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시연의 여파 Ⅰ (1)
바늘이 간을 찌를 때마다 가슴이 섬뜩해졌다. 타이마저 힘이 과하면 간에 손상을 줄 상황이었다.
이경석이 카메라 위치를 잡으며 인상을 썼다.
‘각도가 잘 안 나오네. 시야 확보가 안 되면 위험한데, 어느 방향에서 들어가는 게 가장 안전하지?’
우측 간보다 훨씬 작은 좌측 간을 당겨 공간을 확보하는 이혁원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적정하지 않으면 간이 찢어진다.’
수술 팀 중 누구 한 명이라도 실수하거나 자신의 역할을 정확하게 수행하지 못하면 개복으로 이어질 것이다.
국내 최초의 시도라는 사실과 맞물려 실로 대단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모스키토 끝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숙한 부위를 절제하던 김지훈이 기구를 슬쩍 뒤로 뺐다. 드디어 두 번째 난관이 눈에 보인 것이다.
눈가를 굳히며 나직하게 말했다.
“곧 간 동맥 나옵니다.”
간으로 가는 혈류량은 어마어마하다. 동맥 손상을 입히면 즉각 대처한다고 해도 개복하는 동안 바이탈까지 흔들릴 수 있었다.
방향을 바꿔 담도 절단 부위에서 접근하던 김지훈의 손이 급격하게 느려졌다.
이질적인 구조물이 서서히 드러났다.
심장박동을 따라 벌떡벌떡 뛰고 있었다. 확인할 필요도 없이 간 동맥이다.
동맥에 바짝 붙어 간 문맥이 위치할 것이다. 그 때문에 동맥과 문맥을 각각 처리할 수 없다.
두 개의 혈관을 모두 확보한 후 묶어야 한다.
그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단, 동맥은 혈관 벽이 강하지만 문맥은 상당히 약하다는 점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영양분이 실린 소장의 피를 간으로 운반하기 때문에 역할은 동맥이지만 실제 정맥 조직이기 때문이었다.
바짝 인접한 혈관 주변을 박리하는 과정에서 문맥 손상을 입힐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개복 시에도 드물지 않게 발생하는 일이었다.
이 과정을 손이 아닌 기구로 해야 한다.
이준영 교수조차 눈가를 찡그릴 정도로 난이도가 높은 과정이다. 개복을 피하고, 좌측 간 전 절제술을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할 최대 난관을 앞에 둔 것이다.
전에 없는 긴장이 치솟았다.
쉽게 부서지는 간 조직을 제거하고, 간 동맥과 얇고 약한 간 문맥을 제대로 분리할 수 있을까?
김지훈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과도하게 다가오는 압박감을 피할 길이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감이 필요한데 섣불리 손을 가져갈 수도 없었다. 사소한 실수도 자칫 치명적으로 발전할 수 있기에 더욱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무모한 시도였나? 후우!’
자신감이 떨어지며 전신을 짓누르는 부담이 가시질 않았다. 시연 때문이 아니었다. 최고의 수술 팀과 함께하지만 정작 자신의 실력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지훈아, 뭐 해? 진행하자.’
‘선생님, 왜 갑자기?’
수술 팀과 시선을 교환했다.
모두들 확고한 신뢰와 믿음을 보내고 있었다. 애써 불안감을 지우려는 순간 송진우와 눈이 마주쳤다. 불현듯 시연을 포기하고 해냈던 수술이 떠올랐다.
이준민! 6주 된 아이의 간은 연약했다.
수술 부위는 좁은 정도가 아니었다. 수처와 타이 역시 어렵기 짝이 없었다. 말이 개복이지, 복강경 수술과 차이를 둘 수 없었다.
그런 수술을 송진우와 했다.
간암 1기 환자의 혈관 박리는 다른 상황일까?
