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892화 (892/1,329)

3화. 해 온 만큼 되돌려 받는다 Ⅱ (1)

강병옥을 본 신현수가 피식 웃었다.

병원 생활 한두 해가 아닌 오창도도 이 시간에 전공의가 다급하게 달려오는 이유를 모를 수 없었다.

‘당직이라고 했지? 무슨 수술이 뜬 걸까?’

짐작 틀리지 않았다.

김지훈이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컨설트 있어?”

“예. 혈관 수술 두 건 있습니다.”

오창도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눈가를 좁혔다.

‘여러 파트를 맡는다고 듣긴 했지만 혈관까지? 오늘은 시간이 없으니까 내일 진료 끝나고 바로 수술하겠네. 어쨌든 결과를 떠나 내겐 아주 좋은 기회야. 이준영 선생님 수술까지 내일도 정말 기대된다.’

간만에 배도 몹시 고팠다.

아무리 간단해도 수술 하나하나 모두 상당한 체력 소모를 가져온다. 오늘 같은 날은 더할 수밖에 없고,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라 여겼다.

그 순간 예상도 하지 못한 말이 들렸다.

“병옥아, 네가 오늘 당직이지? 빨리 환자부터 보자.”

오창도가 멀뚱멀뚱 눈만 껌벅였다.

분명 내일 외래 진료를 본다. 그때 컨설트를 보면 되는데 왜 굳이 이 밤에 보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일반적인 혈관 수술이라면 응급도 아닐 테고, 당연히 배곯아 가며 컨설트부터 볼 상황이 아니었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너무나 당연하다는 표정이었다.

하루 종일 수술 방에서 살았건만 짜증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당연하게 여기는 모습에서 정말 열심히 사는 써전들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내과 병동으로 향했다.

놀라기에는 일렀다. 컨설트를 보자마자 수술이 결정됐다.

이 저녁에?

‘모든 일과를 똑같이 해야 한다고 하셨나?’

속된 말로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점심에 이어 저녁마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끼니를 해결했다. 숟가락 놓자마자 곧바로 수술실로 향했다.

오창도가 아무 소리 못하고 뒤를 따르며 목과 어깨를 빙빙 돌렸다. 휴식 한번 제대로 취하지 못한 탓인지 피로가 제법 느껴졌다.

“혈관 수술을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전공의 때 퍼스트 선 일 이외에는 경험이 없습니다.”

“그럼 세컨만 서셔야 합니다. 며칠, 혹은 몇 번의 경험으로 퍼스트를 설 수 없다고 배웠기 때문이니까 양해해 주세요.”

김지훈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경력 쌓인 전문의라고 해도 경험이 없다면 퍼스트조차 허용할 수 없는 수술이었다. 간담도 파트 지원이라고 해서 수술을 빼 주는 등의 예외를 둘 수도 없었다. 오창도가 정식으로 임용되면 어떤 수술을 추가로 하게 될지 누구도 모르는 일이었다.

당연히 수술을 들어와야 한다.

8시 조금 넘어 혈관 수술이 시작됐다.

일곱 번째 수술이었다.

김지훈과 강병옥이 가느다란 손목을 앞에 두고, 좁은 공간에서 허리를 굽힌 채 수술에 집중했다. 내리 두 개를 연달아 하며 수술 사이에 잠깐 쉴 뿐이었다.

10시가 넘어 수술이 모두 끝났다.

경험이 없다고 해도 혈관 수술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는 오창도에겐 일종의 충격이었다.

어떻게 이토록 빠른 시간 내에 혈관 수술 두 개를 깔끔하고 확실하게 할 수 있는지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간 전 절제술을 해낸 김지훈의 실력은 하늘에서 뚝딱 떨어져 나온 것이 아니었다. 수술의 원칙과 기본을 몸에 익은 것처럼 철저하게 견지하며, 매사를 게을리 하지 않는데 실력이 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새로운 놀라움이자 전에 없이 강한 자극이었다.

오창도가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았다.

