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진정한 실력 Ⅲ (2)
환자를 앞에 둔 김지훈이 긴 숨을 내쉬었다.
부분 간 절제술과는 차원이 다르다.
환자의 바람과 의사로서의 욕심과 도전이 맞물려 시도하지만 언제 개복으로 전환해도 이상하지 않을 수술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부담인데 수많은 참석자들의 시선 속에 수술해야 한다. 허경발 교수의 참석과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가 주는 압박감도 만만치 않았다.
성공한다면 어마어마한 명예와 명성이 뒤따라온다. 수많은 의사들이 엄지를 치켜들며 실력을 인정할 것이다. 최고의 써전에 한발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완벽한 기회였다.
문득 성공하고 싶다는 열망이 강하게 다가왔다. 벌써부터 어깨가 뻣뻣해지는 것 같았다.
‘후우! 왜 이러지? 너무 긴장되네.’
그때 이경석, 이혁원, 송진우, 분주히 마취를 준비하는 의료진이 눈에 들어왔다. 속마음이 어떤지 모르지만 각자 자신이 맡은 일을 여느 때처럼 준비하고 있었다.
순간 얼굴을 붉혀야 했다.
간암 1기를 복강경으로 수술하는 이유, 최고의 수술 팀을 꾸린 이유는 성공적인 시연이나 명예를 위함이 아니었다. 바로 자신을 믿고 몸을 맡긴 환자와의 약속이었다.
큰 스승님의 말에 숨은 의미까지 떠올랐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욕심이 없으면 어떤 도전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욕심이 과해져 매몰되는 순간 더 많은 것을 잃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었다. 지금까지 자그마한 명성을 얻고,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원칙과 기본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강하게 흔들어 잡념을 밀어냈다.
‘오직 환자만 생각하자. 실패가 수치나 창피가 아닌 것처럼 이런 마음을 가지고 성공한다면 어떤 명성과 명예도 의미가 없어. 의사가 가야 할 길을 올바르게 가면서 얻는 명예야말로 진정한 가치가 있을 거야.’
“수술 시작하셔도 됩니다.”
마취과 교수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잠시 눈을 감고 마음을 안정시켰다.
지난 시간의 준비와 노력을 상기하며 반드시 성공하고 말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바로 환자의 건강과 확실한 치료를 위해서 말이다. 이후에 따라오는 모든 것은 결과 중 하나이자 덤으로 얻는 것일 뿐이었다.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메스를 든 김지훈이 입술을 꽉 물었다. 차갑고 예리하게 빛나는 칼날에 마음이 진정됐다.
모든 준비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4개의 구멍에 4개의 기구가 들어갔다. 화면에 잡힌 간에 발간빛이 감돌았다.
대부분의 간암은 뒤늦게 발견되지만 천운처럼 1기에 발견됐기에 건강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정확하고 안전하게 수술을 끝낸다면 기대 이상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라파로로 끝낼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완벽해. 결과는 내 손, 우리 수술 팀의 손에 달렸다.’
수술 팀과 눈을 마주쳤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마음을 전했다.
‘시작합니다. 끝까지 집중합시다.’
“카메라 들어오고, 보비 주세요.”
삐이이! 삐이이이!
담낭을 살릴 수 없기에 담낭 절제술부터 시행했다. 수없이 경험한 과정이었지만 간 절제를 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보다 신중하게 접근했다.
“클립 주세요.”
조심스러운 손길에도 불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담낭이 떨어져 나왔다. 이제 담낭을 제거한 자리 좌측 끝에서 절제를 시작해야 한다.
일종의 랜드마크다.
하얀 연기와 함께 절제해야 할 경계부에 선이 그려졌다. 그 속에 굵은 담도, 간 동맥, 간 문맥이 숨어 있다. 나뭇가지처럼 뻗어 나간 수많은 혈관과 담도 또한 확실하게 처리해야 할 구조물이었다.
‘배운 대로, 해 왔던 대로.’
