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913화 (913/1,329)

3화. 무지개를 보려면 소나기를 견뎌야 한다 Ⅳ (2)

일반적인 선택은 콩팥과 동시에 부신까지 모조리 제거하는 것이다. 부신과 복잡하게 연결된 많은 혈관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적 이점은 크지 않지만 남기는 것보다 훨씬 편하고, 안전하다.

더구나 가급적 빠른 시간 내에 안전하게 끝내야 하는 출혈 환자의 응급 수술이다. 콩팥 손상으로 인해 주변 조직이 온통 피로 물들었다. 가뜩이나 어려울 박리가 더욱 어려워졌을 것이다.

반면 손가락 두 마디 크기에 불과하지만 필수 호르몬을 분비하는 대단히 중요한 장기다. 살릴 수 있으면 살리는 것이 좋다.

김지훈으로서도 판단하기 쉽지 않았다.

‘장단점이 확연하게 갈릴 때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최선이다. 반대쪽에도 부신이 있지만 손상받지 않았다면 환자에게 최대한 유리하게 진행해야 한다.’

“마취과, 바이탈 어떻습니까?”

“잘 유지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시간 여유를 얻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최선의 방법은 부신을 확인하는 것뿐 다른 방법은 없었다. 문제는 어디까지 어떻게 확인할지였다.

모든 생각을 다 털어 내고 오직 한 가지에만 집중했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정상적인 부신은 매우 작다.

더불어 정은영 환자 수술에 막대한 도움이 될 절호의 기회였다. 행여 그 때문에 성급한 결정을 내릴지 몰라 다시 한 번 판단에 신중을 기했다.

‘다시 생각해 봐도 틀린 판단이 아니다.’

“현수야, 부신 위를 덮은 후복막을 세로로 2센티미터 정도만 절개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야. 콩팥은 중심 부근에서 깨졌으니까 절개선을 따라 보이는 부신이 정상이라면 추가 손상은 없을 가능성이 높아. 직접 확인하자. 오창도 선생님, 진우야, 어떻게 생각해?”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결정만이 남았다.

‘지훈이와 오창도 선생님의 의견이라면!’

김지훈과 눈빛을 교환한 신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후복막 일부 절개합니다. 켈리! 보비! 멧젬!”

켈리로 후복막 일부를 잡았다.

보비로 살짝 끝을 지졌다.

조심스럽게 수술용 가위로 절개했다.

불과 2센티미터라고 해서 위험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어렵지 않을 것이란 예측은 오판이었다. 절개를 시작하자마자 뻘건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이거 이상한데? 왜 이렇게 피가 쉽게 나지?’

“수처! 타이! 거즈 들어오고, 석션!”

의문을 뒤로하고 절개 부위 출혈부터 처리했다.

천만다행 부신에서 나오는 피가 아니었다.

몇 번의 수처와 타이 끝에 후복막을 모두 절개할 수 있었다. 더 이상의 출혈은 없었고, 후복막 손상을 감안하지 않은 탓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후우! 판단 잘못 내린 줄 알고 십년감수했네.’

이제 부신을 확인할 차례였다.

수술 팀의 시선이 콩팥과의 경계부 및 절개선 사이로 보이는 부신에 집중됐다.

신현수가 직접 작은 리트랙터를 걸어 다시 한 번 콩팥 상부와 부신과 맞닿은 부분을 확인했다.

모두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노랗게 보여야 할 부신에서도 피가 관찰됐다.

애매모호했다.

콩팥에서 나온 피가 스며든 것일까?

부신까지 손상받은 것일까?

확인할 수 있는 부위가 너무 적어 직접적 손상 여부를 확인하기 쉽지 않았다.

여러 번 씻어 냈지만 조직에 물이 스며들어 가 부풀어 오를 뿐이었다.

신현수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부신을 덮고 있는 후복막을 더 열고 확인해야 할까? 그냥 제거하는 편이 좋을 것 같지 않아?”