‘후우! 또 회진을?’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보통 힘든 일과가 아니었다. 이제야 신현수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하게 알았다. 아니, 애초에 정확하게 말해 주지 않았다.

‘어떻게 전공의보다 더 힘들게 일할 수 있지? 보통 체력으로는 따라다니는 것도 힘들겠어. 아직도 집중력을 유지하는 게 정말 신기할 정도네.’

늦은 시간인 탓인지 무척 조심스럽게 수술한 환자들을 찾았다.

대화를 나누는 김지훈이 무척 피곤해 보였다. 솔직히 다음 날 돌아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었다.

뻑뻑해진 눈으로 함께 회진을 돌던 오창도가 나름의 이유를 찾아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만 무려 여덟 건을 했다.

손이 아무리 빨라도 하루에 하기에는 불가능한 건수였다. 밤 10시가 넘어 모든 수술이 끝난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김지훈도 무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어디서 놓쳤을지 모를 실수, 혹은 미진한 점을 한시라도 빨리 잡아내기 위한 방편이 분명했다.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해도 그 속에 담겨 있는 노력과 열정은 별개 문제였다.

‘피곤하면 내 몸부터 눕히기 마련인데.’

실력을 평가받기 위한 자리가 배우고 느끼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평생 잊지 말아야 할 덕목을 새롭게 각인할 기회기도 했다.

김지훈이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안심하는 눈치였다.

“오창도 선생님, 익숙한 곳도 아닌데 늦게까지 수술 들어오시느라 힘드셨죠?”

“아닙니다.”

왜 안 힘들겠는가?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한 달 정도 놀다 보면 매일 해 왔던 일도 힘에 부치기 마련이다. 오창도는 물론 휴가를 너무 멋지게 보낸 김지훈도 예외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느새 1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거의 14시간 동안 환자와 수술과 씨름했다.

한 번 시작된 하품이 멈추지 않았다.

내일을 위해 자야 할 시간이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아! 이준영 선생님에 대해 말씀 들으셨죠? 굉장히 무뚝뚝하시고, 표정까지 없으셔서 처음 보는 사람은 화를 내시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절대 그런 분 아닙니다.”

“듣긴 했는데 솔직히 각오하고 있습니다. 대가라고 불리는 선생님께 배울 기회가 흔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우린 운이 무척 좋은 거죠?”

가벼운 농담이 오고 갔다.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병원 정문을 막 나서는 순간 어디선가 전화벨이 울렸다.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김지훈이 소리치며 응급실로 향했다.

“헤모 빤뻬리 떴답니다. 빨리 가시죠.”

오창도가 입도 벌리지 못했다.

‘헤모 빤뻬리라고?’

너무 정신없이 몰아쳐 김지훈이 당직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솔직히 이렇게 일이 많은 사람은 처음 봤다.

부리나케 응급실로 달려갔다.

간호사들이 다급하게 뛰어다녔고, 전공의들의 가운은 이미 피에 물들어 있었다.

혈복막과 복막염이 동시에 발생한 환자가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오창도가 눈가에 바짝 힘을 주었다.

경각에 달린 목숨, 정신없이 바이탈을 잡고 있는 전공의, 여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간호사들의 모습에서 흥분에 가까운 전율을 느끼고 있었다.

‘후우! 그동안 라파로에만 너무 집중했던 탓일까?’

환자 옆에 꼭 붙어 있을 것 같았던 김지훈이 보이지 않았다. 당직실에서 눈을 감은 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쉬지 않으면 버티지 못할 테지만, 얼굴 한구석에서 전공의에 대한 강한 신뢰감이 엿보였다.

잠시 후, 강병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선생님, 바이탈 잡았습니다. 바로 올리겠습니다.”

눈을 뜬 김지훈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날을 넘겨 아홉 번째 수술을 들어갔다.

띠띠띠띠띠! 띠띠띠띠띠!

간이 파열됐다. 소장과 대장 일부가 너덜너덜하게 찢어졌다. 강한 충격에 횡격막까지 손상된 상태였다.