“모스키토!”
모스키토의 작은 끝이 간을 파고들었다. 간 조직이 부서지며 검붉은 피가 비쳤다.
“보비!”
삐이이이! 삐이이이!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보비보다 훨씬 강력한 전기가 원하는 부위에 정확하게 전해지며 강한 열기를 일으켰다. 불에 타듯 까맣게 지져진 조직과 함께 흐르던 피가 멈췄다.
시작이 좋았다.
첫 번째 목표는 좌측 간 내 담도다.
설령 실수가 있다고 해도 처리만 잘하면 별다른 문제를 일으킬 구조물이 아니다. 또한 담도를 잘라야 간 동맥과 문맥을 확실하게 확보할 수 있다.
“보비! 석션! 수처! 타이!”
간 조직이 부서질 때마다 피가 흘렀다.
보비로 제어되지 않으면 곧바로 수처를 시행했다.
겉에서 만지면 단단하지만 속은 마치 말랑말랑한 과자처럼 쉽게 부서지는 장기가 간이다. 바늘을 찌르고 타이를 할 때마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매 순간이 다 마찬가지였다.
적절하게 카메라 각도를 조절해 수술 시야를 확보하며 완벽하게 퍼스트 역할을 수행하는 이경석이 아니었다면 험난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차근차근 전진했다.
드디어 첫 번째 목표가 눈에 들어왔다.
좌측 간 담도다.
우측 간 담도와 합쳐지며 총수담관을 만들기 직전 부위기 때문에 직경이 1센티미터 정도 됐다. 클립 하나로 잡기에 너무 굵었다. 탄력이 부족하고, 의외로 단단해 부분부분 잡으면 도리어 쉽게 찢어질 수 있었다.
손상만 가중시킬 것이다.
확실하게 노출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담도 주변 박리합니다.”
혈관이 아닌 덕에 대량 출혈 위험은 없지만 지금처럼 박리할 수는 없었다. 담도 후면은 시야를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마치 혈관을 다루듯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담도 전면을 깨끗하게 다듬었다.
측면 부위는 보다 어려웠지만 시야를 확보할 수 있고, 기구를 움직일 공간이 있어 그나마 수월했다.
후면부가 남았다.
기구 하나가 더 들어와 담도를 밀어 주면 편하겠지만 더 이상 허락되는 공간이 없었다. 집도의 손에 잡힌 두 개의 도구만으로 모든 과정을 해결해야 했다.
“경석이 형, 석션 팁을 조금만 밑으로 빼 주시고, 시야는 총수담관 방향에서 확보해 주세요.”
한 손으로 담도를 살짝 잡아 밀며 후면 박리를 시작했다. 작은 기구 끝이 담도에 가려졌다. 보이는 상황과 보이지 않는 상황의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후면에 바짝 붙여 박리하면 위험 구조물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빤히 알면서도 긴장이 치솟았다.
감각이 이상하거나 출혈이 많아진다는 느낌만으로도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보비!”
삐이이이! 삐이이이!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졌다. 보비로 출혈이 잡히지 않았다. 수처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신중하게 박리된 부분을 벌리고 간신히 바늘을 집어넣었다. 출혈 부위는 가까스로 확인했지만 공간이 없어 간 조직을 뜨기도 어려웠다.
‘이 부분 밑에 혈관이 주행할 가능성이 높은데.’
바늘을 빼낼 때까지 불안감에 심장이 벌렁거렸다. 혹시 혈관을 찔렀을지도 몰랐다.
가느다란 실만 걸린 상태에서 출혈이 증가하는지 확인했다. 이제 초반일 뿐인데 제어하지 못하면 결과는 개복이었다.
석션을 하는 이경석도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담도 밑으로 스멀스멀 피가 새어 나왔다.
“어때요? 나오는 양은 비슷하죠?”
“타이만 제대로 하면 문제없을 것 같아.”
