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소나기? Ⅱ (1)
강병옥이 눈빛을 굳히며 기존에 박리된 후복막을 잡아당겼다. 오창도가 조심스럽게 카메라 각도를 조절해 사이에 존재하는 구조물을 정확하게 비췄다.
곧바로 혈관이다. 무작정 보비로만 지져 해결할 수 없다.
“카메라 더 근접시켜 주세요. 보비 온! 켈리! 타이!”
삐이이이! 삐이이이!
상대적으로 허술한 조직을 보비로 태우고, 혈관은 켈리와 모스키토로 잡은 후 자르고 묶었다.
부신과 연결된 혈관은 너무 연약했다. 그동안 쌓은 경험과도 완전히 달랐다. 살짝 비틀리거나 미세한 힘만 더 가해도 끊어질 정도였다.
앞으로 보이는 모든 혈관과 연결 조직이 동일한 양상을 보일 것이다.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깔짝깔짝!
지루할 정도로 느리게 부신과 후복막 사이를 켈리와 모스키토로 벌렸다. CT에서 확인할 수 없는 만성 염증이 동반됐는지 유착이 예상외로 심했다.
몇 번을 움직여서야 간신히 바늘 하나 비집고 들어갈 만큼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 사이를 파고들고 또 파고들어 모스키토가 들어갈 정도가 되면 어김없이 혈관이 앞을 가로막았다.
“모스키토로 혈관 잡습니다. 보비 온!”
빠지직! 빠지직!
부신 쪽 혈관은 동맥의 말단부기에 보비로 태워 막았다. 후복막 쪽 혈관을 그렇게 처리하면 제어할 수 없는 출혈이 야기될 수도 있었다.
타이뿐이었다.
“모스키토! 타이!”
부신 주변은 손으로도 하기 힘들었던 술기였다. 기구로는 전해지는 감각 자체가 둔탁했다. 얼마나 힘을 가해야 안전할지 정확하게 알기 힘들었다.
지금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그 모든 것을 얻어 내는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의 시각, 한 번의 촉각, 한 번의 느낌을 차곡차곡 손과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끊임없이 후복막, 혈관, 부신과 싸워야 한다.
손과 감각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적절한 기구를 찾는 일 역시 매우 중요했다.
“간호사, 보비 팁 후크처럼 동그랗게 구부러진 것 있죠? 그걸로 바꿔 주세요.”
고경아가 재빨리 찾아 간호사에게 넘겼다.
일분일초라도 시간을 아껴야 한다. 박리 과정에서는 단 1초도 단축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단한 도움이었다. 최고의 수술 팀이 왜 필요한지 또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수직 절개가 진행되면서 마치 커튼을 여는 것처럼 후복막이 점점 벌어졌다. 핏줄이 촘촘하게 얽힌 노란 부신의 노출 부위도 점점 넓어졌다.
섬뜩하다.
부신 속 어느 혈관 하나라도 터트리면 수처로 막아야 한다. 부신을 꿰매고 타이하는 것은 애를 먹고 있는 혈관 타이마저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전면을 박리하는 중이다. 측면은 물론 후면은 어떨지 감도 오지 않았다.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전면을 거의 다 노출시켰을 때 사달이 났다. 유독 유착이 심한 부위를 박리하는 순간 부신에 손상을 입히고 말았다. 빨간 피가 노란 부신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주변 조직과 구분이 어려워지면 어려움은 몇 배 이상 가중된다. 빠른 시간 내에 해결해야 했다.
“수처!”
두부처럼 연약한 췌장 봉합보다 더 연약하게 느껴졌다.
더구나 내부에 물이 찬 선종이다. 너무 깊게 뜨면 액체가 흘러나올뿐더러 부신에 강한 자극을 줄 것이다.
‘선종 벽 두께가 얇은 곳은 몇 밀리미터밖에 안 된다. 최대한 얕게 떠야 돼.’
너무도 섬세해야 했기에 손이 떨릴 지경이었다. 부신 속에 숨어 있는 선종 벽 두께가 지나치게 얇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숨까지 죽이고 은빛 바늘을 통과시켰다. 타이하는 내내 초긴장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고도의 집중력과 강한 정신력은 물론 정교함을 수행할 수 있는 체력까지 요구하고 있었다.
“가위!”
단 한 번의 수처와 타이로 온몸의 맥이 다 빠졌다. 부신에 추가 손상을 안 주고, 출혈을 제어했다는 사실 자체가 운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실패할 수밖에 없어. 막아야 한다. 절대 집중력을 잃으면 안 된다.’
깔짝! 깔짝!
너무도 느린 속도였지만 결코 지루함을 느낄 수 없는 시간이 흘렀다.
서서히 세로 절개의 끝이 보였다. 후복막이 활짝 열리며 부신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타이! 보비!”
마침내 전면이 모두 드러났다.
대략적인 부신 선종의 크기가 나왔다.
가로 5, 세로 6, 폭 6센티미터였다. 배 속 장기 중 크다고 말할 수 없었지만 부신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실로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수술 시간과 위험성이 급격하게 치솟았다.
