히 질기고 단단한 조직과 몇몇 혈관으로 구성돼 있다.

켈리로 박리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보비!”

삐이이이이! 삐이이이이!

과감하게 연결 조직을 쭉쭉 잘라 갔다.

시야가 점점 나빠지고, 하얀 연기와 함께 핏방울이 살짝 비쳤지만 개의치 않았다. 정확하게 혈관 위치를 파악하고, 필요한 순간에만 수처와 타이를 진행했다.

“수처! 타이!”

간 아랫면과 접한 횡격막 깊은 곳이다.

송진우가 끙! 소리를 내며 리트랙터를 끌었다.

두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듭을 깊게 밀어 넣어야 했다. 질긴 구조물이기에 끊어질 위험은 적다지만 혈관을 묶어야 한다.

신중하면서도 빠르게 타이를 진행했다.

“보비! 수처! 타이!”

신기동 교수의 손이 간 뒤편으로 몇 번 사라졌다 보이길 반복했다. 단단하게 붙어 있던 연결 조직이 완전히 떨어져 나갔다.

박리 부분을 씻어 낸 물이 깨끗했다.

의미 있는 출혈은 없다는 징후였다.

우측부와 상부가 자유로워진 간이 아주 쉽게 움직였다. 시야 확보가 한결 용이해져 수술하기 편해졌지만 무리한 조작은 금물이었다. 이리저리 과도하게 간을 끌고 당기다가는 자칫 주변 조직과 연결된 구조물이 찢어질 수 있다.

출혈은 어느 수술에서나 치명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

결코 방심하지 말고 수술 내내 조심해야 한다.

십이지장과 연결된 부분은 더욱 그렇다.

“모스키토!”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적절한 기구를 사용해 박리를 시작했다. 이미 어떤 기구가 필요한지 파악하고 있는 고경아의 침착한 어시스트 덕분에 물 흐르듯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신기동 교수의 손이 신중해졌다. 마치 혈관 수술을 할 때처럼 매서운 눈빛을 감추지 않았다. 십이지장 손상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보비! 수처! 타이!”

만에 하나 발생할지 모를 손상은 집도의만이 아니라 퍼스트의 책임이기도 했다. 같은 과정의 반복이었지만 김지훈 역시 더욱 침착하게 움직였다.

갈수록 시야가 좁고 깊어졌다.

신기동 교수는 물론 김지훈에게도 결코 무리한 과정이 아니었다. 더 위험하고 중요한 과정을 앞두고 시간을 소비할 부분도 아니었다.

우측 간과 십이지장이 분리됐다.

연속적으로 대장과의 연결까지 제거했다.

이제 간 혈관과 담도만 남았다.

공여된 간과 연결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길이를 확보해야 한다. 십이지장 박리는 쉽게 느껴질 정도로 어려운 과정이 이어질 것이다.

김지훈이 긴장을 풀기 위해 훅! 숨을 내쉬었다.

신기동 교수는 전적으로 신뢰하는지 눈길도 주지 않았다. 수술 부위에 눈을 고정한 채 손을 내밀며 다음 과정을 생각할 뿐이었다.

“모스키토! 보비!”

삐이이이이! 삐이이이이!

최고의 써전은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어느 장기를 수술하든 원칙이 달라지지도 않는다.

담낭 몸통을 아주 손쉽게 박리했다.

툭툭 떨어져 나가는 몸통 끝과 연결된 담낭 동맥과 담낭관을 찾았다. 담도와 간 혈관의 정확한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다.

해부학을 유난히 강조했던 신기동 교수였다.

모스키토로 슥슥 지방조직을 제치자 총수담관이 드러났다.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기형에 대비해 췌장 관과 합류되는 지점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김지훈, 이 부분 맞지?”

처음으로 김지훈의 판단을 물었다.

사실 물을 이유도 없었지만 냉철함 속에 숨겨진 신중함은 백 퍼센트 확인을 요구하고 있었다.

“맞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총수담관을 덮고 있는 지방조직을 박리했다. 과감하고 빠른 손길 아래 간으로 뻗은 담관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켈리! 가위! 겸자!”

