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변화는 남의 몫이 아니다 (2)
삐이이이! 삐이이이!
날카로운 보비 소리가 울릴 때마다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며 간이 절제됐다. 진충기의 손은 자신에 넘쳤고, 한성희는 무척 꼼꼼한 써전이었다.
이준영 교수의 눈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김지훈 역시 뚫어져라 화면을 보며 간이 절제되는 과정을 단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서서히 간 일부가 떨어져 나왔다.
곧 간 내 담도 및 혈관이 나올 것이다.
김지훈이 눈가를 좁힌 채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수처와 타이를 저런 방식으로 하는 것도 장점이 있겠어. 담도로 접근하는 방향은 제법 차이가 있네. 흐음! 접근하기 어려울 경우 응용할 수 있겠다.’
몇 번을 했어도 고난이도 수술이다.
사소한 차이라도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양지차일 것이다. 수처서부터 위험 구조물 처리까지 배울 것이 무궁무진했다.
시간이 갈수록 수술 팀은 물론 참관하는 써전들 모두 수술 속으로 깊게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이준영 교수도 묵묵히 지켜보며 많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최인호 교수의 가려진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걸렸다.
‘그래. 이렇게만 진행해. 이준영이 아얏 소리 못하게 확실하게 끝내. 그게 참관을 요청한 네가 살길이야.’
오직 성공과 실패만이 중요하다는 얼굴이었다.
처컥! 처컥!
“보비! 석션! 거즈!”
드디어 간 내 담도가 노출됐다.
능숙하게 담도 전체를 확보하고, 수처와 클립을 이용해 담도를 자르고 묶었다. 박리 부위부터 절단면까지 깔끔하고 깨끗했다.
김지훈이 내심 감탄을 터트리고 말았다.
지금도 상당히 어려워 조심하는 과정인데 진충기의 손은 과감했다. 결과까지 좋아 은연중 머리털이 쭈뼛쭈뼛 설 지경이었다.
‘야! 네 번을 했어도 또 하라면 힘들어할 텐데, 집도의와 퍼스트의 자신감이 눈에 보일 정도네. 우리는 저렇게 하고 있나?’
수술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의 시각과 생각 차이일 수도 있었지만, 진충기와 한성희는 자신들의 뛰어난 능력을 입증하고 있었다.
담도 해결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진충기의 손이 급격하게 느려졌다. 느릿느릿 조금씩 간 조직을 절제해 나갔다.
혈관이 보이기 시작했다.
벌떡벌떡! 간 동맥이 박동을 따라 요동쳤다.
두터우면서도 얇은 간 문맥이 서서히 드러났다.
수술의 성패를 좌우하는 구조물들이다.
김지훈이 힐끗 복부 CT를 보았다.
‘간 종양이 문맥하고 상당히 가까운데 어떻게 처리할까? 확실하게 제거하려면 우측 간 쪽으로 바짝 붙여서 처리하는 수밖에 없어 보이긴 하지만, 상당히 위험한 부위라 걱정이네.’
사각! 사각!
간 조직이 절제되며 혈관이 점점 확연하게 드러날수록 긴장도 따라 치솟기 시작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손에 땀이 나 몇 번이나 옷에 문질러야 했다.
극도로 조심해야 할 부분이 점점 가까워졌다. 미세한 실수마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부위였다.
기구 끝이 움직일 때마다, 빨간 피가 흘러나올 때마다 움찔움찔 절로 어깨가 들썩거렸다. 행여 방해가 될지 몰라 숨소리마저 죽였다.
‘조금 더 절제하면 좋겠지만, 지금 정도로도 종양은 확실하게 제거되겠어. 안전과 위험 사이의 적절한 절충이라면 기억해 두는 게 좋겠다.’
수술 팀에게 엄청난 부담이 가해지는 과정이었다.
진충기가 몸을 기울이자 대기하던 간호사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주었다. 그 와중에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성희와 더불어 가장 긴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처! 타이!”
수술은 멈추지 않았다.
긴장 속에 동맥 일부분을 제외하고 거의 다 노출됐다. 조금 더 깊고, 넓게 박리하면 바로 옆에서 주행하는 문맥이 나올 것이다.
수술 팀의 손이 더욱 신중해졌다.
건드리는 부분 모두 혈관과 바짝 달라붙어 있다. 삐끗하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두들 잘 알고 있기에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일조차 피했다.
서서히 문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김지훈이 마치 자신이 수술하는 것처럼 이를 악물었다.
어떤 써전이 와도, 이준영 교수라 할지라도 이 부분만큼은 결코 처리하기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이라는 사실은 극도의 긴장이자 부담이었다.
모스키토가 혈관과 혈관 사이 간 조직을 파고들었다. 그 속에 가늘고 기다란 분지들이 숨어 있다. 과도한 조작은 필히 혈관 손상을 야기할 것이다.
진충기의 시선은 오직 한 부분에 집중하고 있었다.
‘천천히, 천천히. 조금만 더.’