수술 팀 모두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병옥아, 검사 결과대로야.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 변동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시작하자.”
이제 콩팥과의 경계를 박리해 두 장기를 분리해야 한다. 측면과 후면에 접근하기 위해, 자칫 콩팥 손상을 야기할 수 있는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반드시 선행돼야 하는 과정이었다.
‘현수가 했던 방식을 기억하자.’
“켈리 주시고, 보비 파워 조금 더 올려 주세요.”
콩팥의 단단함에 의지해 부신의 연약함에 대처했다.
켈리와 모스키토가 경계를 파고드는 순간 섬뜩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결코 피하지 못할 일이었다.
조금씩 콩팥과 부신이 분리됐다.
시야는 점점 좁아지며 기구를 움직일 공간이 그만큼 사라졌다.
보비로 지질 때마다, 타이를 할 때마다 땀방울이 축축하게 등을 적셨다.
“타이 들어갑니다. 카메라 각도 우측으로 바꿔 주세요. 병옥아, 콩팥은 강하니까 더 세게 눌러도 돼. 단, 부신이 딸려 올 정도는 안 된다.”
혈관을 터트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쉬지 않고 다가왔다. 측면과 후면은 훨씬 더 어려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어떻게든 떨쳐 내야 했다.
스멀스멀 배어 나오는 피.
삐이이이! 삐이이이!
날카로운 보비 소리와 함께 지져지는 조직.
경계 속으로 사라지는 매듭.
모든 동작 하나하나가 다음 과정을 위한 소중한 정보였다. 느껴지고, 보이는 모든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첫 번째 난관을 무사히 넘었다.
긴장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콩팥에서 분리된 부신을 보며 내뱉는 숨이 불규칙하게 떨릴 지경이었다.
반복적인 동작에 손의 감각마저 둔해졌다.
“5분간 쉬겠습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어깨를 풀던 강병옥이 헛기침을 하며 몸을 돌렸다.
김지훈이 오창도와 함께 복부 CT를 보며 차후 과정을 상의하고 있었다.
휴식은 지친 몸을 쉬는 시간일 뿐이었다.
“좌측 측면 이 부위에서 부신 동맥이 주행할 것 같습니다. 예정대로 먼저 동맥부터 잡고, 우측 측면과 후면을 박리하실 겁니까?”
김지훈의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통상 어느 장기든 혈관부터 처리하고 제거하지만 이번 수술은 다르게 접근해야 했다.
공간과 시야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동맥부터 찾다간 도리어 손상을 가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조건이 충족된 걸까?
‘경계부를 분리했고, 전면은 완전히 노출됐다. 더 이상 시야와 공간을 확보하긴 힘들다. 후면 박리 때 발생할 수 있는 출혈을 감안하다면 주된 혈액 공급을 먼저 차단하는 것이 안전해.’
“동맥부터 잡죠. 자! 조금만 더 고생합시다.”
다시 각자의 자리에 섰다.
두 번째 난관이자 가장 위험한 구조물의 처리를 앞뒀다. 사실상 성공과 실패의 첫 번째 갈림길일 수도 있었다.
김지훈이 기구를 가져가는 순간부터 완전한 침묵에 휩싸였다.
모스키토로 부신 측면을 조심스럽게 벌렸다.
역시 후복막과 연결된 가느다란 혈관과 연결 조직으로 박리 자체가 쉽지 않았다.
신중하게 하나하나 해결하며 조금씩 파고들었다.
기구를 움직일 공간이 점점 좁아졌다. 덩달아 시야까지 더욱 나빠졌다.
가느다란 혈관의 출혈도 무서운데 하물며 부신 동맥이다. 동맥을 찾는다고 무작정 박리하면 스스로 위험을 초래하는 꼴이었다.
마치 층층이 쌓인 흙을 걷어 내듯 측면 일부를 길게 박리한 후 다시 한 번 반복했다.
후복막과 부신과의 경계가 벌어지며 아슬아슬하게 시야가 유지됐다.
또 하나의 혈관을 지지고 막 타이를 끝내는 순간 오창도가 재빨리 신호를 보냈다.
“김지훈 선생님, 바로 밑에 동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확실하게 확인부터 하죠.”
기구를 뒤로 빼고 카메라를 접근시켰다.
굵고 하얀 외벽을 가진 구조물 일부가 보였다. 툭툭 뛰는 것을 보아 동맥이 분명했다. 지금까지 처리한 혈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굵었다.
직전까지 보지 못했다. 순간 싸늘한 기운이 뒷덜미를 스쳤다.
‘후우! 조심한다고 했는데, 오창도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집도의의 실수를 사전에 방지하는 것 역시 퍼스트의 역할이라지만, 경험이 풍부한 써전과 한 팀을 구성한 덕을 톡톡히 봤다.
절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살짝 감사의 눈빛을 보내고, 동맥을 노출시키기 위한 과정에 들어갔다.
