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진정한 실력 Ⅰ (1)
딸의 곁을 떠나기 쉽지 않았다.
“우리 딸, 또 보자.”
병실로 올라가는 고경아의 발걸음이 힘들어 보였다. 한 걸음 뗄 때마다 배가 아픈지 얼굴을 찡그렸다.
자식은 같이 만들었는데 아픔은 오로지 엄마 몫이라는 사실이 미안하기만 했다.
“경아 씨, 많이 아파요?”
“참을 만해요.”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는데 밋밋한 죽과 맹탕 같은 미역국을 한 입 두 입 뜨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지훈 씨, 저녁 먹어야죠? 엄마, 아빠도 제대로 식사 못하셨으니까 맛있는 거 사 드려요.”
도리어 가족 걱정이다.
최문옥 여사가 혀를 찼다.
“우리 걱정 말고, 싹싹 다 비워. 그래야 고생 안 해.”
“엄마 말이 맞아. 나도 우리 아들 낳고 잘 안 먹었다가 고생 많이 했어. 제부, 경아가 먹고 싶다는 거 있으면 바로바로 사다 줘야 돼요.”
“처형, 그런 건 걱정하지 마세요.”
“경아 아파 죽을 때 옆에 있지도 않았는데 걱정이 안 될 수가 있어요? 애 낳기 전에 얼마나 아픈지 알아요? 그나마 시간 맞춰 와서 참는 거예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그때 고경순의 품에 안겨 있던 조카가 힘차게 울어 댔다. 세 달 빨리 태어났다고, 울음소리가 장난이 아니었다. 이모부 살려 주는 소리기도 했다.
“어머! 우리 아들 배고프구나.”
고성문이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허허! 우렁찬 게 장군감이다, 장군감.”
보온병, 젖병, 분유를 꺼낸 고경순의 손이 몇 번 움직이자 어느새 조카의 입에 젖병이 물려 있었다. 숙달된 엄마의 능숙한 손이었다.
김지훈의 눈이 반짝였다.
‘저런 건 빨리 배워 놔야 돼. 20cc에 분유 한 숟갈이던가? 물 온도를 손등으로 어떻게 재지? 감인가?’
고민도 잠시, 식구들 모두 변변히 먹지 못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번갈아 먹기로 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모시고 식당으로 향했다.
“김 서방, 경아 퇴원하면 바로 원주로 가는 게 좋겠어. 혼자 잘 있을 수 있지?”
산후조리를 해 줄 사람은 장모밖에 없다.
무척 죄송한 일이었다.
“제 걱정은 마세요. 힘드실 텐데 죄송합니다.”
“죄송하긴. 그런 생각 하지 말고 주말마다 꼭 내려와. 바쁘다는 핑계로 안 오면 안 돼. 산후 우울증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지?”
마음 같아서는 주말이 아니라 아예 원주에서 출퇴근을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해야 할 말이 하나 있었지만 갑갑한 일이기에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아무래도 의사인 장인어른이 더 잘 이해할 것이다.
“아버님, 오늘 저녁에 제가 준비할 것이 많습니다. 조금 늦게 입원실로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연 때문에? 벼락치기 할 일이 아니잖아? 평소 실력대로 하면 될 텐데, 새삼스럽게 무슨 준비를 또 해?”
“지당하신 말씀인데, 토요일에 시연 한 건이 더 잡혔습니다. 이준영 선생님, 동기들과 함께 준비해야 합니다.”
“무슨 수술인데?”
“간 절제가 예정돼 있습니다.”
고성문의 눈이 번쩍였다.
학회 발표 때 보고 들었지만 슬라이드를 통해서였다. 생생한 수술 장면을 볼 수 있다면 엄청난 간접 경험이 될 수술이었다.
그뿐인가?
사위도 자식이다.
최초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마치 자신의 일처럼 좋아했던 고성문이었다. 초미의 관심이 쏠릴 테고, 무사히 끝낸다면 최고의 써전, 아니 사위 말대로 최고의 수술 팀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자리가 된다. 장인으로서, 한 명의 일반외과 의사로서 더할 나위 없는 일이었다.
절로 웃음이 터지면서도 걱정이 앞섰다.
“그럼 가야지. 절대 실패하면 안 되는 수술이니까 철저하게 준비해. 우리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감사합니다.”
장모의 눈초리가 은근히 서늘했지만 잘난 사위 둔 탓이었다. 아쉽고 서운한 면이 있다고 해도 절대 막아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고성문이 슬쩍 눈치를 보며 말했다.
“김 서방, 급한 것 같은데 먼저 들어가.”
병원으로 돌아가는 김지훈의 발이 보이질 않았다.