담낭을 모두 제거하고 담관을 잘랐다.

김지훈이 거무칙칙한 담즙을 재빨리 씻어 냈다.

따르륵! 따가각!

곧바로 겸자를 이용해 담관을 막았다.

잘린 담관 밑으로 혈관으로 의심되는 구조물이 주행하는 흔적이 보였다.

간 동맥, 간정맥, 간 문맥이 서로 바짝 붙어 있을 것이다. 확실하게 구분하고 잘라야 공여자의 혈관과 정확하게 일치시킬 수 있다.

이식 수술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혈관을 둘러싸고 있는 조직 박리가 시작되는 순간 긴장이 배가됐다.

써전이 된 이후 혈관만을 다뤄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신기동 교수의 눈이 매서워졌다.

깨끗하게 박리된 간정맥이 잘렸다.

파란 줄로 남은 정맥을 걸었다.

간 문맥이 깔끔하게 잘렸다.

노란 줄을 걸어 확실하게 구분했다.

김지훈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후우! 숨 쉴 틈도 없는데 정말 정확하게 진행하시네.’

그때 스르륵 수술실 문이 열렸다.

오창도와 이경석이 절제된 간을 들고 한쪽에 자리 잡았다. 꾸준히 관류액을 주입하며 번갈아 수술 부위에 시선을 주었다. 적출 직전이라는 사실에 상당히 놀라는 표정이었다.

신기동 교수의 집중력은 한 치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보비! 타이! 수처!”

툭툭 뛰는 간 동맥을 자르고 빨간 줄을 걸었다.

이로써 가장 깊숙한 부위에 남은 마지막 간 연결이 끊어졌다. 간경화로 돌처럼 굳은 채 크기마저 줄었던 간을 조심스럽게 배 밖으로 꺼냈다.

간이 있던 부위가 휑했다. 주변 장기와 연결됐던 흔적만이 남았다.

어떤 장기도 적출은 쉽지 않다. 거즈에 점점이 묻는 선혈과 수술 부위를 씻어 낸 깨끗한 물이 얼마나 정확하고 완벽하게 진행됐는지 알려 주었다.

‘이렇게 깔끔할 수도 있나?’

경이롭다는 생각뿐이었다.

이제 아들의 건강한 간을 이어야 한다.

신기동 교수의 눈짓에 고경아가 오창도에게 받은 절제된 간을 건넸다. 피가 제거돼 창백하지만 탄력을 잃지 않은 간 밑으로 세 가지 색 줄이 달려 있었다.

“김지훈, 잘 봐. 이 정도 크기는 돼야 이식의 의미가 있어. 잊지 마. 다행히 환자 혈관도 제법 튼튼해서 연결만 확실하게 하면 수술로 인한 문제는 없겠어. 고 간호사, 루뻬!”

야시경처럼 생긴 확대경, 루뻬를 썼다.

손목 혈관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굵은 간 혈관이 시야를 꽉 채웠다. 육안으로도 봉합이 가능할 정도였지만 그만큼 정교하게 수술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파란 줄로 표시된 간정맥부터 이어야 한다.

어떤 실수도 용납되지 않기에 정맥이 확실한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시작합시다.”

손목 혈관 접합의 연장선이다.

고경아가 미리 준비하고 있던 실과 필요한 기구를 건넸다. 헤파린이 섞인 물로 혈관을 지속적으로 씻어 내며 정맥과 정맥을 연결했다.

사람마다, 혹은 체격에 따라 혈관 굵기는 다르다. 미세한 차이라면 모르지만 육안으로도 차이가 보일 정도면 자연스럽게 연결하기 쉽지 않다.

아버지와 아들의 혈관도 다르지 않았다.

‘처음부터 간격 조절을 확실하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혈관이 찌그러지는 부분이 생기겠어. 혈전이 생기는 주요한 원인인데 정말 주의해야겠다.’

나름 걱정을 하며 퍼스트를 서던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리고 말았다. 정교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신기동 교수는 정확하게 두 개의 혈관을 연결했다.

“타이!”