손상 여부를 확신하지 못하는 경우 집도의의 부담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가중된다. 수술 후 문제를 우려해 제거하는 쪽으로 기울기 마련이었다.

김지훈이 신중하게 부신을 살폈다.

외력에 의한 손상은 광범위하면서도 다양한 양상으로 관찰된다. 피멍이 든 정도이거나 다른 부위 손상에 의한 영향이라면 보존해도 된다.

아무리 보아도 부신은 직접적으로 손상받지 않았다. 집도의에게 가해지는 부담과 한 번도 보지 못한 장기가 주는 불안일 뿐이었다.

‘성급한 결정이다.’

“현수야, 손상 없어. 살리자.”

“신현수 선생, 나도 그렇게 생각해.”

손일석과 송진우는 말이 없었다.

무언의 긍정이었다.

나직한 숨을 내쉰 신현수가 한참을 고민했다.

수술 팀 전체 의견이 모인 이상 집도의가 느낄 수밖에 없는 두려움과 불안은 털어 버리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다. 그 덕인지 부신 부위가 더욱 명확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경험이 하나도 없다고 너무 겁먹었어. 손상은 없다. 자신과 확신을 갖고 진행하자.’

“오케이! 진행하자.”

이제 콩팥과 부신을 분리해야 한다.

단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수술이었다. 그러나 뛰어난 써전들로 구성된 수술 팀이었다. 자신감을 갖고 진행하면 목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모스키토! 부신 경계부 박리 시작합니다.”

예상외로 난관이 많았다.

일단 시야가 극도로 나빴다.

사방이 피로 물들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위치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깊고 좁아 리트랙터를 함부로 잡아끌면 추가 손상을 입히기 십상이었다.

캡슐은 조직학적 구조에 불과했다. 말랑말랑한 지방 덩어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게다가 호르몬을 분비하기에 혈관까지 매우 풍부한 장기였다. 조금이라도 힘을 잘못 가하면 쉽게 손상을 줄 수밖에 없었다.

연약한 장기이기에 모든 것을 주의해야 했다.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경험이라는 놈이 이렇게 무서울지 몰랐다.

‘아! 캡슐이란 단어를 교과서에 쓰인 그대로 해석했구나. 하마터면 큰 착각을 하고 수술할 뻔했어. 천만다행이다.’

신현수 역시 똑같은 자료로 정은영 환자 수술 논의에 참석했다. 생각했던 바와 다른 모양인지 얼굴을 더욱 굳혔다.

간을 절제할 때 이상으로 조금씩 박리해 나갔다. 단단한 콩팥에 붙은 연약한 부신, 언제 나올지 모르는 혈관은 긴장 그 자체였다.

신현수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아니, 수술 팀 전체가 순식간에 땀으로 젖었다.

따르륵! 따가각!

“타이 들어오고, 진우야, 아래쪽으로 끌자.”

따르륵! 따가각!

“오창도 선생님, 수처 들어갑니다. 바로 인접해 혈관이 있으니까 살짝, 아주 살짝만 끌어 주세요.”

김지훈의 눈빛은 신중하기만 했다.

불과 4~5센티미터를 박리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타이할 때마다 말랑말랑한 조직이 손상받을까 조마조마하기만 했다.

‘후우! 타이 정말 어렵다. 집중하자, 집중.’

주변 구조를 봐야 한다는 사실을 잊은 지 오래였다. 아차하면 부신까지 모두 제거해야 한다. 반대쪽이 남아 있긴 하지만 살릴 수 있으면 그만큼 환자에게 이득이었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 차츰차츰 부신이 분리됐다.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부신을 여러 방향으로 밀어야 한다는 부담이 점점 커졌다. 과도한 조작은 손상을 입힐 것이고, 반복적인 조작은 부신 세포를 자극해 호르몬 분비를 급격하게 늘릴 수 있었다.

신중하고 침착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어느 경우든 부신을 포기해야 할 가능성이 높았다. 수술 팀 전체가 극도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3분의 2 이상 박리했다.