천만다행이었지만 타이 자체가 극도로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기구 하나만으로 타이할 수는 없다. 담도를 잡았던 기구까지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시야를 확보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기구에서 전해지는 감각에만 의존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타이를 진행해야 했다.
담도를 잡은 기구를 풀었다. 후면에서 빠져나온 가느다란 실만 보였다.
양끝을 잡고 매듭을 만든 후 조심스럽게 당기자 담도 밑으로 매듭이 사라졌다.
실을 길게 잡으면 정확하게 조여지지 않는다. 보다 짧게 잡고 매듭을 조여야 했다.
기구 끝마저 담도 밑으로 사라졌다.
김지훈이 눈가를 좁힌 채 기구를 조작했다.
매듭이 적정하게 조여지는 느낌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했다.
툭! 뭔가 걸리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다. 더 이상 강하게 조이면 안 된다는 신호였다.
툭툭 기구를 살짝 움직여 매듭을 확실하게 고정시킨 후 기구를 빼냈다. 이경석이 곧바로 이리게이션을 한 후 석션으로 핏물을 제거했다.
카메라를 가깝게 접근시켰다.
출혈이 잡혔을까?
꿀꺽!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여전히 스멀스멀 피가 새어 나왔지만 확연하게 줄었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맥이 다 풀렸다.
‘휴우! 담도 부분도 이렇게 힘든데 혈관 처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은 담도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다음 과정을 걱정하다 자칫 집중력을 잃으면 매 순간 매 순간 치명적 실수에 노출될 것이다.
“가위!”
매듭과 이어진 실을 잘라 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어깨를 살짝 흔들어 과도한 긴장을 덜어 내고 후면 박리를 진행했다.
보비로 제어되지 않는 출혈이 또 발생했다. 더욱 깊어진 수술 부위에 가히 악전고투라 할 정도로 수처와 타이가 힘들었다.
가까스로 출혈을 잡고 후면부를 모두 박리했다.
담도 밑을 파고든 모스키토 끝이 반대편에서 보이는 순간 절로 가쁜 숨이 터질 정도였다.
단 한시도 또 다른 출혈이 유발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았다.
참석자들이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담도 주변의 간 조직을 박리하는 과정은 초반일 뿐인데 숨 막히는 긴장만이 흘렀다.
누구 하나 이 과정을 자신할 수 없었다. 김지훈이 이끄는 수술 팀의 능력이 놀라울 뿐이었다.
진충기의 눈가에서 미세하지만 격한 경련이 일었다. 김지훈과는 전혀 다른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식별하기 좋게 파란색 고무 끈을 담도에 걸었다.
“혁원아, 당겨.”
자신이 수술하는 것처럼 땀을 흘리던 이혁원이 조심스럽게 고무 끈을 잡아당겼다. 담도와 간 조직 사이가 벌어지며 적정한 간격을 확보했다.
이경석이 확실하게 시야를 유지시켰다.
노출된 담도 양끝을 수처했다. 한 번에 모두 잡을 수 없어 각각 서너 바늘 이상을 꿰매고 나서야 담도 양측을 모두 봉합할 수 있었다.
송진우가 고개를 흔들었다.
간 조직 박리와 출혈 처리를 하는 손도 놀랍기만 한데 담도를 수처할 때는 거침이 없었다. 손으로 직접 하는 것처럼 능숙하기만 했다.
‘이젠 기구를 손처럼 쓰시네. 항상 하시는 말씀대로 기본에 충실했기 때문이겠지? 난 언제 이런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까?’
침착함에 어려움이 가려졌을 뿐이었다.
예상과 달리 수처와 타이 모두 결코 쉽지 않았다. 굵고 단단한 담도를 완전히 묶으려면 상당한 힘을 요한다. 개복 때는 하등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온전하게 힘을 줄 수 없는 기구로는 보통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1센티미터 굵기의 담도에서 수술 후 담즙 유출이 일어난다면 100퍼센트 재수술이다. 확신이 들 때까지 조금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그런 타이를 여덟 번 넘게 시행했다.
