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무지개를 보려면 소나기를 견뎌야 한다 Ⅲ (1)
월요일 아침 일과가 시작됐다.
김지훈이 폭탄 맞은 몰골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
“오창도 선생님, 제 대신 어제 말한 부신선종 환자 수술 방식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일과 끝나고 논의하자는 말까지요.”
길게 말하는 것도 힘들 지경이었다.
커피 타임 내내 잤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점심 먹고 또 잤다.
전화받은 이후 내내 고민했던 오창도가 몇 번이나 틈을 보다 고개를 흔들고 말았다. 죽은 듯 잔다는 말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렇게라도 자야 버티겠지만, 수술 중에 목소리까지 쌩쌩한 거 보면 그것도 희한하네.’
결국 오후 회진이 끝나고 나서야 자리가 마련됐다. 이준영 교수를 비롯해 전임 모두 참석했다. 하늘이 돕는지 혈관 수술마저 없어 시간 여유까지 얻었다.
강병옥이 차트와 검사 결과를 걸었다.
몰골이 가히 가관이다. 김지훈보다 잠을 더 못 잔 모양이었다.
환자 상태에 관한 간단한 설명 후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갔다.
생각한 네 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가장 적절하고, 안전한 방법을 찾는 것이 오늘의 목적이었다.
먼저 크게 절개할 경우부터 상의했다.
이준영 교수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다. 긴장만큼이나 예의가 필요했다.
“개복해서 접근하는 것보다 위험 구조물이 거의 없는 옆구리를 절개해 부신을 제거하는 것이 훨씬 안전합니다.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라테랄 어프로치를 선택해야 합니다.”
Lateral Approach(측면 접근법).
신현수의 말에 모두들 동의했다.
이경석이 원칙 하나를 상기시켰다.
일반외과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접근법이기에 사소해 보이는 부분까지 숙지해야 할 상황이었다.
“저도 신현수 선생 말에 동의합니다. 단, 측면을 절개할 경우 환자 자세로 인한 호흡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오하석이 의아함을 드러냈다.
“자세가 왜 문제가 됩니까?”
“개복하면 똑바로 누운 자세라 폐가 눌리지 않지. 반면 측면 접근 때는 완전히 모로 눕혀야 하는데, 마취 중에는 근육이 완전히 풀어져 있잖아.”
“그렇죠.”
“그럼 위쪽에 있는 어깨와 팔이 축 늘어진 채 가슴을 압박하지 않겠어? 뿐만 아니라 가슴이 안으로 굽으면서 움직임까지 제한돼. 비만이 심하고, 심장에 무리가 와 있으니까 인공호흡기로도 충분한 호흡을 유지하기 힘들 거야. 그렇게 되면 수술 후 폐렴 발생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게 되고, 이 환자의 경우에는 치명적이 될 수 있단 말이야.”
“수술 전에 환자 자세부터 잘 잡아야 한다는 말이네요.”
경험 있는 써전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해서 여타 장단점을 확인했고, 측면 접근이 훨씬 안전하고 수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반외과 의사라면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이의조차 제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단 한 번의 경험도 없는 수술법만이 남았다.
일제히 한 사람의 입에 눈길을 주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일단 측면 접근을 최우선으로 놓고 다음 방법을 상의하겠습니다. 오창도 선생님께 간단하게나마 들으신 것처럼 라파로를 이용한 방법이 가능한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현재 우리는 경험한 적이 없고, 의료기 쪽에 알아본 결과 부신 제거에 필요한 기구를 의뢰받은 적도 없는 상황입니다.”
다들 묘한 표정을 지었다.
조기 대장암, 조기 위암, 좌측 간암까지 배 속에 있는 장기는 개복과 복강경으로 수없이 수술하고 있다. 어느 장기든 익숙하다 못해 눈에 익을 정도였다.
하지만 부신은 다르다. 외과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 워낙 드물어 장기 자체를 보기 힘들다.
더구나 개복도 위험하다고 제외시키는 마당이었다. 콩팥 위에 붙어 있어 비장에 면한 후복막을 절개하고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수술 중 문제가 터질 경우 훨씬 복잡하고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었다.
위험성을 모를 김지훈이 아니었다.
그런데 부신을 복강경으로 제거하자고?
뛰어난 실력은 인정하지만 배 속에 있는 장기와 후복막 속에 위치한 장기를 수술하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욕심을 내는 건지, 새로운 길을 뚫고자 하는 것인지 구분하기조차 힘들었다.
모두들 김지훈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준영 교수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묵직한 눈빛으로 제자의 의견만을 기다렸다. 무모할지라도 자신을 갖고 말하라는 의미였다.
