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933화 (933/1,329)

3화. 다 같이 복창! (2)

신기동 교수가 나가자마자 오창도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 침착하기만 한 신현수까지 폭탄 맞은 몰골로 왜 이리 기뻐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신현수 선생, 왜 이렇게 좋아해?”

“간이식 수술 들어오라고 하셨잖아요. 혈관 수술 보시고 합격점을 주신 겁니다.”

“살벌하게 타서 근처에도 못 갈 줄 알았는데, 이렇게 허를 찌르시네. 좋았어.”

김지훈의 목소리에도 즐거움이 뚝뚝 묻어났다.

‘말과 속이 다르다고 해도 얼굴 보자마자 탄 것과 똑같은데 뭐가 이렇게 즐거울까? 실력이 모자란 것도 아니고, 노력을 게을리 하지도 않으면서 말이야.’

내심 끌끌 혀를 차던 오창도가 피식 웃고 말았다.

생각해 보니 자신도 이준영 교수에게 탈 때면 나이나 직위를 잊었다.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귀를 쫑긋거리며 단 한마디도 허투루 듣지 않았다. 까마득한 후배인 전공의 눈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다.

문득 선배 의사들에게 인정받으려 애썼던 지난날이 생각났다. 가슴을 후벼 팔 정도로 독한 말조차 강한 자극이자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비록 최인호 교수와는 완전히 인연을 끊었지만 진충기에겐 지금도 더욱 발전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왜 그랬고, 왜 아직도 그럴까?

그들을 존경하고, 따랐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실력이나 인품만이 아니었다. 가르치려고 하는 의지와 그 속에 숨어 있는 후배에 대한 애정이야말로 절대적 요인이었다.

신기동 교수 역시 이준영 교수처럼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었다.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전임들의 얼굴이 이를 설명하고도 남았다.

‘신기동 선생님에 대해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였나? 이준영 선생님과 거의 동급인 것 같네. 하긴 어느 선생님 한 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분이 없긴 해.’

신기동 교수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간이식 수술 전 혈관 수술을 본다면 일부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강렬한 기대가 뒤를 따랐다.

기분 좋게 웃던 김지훈이 기지개를 폈다. 우두둑! 우두둑! 온몸이 아우성을 쳤다.

“어후! 피곤하다. 간이식 준비해야 하는데 큰일 났네. 오창도 선생님, 수요일 혈관 수술 준비 잘하세요. 잘못하면 온몸에 소름이 쫙 돋으실 겁니다. 전 회진 돌고 곧바로 퇴근합니다.”

사실상 토요일 이후 첫 퇴근이었다.

어마어마한 일복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고경아의 시험 준비를 위해 오늘도 외조에 전념해야 한다. 불굴의 의지로 희연이를 재우고, 최대한 빠르게 잠자리에 들어야만 내일도 걸어 다닐 수 있을 것이다.

살길은 그것뿐이다.

잘못 생각했다.

신기동 교수 또한 이론을 무척 중시하는 교수였다. 수술 전, 중, 후 어느 한 기간 방심할 수 없는 간이식 수술인데, 넋 놓고 있다간 치도곤을 면치 못할 것이다.

초인적인 의지로 간이식 자료를 잡았다.

아! 죽을 것처럼 피곤하고 힘들다.

쏟아지는 하품 때문인지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이내 자료에 코를 처박았고, 작은 방 고경아의 책장 넘기는 소리만 들렸다.

***

신기동 교수는 아슬아슬 얼음판이었다.

단단히 중심 잡지 못하면 엉덩방아는 기본이고, 섣불리 내디디면 폭삭 깨질 것이다. 재빨리 빠져나오지 못하면 앞날이 빤했다.

5월이나 6월까지라고 해도 말이다.

다른 교수들이라고 다를까?

사방이 지뢰였다.

그나마 송재덕 교수는 웃기라도 하지, 이준영 교수는 툭하면 수술실로 호출한 후 아예 대전차 지뢰를 뿌렸다. 밟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이혁민 교수의 도마질은 끝도 없이 계속될 것 같았다.

