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934화 (934/1,329)

4화. 최고의 써전 Ⅰ (1)

퇴근 시간이 늦었다.

부리나케 집에 도착하자 고경아가 꽤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져 있었다.

‘헉! 너무 늦었나?’

“경아 씨, 무슨 일 있어요? 혹시 내가 늦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간이식 환자 때문에 그래요.”

“간이식 환자요? 이제 막 입원했는데 경아 씨가 어떻게 알아요? 희한하네.”

“신기동 선생님이 수혜자 수술 들어오래요. 공여자 수술까지 간호사 두 명이 필요한데, 내가 꼭 있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셨어요.”

머릿속이 휙휙 돌아갔다.

간호 파트에선 무엇이 필요할까?

단순한 보조가 아니다.

수술 전 과정을 이해하고, 숙지해야 하는 수술 팀의 일원이다. 누구도 경험이 없기에 그만큼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너무 부담이 컸다.

자칫 큰 지장을 받을 수도 있었다.

“시험 준비도 해야 하는데 괜찮겠어요? 내가 신기동 선생님께 말해 볼까요? 이해해 주실 거예요.”

“아니에요. 전 도리어 신기동 교수님이 고마워요. 날 믿지 못하면 그런 말씀도 안 하셨을 거 아니에요. 이준영 선생님도 별말씀 안 하시고 고개만 끄덕이셨어요.”

‘스승님까지?’

그래도 개운치 않았다.

지금도 시간이 없어 쩔쩔맨다. 눈이 새빨개질 정도로 잠까지 부족한 상황에서 간이식 준비까지 해야 한다면 최악의 경우 유학을 혼자 가야 할 수도 있었다.

눈가를 찡그리며 반대하려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고경아의 목소리가 담담했다.

“나만 근무할까요? 지원한 선생님들 모두 시험 전날까지 자신의 일을 할 거예요. 솔직히 시험 핑계로 주어진 일을 피한다면 연수 갈 자격도 없겠죠.”

오히려 즐겁다는 듯 활짝 웃었다.

“지훈 씨, 걱정 말아요. 나 할 수 있어요. 오히려 날 인정해 주셔서 힘이 나요.”

자그만 주먹을 꽉 쥐며 자신감을 보였다.

고경아가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

‘우와! 우리 경아 씨, 정말 대단하다. 나보다 더 강해. 현수는 조교수 임용을 스스로 거부하고, 아버지에게 간을 주는 아들까지 대단한 사람들을 계속 보네. 요새 무슨 일이 있나?’

고경아 같은 사람을 아내로 맞이한 것은 최고의 행운이었다. 전생에 나라를 구할 정도로 대단한 공덕을 쌓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임이 틀림없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일을 한 걸까?’

너무 사랑스러웠다.

자신도 모르게 와락 껴안자 고경아가 살포시 품 안을 파고들었다. 그동안 극심한 피로와 수시로 눈을 뜨는 희연이 때문에 손도 잡지 못했다.

감동은 피로까지 밀어내 버렸다. 손잡고 눈 마주치고 싶다는 욕망이 불끈 치솟았다.

부르르 어깨가 떨리는 순간.

응애! 응애!

우리의 희연이 장하다.

‘희연아, 너 이러면 동생 못 본다.’

눈치만 있으면 더 장해질 것이다.

못 볼 것을 보이기라도 한 것처럼 급히 옷매무새 고치고, 고경아와 얼굴 마주 보자 피식 웃음만 터졌다. 후끈 달아올랐던 감정이 저 멀리 사라졌다.

손잡고 눈 마주쳤으면 십중팔구 그대로 뻗었을 것이다. 장한 딸, 희연이 덕분에 자료 다시 보며 생각할 힘과 시간을 얻었다.

유학 가기 전, 이보다 더 큰 수술은 없을 것이다.

한 사람의 목숨만이 아니라 또 한 사람의 건강까지 달려 있다. 이식이 실패할 원인은 수없이 많지만, 최소한 수술로 인해 실패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각오 단단히 했다.

***

새로운 아침을 맞이했다.

이상옥의 검진 결과 감염의 징후는 어디에도 없었다. 간 기능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육신인데 정말 다행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예정대로 진행하겠습니다.”

관련된 모든 의료진이 2차 모임을 가졌다.

수술이 확정된 터라 마취과와 간호과까지 참석했다. 김진호 교수, 윤서연, 고경아를 비롯해 모두들 진지한 표정으로 수술에 대비했다.

사소하게 보이는 면까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각자 자신이 맡은 부분을 점검하고 또 점검해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고자 했다.

의료진이 준비해야 할 일은 수술과 수술 후 치료만이 아니었다. 환자와의 관계 또한 어떤 수술 이상으로 중요했다.