중증 외상 환자다.

시간이 곧 생명이었다.

“수처! 오하석, 조금 더 끌자.”

“이리게이션! 탭! 석션! 보비! 병옥아, 거즈로 이 부분 누르자. 출혈이 심하니까 손상 걱정하지 말고 꽉 눌러.”

김지훈을 비롯한 수술 팀 전체가 오직 수술 부위에만 집중했다.

오창도 역시 목숨이 경각에 달린 환자를 앞에 둔 써전이었다. 어느 틈엔가 수술 팀의 일원이 돼 있었다.

가장 먼저 간 파열을 해결했다.

석션 통은 핏물로 가득했고, 바닥에는 피를 머금은 거즈와 탭이 쌓여 갔다.

소장과 대장 일부를 자르고 이었다. 혈색을 잃었던 장이 제 색깔을 찾는 것 같았다.

폐가 보일 정도로 길게 찢어졌던 횡격막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단단하게 봉합했다. 헐거워져 공기가 배 속으로 새면 수술 부위 회복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서서히 수술의 끝이 보였다.

띠띠! 띠띠! 띠띠!

맥박 속도가 서서히 정상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피부 봉합이 끝나자 환자가 몸부림을 쳤다. 수술 전 상태를 생각하면 극적인 회복이나 다름없었다.

수술 팀 모두가 강한 흥분에 휩싸였다.

오창도의 반응이 가장 격했다. 훅훅 숨을 몰아쉬며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수술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김지훈의 눈짓에 퍼스트를 섰다.

손상 부위를 확인하는 순간 복강경에 가려 잠시 잊고 있었던 일반외과 의사 본연의 본능이 되살아났다.

‘살리자. 반드시 살리자.’

장갑을 따라 환자의 피가 뚝뚝 떨어졌다.

출혈 부위를 확인하며 배 속에 물을 붓고 씻어 낼 때마다 덧 가운과 수술복, 심지어 속옷까지 흠뻑 젖었다.

출혈이 잡히고, 손상 부위를 해결해 나가는 동안 아무 생각이 없었다. 오로지 집도의의 손에 집중하며 배우고 익힌 대로 최선을 다했다.

결과는 환자의 삶이었다.

드르륵! 드르륵!

하룻밤의 중환자실 치료가 필요했다.

한때는 밥 먹듯 드나들었지만 복강경 센터에 근무한 이후 멀어졌던 소리가 귓가를 자극했다.

환자 앞에 쪼그리고 앉아 바이탈을 확인하는 전공의, 팔짱을 낀 채 묵묵히 지켜보는 김지훈의 모습에서 문득 강한 희열이 느껴졌다.

자신 또한 수술 팀의 일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난 써전이야. 바이탈을 다루고, 환자를 살리는 일반외과 써전이야.’

일반외과를 지원했을 때의 감정이 솟구쳤다. 생각지도 못한 감동이었다.

김지훈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선생님, 빨리 퇴근하시죠. 혹시 집이 머시면 연구실에서 주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병옥아, 나 퇴근할 테니까 혹시 문제 생기면 전화해.”

시간을 확인한 오창도가 흠칫 놀랐다.

7시까지 응급실 출근인데 새벽 4시가 넘었다. 여차하면 24시간이 아니라 36시간 동안 눈도 못 붙일 수 있었다.

더구나 오늘 오전에는 이준영 교수의 수술을 들어가야 한다.

‘졸면 죽는다.’

전공의 때나 했던 생각을 자연스럽게 떠올리며 연구실로 향했다. 소파에 몸을 누이며 눈을 감았다. 너무 피곤해서인지 머릿속이 띵하기만 한데 잡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번뜩 뇌리를 스쳤다.

‘금요일도 당직이라고 하셨나? 그날도 오늘 같을까? 도대체 김지훈 선생은 이런 살인적인 업무를 어떻게 견디는 걸까?’