‘이렇게 힘들어서야 유학 가겠나! 아니지. 요즘 같으면 유학 갈 이유도 없겠다.’

까닭 모를 한탄이 절로 나왔다.

수요일 저녁, 신기동 교수의 칠지도에 찔려 장렬하게 산화한 오창도, 이경석, 송진우의 모습은 서글프기까지 했다.

‘내 꼴이 저렇구나.’

이런 상황에서 극도로 긴장해야 할 환자가 왔다.

간이식 공여자와 수혜자다.

드디어 간이식 수술이 목전에 다가왔다.

책으로 보는 것과 실제는 많이 다르다. 더구나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수술을 시행해야 하는 환자였다. 김지훈만이 아니라 일반외과 전체가 촉각을 곤두세웠다.

관련된 의료진이 모두 모였다.

내과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양승철 교수까지 참여했다. 그만큼 여러모로 중대한 의미가 담겨 있는 간이식 수술이었다.

먼저 두툼한 검사 결과부터 확인했다.

공여자와 수혜자에게 요구되는 검사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느 한 가지라도 조건에 충족되지 않으면 간이식은 곧바로 취소될 것이다.

1차 확인 사항은 혈액 검사다.

먼저 혈액형이 일치해야 한다. 면역 체계인 HLA 일치 여부는 간이식에서 중요하지 않다. 이미 수술 결정 단계에 돌입한 이상 당연히 두 사람의 혈액형이 일치했다.

다음으로 간 기능을 확인했다. 수혜자야 간 부전이 빠진 상태일 테니 의미가 없지만 공여자의 간은 건강해야 하기에 무척 중요한 항목이다.

문제없었다.

그 외 신장 기능, 갑상선 기능, 영양 지표, 고지혈증 여부, 각종 간염 유병 여부, 전해질 균형, 빈혈, 염증 여부를 가리는 백혈구 수치에서 고혈압, 당뇨 등 대사성 질환까지 세세하게 이상 유무를 확인했다.

통과다.

2차 확인 사항은 방사선 검사다.

공여자와 수혜자의 간 상태 및 종양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초음파, 복부 CT 및 MRI를 촬영했다.

간 종양뿐만 아니라 다른 장기에 종양이 있으면 금기에 해당되기에 위, 대장 내시경과 폐까지 샅샅이 검사를 시행했다.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아직 외과적으로 중요한 판단 기준이 남았다.

“신 교수님, 공여자 간 크기가 적당합니까?”

“체격이 건장한 덕에 60퍼센트 정도만 자르면 될 것 같습니다. 40퍼센트를 남길 수 있으니까 수술 후 회복에 큰 지장이 없습니다.”

“다행이군요. 수혜자 상태 점검을 위한 검사를 몇 개 더 해야 합니다. 검사가 끝난 후 이상 없으면 전과하겠습니다.”

“환자 상태가 나쁜 데다 수술 중 받는 스트레스가 상당합니다. 심혈관 기능 평가에 유념해 주시고, 특히 간 혈관 상태를 정확하게 판단해 주십시오. 혈관 도플러(Doppler)로 간 혈관 내 혈전이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 주셔야 합니다.”

입원을 해도 여전히 많은 검사가 남아 있었다.

간이식의 어려움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구체적인 일정을 잡고 자리를 끝냈다.

내과에 입원했지만 반드시 환자를 봐야 했다. 검사 결과만 봐서는 환자 상태를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신뢰 형성이 급선무였다.

간만에 대부대가 움직였다.

이준영 교수, 신기동 교수, 오창도, 김지훈, 신현수, 이경석에 전공의까지 함께 회진을 가자 한때 있었던 총회진이 생각날 정도였다.

‘큰 스승님이 계셨을 때가 생각나네.’

한 달에 한 번, 허경발 교수의 주관 아래 일반외과에 입원한 모든 환자 회진을 돌았다.

