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드러내지 않아 빛이 나는 사람 Ⅲ (1)
눈가에 주름까지 잡혔다. 웃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순간 김지훈의 눈가가 사나워졌다.
얼마나 흥분되고 기쁜지 알지만, 수술 아직 안 끝났다. 6주 된 아기에게는 마취까지도 굉장히 버거운 일이다. 확실하게 회복될 때까지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이준영 교수는 물론 어떤 교수 앞에서도 이런 모습을 보였다간 치도곤을 당했을 것이다.
“송진우, 오하석, 뭐 하는 거야?”
서늘한 기운이 수술실을 휘감았다.
실수를 깨달은 송진우가 급히 눈가를 굳혔다. 오하석은 아예 자라목을 했다.
“기본은 손에만 있는 게 아니다.”
마무리가 진행되는 동안 누구도 긴장을 풀지 않았다.
배 속에 넣은 부드러운 드레인조차 장기 손상을 줄까 두려울 지경이었다. 복부 봉합조차 세심하지 않으면 제대로 아물지 못할 것이다. 수술 후 잠시 동안 지속될 황달이 상처 치유를 방해하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피부 봉합이 끝났다. 이제 무사히 깨어나야 한다.
“간호사, 마취제 끊읍시다.”
통상적인 방법으로 함부로 마취 유도를 하지 못한 것처럼 깨우는 일도 상당한 주의를 요했다. 성인처럼 접근하면 충격이 가해질 수도 있었다.
삐익! 삐익!
가장 작은 앰부(Ambu:호흡 주머니)로 공기를 불어넣는 김진호 교수의 손길이 신중했다. 적정하게 산소를 주입하며 수액량을 조절했다.
이준민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회복제 4분의 1만 줘요.”
김지훈이 부드럽게 발을 감싸 쥐었다.
송진우는 체온을 잃을까 걱정인지 따뜻한 천을 부탁해 오하석과 함께 한 겹 더 덮어 주었다.
‘준민아, 초조하게 하지 말고 어서 일어나.’
수술보다 더 긴장된 시간이었다. 6주 된 아이의 조그만 몸속에 숨은 힘을 믿을 뿐이었다.
김진호 교수의 침착한 대처를 따라 마취과 간호사가 정확하게 움직였다.
회복 반응이 보이지 않았다.
‘왜 안 깨지?’
째깍! 째깍!
일분일초가 초조해지던 그 순간.
이준민의 몸이 살짝 떨렸다.
진저리를 치는 것처럼 작고 가는 팔다리가 움직였다. 스스로 내쉬는 숨결을 따라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했다. 목구멍을 막은 튜브가 괴로운지 작은 주먹을 꽉 쥐었다.
“튜브 제거합니다.”
기관에 삽관한 튜브를 빼자 칭얼거림인지, 아프다는 건지 모를 소리가 나직하게 들렸다. 회복실에 옮기는 동안 점점 더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
마침내 손발을 버둥거리며 큰 울음을 터트렸다.
이제야 안도할 수 있었다.
작고 여린 몸으로 4시간이 넘는 수술을 이겨 내고 무사히 깨어났다. 담도 폐쇄로 다른 장기도 아닌 간에 영향을 받은 상태를 생각하면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준민아, 잘 버텨 주어서 정말 고맙다.’
수술에 참여한 모든 의료진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스스로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충실하게 수행한 덕이었다.
아기 엄마가 들어왔다. 수술이 잘됐는지 물어보지도 못하고 허겁지겁 아이를 품에 안았다. 코에 걸린 코 줄, 끊이지 않는 울음소리에 서러운 눈물만 흘렸다.
남편은 아무 말도 못하고 아이의 손만 잡았다. 산후조리도 끝내지 못해 자신도 힘들 아내에게 한없이 미안한 눈길을 보냈다.
누구보다 결과가 궁금할 것이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엄마 아빠의 입가에 조그만 안도감이 실렸다.
김지훈이 길게 숨을 내쉬며 미소를 머금었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수술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역시 간 봉합은 개복을 해도 항상 어려워. 경험이 많으면 3시간 정도에 끝난다는데, 또 하고 싶지는 않네. 뿌듯하긴 하지만 아이들을 수술할 때마다 기분이 너무 안 좋다.’
좁은 시야 속에서 가장 작은 바늘을 사용했다.
기구를 조작하기 어려워 복강경으로 한 것과 별반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어쩌면 소중한 경험을 한 번 더 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픈 사람 치료하는 직업이라지만, 누군가 아파야 실력이 는다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은 아니네.’
이준민이 크게 울어 댔다. 아프다는 표현일 테지만 무난한 회복을 알리는 반가운 소리였다.
