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무지개를 보려면 소나기를 견뎌야 한다 Ⅲ (2)
다음 날, 오후 회진.
오창도와 함께 정은영 환자를 찾았다.
여전히 헐떡이는 숨과 벌건 얼굴, 움직이기도 힘든 무력감이 눈에 환히 보였다. 입원 치료 한다고 하루 이틀 사이에 좋아질 증상이 아니었다.
‘이 상태로는 수술 못하는데 걱정이다.’
마침 담당 내과 교수가 들어왔다.
“선생님, 언제쯤 수술이 가능하겠습니까?”
표정이 좋지 못했다.
“일주일은 잡아야 할 것 같아. 다음 주 월요일이 어떨까? 중간에 확 나빠지지 말아야 하는데, 자신할 수가 없네.”
일주일이나 남았다.
수술 방법을 두고 의사와 환자의 차이가 극명하더니 시간까지 그랬다. 김지훈에겐 여유가 생긴 꼴이지만 그만큼 치료가 어렵고, 증상이 심하다는 말이었다.
환자에겐 도리어 여유가 없는 상황이었다.
월요일 예약 수술도 문제였다.
정은영 환자의 수술은 절대 미룰 수 없다. 언제 증상이 악화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수술 날이 겹치는 탓에 오창도와 수술실 하나를 놓고 차례대로 사용해야 한다.
이래저래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오창도 선생님, 다음 주 월요일에 몇 개 잡혀 있으세요?”
“전 두 건입니다.”
“제가 네 건이니까, 도합 여섯 건이면 오후 시간만으로는 모두 할 수가 없네요. 수술을 더 뒤로 미룰 상황도 아니고, 어떻게 하지?”
단순히 방 하나 부탁하는 일이 아니었다.
수술 방, 마취과 간호사에 마취과 의사까지 그만큼 인원이 더 필요하다.
더구나 일반외과 전체 수술이 상당히 많아 모두 힘들어하는 분위기였다.
인맥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김진호 교수가 딱 떠올랐다.
‘오전에 오창도 선생님과 이 환자 수술하고, 오후에 양방 열면 가능하겠다. 맥주 사 들고, 바짓가랑이 붙잡으면서 사정하는 수밖에 없겠어.’
만성적으로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약해지는 법이다.
의사들에게 둘러싸인 정은영이 상당히 두려워했다. 김지훈에게 눈길조차 주지 못했다. 수술 날짜까지 오고 간 탓에 더욱 그럴 것이다.
보호자를 따로 만났다. 늙은 아버지뿐이었다.
“보호자분, 환자분에겐 수술 이외에 다른 치료는 더 이상 효과가 없을 것 같습니다. 빨리 하면 좋겠지만 마취와 수술을 견딜 수 있는 상태가 돼야 합니다. 심리적인 면도 중요하니까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신경 써 주십시오.”
“우리 딸이 너무 힘들어합니다. 수술을 받으면 괜찮아질까요? 수술은 안전한 겁니까?”
변동 가능성이 너무 커 확신을 줄 수 없었다.
수술의 위험성을 설명할 때는 너무 두려워해 거짓말이라도 해서 안심시키고 싶었다.
오히려 더 큰 문제만 야기할 뿐이었다.
아버지의 불안과 걱정에 미안하기만 했다.
복강경을 이용한 수술이 입 안에서 맴돌았지만 확정되지 않았기에 함부로 꺼낼 수 없었다. 통상적이고 의례적인 말만 꺼내야 헸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늙은 아버지의 이마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의사까지 같은 기색을 보이면 좋을 일이 없다. 하얀 가운을 입은 써전을 보는 것만으로도 불안해하는 상황이었다. 서로에게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웃는 얼굴로 정은영 환자를 다시 찾았다.
“환자분, 어제보다 좋아 보이시네요. 치료 잘 받으시고, 준비되는 대로 수술하겠습니다. 눈 한 번 감고 뜨면 끝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정은영 환자가 눈도 뜨지 못했다.
맥박이 무척 빨랐다.
현재 상태에서 부신 선종은 시한폭탄과 다름없었다. 두려움과 불안은 모든 면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환자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자주 찾는 수밖에 없었다.
수술 전에 응급 상황이 벌어지지 않기만을 바랐다.
