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879화 (879/1,329)

6화. 시연의 여파 Ⅰ (2)

이준영 교수의 수술이 감탄, 수긍, 깨끗한 인정이라면 김지훈의 수술은 경악과 충격이었다. 대가라 불리는 의사와 이제 전임이 된 의사의 차이는 극명해야 하건만, 종이 몇 장 차이에 불과해 보였다. 수술 실력에 국한된 판단이었지만 그 자체로 놀랍기만 했다.

담도 박리만도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그 이후 과정에서 느껴지는 긴장과는 비교조차 하기 힘들었다. 벌떡벌떡 뛰는 동맥과 약한 문맥 사이를 박리하는 매 순간 숨을 쉬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손에 땀을 쥐어야 했다. 비장 절제술을 보며 느꼈던 일말의 편안함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에 섰기에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모두들 무사히 혈관을 박리해 내길 바랐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어느 틈엔가 마치 자신이 수술하는 것처럼 성공을 응원하며 함께 달려가고 있었다.

써전이 갖는 본능이었다.

‘지훈아! 내 눈으로 직접 보니 충분히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드는구나. 의사의 본분과 환자를 잊지 않으면 더 어려운 수술도 해낼 수 있을 게야. 네 스승이 극구 칭찬한 이유가 있었어. 허허허!’

허경발 교수는 수술 내내 확고한 믿음을 보냈다.

직접 가르치지 못했지만 김지훈 또한 자신의 제자임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반외과 의사로서 자신의 길을 열심히 달려온 젊은 제자의 성취는 노년의 스승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이준영 교수를 비롯해 자신이 직접 가르친 제자들을 떠올리는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김지훈처럼 젊었던 제자들이 어느새 장년에 들어섰다. 각자 자신의 길을 확고히 지키고 있는 모습에 감사할 뿐이었다.

‘고맙네. 자네들 모두 고맙네.’

스승의 마음을 느꼈는지 교수들 역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김지훈이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 잘 알기에 도리어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확신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람이 현실로 변하고 있었다.

진충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신도 모르게 아이처럼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담낭농증 때 본 손은 거짓이 아니었다. 비장 절제술을 하는 이준영 교수의 실력과 비견해도 될 정도였다. 왜 김지훈이 하는 것처럼 하지 못하는지 자책까지 하고 말았다.

간이 절제될수록 극단적인 초조함이 다가왔다.

동맥과 문맥 사이로 사라진 기구를 보며 자신이 수술한다면 어떻게 진행할지 떠올라야 하는데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경험이 없다는 것은 이유가 되지 않았다.

불현듯 손 기술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뒤처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입 안이 바짝 마를 정도로 거친 숨을 쉬던 진충기가 이를 악물고 말았다. 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가며 바르르 몸까지 떨렸다.

김지훈이 자신은 시도조차 하기 힘든 과정을 눈앞에서 보여 주고 있었다. 부인하려 해도 참석자들의 표정이 극명하게 이를 말해 주고 있었다.

감탄이 아니라 경악에 가까웠다.

“이제 혈관 마무리하고 남은 부분만 자르면 성공인가? 최고네, 최고. 최고의 써전을 두 명이나 본 날이야.”

“야! 어이가 없을 정도야. 전임이 저걸 어떻게 해낼 수 있지? 정말 잘 가르치고, 잘 배웠어. 부럽다.”

그렇게 열망하며 부르짖었던 최고의 써전이란 말은 진충기의 차지가 아니었다. 이준영 교수에 대한 찬사는 넘어갈 수 있었지만 김지훈은 인정할 수 없었다.

‘이럴 수는 없어. 간암을, 좌측 간 전 절제술을 어떻게?’

애써 부정했지만 간 절제가 거의 다 끝났다.

모든 과정이 다 충격이었다.

오늘 본 수술을 믿을 수가 없었다.

당장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몸과 다리가 따라 주질 않았다. 마치 온몸의 힘이 모두 빠져나간 것 같은 무기력함에 사로잡혔다.

최인호 교수의 눈가가 부들부들 떨렸다.

자신은 이준영에게,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진충기는 김지훈에게 완벽하게 밀렸다. 전국에서 모인 의사들과 일반외과의 정신적 지주인 허경발 교수 앞에서 말이다.

복강경 센터를 이끌며 얻은 모든 명예와 명성이 사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시연 행사 하나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건만, 최고여야 한다는 의식에 사로잡힌 최인호 교수는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무엇을 해야 할까?

‘여기서 한 발짝만 더 밀리면 회복할 길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오창도도 큰 문제가 될 수 있어. 일단 내부부터 정비해야 돼.’

많은 생각이 스쳤다. 어느 때보다 냉정하려 애썼지만 평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어지러이 3명의 얼굴만 떠올랐다. 그중 한 명에게는 실망감까지 느끼고 있었다.