김지훈이 어깨를 펴며 훅! 숨을 내뱉었다.
‘혼자 하는 수술이 아니다. 라파로는 어느 방식이든 수술 팀 모두 확신을 갖지 못하면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어. 성공하려면 설득이 아니라 함께 고민하고, 모두 다 자신감을 가져야 돼.’
복강경 역시 두 가지 방법을 생각했다.
사실 그중 하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집도의가 어떤 생각과 고민을 했는지 알아야 진지한 토론이 될 것이다. 훗날 누군가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한다면 한 단계 도약하는 데 일조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먼저 라테랄 어프로치를 라파로로 시행하는 방법을 생각해 봤습니다.”
오창도가 아예 말을 안 한 모양이었다.
모두들 깜짝 놀랐다. 심지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김지훈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준영 교수마저 눈가에 주름을 만들며 의아한 기색을 보였다.
“김지훈 선생,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야?”
헉! 스승님이 바로 물을 줄은 몰랐다.
일단 머리 한 번 긁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방법입니다.”
더 의아한 상황이 초래됐다.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이경석 선생님, 부신 구조를 보다가 문득 단단하고 질긴 캡슐에 싸여 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주변은 지방조직이고요.”
“그래서요?”
“만일 지방과 캡슐 사이에 공기를 주입해 공간을 만들 수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단, 기존 방식은 안 되고 원 포트로 접근해야 할 겁니다.”
가장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담낭 절제술도 구멍 3개를 뚫어야 한다. 카메라 하나에 기구 두 개는 필수적이기에 더 이상 줄일 수도 없다.
그런데 구멍을 하나만 뚫는다?
정말 말도 안 되는 발상이었다.
“카메라와 기구가 각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데, 구멍 하나로 뭘 어떻게 한다는 말입니까? 설령 공간을 만든다고 해도 측면으로 접근하면 살 두께 때문에 기구나 제대로 움직일 수 있겠어요? 애초에 배 속처럼 넓은 공간을 확보할 수가 없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공간 제약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만 있으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포트 하나에 카메라와 기구 두 개를 동시에 넣고 조작할 수 있다면 공간 역시 하나만 만들면 됩니다. 넓지 않아도 되겠죠.”
이해하기 힘들다는 얼굴이었다.
그럴 것이다. 단지 김지훈의 머릿속에 있을 뿐 나오지도 않은 기구다. 그런 기구로 한 번도 보지 못한 수술을 상상하려니 감조차 오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간단하게 구멍 하나 뚫고, 그곳으로 모든 기구를 넣은 후 수술할 부분에 공간만 만들어 주면 가능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어찌 됐든 기구를 조작할 공간은 모두 확보한 셈이니까, 복벽 두께 때문에 문제 될 일도 없습니다.”
상상력이 확장되자 흥분이 다가오는지 김지훈의 볼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부신 역시 캡슐로 싸여 있습니다. 캡슐과 지방조직 사이에 공기를 넣으면 의외로 공간을 만들기 쉬울 것 같습니다. 머릿속으로는 복부로 접근하는 방식보다 더 쉽고 안전할 것 같은데, 결정적으로 제가 생각하는 기구가 없네요.”
이준영 교수가 입술을 모았다.
4포트를 3포트로 줄인 장본이었다. 더 이상 절개 구멍을 줄일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실로 놀라운 발상이었다.
‘원 포트라!’
구체화된다면 기존에 개발된 기구를 이용해야 하는 한계를 넘어 새로운 기구를 고안해 적용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지금도 누군가 이미 나아가고 있는 길이었다.
‘더 이상 크게 놀랄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여전히 착각하고 사는 모양이다. 외과 의사라고 수술만 하라는 법은 없겠지.’
김지훈이 슬쩍 이준영 교수를 보며 어깨를 들썩였다.
긍정적인 반응이 분명했다.
순간 힘이 팍팍 솟았지만 새로운 생각에 도취돼 밑도 끝도 없이 설명할 때가 아니었다. 환자와 수술 팀이 당면한 문제로 돌아와 집중해야 할 때였다.
오창도 의견부터 듣고 싶었다.
“애초에 말씀드린 것처럼 현재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방법입니다. 신경 쓰지 마시고 다음으로 넘어가죠. 오창도 선생님, 복부로 접근하는 방식은 안전할까요?”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어제 전화받은 이후로 고민해 봤습니다. 난관이 너무 많습니다. 비장과 위 사이 조직을 여는 것은 경험이라도 있지만, 후복막 처리는 개복 시에도 쉽지 않습니다. 또한 후복막을 무사히 열어도 배 속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시야가 확실하게 확보될지도 의문입니다.”