‘확신을 가질 만한 실마리라도 잡아야 하는데 뭐가 있을까? 누군가 먼저 시도한 적이 있었으면 좋겠다.’
한 줄기 희망을 품었건만, 인턴이 찾아온 논문은 별다른 도움이 되질 않았다.
함께 자료를 확인한 오창도 역시 고민만 하고 있는 눈치였다. 누구도 확신을 갖고 결정할 수술이 아니라는 점이 더욱 강하게 다가왔다.
‘측면 접근이 최선인가 보네.’
어두운 하늘만큼 앞이 보이지 않았다.
***
하루하루가 바쁘게 지났다.
정은영 환자를 회진 때마다 찾은 덕에 이젠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말 몇 마디 하고 난 후 힘들어하는 모습에 복강경 수술이 간절해졌지만 여전히 확신은 없었다.
늙은 아버지의 말은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스무 살 즈음인가? 갑자기 몸이 안 좋다고 하는데, 먹고살기 바빠 그러려니 했습니다. 어느 날 딸애가 이상해 병원을 찾았더니, 이 몹쓸 병이 의심된다고 큰 병원을 가 보라는 겁니다.”
한숨 소리가 깊어졌다.
“그때 빨리 갔어야 하는 건데, 집사람은 더 무서운 병과 싸우고 있더군요. 위암이었는데 온몸으로 다 퍼져서 수술도 못했습니다. 얼마 없는 돈 다 까먹고 집사람은 무심하게 세상을 떠났어요.”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마지막 가는 갈에 딸애 손을 잡고 그러더라고요. 뭐가 그렇게 미안한지 미안하다는 말만 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자기 대신 딸아이를 치료했어야 한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
20년이나 딸의 고통을 지켜보았다. 아버지의 가슴도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졌을 것이다.
“예, 아버님.”
“저도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 딸아이 혼자 잘 사는 모습을 봐야 마음 편히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과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까 굉장히 어려운 수술이지만 나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꼭 좀 살려 주십시오.”
무심한 듯 담담한 말이 끝났다. 그래서 더 서글프게 들렸다.
늙은 아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자식의 눈물에 부모 가슴이 찢어지듯 부모의 눈물 역시 자식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나이 든 아버지의 걱정과 한탄에 답답한 한숨만 내뱉어야 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좋은 의견을 주길 바랐다.
H 병원 의사들까지 떠올랐다. 그 탓인지 문득 한성희가 생각났다.
“오창도 선생님, 한 교수님은 어떻게 되셨나요?”
한숨부터 나왔다.
“진충기 선생님이 계속 최인호 교수님과 얘기하는 중이라는데 아직 변동이 없습니다. 분위기가 상당히 안 좋은 것 같습니다.”
“한 교수님도 라파로 센터의 핵심이 되신다고 들었는데, 왜 고집을 부리실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짐작 가는 바가 있어 보였지만 말을 아끼는 눈치였다. 이제는 외부 사람이기에 알 도리가 없을 수도 있었다.
콧노래를 부른 날이 엊그제 같은데 사방이 암울한 일로 가득했다.
‘분위기 상당히 안 좋겠네. 모른 척하고 진충기 선생님한테 의견을 구해 볼까? 에이! 어떤 상황인지 알면서 전화 걸면 그것도 예의가 아니겠지.’
고민하는 사이 날이 바뀌고, 주말이 왔다.
유일한 위안이라면 맥주 두 박스에 월요일 오후 양방을 보장받았다는 사실 하나였다.
상황을 들은 김진호 교수도 고개를 저었다.
“김 교수, 무리하지 마. 사고 나면 모든 사람이 돌변한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잖아? 측면 접근으로 수술해. 그게 제일 안전하다.”
써전보다 더 많은 수술을 보는 마취과 교수의 조언이었다. 존경하는 선배가 아끼는 후배에게 하는 말이기에, 그 속에 담긴 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더 포기할 수 없었다. 아집이나 고집이 아니라 이미 측면 접근이라는 수술 방식으로 마음을 굳히는 중이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마치 죄책감처럼.
집담회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이번 주에 벌어진 수술 평가를 받은 직후, 정은영 환자 수술을 정식으로 주제에 올렸다.
환자 설명을 들으며 다들 심각한 표정을 지었지만 결론은 간명했다.