최고의 수술 팀이 함께한다. 어쩌면 이미 이준민의 수술을 통해 똑같은 과정을 경험했는지도 몰랐다. 차이라고는 손이 아니라 기구일 뿐이었다.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우린 최고의 수술 팀이다. 할 수 있어.’
김지훈의 눈이 번쩍였다.
“혈관 박리 시작합시다. 모스키토! 보비!”
목소리에 강한 힘이 실렸다.
사각! 사각!
동맥을 싸고 있는 간 조직을 절제했다. 벌떡벌떡 뛰는 동맥의 박동은 그 자체로 위험이었다. 적절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박동을 따라 움직이는 조직 어딘가를 찌를 수도 있었다.
개복과 현저히 다른 복강경의 위험이 다가왔다.
툭! 툭! 툭!
동맥이 뛸 때마다 기구 끝이 흔들렸다.
조심스럽게 동맥을 누르며 박리를 진행했지만 점점 가중되는 어려움에 더디기만 했다. 절대 서두르면 안 된다는 사실을 꽉 붙들어 잡았다.
화려한 손 기술과 실력을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절반씩 박리하는 것이 안전하다면, 심지어 3분의 1이 안전하다면 그 길로 가는 것이 맞았다.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천천히 진행했다.
수술 팀은 물론 참석자들의 눈에는 절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지금이 얼마나 힘들고 위험한 과정인지 모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기구 끝이 동맥 주변을 파고들 때마다 수술실과 회의실이 긴장에 휩싸였다. 단순해 보이는 동작 하나하나에 성패가 걸려 있었다.
사각! 사각!
전면을 박리했다. 측면부가 서서히 노출됐다.
후면에 도달하는 순간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동시에 이경석이 카메라를 접근시키며 후면에 접한 조직을 확대시켰다. 잘게 부서진 간 조직 사이로 뭔가 다른 양상의 구조물이 언뜻 보였다. 검붉은 색은 비슷했지만 겉면이 보다 매끄럽고 동맥보다 굵었다.
간 문맥이 분명했다.
김지훈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경석이 형, 문맥 맞는 것 같죠?”
“그렇게 보이는데, 왜 이렇게 동맥과 바짝 붙어 있지? 우리가 예상한 수준이 아니잖아. 정맥이라 상당히 쉽게 찢어질 수 있는데, 동맥과 붙은 부분을 박리할 수 있겠어?”
정맥 벽은 약하다.
대신 혈류가 약하고, 혈관 특유의 탄력이 조금이나마 있기 때문에 대부분 묶고 자르는 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동맥보다 굵고, 소장 정맥에서 올라오는 혈류마저 상당히 강한 정맥이 바로 간 문맥이다.
찢어지는 순간 동맥 손상에 준해야 한다.
수처와 타이, 클립을 모두 이용해도 동맥과 함께 묶기에는 너무 굵었다. 헐거운 부분이 생긴다면 이내 제어하기 힘든 출혈이 발생할 것이다.
‘계획과 달리 동시에 처리하는 것이 안전할까?’
간 깊숙한 곳에 위치해 시야가 좁고, 기구를 조작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동맥과 문맥을 한꺼번에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최선의 방법은 동맥과 문맥을 따로따로 처리하는 것뿐이었다. 역설적이지만 그것만이 가장 안전하면서 가장 위험한 과정이었다.
‘동맥과 문맥을 분리해서 처리하지 않으면 언제 문제가 터질지 모른다. 한꺼번에 처리했다가는 무난하게 끝나는 것처럼 보여도 재수술의 위험이 너무 커.’
위험을 회피할 방법은 없었다. 오로지 준비한 대로, 계획한 대로 진행하는 것만이 단 하나뿐인 길이었다.
‘후우! 변수는 항상 있기 마련이지만, 이렇게 바짝 붙어 주행할지는 생각도 못했네.’
슬쩍 어깨를 턴 김지훈이 눈가를 굳혔다.