‘어후! 하루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이 벌어지네. 그나저나 한 달 후에 경아 씨 출산휴가가 끝나는데 누가 우리 딸을 보지? 큰일이네.’
정말 숨 가쁜 하루였지만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았다. 맞벌이 부부에게 가장 큰 문제인 보육은 시간을 두고 고민할 일이었다.
아내와 딸을 보고 후다닥 연구실로 향했다.
마음은 불편한데 왠지 힘이 났다.
이렇게 바삐 움직여야 하는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 세상천지 어디에도 한 울타리 속에서 서로 보듬고, 아껴야 할 가족만큼 소중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경아 씨와 우리 딸에게 창피하지 않도록 열심히 살자.’
이준영 교수, 신현수를 비롯해 참석 가능한 교수들까지 모두 모여 있었다.
김지훈을 본 송진우가 환자 차트 복사본을 나누어 주고, 검사 결과를 걸었다.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었다.
‘집중해야 빨리 끝낼 수 있어.’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면 될 일도 안 된다. 고경아만 생각하면 미안한 일투성이였지만 그래서 더 집중해야 했다. 남다른 의미가 될 수술이기도 했다.
“먼저 환자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진지함만이 남았다.
환자 설명이 끝나고, 각종 검사 결과를 확인할 때는 모두들 심각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준영 교수마저 눈가를 굳힌 채 고민스러운 표정이었다.
두 번의 간 절제, 두 번의 간 봉합 경험만을 믿기에는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수술 계획을 듣고 나서도 굳은 표정을 풀지 못했다.
“기술적으로 가능하겠어?”
“지금까지 경험으로 볼 때 불가능한 수술은 아닙니다.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합니다.”
“신현수, 이경석, 어때?”
“같은 생각입니다. 설령 실패한다고 해도 의미가 있고, 정확한 판단하에 개복하면 수반되는 문제 역시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람의 의견이 남았다.
“환자분과는 확실하게 얘기 된 거지?”
“환자분도 원했고, 처음 컨설트 볼 때부터 충분히 설명했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준영 교수가 최종 결정을 내렸다.
“토요일에 시연하자.”
“알겠습니다. 수술 팀도 예정대로 꾸릴까요?”
“정해진 대로 해.”
김지훈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제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일만이 남았다.
이준영 교수의 토요일 시연 준비가 이어졌다.
경험이 있는 수술이라고 방심할 스승이 아니었다. 퍼스트를 맡기로 한 신현수의 환자 설명이 끝나자마자 열띤 토론을 벌였다.
‘야! 스승님이 이렇게 많은 말씀을 하실 때도 있네.’
시연이 주는 부담 때문만이 아니었다. 스승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가슴 깊이 박혀 있는 열정이 느껴졌다.
참석한 교수들 역시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각자 성격이 다르고 개성도 강했지만, 모두가 써전이라는 동질감이 진하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두 개의 수술 팀이 두 명의 환자를 찾았다.
최종 결정을 설명하고, 주의할 점과 예상되는 문제를 일일이 다시 설명했다.
의사가 못 미더워도 불안하지만 이례적으로 많이 보여도 불안한 법이다.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었다.
“수술 전 준비는 다를 것이 없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내일 아침에 외과 병동에서 뵙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시연 참석자 앞에서, 특히 진충기 앞에서 간 절제를 시행하고 싶다는 바람이 이루어졌다. 문제는 성공을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강한 부담을 떨치지 못하던 김지훈이 입원실로 돌아오고 나서야 얼굴을 폈다. 희미한 불빛 아래 곤히 잠든 고경아는 마음의 평안이었다.
‘고생했어요. 사랑해요.’
한시도 쉴 틈이 없었을 정도로 바쁜 하루였지만 생애 가장 큰 선물을 받은 날이었다.
무사히 출산한 고경아, 건강하게 태어난 딸, 수술을 견뎌 내고 삶의 꽃을 피워 갈 작은 아이와 엄마의 미소까지 무엇보다 소중한 선물이었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이렇게 행복한 날이 또 있을까?’
두근거리는 심장에 누울 수가 없었다. 보호자 침대에 걸터앉아 조용히 창밖을 보았다. 밤하늘에서 반짝이던 별빛 하나가 쏟아져 들어왔다.
‘아버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이대로 시간이 멈추길 바랐지만 매일매일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같은 날이 아니기에 새로운 의미를 담을 수 있다.
내일도 오늘처럼 특별한 날이 분명했다.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럴 것이다.
곰곰이 턱을 괴고 앉아 내일 시연을 준비했다.
두 건의 담낭 절제술.
이혁원과 나종진의 수술.
상당히 긴장되고, 바쁜 하루가 될 내일을 힘차게 시작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있었다.