권위에서 비롯된 구습이라 할지라도, 경험이 거의 없다고 해도 은연중 그리운 일이었다.

‘큰 스승님, 항상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우리 곁에 있어 주십시오. 유학 가기 전 찾아뵙겠습니다.’

잠깐 옆길로 샌 사이 병실에 도착했다.

수혜자는 이미 입원한 상태였고, 공여자는 수술하는 주 월요일에 입원할 것이다. 우르르 몰려든 의료진에 환자와 보호자들의 두려움이 보였다.

59세 남자 환자, 이상옥.

B형 간염으로 간부전이 발생했다.

간부전은 인체에서 가장 큰 장기이자 아직도 어떤 기능을 가졌는지 모두 알아내지 못한 장기가 거의 작동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신부전은 투석이라는 삶을 유지할 방법이라도 있지만, 간부전은 몸 상태를 유지할 방법조차 없다. 매 순간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까맣게 죽은 얼굴, 노랗게 변한 흰자위, 바싹 마른 팔다리는 온몸을 뒤덮은 무기력과 쇠약이 아니더라도 얼마나 상태가 위중한지 단적으로 알려 주고 있었다.

신기동 교수가 가벼운 미소를 머금었다. 긴장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안녕하십니까? 일반외과 신기동입니다. 제가 환자분 수술을 맡았습니다. 우리 과로 오시기 전까지 내과 선생님들이 잘 봐주시겠지만 환자분은 감염에 특히 유념하셔야 합니다.”

아내로 보이는 보호자가 물었다.

“감염이요?”

“목감기나 소변 염증은 물론 치과 질환까지 해로운 세균이 자랄 수 있는 상황은 모두 막아야 합니다. 힘드시겠지만 해당 과에서 진료받으실 때 불편한 점이 있으면 하나라도 빠트리시면 안 됩니다.”

증상이 없어도 잠복 감염이 있으면 수술 실패의 요인이 되기에 사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간부전은 진료의 번거로움마저 힘들게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수술은 어떻게 하나요?”

구체적으로 말할 시기가 아니었다.

위험할뿐더러 상당히 큰 수술이기에 수술이 확정된 후가 적당했다. 미리 설명해야 두려움과 불안이 동반된 스트레스만 잔뜩 받을 것이다.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뇌사자가 아닌 생체 간이식이다.

공여자 역시 위험하고, 큰 수술을 받아야 한다.

특별한 관계가 있다고 해도 어려운 결심인데, 생면부지의 사람이라면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대단한 부담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물론 혈연관계가 아니라면 어느 나라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모두들 심각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신기동 교수가 의도적으로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간을 제공하시는 분이 아드님이죠? 걱정이 많으실 겁니다. 우리 병원 최고의 의료진이 수술하니까 마음 푹 놓으세요. 이준영 선생님.”

이준영 교수가 최대한 얼굴 근육을 풀었다.

“아드님 수술을 맡은 이준영입니다. 별일 없을 겁니다. 우리를 믿으세요. 아드님은 어디 계시죠?”

22세 남자, 이철우.

훤칠한 키에 평범한 인상을 지닌 청년이 조용히 얼굴을 보였다. 아버지와 아들이라고 해도 간을 제공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가족의 반대가 극심했을지도 모른다. 뇌사자의 기증을 기다리거나, 천운처럼 다른 사람이 기증하기를 바랐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기적이라고 해도 아버지는 간이 없는 것과 다름없고, 아들마저 간의 상당 부분을 떼어야 한다. 자칫 부자 모두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당사자는 물론 겁을 먹지 않을 가족은 없을 것이다.

누가 먼저 말을 꺼냈을지 모르지만 대단한 결심임이 분명했다. 효심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이 있지만 아마도 그 이상의 무엇이 작용했을 것이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사랑일까?

“이철우 씨, 다음 주에 입원하지만 아버님과 마찬가지로 수술 전까지 몸 관리에 신경 써야 합니다. 수술 후 2~3개월 정도 지나면 일상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으니까 긴장하지 마세요. 힘든 결정에 감사드립니다.”