모스키토 끝이 벌어지는 순간 살짝 피가 비쳤다. 절대 보비로 지지면 안 되는 부위였다.
은빛 바늘이 빨간 피 속으로 사라졌다. 주르륵 검붉은 피가 솟구쳤다.
오창도가 다급하게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예사로운 출혈이 아니었다.
빠르게 타이를 한 진충기의 목소리가 빨라졌다.
“거즈! 한 교수, 그쪽에서 누를 수 있는 만큼 눌러.”
째깍! 째깍!
최대한의 압력으로 압박할 수 없는 부위였다. 간 절제 면과 혈관의 손상을 피할 정도의 힘만 가하며 기다렸지만 피는 멈추지 않았다.
이내 거즈까지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양이 결코 적지 않았다.
혈관 손상이 틀림없었다.
검붉은 피 색깔로 봐서는 문맥, 혹은 문맥 분지가 분명했다. 어느 쪽이든 혈류량이 많기에 빠른 시간 내에 해결해야 했다.
진충기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침착해야 한다.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이고, 우리는 해결할 수 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개복할 가능성만 치솟는다. 지혈이 가능한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고, 위험 여부를 떠나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수처! 가장 작은 바늘.”
혈관에 또 구멍을 내면 출혈만 악화시킨다.
진충기가 호흡을 조절하며 침착함을 유지했다.
문맥 주변을 따라 바늘을 찔러 넣었다. 바늘에 달린 실이 검붉게 물든 채 딸려 나왔다.
극도의 신중함 속에 타이를 진행했다.
정확하게 손상 부위를 잡았을까?
서서히 줄어야 하건만 불행히도 피는 멈추지 않았다. 출혈량도 여전한지 압박을 위해 사용한 거즈가 얼마 지나지 않아 검붉게 물들었다.
최악의 상황에 봉착했다.
모든 의료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집도의인 진충기가 확연하게 드러날 정도로 눈가를 찌푸렸다. 출혈 부위를 압박하고 있는 한성희의 눈에서 초조함이 보였다. 김지훈과 이준영 교수도 눈가를 좁힌 채 입을 열지 못했다.
“마취과, 바이탈 어떻습니까?”
“현재로는 문제없습니다.”
혈압마저 떨어질 정도의 출혈이 아니라고 해도 결국 버티지 못할 것이다.
유일한 위안은 한 번 더 시도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확신할 수 없는 마지막 기회였다.
손상 부위를 정확하게 해결하지 못하면 지금까지와 달리 감당하기 힘든 출혈이 야기될 상황이었다. 그때는 망설이지 말고 개복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 개복하는 동안 바이탈마저 흔들릴 수 있었다.
진충기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자신의 실력만을 믿고 진행할 때가 아니었다.
“한 교수, 기회는 한 번뿐이야. 가능하겠어?”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같은 수술을 수없이 해도 퍼스트와 집도의 사이의 경험치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 특히 지금처럼 고난이도 수술이자 기존 경험이 한두 번에 불과하다면 하늘과 땅 차이일 수밖에 없었다.
퍼스트의 자신감이 현저히 저하됐다.
이대로 진행해야 할까?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진충기가 선뜻 손을 움직이지 못했다.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판단해야 돼.’
체면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오로지 환자와 자신을 위해 성공 확률을 최대한 높일 수단을 강구해야 했다.
모든 것을 확신할 수 없는 지금, 유일한 희망은 한성희보다 더 뛰어난 써전의 손이었다.
‘우리 팀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때, 더 많은 경험과 더 뛰어난 실력을 모두 갖춘 써전이 필요해.’
명목상으로는 세 명이 더 있다.
엄밀하게 따져 이번 수술만큼은 소문과 달리 반쪽에 불과한 사람이 있었다. 한성희와 손을 맞추는 이상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었다.
‘결국 이준영 선생님과 김지훈뿐이다.’
진충기가 자신도 모르게 최인호 교수를 보았다.
눈매가 사나웠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설마 이준영이 보는 앞에서 배를 열 생각이야? 어떻게든 해결해. 실패하면 넌 끝이야.’
손을 바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오직 라이벌 앞에서 구겨질 체면만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행동을 할 사람도 아니었다.
자책할 틈이 없었다. 진충기가 이를 악물었다.
‘수술 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하기 전에 환자만 생각하자. 문제없이 라파로로 끝낼 수 있다면 그 이상 좋은 결과는 없다.’
결정을 내려야 했다.
후폭풍은 절대 기준이 아니었다.
수술 팀에 대한 신뢰는 끝이 없을수록 좋지만 객관적이지 못하면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자신조차 경험이 부족하다는 사실 또한 솔직하게 인정해야 했다. 더구나 한성희는 자신의 결정을 이해하고도 남을 써전이었다.
오직 환자만을 기준으로 결단을 내렸다.
“한 교수, 환자부터 생각하자. 우리 팀 실력이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자. 이준영 선생님.”
도와달라는 말이었다.
최인호 교수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진충기 너, 너! 네놈이 공개적으로 날 망신시켜?’