신현수의 손은 더없이 침착했고, 김지훈을 비롯해 수술 팀의 어시스트는 완벽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피멍이 들었다. 표면에 발생한 손상이라 다행이었지만 부신이 얼마나 약한 장기인지 실감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거의 다 박리됐다.

불과 1센티미터도 안 남았을 때 시뻘건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신현수가 재빨리 모스키토를 뺐고, 김지훈은 곧바로 거즈를 가져갔다.

순식간에 거즈가 피로 물들었다.

심상치 않았다.

신중하게 거즈를 치우고 출혈 부위를 확인했다.

신현수가 눈가를 찌푸렸다.

그토록 조심했건만 조직 자체에 손상을 입혔다. 설상가상 모스키토가 뚫고 들어간 자리에 가는 혈관까지 숨어 있었다. 불가항력이지만 문제는 어떻게 제어할지였다.

압박은 답이 아니었다.

“지훈아, 타이로는 안 될 것 같다. 수처하자.”

결국 부신 조직 자체를 건드려야 했다.

극도의 신중함 속에 수처가 진행됐다.

바늘이 들어가는 순간 쭉 찢어질 것처럼 부신 조직은 연약하게만 보였다. 수많은 수술 경험이 아니었으면 실수하고 남았을 것이다.

바늘을 뺀 신현수가 훅! 숨을 내뱉었다.

“타이!”

이제 퍼스트의 손이 남았다.

실을 잡은 김지훈이 지그시 이를 물었다.

췌장보다 더 약한 장기였다. 실 자체가 조직을 찢을 수도 있었다. 어느 정도의 강도와 힘으로 타이해야 할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강해도, 약해도 안 된다.’

손가락으로 전해지는 감각에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볼 수 있으면 봐야 한다. 아니, 타이할 부분에서 시선을 놓치면 절대 안 된다. 좁은 시야 속에 숨은 부신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매듭이 조여지며 점점 팽팽해지는 실이 느껴졌다. 어느 순간 더 이상의 힘은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경험이 전하는 분명한 경고였다.

그 상태에서 타이를 끝냈다.

이제 피가 나면 안 된다.

수술 팀 모두 타이의 결과에 숨죽였다. 이마에 맺혔던 땀이 귓가를 타고 흘렀다.

거즈를 적시던 피가 서서히 사라졌다.

신현수의 마스크가 불룩해졌다.

“됐어. 멈췄다. 계속 진행합시다.”

마지막으로 남았던 부신과 콩팥 연결 부위가 완전히 박리됐다. 노란 지방 덩어리 같은 부신을 남기고 좌측 콩팥을 배 밖으로 꺼냈다.

끙 소리, 맥이 빠져 버린 것 같은 숨소리.

가로 4~5센티미터, 세로 2센티미터 전후의 반달 모양으로 콩팥과 좌측 횡격막 사이에 위치한 부신을 살렸다.

무려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손가락 두 마디에 불과한 장기를, 그것도 콩팥과의 경계를 박리했을 뿐인데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

극도로 치솟았던 긴장이 이제야 다소 완화됐다.

잠깐 허리를 폈지만 더 이상의 휴식은 허락되지 않았다.

수술 부위가 넓고, 부신을 건드렸기에 호르몬 분비 이상이 초래될 수도 있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환자에게 가해지는 부담이 점점 커질 것이다.

빠르게 비장과 콩팥을 모두 제거했다.

쉴 틈이 없었다.

지체 없이 마무리에 들어갔다.

김지훈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역순으로 진행된다.

콩팥을 제거하고 부신만 남아 있는 공간부터 처리한 후 후복막을 닫아야 한다. 어떤 면에서는 바로 이 부분을 보기 위해 들어온 수술이었다.

성공적으로 끝났고, 바이탈까지 안정된 이상 소기의 목적을 확실하게 달성할 기회였다.

부신의 정확한 위치부터 후복막 어디를 절개해야 가장 정확하게 접근할 수 있는지 머릿속에 담았다.

띠! 띠! 띠! 띠! 띠!

안정적인 심박동 소리와 함께 복부를 모두 닫았다.