이철우가 고개만 숙였다.

아버지를 살리기 위한 일이지만 자신의 몸이 아파 치료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보다 수술이 두려울 것이다.

곁에 선 어머니는 아들의 손을 꼭 잡은 채 눈가를 붉히고 있었다.

‘가족이라고 해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꽤 무섭겠지. 누가 이런 결심을 할 수 있을까? 나는 할 수 있을까?’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이 어떨지, 아들의 마음은 또 어떨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수술이 무사히 끝나고 둘 다 건강을 찾았을 때 비로소 웃을 수 있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 알 수 없겠지만 아들의 마음을 생각해서라도 기필코 수술을 성공해야 했다.

이철우를 보며 슬며시 주먹을 쥐던 김지훈이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철우가 활짝 웃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잘 관리하겠습니다. 선생님, 우리 아버지 수술만 잘해 주세요.”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는 나이인데 상당히 의젓했다. 어머니의 어깨를 감싸 안고, 눈가가 붉어진 아버지의 손을 꼭 잡으며 더욱 환하게 웃었다.

어떤 말로도 아들의 웃음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 모습에 도리어 나직한 한숨이 터졌다.

가족 중 두 명이 한날한시에 수술을 받아야 한다. 다른 수술도 아니고 아버지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아들의 간을 떼고, 살기 위해 자식의 간을 받아야 하는 수술이다.

누군가의 마음은 분명 이미 찢어졌을 것이다.

그뿐일까?

수술 중에도, 후에도 수많은 고비를 넘겨야 한다. 얼마나 여유로운지 모르지만 어마어마한 비용까지 든다. 가족 모두의 사랑과 이해가 있어야 당면한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들의 웃음 속에서 큰 희망을 보았다.

이준영 교수의 입가에 미세한 미소가 걸렸다.

“긍정적이면 수술 결과도 좋습니다. 혹시 불편한 점이 있으시거나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여기 우리 선생들을 찾으시면 됩니다.”

눈길을 받았다.

“일반외과 김지훈입니다.”

차례로 인사를 하고 안면을 텄다.

의사와 환자 간의 친밀도인 라뽀(Rapport) 형성은 빠를수록 좋은 법이다. 특히 이번 수술은 서로 간의 확고한 신뢰가 필요하기에 더욱 신경 써야 할 부분이었다.

신기동 교수가 힐끗 오창도를 보며 말했다.

“신현수 교수는 아드님 수술에 들어가고, 김지훈 교수는 저와 함께 환자분을 수술할 겁니다. 그리고 오창도 교수와 이경석 교수가 절제된 간을 안전하게 관리하게 됩니다.”

은연중 수술 팀을 지정하며, 교수라는 말까지 강조했다. 무려 6명의 교수가 수술한다는 소리에 가족 모두 안도의 기색을 보였다.

이 또한 신뢰를 쌓는 방법 중 하나였다.

가족과의 대화가 끝났다.

병실을 나오던 김지훈이 아버지와 아들을 보았다.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눈길만 주고받을 뿐이었다. 아버지의 눈에는 미안함과 죄책감이, 아들의 눈에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묻어 있었다.

“준비 철저히 하자.”

신기동 교수의 말이 단단히 박혔다.

이미 언급했지만 수술 팀을 확실하게 정리했다.

수혜자 수술-신기동 교수, 김지훈

공여자 수술-이준영 교수, 신현수

절제된 간 관리-오창도, 이경석

실력과 경험을 겸비한 전공의들까지.

스승과 함께 수술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살짝 아쉬웠지만 신기동 교수의 손을 볼 절호의 기회였다.

하수는 고수의 손놀림조차 가늠하지 못한다.

고수가 되기 위해 그동안 열심히 달려왔다.

머나먼 타국에서 무엇을 어떻게 배워 왔는지 엿볼 수 있는 안목 정도는 갖췄기를 바랐다.

두 눈 크게 뜨고, 정신 바짝 차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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