정맥은 가장 약한 혈관이다. 타이하다 손상을 주면 다시 자르고 이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가느다란 실이 전하는 아슬아슬함에 불안감이 치솟았다. 손끝으로 전해져 오는 감각에 몰두하다시피 집중해야 했다.

‘그동안 열심히 했구나.’

내심을 감춘 신기동 교수가 노란 줄을 잡았다.

정맥 못지않게 약한 문맥을 다루는 내내 신기동 교수는 침착했다.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긴장 속에 타이하는 김지훈과 확연한 차이가 보였다.

굵고 약한 문맥이 하나로 이어졌다.

마지막 혈관이다.

동맥과 동맥이다.

혈관 벽은 가장 두껍지만 대신 상대적으로 가장 가늘다. 수처 시 혈관 벽을 너무 많이 뜨면 연결 후 내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간 혈류가 부족해질 것이다.

최악의 경우 좁아진 연결부에 혈전이 발생하면 이식된 간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수 있었다.

이식 실패와 직결되는 문제였다.

지금이야말로 써전의 실력에 성패가 달렸다.

첫 바늘이 들어가는 순간 수술실이 완벽한 침묵에 잠겼다. 나직한 심박동 소리와 수술 팀의 가벼운 기척조차 크게 들릴 지경이었다.

수처를 하는 신기동 교수의 눈은 침착하기만 했다. 한 바늘 한 바늘 동맥과 동맥을 연결하는 손은 정교하기 짝이 없었다.

타이를 하는 김지훈의 눈가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루뻬를 통해 확대된 동맥이 가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지난 시절 경험을 모두 동원해도 쉽지 않았다. 가중되는 중압감과 부담이 원인일 것이다.

“타이!”

정맥이나 문맥은 대처할 방법이라도 찾을 수 있지만 동맥은 바늘구멍 자체가 손상으로 작용한다. 모든 봉합과 타이는 단 한 번의 기회만 줄 뿐이었다.

절대 끊어 먹으면 안 된다.

매듭진 실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덩달아 긴장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치솟았다.

축축해진 등짝은 이미 땀범벅이었고,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슬쩍 고개를 돌릴 때마다 간호사가 재빨리 이마를 닦아 줘야 할 정도였다.

‘후우! 후우!’

동맥과 동맥 사이가 점점 좁아졌다.

마지막 한 바늘만 남았다.

치명적인 혈전 생성을 방지하기 위해 헤파린 섞인 물로 수차례 씻어 냈다. 하얗고 상대적으로 두꺼운 혈관 벽에 마지막 바늘이 들어갔다.

“타이!”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과 땀이 걸린 타이였다.

매듭을 따라 단단하게 전해지는 압력이 강해지며 아버지와 아들의 동맥이 서서히 하나로 맞붙었다.

드디어 모든 혈관 연결이 끝났다.

신기동 교수가 이제야 고개를 들었다.

혈관을 막았던 겸자를 풀어 성공 여부를 확인할 차례였다. 혈류가 정상적으로 흐르지 못하면 아무리 건강했던 간이라도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침착하기만 했던 눈빛이 떨리는 것 같았다.

툭! 툭! 툭!

꽉 맞물렸던 겸자가 풀렸다.

동맥을 따라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간으로 흘러 들어갔다. 소장에서 갖가지 영양분을 싣고 밀려온 피가 문맥을 따라 동맥피와 뒤섞였다.

창백했던 간이 서서히 검붉게 변했다.

모세혈관을 거쳐 간세포 하나하나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한 피가 다시 모세혈관으로 빠져나왔다.

지금부터 정맥피다.

간 기능이 작동할 때가 아니었지만 통로가 확실하게 유지되고 정확하게 연결됐다면 빠져나가야 한다.

파란 줄이 걸린 혈관에 시선이 집중됐다.

납작하게 눌렸던 정맥이 부풀기 시작했다.

벌떡벌떡 동맥이 뛸 때마다 정맥에 가해지는 압력이 증가되며 마침내 원하는 크기까지 늘어났다.

심장에서 나온 피가 아들의 간을 통과해 다시 심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성공이다!

단, 반드시 한 가지 난관을 넘어야 한다. 수술 팀이나 집도의의 실력과는 무관한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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