좁고 깊은 수술 부위, 손상되기 쉬운 부신 조직과 구조물, 제한된 기구 조작에 온몸에 식은땀이 맺혔다.
눈에 보이는 부분 주변을 박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동맥 후면을 깨끗이 정리하기 위해 수술 팀의 역할까지 바꿔야 했다.
“동맥 후면 박리합니다. 병옥아, 오창도 선생님께 기구 넘기고 네가 카메라 잡아.”
새로운 각도에서 시야를 확보했다.
오창도까지 기구를 잡고 동맥 후면에 접근했다.
손톱만 한 공간 속에서 기구 3개를 조작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숙련된 써전들이 아니면 기구끼리 충돌해 오히려 문제를 야기할 수 있었다.
오창도는 김지훈의 의도하는 바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정확하게 이행했다. 동맥을 적절하게 밀고 당겨 후면이 안전하게 노출되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은 조금도 경감되지 않았다.
“반대쪽을 밀어 주세요. 병옥아, 카메라 약간만 뒤로.”
‘끙’ 소리가 절로 나왔고, 동맥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극도로 좁은 공간 속에서 부딪칠 것처럼 교차되는 기구를 볼 때마다 가슴이 서늘해졌다.
벌떡벌떡!
마침내 동맥을 완전하게 노출시켰다.
끼이이이! 끼이이익!
클립을 이용해 이중 삼중으로 묶었다.
이로써 부신에 흘러 들어가는 혈류의 상당 부분이 차단됐다. 출혈을 제어하기 한결 쉬워지겠지만 남은 혈관을 생각하면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후복막과 맞닿은 부신 후면을 박리해야 한다.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겁도 났다.
가장 안전하게 진행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 정도로 호흡이 맞는다면 카메라는 병옥이가 맡아도 충분할 것 같다. 그렇다면 능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구를 하나 더 늘리는 것이 맞아.’
“오창도 선생님, 계속 기구 잡으시고 함께 진행하죠.”
집도의 못지않은 역할이다. 오창도가 눈가에 바짝 힘을 주었다.
드디어 후면 박리가 시작됐다.
정상 크기보다 네다섯 배 이상 커진 부신을 제치며 후복막과의 경계를 박리해야 한다. 무리하게 밀면 혈관과 부신 손상을 유발할 수 있다. 극도로 좁아진 시야와 공간 속에서 기구 조작은 최악일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악조건이었다.
공간을 확보하는 오창도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카메라를 잡은 강병옥의 긴장이 환히 보였다. 김지훈은 말도 못할 어려움에 눈도 깜빡이지 못했다.
그러나 계속 진행해야 한다.
극도의 긴장과 어려움은 써전을 구석으로 몬다.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피로, 저하되는 집중력, 허리가 뻐근해지는 통증, 인내와의 싸움이 이어졌다.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
주르륵!
숨어 있던 혈관이 끊어지며 소용돌이처럼 피가 흘러나왔다. 동맥을 잡았건만 상당한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남아 있었다. 치명적인 상황이다.
김지훈이 이를 악물었다.
“석션! 거즈! 수처!”
공간이 워낙 좁아 순식간에 피가 차올랐다.
석션으로 간신히 시야를 확보했지만 수처는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입 안이 바짝 말라 왔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피가 솟는 부분을 정확하게 찾아야 한다. 초조함을 못 이기고 석션을 따라 쭉쭉 빨려 들어가는 피에 시선을 빼앗기면 안 된다.
정확한 지점, 정확한 수처, 단 한 번뿐인 기회.
눈을 부릅뜬 채 화면을 보던 김지훈이 빠르게 한 바늘을 떴다. 실을 빼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옆에 또 한 바늘을 떴다. 최대한 넓은 부위를 수처한 것이다.
타이다.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타이였다.
극도의 긴장과 부담을 이기지 못하면 실수한다.
길게 숨을 내쉬어 어깨와 팔의 긴장을 풀고 서서히 매듭을 조였다.
핏속으로 사라지는 매듭과 기구를 통해 전해지는 감각에 집중했다.
툭툭툭! 적절한 힘을 가해 매듭을 끝까지 조였다. 혈관을 놓쳤을 때를 대비해 실도 자르지 않고 지켜보았다.
멈췄다. 분명히 멈췄다.
순간 맥이 탁 풀렸지만 빠르게 추슬렀다. 후면 박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불과 1~2센티미터가 남았다고 해도 처음과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스키토! 수처! 타이! 보비!”
위험한 과정이 쉼 없이 이어졌다. 수술 팀의 시선은 오직 한곳만을 향했다.
오로지 성공해야 한다는 각오하에 각자 자신이 가진 경험과 역량을 남김없이 쏟아부었다.
혈관을 묶은 매듭이 늘어나고, 커다란 부신은 차츰차츰 후복막에서 분리됐다.
수많은 난관과 위기를 차례차례 넘기며 점점 마지막이 가까워졌다.
째깍! 째깍!
“컷!”
마침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지독한 싸움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