“환자분, 눈 떠 보세요. 수술 다 끝났습니다.”

“끄으응! 끄으응!”

무겁기만 할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무사히 마취에서 깨어난 환자를 보며 긴 숨을 내쉰 김지훈이 휴게실로 향했다. 뒤따라 들어가던 오창도가 피식 웃고 말았다.

‘부신 처리 참 어렵네. 아직도 섬뜩해.’

잠시 후, 신현수와 손일석까지 함께했다.

“지훈아, 덕분에 수월하게 수술했다. 나 때문에 고생했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정말 보기 드문 경험이었다. 부신에 접근해 처리하는 과정까지 모두 보았으니 큰 도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김지훈의 얼굴이 묘했다. 답답하면서도 후련한 한숨을 내쉬었다.

“현수야, 많은 도움이 됐다. 그 덕에 찜찜함까지 확실하게 사라졌어. 오창도 선생님, 역시 라파로로는 힘들겠죠?”

손일석이 깜짝 놀랐다.

‘뭐야? 부신 절제를 라파로로 할 생각이었어? 어후! 겁이 없는 거야, 아니면 그새 또 한발 앞선 거야. 끝을 모르는구나, 끝을. 괴물 같은 놈!’

오창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번 수술을 보니까 라파로는 너무 위험할 것 같습니다. 후복막 처리는 물론 부신을 제거할 수 있을지조차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부신 박리 중 기구로 타이가 가능하겠습니까?”

“쉽지 않겠죠?”

“오늘은 콩팥과 붙어 있는 부신 아랫부분만 진행했습니다. 나머지 부분, 특히 후면부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시야를 확보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반박조차 할 수 없는 말이었다.

“현수야, 너는 어떻게 생각해?”

“지훈아, 나는 아직도 손이 떨려. 사실 라파로에 도움이 되라고 연락한 게 아니야. 측면 접근을 하더라도 정확한 지식이 없으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수술이잖아. 라파로는 너무 위험해. 잘 생각했어.”

말은 달라도 두 의견 모두 명확한 반대였다.

십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라파로가 얼마나 위험할지 너무 과소평가했어. 이 정도 위험성이라면 측면 접근으로 얻는 이득이 훨씬 커.’

“환자를 위한다고 하면서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린 것 같아. 현수야, 고맙다. 오늘 수술 아니었으면 당장 내일이 수술인데 직전까지 라파로에 미련을 둘 뻔했어. 환자 몸에 칼 대는 써전이 이렇게 우왕좌왕하면 안 되는데 말이야.”

“신현수 선생, 나도 내심 갈등 많이 했는데 덕분에 확실하게 정리할 수 있었어. 고마워.”

“전 그냥 제 환자를 수술했을 뿐입니다.”

“다른 파트 환자 기억해서 연락할 생각 아무나 못하지.”

“그런가요?”

신현수가 밝게 웃었다.

말과는 달리 김지훈은 실망감, 혹은 부족함을 심하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집도의의 마지막 갈등을 없애고, 적절한 판단을 내리는 데 일조했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렵고 힘들고 갈등까지 있었던 수술이었지만, 원하는 바를 모두 이뤘다. 더불어 다신 얻지 못할 귀중한 경험까지 얻었다.

결과적으로 써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보람을 느낀 수술이었다. 수술 팀, 그중에서도 김지훈은 자신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김지훈이 크게 기지개를 폈다.

“깔끔하게 정리한 덕인지 개운하네.”

그렇게 마지막까지 남았던 미련을 버렸다.

병원에 나온 김에 정은영 환자를 만났다.

“어디 불편한 데 없으시죠? 불안해하지 마시고 마음 편히 가지세요.”

“고맙습니다.”

환자도, 늙은 아버지도 상당히 초조한 기색이었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관련된 질환이기에 정신적 불안은 큰 문제였다.

2시간마다 체크한 바이탈이 안정적인 것을 확인한 후, 환자를 최대한 안심시키고 집으로 향했다.

차에 오르던 손일석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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