“지훈아, 교수야, 집도의가 복강경을 확신하지 못하고, 개복과 측면 접근의 위험성 차이도 확연한데 왜 아직도 결정을 미뤄? 비만이 심해도 배보다 옆구리 살이 적으면 수술하기도 편하잖아? 환자를 위한 마음은 알지만 욕심 부리면 안 된다. 안 돼. 최악의 선택이 될 수 있어.”
“송재덕 선생님 말씀이 맞다. 복강경으로 시도하다 개복하게 되면 시간이 엄청 걸릴 텐데 환자가 버티겠나?”
한동안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차이는 없었다.
모든 써전이 우려하는 수술을 고집하는 것은 욕심과 다름없었다.
내과에서 전과된 정은영 환자를 볼 때까지 갈등을 느꼈지만 결국 입 밖에 내지 못했다.
“환자분, 예정대로 월요일에 수술하겠습니다. 절대 안정을 위해서 병실을 안 옮기는 거니까 다른 걱정은 하지 마세요. 내과 선생님이 수술 후에도 저희와 잘 봐주실 겁니다.”
훌훌 털었다.
더구나 이번 주말은 희연이의 백일잔치를 하는 날이다. 우울한 기색은 손톱만치도 보여서는 안 된다. 모든 정성을 다해 가족과 함께할 때였다.
식당에서 백일잔치를 한다고 여유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토요일 내내 희연이 옷 입혀 보다 시간 다 보냈다.
가뜩이나 빼어난 외모를 자랑하는데 고경아의 정성까지 겹쳐 동화 속에 나오는 공주로 변신했다.
예쁘기만 한데 희연이는 왜 자꾸 울까?
대망의 일요일 아침이 밝았다.
간만에 가족 모두 모여 의미 있는 식사를 즐겼다. 희연이 예쁘다는 소리가 넘쳐 났고, 손일석과 정훈철 부부까지 와 기쁨이 두 배였다.
희연이도 자신이 주인공임을 아는지 방긋방긋 웃으며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홀딱 홀렸다.
“경아는 제법 많이 울었는데 누구 닮아서 이렇게 잘 웃나? 김 서방, 어렸을 때 웃음을 달고 살았어?”
“글쎄요. 저는 기억이 안 나서요.”
“아버님, 저때 기억이 나면 그게 사람은 아니죠. 아니네. 우리 형님 일하는 강도를 보면 사람이 아니긴 하네요.”
손일석의 너스레에 장모와 딸들은 째려보고, 장인과 사위, 그리고 아들은 웃었다. 고경아의 매서운 눈초리는 가히 발군이었다.
“험험! 의사 생활이 다 그렇지, 뭐. 김 서방 일복은 어디서 받은 거야? 하긴 나도 젊었을 때는 만만치 않았어.”
한참 일복에 관한 말이 오고 갔다.
저마다 자기가 제일 힘들게 일했다고 열변을 토했다. 사시를 패스한 서정호, 방송국에 근무하는 정훈철은 물론 전업주부와 고경아 역시 빠질 수 없는 자리였다.
다들 자신의 자리에서 바쁘게 살고 있었다.
내 일복! 네 일복! 우리 일복!
결코 우열을 가릴 일이 아니었지만 휴가 때마저 일을 달고 산 김지훈을 따를 사람은 없었다.
나쁜 놈 수갑 채운다고 정신없는 서정호의 인정으로 일단락됐다.
“역시 고수는 말을 안 해도 알아줄 수밖에 없네요. 그래도 상대적으로 힘든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군 생활 중 제일 편하다는 군의관 하면서 저만큼 고생하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이번 주에도 수술만 무려…….”
열변을 토하던 손일석이 김지훈의 찌릿한 눈길에 입을 닫았다. 수술 숫자 말해 봐야 새 발의 피일 뿐이고, 공연히 눈총만 살 일이었다.
그나저나 일복이란 소리 너무 많이 나왔다.
‘어째 기분이 싸하다.’
잠깐 스친 불안이었는데 어김없었다.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다들 별생각 없이 김지훈을 보았다.
주말 당직도 아니고, 중환자실 환자도 없다고 했으니 별일 아닐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전화를 받는 김지훈의 표정이 상당히 심각했다.
‘혹시 정은영 환자가?’
후배 목소리면 백 퍼센트였다.
