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최고의 써전 Ⅰ (2)
중요하지 않은 수술은 단 한 건도 없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모든 의료진이 간이식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첫 간이식 수술을 실패하면 그만한 심적 타격도 없을 것이다.
‘반드시 성공해야 돼.’
병원과 의료진의 명성에 연연하는 순간 도리어 실패 확률만 높아진다. 누구 한 명 그런 생각에 매몰되지 않겠지만 스스로 철저히 단속할 일이었다.
순식간에 사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최종 점검이 끝났다.
이 밤이 지나면 수술을 받아야 할 환자에겐 가장 초조한 시간이었다. 의료진이나 환자에게 수술만큼 중요한 시간이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굳혔다.
수혜자인 이상옥을 찾았다.
병실 문을 열자 따스한 바람이 복도로 밀려 나왔다. 감염 방지를 위해 손을 씻은 후 수술 모자, 장갑, 마스크를 착용하고, 소독된 덧 가운까지 입었다.
“환자분, 기분은 어떠세요?”
진한 갈색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서렸다.
긴장과 두려움, 죄책감이 혼란스럽게 뒤섞인 미소였다. 감정적인 문제는 몰라도 수술을 받을 정도의 체력을 유지한 것이 고맙기만 했다.
“예정대로 아드님은 내일 오전 9시에 수술을 시작하고, 환자분은 10시에서 11시 사이에 수술실로 내려가실 겁니다. 수술 방법을 듣고 걱정되시겠지만 간이식 수술 자체가 원래 그렇습니다. 마음 편히 가지시고 불편한 점 있으면 바로 말씀하세요.”
“감사합니다.”
곁을 지키던 아내가 일어나 머리를 숙였다.
환자만의 싸움이 아니었다.
“보호자분, 간호사에게 소독 방법 잘 들으셨죠? 수술 후에는 더욱 철저히 지키셔야 합니다. 혹시 이상한 점이 있으면 시간에 구애받지 마시고 바로 연락하셔야 합니다.”
이미 여러 차례 간성혼수에 빠졌던 이상옥이었다.
하룻밤 사이에도 하늘과 땅을 오갈 수 있는 육신이었다. 간성혼수는 차치하고 사소한 질환마저 수술을 연기할 수밖에 없는 절대적 사유가 될 수 있었다.
별일 없기만을 바랐다.
병실을 나오자 공여자인 이철우를 만나고 나온 신현수가 보였다. 무슨 일인지 여간 심난한 얼굴이 아니었다.
“무슨 일 있어?”
“우리는 저럴 수 있을까? 이철우 씨를 볼 때마다 자꾸 그런 생각이 드네.”
언제 먼 길을 떠나도 이상하지 않을 연로한 할아버지, 세월의 힘을 못 이기고 점점 늙어 가는 아버지가 생각나는 것 같았다.
“누가 알겠어. 그래도 환자와 보호자에 대한 감정이 남아 있는 모양이다. 난 요새 점점 무감각해지는 것 같아 걱정이야. 인턴 때는 잠도 안 왔는데.”
매일매일 환자를 괴롭히는 질병과 싸우고, 시도 때도 없이 죽음을 목도하는 생활이다. 그런 일이 지속되면 어느새 자신의 삶에 집착하고, 타인의 죽음에 둔감해지고 만다.
의사로서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일 것이다.
신현수가 피식 웃었다.
‘너처럼 사는 의사가 흔한 줄 알아?’
“차라리 그게 마음 편할지도 몰라.”
“그래. 그게 속 편하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수혜자와 공여자가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특별한 사실이 초심을 일깨우고 있었다. 가운을 입고 있는 이상 가장 중요한 존재는 환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밤하늘 한구석을 차지했던 노란 달이 밀려났다.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눈부신 햇살과 함께 새로운 날을 시작했다. 응급실 보고부터 아침 일과 전체가 은근한 긴장 속에 진행됐다.
째깍째깍!
오늘도 시간은 무심하게 흘렀다.
8시 30분.
이철우가 수술 방으로 내려갔다.
눈가가 붉어진 어머니를 위로했다.
“엄마, 왜 울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수술 끝나고 나면 아버지도 저도 다 괜찮을 거예요.”
어머니가 수술 방 앞에 도착해서도 아들의 손을 놓지 못했다. 고마움과 대견함이 아니라 그저 미안하고 아프기만 할 것이다.
건장한 아들의 눈에도 아픔이 보였다.
공여자 수술 팀인 이준영 교수, 신현수, 강병옥, 오하석이 빠르게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외래 진료를 조정한 김지훈 역시 신기동 교수와 함께 오늘 수술에 대해 상의하며 수술실에서 대기했다.
드르륵! 드르륵!
간이침대 바퀴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긴장감이 점점 크게 치솟았다. 수술 모자와 마스크에 가려져 눈가만 드러났지만 누구도 내심을 감추지 못했다.
이준영 교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철우가 수술대 위에 누웠다.
누구보다 긴장된 기색이었다. 몸에 칼을 댄다는 불안인지, 수술이 잘못돼 이식이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두 가지 모두 두려움의 원인일 것이다.