신현수와 함께 수시로 가족을 찾았다.

환자는 말할 것도 없었고, 공여자인 아들의 육체적, 심리적 안정에 상당한 주안점을 두어야 했다.

강한 신뢰감만이 답이었다.

“환자분, 불편하신 데 없으시죠? 우리가 항상 대기 중이니까 바로 말씀하세요.”

“철우 씨, 식사는 잘하고 있죠? 불안감 때문에 식사 제대로 못하면 수술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거르지 마세요.”

때론 치료가 아니라 따스한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되기도 한다. 환자의 초조함은 여전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안정감을 보이기 시작했다.

남편과 아들의 수술을 지켜봐야 하는 아내이자 어머니의 눈은 마를 틈이 없었다. 물론 가족 앞에서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무척 힘들 것이다.

환자에 준하는 지속적인 관심과 관리가 필요했다.

“보호자분, 마음 굳게 먹어야 합니다. 흔들리시면 환자분이나 아드님에게 결코 좋지 못합니다.”

어머니의 의지는 강했다.

남편과 아들 앞에서는 웃음을 보였다.

스스로를 단속하며 꿋꿋함을 보이는 모습이 강한 자극과 각오를 불러왔다. 이미 확인한 사항도 부족한 점이 있는지 다시 점검할 수밖에 없었다.

“현수야, 이따 시간 나면 수술 검토 같이하자. 오창도 선생님하고 경석이 형도 부를게.”

시간 나는 대로 의견을 나눴고, 그 덕에 수술 팀이 절대 가지지 말아야 할 불안을 일부 지울 수 있었다.

여전히 부족했다.

일말일지라도 자신감을 반드시 가져야 할 때였다.

‘후우! 이놈의 긴장 참 끈질기네.’

바쁜 나날이 지나 어느새 주말이 다가왔다.

시험공부와 간이식을 병행해 준비해야 하는 고경아의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김지훈 역시 강한 부담과 압박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가물에 단비 같은 희연이의 재롱이 주는 휴식과 기쁨은 큰 힘이었다.

영어 회화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과였다.

“@#$%^&*&%$#.”

“What?”

“@#$%^&*&%$#.”

대충 알아들었다.

‘나도 노력하고 있는데 시간이 부족한 걸 어떻게 합니까? 제길! 이젠 하다하다 영어로도 타네.’

영어 회화 역시 난감 그 자체였다.

시간도 별로 없는데 어떻게 할 거냐는 회화 강사의 말이 끝날 줄 몰랐다. 통화 시간까지 늘리며 오늘 마쳐야 할 부분을 배웠다.

역시 실력과 열의가 넘치는 사람의 뜨거운 잔소리와 불길은 감수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얼굴 허연 사람들과 대화조차 하지 못하면 유학은 가나 마나일 것이다.

그렇게 부산한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을 맞이했다.

공여자인 아들이 정식으로 입원했고, 아버지와 함께 외과로 전과됐다.

특수 설비를 갖춘 입원실을 준비하는 담당 간호사들의 긴장이 눈에 보였다.

수술이 4일 앞으로 다가왔다.

정식으로 수술 방법을 설명하고 준비해야 한다.

환자 가족과 수술 팀 전체가 마주 앉았다.

담담함, 불안, 긴장이 어지럽게 뒤섞였다.

이제는 감정을 버리고, 이성적으로 냉철하게 설명해야 할 때였다. 환자와 보호자의 두려움은 논리적으로 해결해 주거나, 스스로 극복하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신기동 교수의 얼굴이 매서워졌다.

수술 팀 역시 마찬가지였다.

“환자분, 이번 주 목요일 첫 수술로 공여자, 즉 아드님 수술부터 시작됩니다. 지금까지 시행한 모든 검사에서 이식에 부적합한 요인은 없지만, 실제 간 상태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백 퍼센트 확신할 수 없습니다.”

이상옥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식을 못 받을 수 있다는 불안이 아니라 자식에 대한 걱정 때문일 것이다.

“아드님 간이 건강하다면 예정대로 일부분을 절제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한 후 이식하게 될 겁니다. 60퍼센트 정도 떼게 됩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절반이 넘게 절제해야 한다는 말에 어머니의 손이 달달 떨렸다. 이상옥은 훅훅! 숨을 내뱉으며 아들의 얼굴을 보지도 못했다.

“통상 70퍼센트 정도 절제하는데, 아드님이 건장해 절제 크기를 줄일 수 있는 상황입니다. 10퍼센트에 불과하지만 수술 후 회복은 물론 정상적인 크기로 돌아오는 시간까지 크게 줄일 수 있으니까 절대 두려워할 일이 아닙니다.”

“완전히 돌아오나요?”