타고난 체력과 정신력 말고도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뾰족한 답은 없었다.

하루 일과를 되새기는 내내 살 떨리는 긴장감과 함께 불현듯 알 수 없는 뿌듯함을 느꼈다.

희한한 일이었다.

슬슬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머릿속이 까맣게 변하며 진한 피곤이 안개처럼 온몸에 스며들었다.

깜빡 눈을 감았다 떴는데 7시 직전이었다. 허겁지겁 세수만 하고 응급실로 달려갔다.

발에 쇳덩이라도 단 것처럼 온몸이 천근만근이었다.

김지훈이 뻘건 눈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덜컥! 덜컥!

신현수가 응급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오창도가 이빨도 못 닦아 텁텁한 입맛을 다셨다.

은근한 놀람도 잠시, 이준영 교수와 송재덕 교수까지 얼굴을 보였다. 훅 치고 들어오는 강한 긴장감을 느끼면서도 의아함이 떠나질 않았다.

병원장과 주임 교수가 이 시간에 왜?

‘여긴 잠 없는 사람들만 모였나?’

지난밤 내원한 응급실 환자를 파악하고, 특별한 문제가 없었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진지해야 할 때는 진지했지만 간호사들과 유쾌한 농담까지 주고받았다.

H 병원에서는 볼 수 없는 일이었다.

“오창도 선생, 첫날부터 고생했다. 고생했어. 우리 김 교수하고 일하려면 밥 두 그릇씩 먹어야 돼. 두 그릇씩. 아니다. 그냥 세 그릇 꽉꽉 채우는 게 좋겠다. 꽉꽉. 그래도 시간 지나면 금방 적응된다. 금방. 조금만 참아. 조금만.”

변변히 말을 나눈 적도 없는 송재덕 교수의 말에 오창도가 당황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보아 온 듯, 이미 임용이 된 듯 격의 없는 말 때문이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반복되는 특유의 말투도 한몫 단단히 했다.

김지훈과 신현수가 웃었다.

‘본 적도 없으신데 무척 좋게 보시네. 느낌이 좋다.’

그렇게 오창도의 두 번째 날이 시작됐다.

모닝커피 한잔하며 교수들과의 어색함을 조금은 덜어 냈다. 일복 여전하다는 소리가 나오긴 했지만 아홉 건의 수술은 화제가 되질 못했다.

‘설마 당직 때마다 밤을 샌다는 소리는 아니겠지? 아니면 매일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걸까?’

이내 웃음 섞인 대화가 오고 가는 사이 찻잔이 바닥을 보였다. 딱 그때까지만 한가함을 느낄 수 있었다.

김지훈과 이준영 교수의 회진을 연달아 따라 돌자마자 수술 방으로 달려가야 했다. 온몸 관절이 힘들다는 듯 우두둑우두둑! 비명을 질렀다.

9월의 아침 선선함이 무색하게 등짝이 축축해졌다.

‘이제 하루 지났는데 벌써부터 힘들어하면 안 돼.’

탈의실 어림에서 눈에 익은 모습이 아른거렸다. 길거리에서도 보기 힘든 거구였다. 오창도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 중 이 정도로 위압적인 체구를 가진 의사는 단 한 명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후다닥 휴게실로 달려가 나른한 어깨와 무거운 눈꺼풀에 걸린 피곤을 찬물로 씻어 냈다.

두 시간의 수면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피로가 상당히 끈적끈적했다.

‘졸면 죽는다.’

대가의 수술에 참가한다는 이유 때문인지, 쉴 사이 없이 몰아치는 일 때문인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전공의 때로 돌아가 있었다.

‘오후 회진까지 넉넉잡고 10시간이면 끝난다. 대가의 수술이다. 힘내자. 파이팅!’

오늘 역시 6건의 복강경 수술이 예정돼 있었다.

두 눈 부릅뜨고 이빨 악물었다.

늦어도 저녁 8시 전에 퇴근할 수 있다는 사실이 희망, 기쁨, 힘이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단 하루 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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