기구 끝을 주시하며 혈관과 혈관 사이를 박리할 수 있을지 가늠했다. 일말의 가능성과 함께 불가능하지 않다는 사실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멀리 사라지는 자신감을 다시 끌어당겼다. 혼자 하는 수술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가장 강력한 힘인 수술 팀이 뒤를 받치고 있다.
“진행합시다. 간호사, 모스키토 중에서 끝이 가장 가는 것으로 주세요.”
모스키토 끝은 뭉뚝하고, 혈관 사이는 지나치게 좁아 도리어 굵은 기구가 손상을 줄 위험성이 높았다.
알맞은 기구를 받았다.
예리하게 보일 정도로 가는 기구가 동맥과 문맥 사이를 파고들었다. 피가 비칠 때마다 문맥 손상을 입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섬뜩하기만 했다.
주르륵! 피가 흘러나왔다.
“석션! 거즈!”
쉽게 멈출 피가 아니었다. 보비는 절대 사용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수처와 타이뿐인데, 하필이면 동맥과 문맥이 붙어 있는 부분의 딱 한가운데였다. 앞뒤 어느 쪽으로 접근해도 안전하지 않았다.
종이처럼 얇게 조직을 떠야 한다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였다. 설령 시야가 충분히 확보된다고 해도 수처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조금만 깊어도 동맥이나 문맥 중 하나는 찌를 수밖에 없었다.
바늘구멍이라고 안전할까?
강하게 압박할 수 있다면 멈추겠지만 간 속이다. 기구로는 압박 자체가 불가능했다.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었고, 지체할 시간은 단 1초도 없었다.
손을 내민 김지훈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간호사, 가장 작은 바늘 주세요. 경석이 형, 시야만 확실하게 확보해 주세요. 혁원아, 내가 눌러 주는 부분에서 조금도 움직이면 안 된다.”
수술 팀 전체가 극도의 긴장에 사로잡혔다.
간 속, 동맥과 문맥 사이로 바늘을 집어넣었다. 신중의 신중을 기해 얇고, 부서지기 쉬운 조직을 한 바늘 떴다.
조금이라도 빨리 빼거나 방향이 엇나가면 바늘과 실로 조직을 부수는 꼴이 된다.
매 순간 아닌 적이 없었지만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떨려 오는 가슴을 꾹 눌렀다. 목덜미에 맺히는 땀도 잊었다.
검붉은 조직 사이로 나오는 은빛 바늘에만 집중했다. 하얀 실이 꼬리를 물고 나왔다.
이경석과 이혁원이 확보해 준 좁은 시야 속에서 타이를 진행했다.
실은 절대 안 끊어진다. 그 전에 이미 조직이 부서질 것이다.
매듭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도록 모든 신경을 집중시켰다. 두 가닥 실을 조이고 한 번 더 조였다. 매듭이 달랑달랑 매달린 채 조직을 물고 있었다.
“가위! 거즈!”
반드시 멈춰야 한다.
째깍! 째깍!
시간을 따라 거즈로 출혈을 확인했다.
안도의 한숨이 터졌다.
개복을 피했지만 무수히 닥칠 고비 중 하나를 넘었을 뿐이었다. 동맥과 문맥 사이를 박리한 후 언제 찢어질지 모르는 문맥 후면까지 파고 들어가야 한다.
긴장의 연속이었다.
동맥과 문맥 전면이 분리됐다. 동맥에 빨간 띠를 걸고 당겨 시야를 확보했다.
문맥 후면을 파고들었다.
한두 번 경험한 부분이 아닌데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힘겨웠다.
간은 쉽게 부서지고, 문맥의 얇은 벽은 언제라도 찢어질 것처럼 연약하게만 보였다.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수처와 타이에 서서히 문맥이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검붉은 피는 공포와 다름이 없었고, 수술 팀의 완벽한 어시스트는 한 줄기 희망이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끝은 있다.
“마지막 부분입니다. 긴장합시다.”