손아귀가 뻐근할 정도였다.
‘후우! 이 부분에서 난관을 만날 줄은 몰랐네. 계획을 세울 때 더욱 세심하게 접근해야겠어.’
“가위! 클립!”
담도를 잘랐다.
동그래야 할 담도 절단면이 일자로 들러붙어 있었다.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았지만 사전에 계획한 대로 클립을 물려 이중으로 보강했다.
“경석이 형, 어때요?”
“확실하게 처리된 것 같다.”
이혁원과 송진우에게도 의견을 물었다.
집도 경험이 적다고 해서 판단 능력까지 부족한 것은 절대 아니다. 그동안 어시스트를 열심히 섰다면 충분히 판단하고도 남았다.
“잘 처리된 것 같습니다.”
첫 고비를 무사히 넘었다. 이제 혈관을 찾아 묶어야 한다.
수술 부위가 깊어질수록 시야는 나빠지고, 그만큼 어려움이 증가한다. 이 상태로 진행한다면 급격하게 위험이 치솟으며 개복 가능성만 높일 것이다.
수술 전 머리를 맞대야 하는 이유였다.
“계획대로 간 윗면과 후면을 절제해서 가능한 한 시야를 최대한 확보합시다. 보비 주세요.”
삐이이이! 삐이이이!
좌우측 간 경계를 따라 하얀 선이 생겼다.
인내력을 요하는 과정이 시작됐다.
복강경은 개복 때보다 한 번에 잡고 부술 수 있는 조직 양이 훨씬 적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부분 절제 시보다 훨씬 크게 절제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간 윗면은 환히 보여 그나마 쉽다.
반면 횡격막과 맞닿은 부분은 시야 확보부터 어려웠다. 협소한 공간은 기구 조작에 제한을 가했고, 출혈 제어에 상당한 어려움까지 동반되는 부위였다.
“모스키토!”
사각! 사각!
손톱 반만 한 크기로 조금씩 간을 부쉈다.
“보비!”
삐이이이! 삐이이이!
허연 연기가 피어오를 때마다 검은 피딱지가 절제 면에 엉겨 붙었다. 잘못 건드리면 떨어져 나가 새로운 출혈을 야기하기에 동작 하나하나 모두 극도로 조심해야 했다.
보비로 제어되지 않는 출혈이 수시로 발생했다.
“수처! 타이! 컷!”
기구 각도가 맞지 않으면 수처는 물론 타이까지 어려워지는 상황이었다. 이리저리 기구를 움직여 가며 최상의 위치를 찾아야 했다.
부분 간 절제와 차이라고는 단지 자르는 위치가 다를 뿐이었다. 자르고, 지지고, 봉합하는 과정은 똑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은 비교할 수도 없었다.
‘횡격막 쪽 절제는 너무 어렵네.’
‘끙’ 소리가 터질 정도로 힘이 드는데 아직 혈관에 도달하지도 못했다.
어느 순간 목덜미와 등짝이 축축해졌다. 어깨는 뻐근하고, 반복되는 동작에 손아귀가 저려 오는 느낌마저 들 지경이었다.
강인한 체력, 고도의 집중력, 수술 팀의 조화까지 모든 것을 쏟아붓지 않으면 도저히 성공할 수 없는 수술이었다.
남은 과정은 훨씬 더 어렵다.
김지훈은 눈가에 바짝 힘을 주었다.
이경석은 시야 확보에 여념이 없었다.
기구 하나는 넘겨받은 이혁원은 김지훈의 오더에 귀를 기울이며 한 치의 방심도 허락하지 않았다.
개복을 대비해 들어온 송진우는 배를 열지 않기만을 바랐다. 환자에게 가해지는 부담과 수술 후 회복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점점 절제 부분이 확대되며 수술 부위가 깊숙해졌다. 기구 조작이 어려워지며 단순하게 자르는 과정마저 극도로 위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