가슴 벅참과 함께 이름도 생소한 수술을 무사히 끝냈다는 실감이 다가왔다.
카사이 수술(Kasai Operation)!
선천성 담도 폐쇄 수술을 최초로 시행하고 널리 알린 카사이라는 의사의 이름을 딴 수술이다.
한 사람의 도전과 노력이 수많은 아이를 살렸고, 앞으로도 수많은 아이를 살릴 것이다.
그런 의사가 되고 싶었다.
불현듯 든 생각 때문인지 작고 여린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 부모의 눈에 걸린 한 줄기 희망에 말도 못할 뿌듯함이 다가왔다.
‘다른 아이들처럼 무럭무럭 자라기를 바란다.’
순간의 벅찬 감정이 서서히 사라지며 냉철한 현실이 다가왔다. 아직 안심할 때가 아니었다. 수술이 잘 끝났다고 해도 지금까지의 결과일 뿐이었다.
최종 성공 여부는 며칠 후에나 판단할 수 있다.
황금색 변을 봐야 한다.
황달 수치가 정상적으로 내려가야 한다.
원하는 소견이 확실하게 확인되는 그 순간까지 의료진의 긴장은 지속될 것이다.
‘준민이 아버지, 어머니는 수술이 끝이 아니라고 한 말을 기억하고 있을까? 아마 잊었을 테지만, 지금 이 순간에 또 경고할 이유는 없겠지.’
여러 생각에 잠겼던 김지훈이 갑자기 움찔거렸다.
엄마의 고통과 아이의 울음!
‘경아 씨! 우리 딸!’
급히 송진우에게 눈짓을 했다. 수술 중 있었던 일로 오하석까지 휴게실행이 필요했지만 오늘만은 평소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작고 여린 생명을 수술했기 때문인지 한시라도 빨리 고경아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진우야, 환자 잘 봐. 내가 할 말이 있다는 건 알지? 하석이랑 둘이 고민하고 다신 그런 일이 없도록 해.”
송진우의 얼굴이 벌게졌다.
“죄송합니다. 분만실에 계실 겁니까?”
“응. 보호자분께 말씀 잘 드려.”
부리나케 분만 대기실로 향했다.
지금 이 순간만은 의사가 아니라 한 여인의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빠가 될 사람이었다. 가슴이 벌렁거리며 수술 때보다 더 심한 초조함이 다가왔다.
그 짧은 새에 별생각이 다 들었다.
혹시 이미 우리 딸을 낳았을까?
낳았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맙다? 사랑한다? 예쁘다?’
아직도 진통에 시달리는 것은 아닐까?
경아 씨 몸은 괜찮은가?
허겁지겁 분만 대기실에 도착했다.
식구들이 모두 나와 있었다.
초조한 얼굴로 복도를 왔다 갔다 하던 고성문이 급히 손짓을 했다. 시연장이 아니라 분만실 근처에 있다는 것은 뭔가 큰 변화가 있다는 말일 것이다.
표정만 봐서는 이미 딸을 낳았는지, 아직도 진통 중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디선가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어디선가 고경아의 비명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달려가는 것 이외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고성문은 더 급했다. 기다리다 못해 마주 달려와 팔을 잡아끌었다. 그 와중에도 외과 의사 기질이 발휘됐다. 어쩌면 자식 넷, 손자 한 명을 이미 얻은 사람의 여유일지도 몰랐다.
“김 서방, 수술 잘 끝났어?”
“예. 잘 끝났습니다. 경아 씨는요?”
“시간 딱 맞춰 왔어. 방금 전에 분만실로 옮겨졌으니까 빨리 들어가 봐. 수술이 언제 끝날지 몰라 전화 못했다.”
전화가 무슨 대수겠는가?
유일하게 아빠에게만 허락되는 축복, 딸의 탄생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한껏 흥분된 표정을 짓던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고경아를 걱정하면서도 아직 분만 중이라는 사실에 다행이라는 생각은 왜 드는지 모를 일이었다.
김지훈을 본 산부인과 간호사가 곧바로 안내했다.
컨설트가 있을 때 가끔 들렀던 분만실 풍경이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고통스러운 산모의 비명 소리가 가슴을 마구 후벼 팠다.
‘혹시 경아 씨? 얼마나 아플까?’
분만이 막바지에 이른 상태였다.
“한 번 더! 한 번 더! 힘! 힘!”
새빨개진 고경아의 얼굴이 땀범벅이었다.
억지로 힘을 주느라 꽉 쥔 주먹이 하얗게 변했고, 허리가 새우 등처럼 굽었다. 극심한 고통이 가져온 충격에 쓰러지듯 침대에 몸을 눕혔다.