이제 문맥을 둘러싸고 있던 간 조직이 손톱 반만큼도 남지 않았다. 이 부분만 처리하면 성공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런데 김지훈이 돌연 기구를 빼며 더 이상 진행시키지 못했다. 이경석의 눈빛도 심각해졌다.
“경석이 형, 이 이상 시야 확보를 할 방법이 없겠죠?”
“너무 깊어. 주변 간을 더 잘라도 별반 다를 것 같지 않아. 이 상태에서 혈관을 자르는 것이 최선으로 보여.”
“이혁원, 송진우, 너희들 생각은 어때?”
혈관의 경계를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수처를 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없었다. 만일 혈관 전체를 온전하게 뜨지 못하면 일부러 찢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집도의 실력이 절대적으로 뒷받침돼야 했다.
‘김지훈 선생님이라면!’
이혁원이 눈가에 힘을 주며 지그시 이를 물었다. 지나가듯 물은 것이 아니기에 객관적으로 대답해야 했다. 결론은 믿음이었다.
“동의합니다.”
수술 팀 전체의 의견이 통일됐다. 두 개의 혈관을 완벽하게 확보하지 못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최선이었다.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클립 주세요.”
빨간 띠에 걸린 동맥을 잡았다. 굵고 단단한 감촉이 기구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다. 강한 혈류에 클립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됐지만 문맥을 해결해야 확실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수처 주세요.”
동맥을 자르고 과감하게 문맥을 찔렀다.
바늘구멍을 따라 검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지만 그대로 진행했다. 문맥의 굵기를 감안하고, 하부에 또 다른 위험 구조물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눈과 손에 모든 감각을 집중시키며 바늘을 밀어 반대편으로 빼냈다.
석션으로 피를 제거하며 빠르게 수처를 이어 갔다.
마침내 문맥 양쪽을 모두 실로 걸 수 있었다.
“타이합니다.”
손상이 가지 않도록 주의하며 최대한 빠르게 타이했다. 얇은 문맥 벽이 조여지며 내부 공간이 밀착됐다. 바늘구멍 사이로 계속 피가 나았지만 대처할 방법도, 시간도 없었다.
타이가 모두 끝났다.
수술 팀 모두 화면에 집중할 뿐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식염수로 신중하게 씻어 내고 거즈로 닦았다. 초조함 속에 출혈 여부를 기다렸다.
김지훈의 눈가가 발그스름해졌다. 이경석이 훅훅! 숨을 내뱉었다. 이혁원과 송진우는 숨소리마저 죽였다.
스멀스멀 새어 나오던 피가 사라졌다.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킬 만한 출혈은 없었다. 실과 바늘만으로 완벽하게 처리했다는 의미였다.
김지훈이 힘차게 말했다.
“가위!”
마침내 마지막이자 최대 고비였던 문맥이 잘렸다.
강한 흥분이 수술 팀 전체를 휘감았다.
혈관 마무리를 진행했다.
만에 하나 틈이 있다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부분이었다. 강하게 다가온 흥분을 가라앉히고, 허술한 부분이 있는지 눈을 부릅뜨고 확인했다.
어디선가 피가 흘러나왔다. 혈관에 인접한 부위기에 함부로 처리할 수 없었다.
마지막 고비까지 모두 넘겼다고 생각했건만 오산이었다. 수술 팀의 긴장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끝까지 방심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
처컥! 처컥!
삐이이이! 삐이이이!
“보비! 모스키토! 수처! 타이! 컷!”
담도, 동맥, 문맥이 확실하게 처리된 상태라고 해도 가느다란 혈관과 간 내 담도가 남아 있다. 어느 한 부분 절대 허술하게 처리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좌측 간이 서서히 떨어져 나왔다.
3센티미터, 2센티미터, 1센티미터.
마침내 우측 간과 좌측 간이 분리되기 직전이었다.
마지막 남은 간 조직을 잡는 순간, 회의실이 완벽한 침묵에 잠기며 전율이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