‘이준영, 김지훈, 진충기.’

머리가 지끈거리는 순간 좌측 간 절제술이 끝을 보이고 있었다. 침묵에 잠긴 채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짓고 있는 참석자들, 흐뭇한 미소를 보이는 허경발 교수의 얼굴에 머릿속이 완전히 뒤엉키고 말았다.

비장 절제술이 끝난 지 한참 지났건만 이준영 교수가 왜 안 보이는지 알아채지도 못했다. 어쩌면 최인호 교수만 그런 것은 아닐지도 몰랐다.

마지막이다.

김지훈이 과감하게 접근했다.

“보비!”

삐이이이이! 삐이이이이!

하얀 연기와 함께 좌측 간이 완전히 절제됐다.

어른 손바닥 반만 한 간이 뚝 떨어져 나오는 순간, 거칠게 내뱉은 숨으로 수술 팀의 마스크가 불룩해졌다.

국내 최초로 좌측 간 전 절제술을 함께했다는 것만으로도 감동이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암 덩어리가 절제된 간 속에 남아 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실수는 이럴 때 찾아온다.’

감당하기 어려운 감격과 흥분이 다가왔지만 집도의다. 하기에 마지막까지 냉정을 유지하고 수술 팀을 이끌어야 한다.

김지훈이 눈가를 굳혔다.

“끝까지 집중합시다.”

분리된 간을 질긴 비닐 주머니에 넣었다. 절단면에서 우징처럼 피가 흘렀다.

개복 때와 비교해 훨씬 처리하기 어려웠지만 강한 압박감을 이겨 내고 간을 절제한 수술 팀이다. 능숙하게 보비와 수처를 이용해 최대한 출혈을 잡고 지혈제를 도포했다.

군데군데 몇 방울의 피만 보였다.

‘이 정도면 저절로 멈출 출혈이다.’

수많은 경험이 가져온 확신이었다.

드레인을 삽입했다.

이젠 간을 배 밖으로 꺼내야 한다.

암이기에 비장처럼 처리할 수 없었다. 조직 검사가 반드시 필요했고, 만에 하나 비닐 손상으로 암세포 중 단 하나라도 배 속으로 퍼진다면 또 다른 씨앗이 될 수 있었다.

조기 대장암 때와 마찬가지 방법으로 절제된 좌측 간을 꺼냈다. 손바닥 반에 불과한 크기였지만 어느 장기보다 커 보였다. 클립과 실로 묶인 담도, 동맥, 문맥은 지금도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카메라를 넣고 최종 확인을 했다.

“경석이 형, 끝내도 되겠죠?”

“오케이!”

피부 봉합까지 모두 끝났다. 마취 기운이 빠져나간 환자가 몸부림을 쳤다.

이제야 무사히 수술이 끝났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마침내 국내 최초로 복강경을 이용해 좌측 간을 모두 절제해 낸 것이다.

김지훈이 훅! 숨을 내쉬며 수술대에 기댔다.

엄청나게 뿌듯할 줄 알았는데, 소리 없는 환호성이라도 터질 줄 알았는데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다. 온몸에 맥이 빠지며 머릿속이 멍하기만 했다.

담담한 것도 아니었다. 분명 심장은 달리는 열차처럼 폭주하고 있었다.

‘후우! 해낸 건가?’

이번처럼 긴장되고 힘든 수술은 없었다. 시종일관 처음부터 끝까지 살얼음판이었다. 홀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닦고 있는 수술 팀이 보였다. 덧 가운을 벗자 수술복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고맙기만 했다. 결코 각자 자신이 맡은 역할을 담당했을 뿐이라고 치부할 일이 아니었다.

성공의 가장 큰 원동력이자 힘이었다.

“경석이 형, 수고하셨습니다. 덕분에 성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혁원아, 진우야, 수고했다. 고맙다.”

“후우! 오늘 같은 수술은 또 없을 것 같다. 김지훈 선생, 국내 최초의 좌측 간 전 절제술 성공을 축하해.”

“수고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무슨 소리야? 나 혼자 했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수술이었어. 우리 모두가 성공한 거야. 마취과 선생님, 우리 간호사들도 수고하셨습니다.”

목소리에 담긴 마음이 살짝 달랐을까?

간호사들의 눈가가 뾰족해졌다.

“어머? 우리 한 팀 아니었어요?”

헉! 수술 중에도 하지 않았던 치명적 실수를 했다. 머리 숙여 사과하고, 얼굴 벌게져 가며 손사래를 쳤다. 간신히 용서받았다.

“김지훈 선생님, 이번만 넘어가는 거예요.”

“감사합니다.”