이준영 교수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여기서 내가 나선다면 진충기와 최인호 교수의 관계가 완전히 끝날지도 모른다. 더구나 이 수술만큼은 지훈이가 나보다 경험이 더 많아. 적임자야.’
대답 대신 김지훈을 보았다.
“이 수술은 김지훈 선생 경험이 더 많아.”
순간 진충기가 흠칫거렸지만 이준영 교수의 표정은 단호했다.
다급한 얼굴의 오창도 역시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불과 하루 전 똑같은 수술에서 퍼스트를 서며 김지훈의 실력이 소문 이상이라는 것을 똑똑하게 알았기 때문이었다.
진충기가 눈가를 굳혔다.
그렇다면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자존심 따위는 땅바닥에 처박아도 좋았다.
“김지훈 선생!”
망설임 없이 도움을 요청해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수술 팀의 능력을 가장 잘 아는 진충기였다. 아직도 철철 흘러나오는 피를 보는 순간 절로 몸이 움직였다.
재빨리 준비하고 퍼스트 자리에 섰다. 출혈 부위를 압박하고 있던 거즈를 꺼내자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수술을 지켜보며 수처로 잡을 출혈이 아니라는 생각이 확신으로 다가왔다. 극도로 위험한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다.
‘내 판단이 틀리지 않기를.’
“선생님, 제 판단으로는 수처는 안 됩니다. 클립으로 문제가 되는 혈관 잡고, 더 깊은 곳에서 간 절제를 하는 것이 최선으로 보입니다.”
“더 안쪽에서 자르자고요? 그러다 혈관 손상을 또 입힐 수 있습니다.”
“당장 출혈을 잡고, 개복하지 않으려면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이준영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적절한 판단이야.’
자신을 뛰어넘고 있는 제자를 보는 스승의 눈에 신뢰와 믿음이 가득했다.
진충기로서는 대안이 없는 상황이었다.
“좋습니다. 클립!”
김지훈이 바로 수술 시야를 확보했다. 출혈 부위를 확인하며 클립으로 잡을 부분을 가리켰다.
끼이익! 끼이익!
두 개의 은빛 클립이 간 조직에 물렸다.
출혈이 극적으로 멈췄다. 정확하게 문맥 손상 부위를 잡은 것이다.
역시 뛰어난 써전답게 김지훈의 제안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실행해 냈다.
한시름 놓았지만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과정이 남았다. 개복 시에도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는 부위를 기구로 박리하고, 더 굵고 두꺼워진 혈관까지 처리해야 한다.
“진행하시죠.”
수술실이 완벽한 침묵 속에 잠겼다.
진충기의 두 손과 김지훈의 두 손이 쉬지 않고 움직였다. 양 병원 간담도를 대표할 수 있는 써전들의 수술이었다. 처음 손을 맞춘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사각! 사각!
“수처! 타이 들어갑니다. 시야 확보해 주세요.”
더할 나위 없는 퍼스트였다.
진충기의 손을 절대 방해하지 않으며 퍼스트가 해야 할 일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예상보다 수월한 진행에 여유를 찾은 진충기가 모든 것을 잊고 수술에만 집중했다.
집도의와 퍼스트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김지훈 선생, 그쪽에서 수처하는 게 낫겠습니다.”
“예. 위쪽에서 시야 확보해 주십시오.”
김지훈은 또 한 명의 집도의였다.
능숙한 수처와 안전한 타이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편하게 했다. 진충기에게는 자신감이었고, 성공에 대한 확신이었다. 고도의 집중력, 극도의 긴장감 속에 이질적인 안정감이 흘러들었다.
간 내 담도를 다시 잡았다.
“혈관 노출시킵니다.”
치명적인 손상을 유발했던 혈관 처리가 시작됐다.
김지훈과 진충기의 눈과 손이 하나처럼 움직였다.
벌떡벌떡 뛰는 동맥을 잡고, 검붉은 피가 흐르는 문맥까지 묶었다. 누구나 겁을 내며 주저할 과정이었지만 아슬아슬할 뿐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온갖 구조물들이 얽히고설킨 가장 위험한 부분, 복강경으로는 처음 접근하는 부분의 박리가 남았다.
사각! 사각!
조금씩 조금씩 전진했다.
수술 팀의 집중력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초조, 불안, 두려움을 모두 잊었다. 오직 성공해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등짝에 맺힌 땀이 수술복을 흠뻑 적셨다.
사각! 사각!
“보비! 수처! 타이! 석션!”
우측 간과 좌측 간이 확연하게 분리되기 시작했다.
불과 1~2센티미터만 더 박리하면 성공이다.
끝까지 방심해서는 안 되는 부위였다. 극도의 신중함과 고도의 집중력이 유지됐다.
마침내 진충기의 마지막 수처와 김지훈의 마지막 타이가 끝났다. 치솟던 긴장이 거품처럼 사그라지며 좌측 간이 떨어져 나왔다.
사방에서 맥이 탁 풀린 숨이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