윤서연이 조심스럽게 마취 마스크를 씌우며 여유가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환자분, 마취 시작합니다. 편안하게 숨 쉬세요. 오른팔이 뻐근할 수 있는데 마취약 때문입니다. 간호사, 시작하세요.”
부드러운 말투 때문인지 이철우의 긴장이 조금은 사라졌다. 조교수 임용을 앞둔 마취과 의사의 경험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정맥 마취제가 들어갔다.
“하나, 둘, 셋…….”
이철우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근이완제 주세요.”
가볍게 턱을 흔들어 근육에 힘이 빠진 것을 확인한 후 기관 내 삽관을 했다. 호흡기 튜브를 따라 호흡 마취제가 지속적으로 이철우의 폐로 흘러 들어갔다.
수술이 끝날 때까지 깊은 잠이 유지될 것이다.
복부 소독을 하고 수술 팀이 각자 자리에 섰다.
“윤서연 선생,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시작하셔도 됩니다.”
이준영 교수가 손을 내밀었다.
“시작합니다. 메스!”
메스가 건네지는 순간 김지훈이 두근거리는 가슴에 숨을 골랐다. 첫 간이식 수술이 주는 기묘한 흥분에 스승의 손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까지 겹쳤다.
전임이 된 이후 너무 바빠 메이저 수술조차 쉽사리 들어가지 못했다. 제자인 김지훈에게도 갈증을 풀 수 있는 결코 흔치 않은 기회였다.
‘어떻게 진행하실까?’
날카로운 메스가 차가운 빛을 뿌렸다.
복부가 길게 절개됐다.
피를 닦는 신현수의 눈가에 힘이 가득했다.
공여자의 간을 60퍼센트 정도 절제해야 한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작은 좌측 간이 아니라 우측 간을 들어낼 것이다. 혈관과 담도를 손상 없이 안전하게 잘라 내야 한다는 사실 또한 불문가지의 일이었다.
삐이이이! 삐이이이이!
보비 소리와 함께 복벽이 모두 열렸다.
2~3개월이면 원래 크기의 7~80퍼센트가량 회복된다지만, 간을 상당 부분 잘라 낸다. 다른 질환이 동반돼 있으면 경우에 따라 이식이 불가능할 수 있었다.
수술이 시작됐지만 아직 적합성 여부 확인은 끝나지 않았다. 단 한 가지라도 이상이 발견되면 다시 닫아야 한다. 가족 모두에게 절망이 될 것이다.
침착하고도 꼼꼼하게 배 속 장기를 확인한 이준영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병변도 이상도 없다는 말이었지만, 수술 팀의 긴장은 가시지 않았다.
이제 가장 중요한 장기인 간이 남았다.
수술 팀은 물론 김지훈과 신기동 교수의 시선이 일제히 간으로 향했다.
수술 전 검사상 조금도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지방간마저 정도에 따라 이식 불가 사유가 될 수 있다. 혹, CT나 MRI에서 잡아내지 못한 간 내 병변이 있을 수도 있었다.
‘후우! 아무 문제 없이 건강해야 하는데.’
초조함이 감도는 가운데, 육안 검사를 한 이준영 교수가 간 뒤편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오하석이 리트랙터를 강하게 끌어 시야를 확보했다.
이준영 교수의 판단에 따라 간이식 여부가 결정된다. 조금이라도 무리하거나 미흡한 판단을 한다면 환자만이 아니라 아들에게도 심각한 문제가 초래된다.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손길을 따라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째깍째깍 초침 소리가 전에 없는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이제 시작인데 입이 바짝 말랐다.
심각한 눈빛으로 어느 때보다 오랜 시간 간을 확인한 이준영 교수가 신기동 교수를 보았다.
“신 교수, 건강하다. 진행하자.”
너무 긴장했던 탓일까?
맥이 다 탁 풀리는 느낌이었다.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절제까지 두 시간 반. 모스키토! 보비!”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단순히 자르는 게 아니라 혈관과 담도까지 이식에 맞게 처리해야 하는데, 두 시간 반이면 너무 빠른 거 아닌가?’
절대 무리할 스승이 아니건만 왠지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신현수, 강병옥으로 이룬 수술 팀의 능력을 믿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날카로운 보비 소리와 함께 담낭 절제부터 시작했다. 손 몇 번 움직인 것 같은데 어느새 담낭이 제거됐다.
이준영 교수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과정이었다.
서걱! 서걱!
이미 절제 선을 결정했는지 이준영 교수의 손은 거침없었다.
간 절제 수술 때마다 깨작거린다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손톱만큼 잘라 가며 긴장을 감추지 못하는 김지훈이었다.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나는 언제 스승님처럼 수술할 수 있을까?’
생각도 잠시, 김지훈의 눈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우측 간이 슥슥 분리됐다.
안전한 부분은 과감하게.
위험한 부분은 신중하지만 능숙하게.
마치 아무나 할 수 있는 수술처럼 너무 쉽다고 생각될 지경이었다. 타이를 하며 퍼스트를 서는 신현수도 집도의의 손을 결코 놓치지 않았다.