“2~3개월이면 원래 크기의 80퍼센트 가까이 자랄 겁니다. 아드님이 무척 건강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이철우 씨, 조금 자르나 그 정도 자르나 차이는 전혀 없으니까 긴장할 일이 아닙니다.”

이미 각오한 상황이고, 여기저기 물어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위안이 될 말은 아니었다. 이철우가 입술을 꾹 다문 채 고개만 끄덕였다.

“보호자분, 절제와 이식에 소요되는 시간은 대략 7~8시간 정도 걸릴 겁니다. 이식 방법은…….”

환자와 가족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상식적으로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람 배 속을 수없이 보아 온 의료진도 섬뜩할 지경인데 문외한에겐 충격이나 다름없었다.

신기동 교수가 냉정하게 설명을 이어 갔다.

“환자분 상태 때문에 수술 후 일반적인 합병증이 발생할 위험이 상당히 큽니다. 무엇보다 거부 반응, 감염으로 인한 간 조직 괴사, 연결한 혈관 내의 혈전 등이 발생하면 이식은 실패하게 됩니다.”

“만일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결과를 모를 리 없었다.

아버지는 매일 매 순간 죽음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아들의 기증이 헛된 일만은 아니겠지만 그보다 허망하고 괴로운 일은 없을 것이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제 법적 능력을 가진 정식 동의를 받아야 했다.

신기동 교수가 수술 중 사망을 비롯해 수많은 합병증이 기록된 수술 동의서를 내밀었다.

“합병증 발생 확률이 높진 않습니다만, 의료진 입장에서 반드시 설명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최고의 수술 팀이 수술에 참가합니다. 우리를 믿고 동의해 주십시오.”

가족이 감수해야 하는 위험은 그뿐이 아니었다.

김진호 교수가 또 한 장의 동의서를 내밀었다.

“마취과 김진호입니다. 아드님 같은 경우 통상적인 마취 위험만 있지만 환자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고위험군에 속합니다. 간에 영향을 주지 않는 마취제를 사용하지만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상존합니다.”

아버지만이 아니라 아들까지 극도의 위험에 노출됐다는 사실에 가족 누구도 손을 내밀지 못했다. 그러나 수술과 마취 동의서가 없으면 수술은 진행할 수 없다.

‘환자분, 많이 두렵겠지만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반드시 이겨 내셔야 합니다.’

김지훈과 신현수가 초조하게 결정을 기다렸다.

환자와 가족에게는 달리 선택의 도리가 없다. 하지만 수술에 수반되는 위험을 듣고 두려움을 못 이겨 치료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를 보았다.

극히 드물다고 하지만 불안감을 지우지 못했다.

아버지가 아들을 보았다. 부탁이 아니라 거절하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눈을 마주친 아들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내 미소를 머금으며 동의서를 잡았다.

힘차게 지장을 찍었다.

“아버지, 전 수술받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아버지도 동의해 주세요. 어머니, 전 선생님들을 믿습니다.”

가슴이 확 막혀 왔다.

피를 나눈 가족은 오죽할까?

부모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자신이 살기 위해 멀쩡한 자식의 간을 떼어 내야 한다는 사실이 괴롭기만 할 것이다. 애간장이 끊어진다는 말이 과장된 말은 아니었다.

“철우야!”

“아버지, 왜 그러세요? 수술받고 건강해지시면 저랑 낚시 가기로 했잖아요. 어머니가 끓여 주는 얼큰한 매운탕 먹고 싶어요.”

이철우가 환자 본인과 보호자 동의서를 직접 부모 앞에 내밀었다. 눈가에 걸린 미소는 자식 걱정하지 말고 동의하라는 재촉이었다.

눈물이 쏟아졌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지장을 찍었다.

죽기보다 힘든 일일 것이다.

당연히 받아야 하는 빨간 지장이 왠지 선연한 피처럼 아프게 다가왔다.

무뚝뚝한 이준영 교수도, 매섭기만 한 신기동 교수도 헛기침으로 감정을 감췄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 의료진만 남았다.

이준영 교수가 일일이 얼굴을 보았다.

“우리는 한 사람이 아니라 한 가족의 삶을 위해 수술하는 겁니다. 모두 최선을 다해 주길 바랍니다.”

신기동 교수 역시 일일이 시선을 주었다.

“고 간호사, 간호 파트 확실하게 책임져. 김 교수, 마취 문제는 걱정하지 않는다. 오늘 자리는 이만 끝냅시다. 수요일에 최종 점검할 거니까 일과 끝난 후 바로 모여 주세요.”

이준영 교수의 눈길이 김지훈과 신현수에게 머물다 사라졌다. 집도의 이상으로 퍼스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만이 아니라 강한 믿음을 보내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 점검을 하고 나면 수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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