다행히 신현수였다.
‘갑자기 웬 전화야? 혹시 우리 딸 백일이라고 전화했나?’
(지훈아, 방금 전에 연락받았는데 비장하고 콩팥 손상받은 환자가 올 거야. 혹시 콩팥 쪽까지 열어야 한다면 부신 선종 환자 수술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전화했어.)
기대와 달리 새로운 갈등을 던졌다.
난감한 일이었다.
자리는 끝난 것과 다름없지만, 온 가족에 손일석과 정훈철까지 왔다.
더구나 당직도, 자신의 환자도 아니다. 병원에 가 봐야 한다는 말을 하면 분위기 깨지는 정도가 아닐 것이다.
‘흔치 않은 기횐데 어떻게 하지? 그래도 오늘은 절대 안 돼. 경아 씨하고 희연이한테 평생 욕먹는다.’
말이 없자 신현수가 입맛을 다셨다.
(희연이 백일이라 힘들지? 혹시 다 끝났을지도 몰라서 전화한 거니까 신경 쓰지 마. 어차피 측면 접근으로 결정됐잖아.)
“아무튼 고맙다. 환자는 언제 도착한대?”
마음과 달리 말이 헛나왔다.
도착 시간은 왜 물었을까?
(한 시간은 걸릴 것 같아. 바이탈 심하게 흔들리기 전에 도착해야 할 텐데 걱정이야. 참! 희연이한테 백일 축하한다고 꼭 전해 줘.)
곤란할 것이 빤한데 연락해 미안한지 신현수가 농담을 던지며 전화를 끊었다.
어쨌든 큰 도움이 될지 모르는 기회를 놓쳤다.
‘하필이면 오늘이냐.’
쓴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흔들던 김지훈이 흠칫 놀랐다.
고성문, 손일석, 고경철도 모자라 고경아까지 희연이를 안은 채 눈길을 주고 있었다.
“지훈 씨, 무슨 일이에요?”
“현수 전환데 별일 아니에요.”
“신현수 선생님이요?”
고경아가 콧등을 찡그렸다.
간호사들 사이에서 아직도 차갑다는 말을 듣는 신현수였다. 주말에 아무 일도 없이 전화할 리 없었다. 당직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어 환자 때문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희연이 백일이라고 전화했을 리는 없고, 아주 어려운 수술이라고 해도 혼자 하실 수 있는데 왜 전화하셨을까?’
희연이가 꺄르르! 웃었다.
문득 김지훈이 이번 주 내내 환자 한 명 때문에 고민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희연이를 안고 노는 와중에도 심각한 표정으로 교과서를 뒤적인 탓이었다.
“혹시 그 환자 때문이에요?”
‘어? 어떻게 알았지?’
김지훈이 사실대로 말했다.
장인어른은 노련한 일반외과 의사다.
외과 의사에게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더구나 휴가 때 사위에게 복강경 수술을 배울 정도로 열정이 살아 있는 써전이다.
“부신이면 평생 한 번도 못 볼 수 있는데 아깝다. 김 서방, 희연이 의사 만들면 나중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들었을 때 좋다고 웃지 않겠어? 다행히 자리도 거의 다 끝났네.”
손일석 역시 일반외과 의사다.
수술할 기회가 적어 안달 난 써전이다. 혈관 수술을 잘하기 위해서는 모든 수술을 섭렵해야 한다는 확고한 소신까지 갖고 있었다.
“경희야, 이 자리 끝나고 특별한 일 있나?”
“왜요? 무슨 일 있어요?”
“그냥. 혹시 형님에게 일이 있을지도 몰라서.”
고경철은 예비 일반외과 의사다. 물론 본인 의사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매형,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천생 써전이라는 말은 나이나 상황을 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모두 고경아의 눈치를 심하게 보긴 했지만 우호적인 반응이었다.
갈등 폭발이었다.
‘이거 정말 가야 하나? 아니야. 우리 딸 백일인데 가긴 어딜 가? 그래도 이런 기회는 다시 없을 텐데. 어후! 안 돼. 가족에게 충실해야 돼.’
고경아의 눈빛이 묘해졌다.
최종 결정은 단 한 사람에게 달렸다. 바로 희연이 엄마이자 인감도장을 가진 고경아다.
끄덕이면 갈 수 있고, 저으면 못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