“어렵다는 말씀이십니까?”
“솔직히 그렇게 판단됩니다. 더구나 부신 선종의 크기가 6센티미터입니다. 배 속이라면 문제가 되지도 않겠지만 후복막에 싸여 있는 상태입니다. 시야가 충분히 나오지 않는다면 심각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습니다. 부신 후면부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는 생각하기도 어렵습니다.”
비관적인 말이었다. 김지훈으로서도 상당히 갑갑한 부분이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고, 신현수가 바로 제기했다.
“김지훈 선생, 라파로로 한다고 칩시다. 중간에 도저히 진행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기면, 그 상황에서 다시 환자 자세를 바꾸고 측면을 절개할 시간이 있을까요? 절개 시에도 차선책인 배를 열어야 할 겁니다. 자칫 최선의 선택이 최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었다.
수술 도중 환자 자세를 바꾸는 일은 새로 준비하는 것만큼이나 시간을 잡아먹는다. 인공호흡기와 마취 기계를 포함해 부수적 장비까지 모두 다 자세에 맞게 다시 배치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개복보다 모로 눕혀 측면 절개를 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반면 복강경은 무조건 똑바로 눕히고 복부를 통해야지, 측면으로는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복강경으로 시도하면 성패 여부를 떠나 처음부터 끝까지 똑바로 눕힌 채 수술해야 한다. 문제가 생겼을 때 측면 접근이 가능한 자세를 취할 시간이 없을 것이다.
즉, 수술 중 여유를 갖고 적절하게 대처할 방법이 없다는 말이었다.
복부로 접근하면 배를 열든, 복강경으로 하든 무조건 한길로만 진행해야 하는 것이다.
복강경으로 성공한다면 모르지만, 실패한다면 신현수 말대로 최악의 방식을 택한 꼴이 될 수도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모두들 측면 접근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었다.
복강경은 시기상조라는 말이 대세였다.
김지훈이 눈을 꽉 감으며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측면 접근 말고는 답이 없는 건가? 과연 최선의 선택일까? 두 수술 방식의 차이는 뭘까?’
측면 접근은 써전에게만 수월하고 안전할 뿐, 환자에게 주는 부담이 크긴 마찬가지였다. 반면 복강경 수술은 써전에겐 힘들고 자신할 수조차 없는 방법이지만, 환자에게 최상의 결과를 안길 수 있다.
단, 복강경을 선택한다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확신이 있어야 했다. 아니, 퇴로조차 위험하기에 반드시 성공해야 했다.
‘성공할 수 있을까?’
후복막을 다룬 경험, 신장 이식 때 혹은 응급 수술 때 콩팥을 노출시켰던 경험까지 모두 상기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절대 손 대신 기구를 사용할 뿐이라 여겨서는 안 되는 수술이었다.
이대로 포기해야 하는 걸까?
애초에 복강경으로 시도할 생각조차 못했거나, 조금도 자신감을 갖지 못할 상황이었다면 모른다. 문득 정은영 환자의 상태까지 떠올랐다.
지금에 와서 그럴 수 없었다.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일단 해야 할 일부터 하는 것이 마땅했다.
“이준영 선생님, 측면 접근으로 생각이 모아졌지만 조금 더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에겐 상대적으로 편할지 모르지만 환자에게 가해지는 부담이 적지 않습니다. 측면 접근과 복부 복강경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하겠습니다.”
‘가장 유리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거다.’
“최선의 방법을 찾아.”
스승의 동의는 더없는 힘이었다.
“오하석 선생, 인턴 선생에게 부신 수술에 관한 논문을 모조리 찾아서 내게 가져오라고 해.”
목소리에 생기가 넘쳤다.
“예, 선생님.”
“오창도 선생님, 퍼스트 부탁드립니다.”
신중함이 깃들어 있었다.
수술 날이 같지만 오창도 앞으로 예약된 수술이 많지 않기에 시간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단지 그 때문이 아니라 함께 고민하고 상의하자는 말이었다.
“알겠습니다. 저도 고민해 보겠습니다.”
신현수와 이경석이 살짝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김지훈과 오창도는 모두 간담도 파트이자 복강경에 상당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하기에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수술은 함께하는 것이 순리였다.
‘경석이 형, 현수야, 내 마음 알지?’
‘걱정하지 마. 같이 수술해야 할 이유가 너무 많다.’
김지훈이 눈가를 굳혔다.
최종 결정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머리가 깨지도록 고민해야 할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