김지훈에게 눈길도 주지 못했다.
온몸에 힘이 쭉 빠진 상태였지만 분만을 늦출 때가 아니었다. 고비를 넘지 못하면 이제 와 제왕절개를 해야 할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산부인과 교수가 소리쳤다.
“고 간호사, 한 번 더! 힘! 힘!”
이를 악문 고경아가 바르르 떨었다. 산모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실제 고통의 백분의 일, 천분의 일도 느끼지 못하겠지만 얼마나 아픈지 가슴은 느끼고 있었다. 우연히 보았던 출산과 아내의 출산은 모든 면에서 달랐다.
“나온다! 나와! 고 간호사, 조금만 더! 힘!”
뼈가 벌어지고, 살이 찢어지는 산모의 고통이 이어졌다. 비명처럼 소리를 지르며 숨을 헐떡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아내의 비명과 고통이었다.
‘경아 씨, 미안해요. 힘내요.’
김지훈의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손을 잡고 있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 1초라도 고통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다.
“나온다, 나와! 고 간호사! 한 번 더! 힘! 힘!”
“아아악! 아아악!”
고통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김지훈의 가슴도 타들어 갔다.
그 순간 산부인과 교수가 김지훈을 불렀다.
“김 교수, 에피지오토미 들어간다. 내려와.”
에피지오토미(Episiotomy:회음부 절개술)!
드디어 분만 마지막 단계다.
상대적으로 커다란 아이의 머리가 빠져나오기에는 출산 통로가 너무 좁다. 벽이 찢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회음부를 넓혀 주어야 산모와 아이에게 모두 안전하다.
산부인과 교수가 능숙하게 회음부를 절개했다.
자식을 위한 엄마의 희생은 끝이 없다. 철철 흐른 피가 바닥을 적실 정도의 큰 고통이 뒤따랐지만, 그로 인해 아이가 내려올 길이 넓어졌다.
배를 누르며 소리쳤다.
“마지막 한 번 더! 힘! 힘!”
고경아의 비명 소리가 울렸다.
마침내 작은 머리가 보였다.
젖은 머리카락, 이마, 눈, 코, 입, 가녀린 어깨가 차례차례 빠져나왔다.
길이 좁다고 느껴지던 그 순간 미끄러지듯 작은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쭈글쭈글하고 빨간 피부에 눈도 뜨지 못했다. 젖은 머리와 얼굴 군데군데 허연 태변까지 묻어 있었다. 포동포동하고 깨물고 싶을 정도로 어여쁜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이 떨릴까?
감동, 기쁨, 환희가 물밀듯 밀려올 줄 알았는데 그저 먹먹할 뿐이었다. 신생아에게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내내 딸만 바라보았다.
찌이익! 찌이익!
입 안의 이물을 제거했다.
따닥! 따닥!
“응애! 응애! 응애!”
힘찬 울음이 터졌다.
꾹! 꾹!
앙증맞은 발 도장을 찍었다.
산모와 아이의 이름과 성별이 기록된 발찌를 채웠다.
무사히 태어난 것만도 고맙고 감사한 일이었다.
힘찬 울음만큼 건강할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과정을 끝낸 간호사가 활짝 웃으며 딸을 고경아의 품에 안겼다.
9개월 동안 한 몸이었으면서도 얼굴 한번 보지 못한 딸을 이제야 보았다.
딸의 체온을, 딸의 숨결을 받은 고경아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벅차다 못해 멍해진 김지훈은 아무 말도 못하고 고경아의 손만 잡았다.
딸을 안았다.
9개월 동안 머물렀던 아기집에서 나와 드디어 세상의 첫 빛을 받은 딸이었다. 혹여 다칠까 조심조심 뺨에 살짝 손을 가져갔다. 보드라운 감촉과 따스한 딸의 온기에 결국 눈가를 붉히고 말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의 분신이었다.
무엇인가 심장 깊숙한 곳에서 밀려 나와 가슴을 뜨겁게 메웠다. 마치 터질 것처럼 차고 넘쳐 숨도 제대로 쉬기 어려웠다.
이 순간의 벅참을 누가 알까?
한참이 지나서야 막혔던 말문이 열렸다.
“경아 씨, 고마워요. 우리 딸 정말 예쁘죠?”
고경아가 눈시울을 붉히며 손을 꼭 잡았다.
분만실의 소란이 멀리 사라졌다. 엄마와 딸과 아빠의 숨결이 작은 공간을 가득 채웠다. 가슴 떨리도록 다가오는 사랑과 행복에 더 이상 입을 열 수 없었다.
한 아이를 살리고, 한 아이를 얻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