실력이 뒷받침된 완벽한 호흡이었다.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훅! 숨을 내뱉고 말았다.
눈은 오직 이준영 교수의 손에만 집중됐다.
깊은 속살을 드러낸 간 사이로 우측 간정맥이 보였다. 지금부터는 기구 조작은 물론 동작 하나하나를 모두 조심해야 한다.
단순히 자르는 과정이 아니다.
혈관과 담도 모두 수혜자의 혈관과 담도에 연결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일정 길이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혈관 주위에 간 조직이 붙어 있으면 정확한 연결이 힘들어진다.
이식 도중 혈관 주변을 다시 손보느라 귀중한 시간을 소비하게 되거나, 최악의 경우 불완전한 연결로 혈전을 유발할 수도 있었다.
결과는 명백한 실패다.
혈관 주변을 박리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위험한지 잘 아는 김지훈으로서는 두 눈 더욱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무뚝뚝한 표정 속에 가려진 스승의 진정한 손을 볼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었다.
모스키토가 현란하게 움직였다.
어느새 간정맥이 온전하게 드러났다.
마치 간과 붙어 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깔끔하고 깨끗하게 박리됐다.
“타이! 컷!”
숨 쉴 틈이 없었다.
연이어 간 동맥과 간 문맥을 차례로 노출시킨 후 적당한 길이를 확보하고 잘랐다.
이준영 교수에게 벌떡벌떡 뛰는 동맥과 정맥처럼 약한 문맥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우측 간이 점점 깊게 절제되며 떨어져 나왔다.
마지막으로 남은 중요 구조물, 담도를 너무도 손쉽게 박리하고 완전히 자를 준비가 이어졌다.
곧 필요한 만큼 절제된 우측 간이 나올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고 몰입했다.
모든 과정이 과감하면서도 자연스럽고 안전했다. 무리한 동작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어느 누가 집도한다고 해도 절대 볼 수 없는 실력이 분명했다.
‘지금이 진짜 스승님의 손?’
돌연 숨쉬기도 어려울 정도로 턱턱 숨이 막혀 왔다.
이것이 바로 대가의 손이었다.
최고의 써전의 손을 눈앞에서 보았다.
머리가 띵해지며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나름 몇 단계 올라섰다고 자부했는데, 스승 앞에서는 태양 앞 반딧불에 불과했다. 그동안 본 스승의 수술은 겉보기에 불과했다.
가히 충격이었다.
자부가 아니라 자만이었다.
그토록 경계했던 놈이 소리 소문 없이 깊게 파고들어 꽈리를 틀었는데 자각조차 하지 못했다.
자책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 짧은 순간, 최근 왜 그토록 밀어붙였는지 깨달았다.
한발 앞섰는지 알았는데, 스승과 교수들 눈에는 고만고만한 실력에 불과했을 것이다. 유학 가기 전에 더 넓고, 더 깊은 그릇을 만들지 못하면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당사자인 자신만 몰랐다.
가빠진 숨이 진정되질 않았다.
오창도와 이경석의 움직임이 부산해졌다.
절제된 간을 관류액으로 채워 이식에 문제가 없도록 처리하기 위해 필요한 기구를 챙기고 있었다. 지척에서 벌어지는 일인데 조금도 자각하지 못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신기동 교수의 냉정한 목소리가 아니었으면 꼼짝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김지훈, 수술 준비하자.”
“예? 예.”
다급히 수술실을 나가며 자신도 모르게 시계를 보았다. 두 시간이 조금 넘었다. 이준영 교수의 말대로 30분 이내에 우측 간이 필요한 만큼 적출될 것이다.
오창도와 이경석이 적출된 간을 이식할 수 있도록 처리하는 시간까지 대략 한 시간이 남았다.
또 하나의 의문이 고개를 내밀었다.
최종 점검 시에도 수술 순서만 철저하게 계획했을 뿐 이식 소요 시간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어떤 수술이든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당연하게 넘겼다.
‘한 시간 안에 이식할 준비를 모두 끝낼 수 있을까? 도대체 스승님과 신기동 선생님의 수준은 어디지?’
생각도 잠시 송진우가 보였다.
서둘러 수술실을 나가는 김지훈에게 눈길을 주던 오창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경석 역시 당황스러워 보일 정도로 표정 변화가 심했다.
오랫동안 제자로서 이준영 교수의 수술을 보아 왔던 김지훈마저 놀라는 판인데 오죽할까?
‘그동안 난 뭘 본 거지? 이것이 진짜 이준영 선생님 실력이었어. 신기동 선생님은 또 어떤 실력을 가지셨을까?’
다들 비슷한 생각과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띠! 띠! 띠! 띠! 띠!
다소 급박한 심박동 소리가 들렸다.
긴장과 불안에 빠진 환자의 심장이 헐떡이는 소리였다.
곧바로 수술을 이어 가야 할 또 하나의 수술 팀에게 긴장과 집중을 요구하는 신호이기도 했다.
신기동 교수-김지훈-송진우-차상수.
최고의 수술 팀임을 증명해야 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