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소나기? Ⅱ (2)
김지훈이 눈빛을 굳혔다.
아직은 마음을 놓을 때가 아니었다.
가로세로로 길게 절개된 후복막 속에 커다랗고 노란 덩어리, 부신이 남아 있다.
수많은 보비 자국과 매듭을 자르고 난 흔적은 흥분과 동시에 여전한 서늘함을 전해 주고 있었다.
“오창도 선생님, 부신 꺼내죠. 메스!”
크기가 커 억지로 빼내다간 주변 조직에 새로운 손상을 입힐 수 있었다.
다행히 선종은 일종의 양성 물혹이다. 내부를 채우고 있는 액체를 제거해도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조심스럽게 부신 표면을 절개했다.
오창도가 신중하게 석션을 이용해 흘러나오는 액체를 빨아들였다.
찌이익! 찌이익!
약간은 거북한 소리와 함께 쭈글쭈글 쪼그라들었다.
후복막에 완전히 싸여 박리 후에도 틈을 보이지 않았던 부신이 점차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원하는 만큼 줄어들었다.
부신 절개부를 봉합했다.
켈리로 부신을 잡고 조심스럽게 잡아당겼다.
수술 내내 일부분만 보였던 부신이 후복막 속에서 완전히 빠져나오는 순간 수술 팀의 눈빛이 흔들렸다. 온갖 생각이 교차할 것이다.
김지훈 역시 부신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수술 내내 죽였던 숨을 훅훅! 내뱉을 뿐이었다.
20년 동안 정은영 환자를 괴롭히며 구석으로 밀어붙였던 원인이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아 왔던 질환의 근원을 복강경으로 제거한 것이다.
손바닥 반만 한 크기에 불과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간보다 더 크게 보였다.
‘해냈다. 끝까지 집중을 잃지 말자.’
수술은 끝나지 않았다. 가슴속으로 밀려드는 감정을 꾹꾹 눌렀다.
침착하게 마무리를 시작했다.
동그란 모양에서 납작하게 변한 부신을 콘돔에 넣고 구석에 갈무리했다.
보비로 지진 자국, 매듭과 매듭이 어지럽게 남아 있는 후복막을 철저하게 확인했다.
절대 다시 배를 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사소한 출혈과 손상을 꼼꼼하게 처리하며, 주변 구조를 머릿속에 확실하게 담았다.
같은 질환, 혹은 비슷한 수술을 해야 하는 환자에게 대단한 도움이 될 것이다. 수술 팀이 얻는 지식과 경험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오창도 선생님, 후복막 닫아도 되겠죠?”
“예. 괜찮아 보입니다.”
장과의 유착을 최대한 막기 위해 절개 부위를 모두 봉합했다. 기구가 아닌 손을 사용하는 것처럼 능숙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에 강병옥은 물론 오창도까지 새삼 놀라고 있었다.
‘난 언제 김지훈 선생님처럼 할 수 있을까?’
‘볼 때마다 느끼지만, 기술적인 면 역시 진충기 선생님 수술 때보다 배울 점이 더 많다.’
‘ㅗ’ 자 모양으로 난 봉합선이 깔끔했다.
배 속을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부신을 꺼냈다. 콘돔이 빨간 피로 번들거렸지만 복벽에서 나오는 피일 뿐이었다. 멈추고도 남을 출혈이었다.
모든 기구를 제거하고, 복부에 난 상처를 봉합했다.
한시도 방심할 수 없었던 수술이 모두 끝났다.
그토록 어렵고 힘들었던 수술이 남긴 자국은 1센티미터에 불과한 피부 절개 네 곳뿐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잘 깨어나야 할 텐데.’
측면 접근보다 마취 시간은 더 걸렸겠지만 육체적 부담은 비교도 안 될 정도였다.
하지만 두 번이나 수술을 연기해야 했던 정은영 환자였다.
김지훈의 시선이 모니터로 향했다.
띠! 띠! 띠! 띠! 띠! 띠!
안정적인 심박동, 정상적인 혈압과 산소 포화도를 확인하는 순간 안도감이 다가왔다.
무엇보다 김진호 교수의 표정이 평소와 다름없었다. 문제가 없다는 의미였다.
찌이익! 찌이익!
김진호 교수가 입 안에 고인 침과 분비물을 제거한 후 기도 삽관을 제거했다.
거친 숨소리가 훅! 터져 나오며 마취제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퍼졌다.
정은영 환자가 어깨를 비틀며 신음을 내뱉었다.
“환자분, 눈 떠 보세요. 환자분, 수술 끝났습니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환자 잘 깼습니다. 회복실로 옮깁시다. 김지훈 선생, 수술 팀, 모두 수고했어요.”
‘걱정 많이 했는데 결국 해냈네. 이준영 선생님과 송재덕 선생님은 몇 번이나 얼굴 비치시더니 어디 계신 거지? 막상 끝나는 모습은 못 보셔서 서운하시겠어.’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은 김진호 교수의 목소리가 무척 힘차고 밝게 들렸다.