새벽부터 지금까지 한잠도 못 잤다.
껌벅이던 눈꺼풀이 스르르 감겼다.
방긋방긋! 꺄르르르!
하루도 안 된 딸이 고경아의 품 안에 안겨 활짝 웃고 있었다. 밤새 나도 안게 해 달라고 쫓아다니다 눈부신 햇살에 눈을 떴다.
시연 둘째 날이 밝았다.
부지런히 입원실, 신생아실, 병동을 오간 김지훈이 수술 방으로 들어서며 훅 숨을 내쉬었다. 30분도 더 남았는데 이미 회의실 자리가 절반 이상 찼다.
김지훈의 담낭 절제술 및 탈장 수술.
신현수의 비만 수술 두 건.
이경석의 두 번째 조기 대장암 수술.
이혁원과 나종진의 수술.
오늘 예정된 수술이었다.
평범한 듯, 예외적인 듯 여러 의미가 섞여 있었다.
9시 정각!
수술실 세 곳에서 동시에 수술이 시작됐다.
참석자들의 시선이 가장 많이 몰린 수술은 의외로 김지훈의 기본적 수술이었다.
비만과 조기 대장암 수술도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김지훈의 실력이 무척 궁금한 탓이었다.
‘잘하려고 욕심을 내기보다 부끄럽지 않게 진행하자.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보일 수 있다면 그보다 만족스러운 일은 없을 거야.’
3포트로 담낭 절제술이 진행됐다.
모두들 과정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스승을 보면 제자를 알 수 있을까, 아니면 제자를 보고 스승을 알 수 있을까?
물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우면서도 과감했다. 정확함과 빠름까지 겸비했다.
탄탄한 기본기가 아니면 불가능한 손이었다.
가히 이준영 교수의 수술을 보는 것 같았다. 스승과 제자의 경험과 노련함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인데 놀라운 일이었다.
여기저기에서 나직한 감탄이 터졌다.
‘허어! 확실히 표시가 나네.’
‘이제 전임이 됐는데 저렇게 쉽게 진행하다니 놀라워.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쭉 라파로에만 매진한 의사처럼 보이네.’
최인호 교수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진충기와 경쟁을 시켰다면 어마어마한 효과를 냈을 텐데, 어떻게든 스카우트를 했어야 했어. 김지훈 하나 못 이기는데 밑에 놈들이 열 명이 넘으면 뭐 해? 이준영을 꺾으려면 김지훈을 빼내야 돼. 좋은 방법이 없을까?’
진충기의 표정도 다르지 않았다.
이미 신현수와 이경석의 실력을 보았다. 뛰어나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자신의 손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김지훈은 확실히 달랐다. 그동안 왜 본능적으로 견제를 했는지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수많은 참석자들이 직접 눈으로 본 이상 헛소문이 가져온 효과는 더 이상 바랄 수 없었다.
‘김지훈을 이기지 못하면 최고의 써전이 될 수 없어. 어떻게 해야 저 기를 꺾을 수 있지? 오늘 예정된 시연이 다라면 더 이상 실력을 보일 기회가 없겠지. 이걸 이용해야 돼.’
완벽한 써전은 없다. 상황이나 시각에 따라 평가 역시 달라진다.
진충기의 눈이 김지훈의 수술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어딘가 허점이 있을 것이다. 무심코 넘길 수 있는 사소한 문제나 실수를 반드시 찾아내야 했다.
어느새 첫 번째 수술이 끝났다. 바람과는 달리 어떤 문제도 없었다. 예상하기 힘들 정도로 너무 빨리 끝났다.
‘이 정도로 손이 빠르다는 말은…….’
진충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탈장 수술이 이어졌다.
인공 조직으로 탈장 구멍을 막을 때 보인 수처 솜씨는 한마디로 기가 막혔다. 개복했을 때와 다르지 않아 보일 정도로 능숙했다.
“개복보다 더 쉽게 보이지 않아요?”
“그러게 말입니다. 수처하기 어려운 부분까지 너무 능숙하게 진행하네요. 이준영 교수님이 어떻게 가르쳤는지 수련 방식을 물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몇 마디 오고 가는 사이 탈장 수술마저 끝났다.
수술 부위가 깔끔하고, 깨끗했다.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참석자들이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빠르다고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확함을 갖췄기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허어! 허어!”
누군가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연륜을 중시하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수많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식과 실력 때문이다.
김지훈은 결코 나이나 예측되는 경험에 어울리지 않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 탓에 도리어 일종의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오늘로 김지훈 시연이 끝난다면 아쉬움을 넘어 실망하고 말 것이다.
무슨 이유인지 토요일 시연 일정이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최초로 간 절제를 시행한 김지훈의 진짜 실력을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