맞는 말이다. 수술 팀만이 아니라 이 자리까지 올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사람 모두 한 팀이었다. 단 한 사람도 고맙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당연한 것처럼 스승의 얼굴이 떠올랐다.

‘스승님,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밝게 웃으며 수술실을 나서려던 김지훈이 흠칫 놀랐다. 뒤따르던 이경석, 이혁원, 송진우도 그 자리에 멈춰 선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이준영 교수 역시 오늘의 시연자다.

비장 절제술이 끝난 지 꽤 시간이 흘렀을 텐데 왜 수술실 앞에 있는 걸까?

참석자들의 축하를 받으며 화면을 통해 보아도 충분한 일이었다.

불현듯 힘들고 어려운 수술이 있을 때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응원하고 지지해 준 스승의 모습이 떠올랐다.

성공하기를 간절히 기원했을 것이다.

아니다. 성공보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길 바랐을 것이다. 바람대로 최선을 다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와도 진심으로 격려하고 축하해 줄 스승이었다.

제자를 향한 사랑을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스승님처럼 후배들을 진정으로 아낄 수 있을까?’

울컥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차례차례 이름을 부르며 눈길을 주었다.

“김지훈, 이경석, 이혁원, 송진우, 수고했다. 고맙다.”

여느 때처럼 무뚝뚝한 목소리였다.

분명 고맙다고 했다.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지만,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생각할 말이 아니었다. 그냥 받아들이고 느끼면 되는 일이었다.

이준영 교수가 뚜벅뚜벅 회의실로 향했다.

스승의 등을 보는 순간 성공했다는 사실이 확 와닿았다. 갑자기 숨이 가빠지며 심장이 벌떡벌떡 뛰었다. 온갖 감정이 휘몰아쳐 입을 열기도 힘들었다.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숙였다.

“스승님, 감사합니다.”

동기와 후배들이 있는 자리에서 스승님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했다.

수술 팀의 힘찬 목소리가 울렸다.

“수고하셨습니다.”

대가라 불리고, 대가임을 입증한 이준영 교수의 등에 제자들의 마음이 박혔다.

어깨가 움찔거리는 것 같았다. 자신만이 아닌 수술 팀을 가르친 모든 교수들, 함께한 동기와 후배들에 대한 마음까지 모두 담겨 있기에 가슴 뭉클한 말이었다.

‘녀석들! 내 착각이 아니겠지?’

무뚝뚝한 얼굴에 환한 미소가 감돌았다.

물론 아무도 본 사람은 없었다.

미소를 보여 줄 이준영 교수도 아니다. 후다닥 뒤따라오는 발소리에 표정이 싹 사라졌다.

짝짝짝짝짝짝!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부터 들렸다. 모두 기립한 채 오늘 수술을 멋지게 성공한 수술 팀을 격하게 환영했다.

참석자들의 눈빛과 표정에 담긴 의미는 말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고개 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가장 먼저 인사해야 할 사람이 있다. 누구보다 기뻐할 허경발 교수다.

뚜벅뚜벅 스승 앞으로 다가가던 이준영 교수가 송재덕 교수, 이혁민 교수의 손을 잡았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전임들이 박승준 교수와 지동훈 교수의 손을 잡아끌었다.

“함께 인사하셔야죠.”

전공의까지 일반외과 전체가 허경발 교수 앞에 섰다.

모든 시선이 송재덕 교수에게 향했다. 이혁민 교수가 시연을 주관했지만 S 병원 일반외과 구성원에겐 또 하나의 특별한 의미가 담긴 자리이기 때문이었다.

큰 스승과 스승, 그리고 제자들.

“스승님, 저희들이 써전이 됐을 때 스승님보다 훌륭한 의사이자 써전이 돼야 한다고 하신 말씀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송재덕 교수의 눈가가 붉어지는 것 같았다.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오늘에야 그 말씀을 조금이나마 따른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저희 곁에서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일제히 허리 숙여 허경발이란 이름을 가진, 지금도 대가라 불리는 스승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숙연한 기운이 주변 공기를 감싸 안았다.

“송 원장, 내가 고마워요. 이 과장, 오늘 시연 잘 봤습니다. 내 평생 이렇게 벅차고 기쁜 날은 없었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늙은 스승의 눈가도 붉어졌다. 일일이 손을 잡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이 교수, 정말 고마워.”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스승과 제자의 말은 짧았다.

그 속에 담긴 의미는 결코 작지 않았다. 스치듯 전해진 온기에 뜨거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허경발 교수의 발걸음이 멈췄다.

“김지훈 선생.”

“예, 선생님.”

“환자는 잘 깨어났습니까?”

은퇴한 지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대가라 불리며 존경받는 이유를 단 한마디에 담고 있었다.

축하의 말보다, 성공보다 더 중요한 존재!

그 존재야말로 반드시 성공했어야 하는 이유이자 시연의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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