수술 팀 모두 흥분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홀로 한 수술이 아니라 함께한 수술이다.
김지훈이 수술 팀을 보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수고하셨습니다.”
고경아가 밝은 미소로 화답했다.
병리실로 보낼 부신이 준비대 위에 잘 놓여 있었다. 수술 내내 흘린 땀의 결과물은 언제나 묘한 감흥을 일으킨다.
수술 팀의 눈길이 차례로 스쳐 지나갔다.
드르륵! 드르륵!
회복실로 옮겨진 환자의 호흡을 비롯해 모든 바이탈이 안정적이었다. 자극을 주면 어김없이 눈을 떴고, 흐릿한 의식 속에서도 눈을 마주쳤다.
보호자를 만났다. 무사히 끝났다는 말을 들은 늙은 아버지가 한 줄기 눈물을 보였다. 말없이 손을 잡고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고개를 돌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지금도 감정을 절제한 목소리였다.
아버지로서 최선을 다해 왔지만 이제야 딸의 고통을 덜어 주었다는 사실에 도리어 내색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극도의 미안함일까?
너무 기뻐서 표현하지 못하는 걸까?
무슨 이유인지 가슴이 턱 막혀 왔다.
동시에 부신 선종을 복강경으로 해냈다는 사실, 환자가 무사히 깨어났다는 사실, 늙은 아버지의 담담한 눈물이 한꺼번에 온몸을 휘감았다.
왜 먹먹한지 모를 일이었다.
지금 이 순간 느끼는 감정 때문에 써전의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몰랐다.
함께 보호자를 만난 오창도의 눈빛도 그렇게 보였다.
“오창도 선생님, 덕분에 성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한 일이 뭐 있나요? 수고하셨습니다.”
완전히 깨어난 환자가 병실로 올라갔다.
개복했다면, 측면 접근을 했다면 중환자실에 있어야 했을지도 모르는 환자였기에 남다른 감동이 다가왔다.
휴게실 문이 열렸다.
오늘만은 정말 휴식을 취하는 곳이었다.
오창도, 강병옥과 함께 시원한 주스 한 잔을 마시며 크게 웃었다. 수술에 관한 말은 한마디도 오가지 않았지만 무수히 나눈 것과 다름없었다.
짧은 휴식이 끝났다.
“전 다음 수술 들어갑니다. 병옥아, 일과 끝나고 간단히 오늘 수술에 대해 평가하는 자리를 가질 거니까 시간 잘 조절해. 오창도 선생님, 김진호 선생님이 양방 열어 주신다고 했으니까 함께 가시죠.”
긴장이 모두 풀렸던 탓인지 갑자기 배가 무척 고팠다. 고경아가 내민 우유 두 개가 반갑기만 했다. 남은 수술을 안전하게 마칠 힘이 될 것이다.
쪽쪽 우유를 빨던 김지훈이 멈칫했다.
“지훈아, 교수야, 잘 끝났니? 얼굴 보니까 잘 끝났네. 오 교수, 힘들지 않았어? 지훈이가 생각보다 깐깐하고 고집이 되게 세요. 같은 파트 하기 힘들 거다. 힘들 거야. 그렇게 대장을 하라고 해도 눈 하나 꿈쩍하질 않아요. 못된 놈.”
이럴 땐 은근슬쩍 웃음으로 빠져나가야 한다.
“뭘 그렇게 음흉하게 웃어? 못된 놈. 경석이 수술은 어떻게 됐나? 직장암인데 항문을 살려야 한다고 난리를 쳤는데 살렸나? 우리 박 교수하고 손발이 척척 맞아서 걱정할 일은 없지. 암! 없고말고.”
쩝쩝 입맛을 다시며 돌아서는 송재덕 교수를 보던 김지훈과 오창도가 진짜로 웃고 말았다.
“환자 잘 깼지? 잘 깼을 거야. 지훈아, 교수야, 오 교수, 대장 하자. 대장. 늦기 전에 대장 하자.”
지긋지긋하게 들었다. 잊을 만하면 기억을 살리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수술 중간 수시로 얼굴을 비쳤을지도 몰랐다.
‘스승님은 보셨을까?’
함께 수술한 지 너무 오래됐다. 그만큼 제자를 믿는 스승이었지만 때론 아쉽기 짝이 없었다.
그런 감정이 들 때마다 음성 병원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입가에 미소를 가득 달고 말이다.
평생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일과를 끝낸 후, 수술 팀 모두 모였다.
이준영 교수까지 참석했다.
“환자는 괜찮아?”
역시 첫마디는 환자였다.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내일 아침까지 변동 없으면 바로 운동 및 식사 시작할 예정입니다.”
측면 접근으로 했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복강경의 의미가 무엇인지, 환자에게 어떤 이점이 있는지 새삼 강조되는 순간이었다.
이준영 교수의 입가가 살짝 말렸다.
“오늘 수술에서 특히 주의할 점은 없었어?”
담담한 말투로 오늘 수술을 검토하고, 평가하던 김지훈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수술 후에 다가온 감동과 벅참이 다시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수술 팀 덕분에 무사히 마쳤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경험이 쌓인다면 보다 안전하고, 빠르게 시행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느낀 점을 설명했다.
뒤늦게 달려온 신현수와 이경석도 때론 질문을 해 가며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 한 마디 한 마디가 피가 되고, 살이 될 말이었다.
검토가 모두 끝났다.
이준영 교수가 지그시 김지훈과 수술 팀을 보았다.
‘지훈아! 이젠 날 앞서가고도 남는구나. 우리 병원은 네게 좁은 세상이 된 지 오래된 것 같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할 때가 한참 지났는데 미안하다.’
“모두 수고했다. 오늘 수술을 바탕으로 큰 발전이 있길 바란다. 오 교수, 수고 많이 했어. 고맙다.”
고맙다는 말에 오창도가 어색하게 웃었다.
근무 시작 후 짧은 시간이 흘렀을 뿐이었다. 하지만 송재덕 교수의 대장이라는 말처럼 그 속에 수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준영 교수를 필두로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할 말은 없었지만 김지훈과 오창도가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상념에 잠긴 채 조용히 마무리를 지으며 나른한 것 같은 감정을 즐겼다.
‘이 수술도 최초일까?’
‘최초로 시도한 수술을 성공했을 때 느껴지는 감정이 이런 걸까? 뿌듯함으로는 설명이 안 되네.’
어느새 9시가 넘었다.
“어이쿠! 선생님, 퇴근하시죠. 수고하셨습니다.”
막 인사를 나누는 순간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퇴근이 늦으면 전화가 오기 마련이다. 별다른 기색 없이 전화를 받은 오창도가 김지훈을 보았다.
“왜 그러세요?”
“진충기 선생님 전화입니다.”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일까?
함께 얼굴 보았으면 하는 의사까지 전해 왔다.
오창도는 몰라도 김지훈에겐 별다른 용건이 없을 텐데 이상한 일이었다.
단순한 안부 인사라면 전화로도 충분했고, 진충기는 사소한 일로 얼굴까지 보자고 할 성격도 아니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여기까지 왔는데 인사하는 게 예의겠지. 한 교수님 일은 잘 해결됐을까?’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의 반, 호기심 반이었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진충기가 답답한 숨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인사도 할 겸 겸사겸사 부탁할 일이 있습니다. 낮에 오면 보기 힘들 것 같아 이 시간에 왔습니다. 밤늦게 죄송합니다. 오 교수와 함께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짐작되는 구석이 있는지 오창도의 안색이 무거웠다.
“선생님, 무슨 일이 또 있는 겁니까?”
“일이 있긴 한데, 별일 아냐.”
씁쓸한 웃음을 머금었다.
“얼굴 보니까 피곤해 보여도 표정이 좋네. S 병원으로 잘 간 것 같다. 김지훈 선생님,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무슨 부탁이요?”
“사정이 좀 생겨서 수술 부탁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간암 환자 한 분하고, 몇몇 어려운 질환을 라파로로 하기로 했는데 여의치가 않네요. 자체적으로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서 염치 불고하고 부탁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천하의 진충기가 수술을 부탁한다?
깜짝 놀랄 일이었다.
놀람도 잠시, 무슨 사정이 있는지 모르지만 H 병원, 혹은 진충기의 일신에 중대한 변화가 있다는 말이었다.
얼굴을 굳히고 있던 오창도가 몇 번이나 이유를 물었지만 별일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얼굴이 너무 안 좋아.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지?’
“오 교수, 당장 환자 보낸다는 말은 아니다. 부득이한 경우가 생길지 몰라서 부탁하러 온 것뿐이야. 만에 하나라도 대비해야지. 수술이 잔뜩 밀려 있을 텐데, 부탁하는 입장에서 전화로 하기도 뭐해서 말이야.”
“선생님, 정말 별일 없는 겁니까?”
“별일 있으면 내가 여기 있겠어?”
제법 크게 웃었다. 표정을 봐서는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니었다.
궁금함에 몇 번이고 입을 달싹이던 김지훈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분명 좋은 일은 아니었다. 당사자가 말하지 않으려는데 굳이 이유를 묻는 것 또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애써 태연한 표정을 유지했다.
‘곧 알게 되겠지.’
“다른 일도 아니고 환자 부탁인데 언제든지 보내 주십시오. 선생님께 폐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결 짐을 덜었습니다. 이제 이 얘기는 그만합시다. 오 교수, 그런데 오늘 당직이야? 왜 이 시간까지 병원에 있어?”
“오늘 수술한 환자 때문에 검토할 일이 있어서요.”
“환자? 무슨 환잔데 김지훈 선생하고 오 교수 실력이 모두 필요하지? 검토까지 한 걸 보면 꽤 어려웠던 환자인 모양이야. 무슨 환자야?”
목소리가 이상스럽게 높았다. 화제를 돌리려는 모양이었다.
그 때문인지 진충기가 병원 앞까지 찾아오게 된 이유, 수술을 부탁한 이유가 더욱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