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드러내지 않아 빛이 나는 사람 Ⅱ (2)

확실한 해부학 지식하에 정확하게 접근했다. 다른 구조물일 리가 없었다.

확신을 가져야 할 순간이었다.

‘혈관은 분명히 아니다. 담즙 양이 너무 적을 가능성이 높아. 더 노출시키는 수밖에 없겠어.’

“진우야, 담즙은 안 보이지만 담관이 맞는 것 같다. 간 쪽으로 더 파고들어 가서 확실하게 확인하자. 모스키토!”

조금만 크게 움직여도 바로 간이다.

긴장이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사악! 사악!

“보비!”

삐이이익! 삐이이익!

간까지 간격이 손가락 한 마디 길이도 되지 않았다. 정상적으로 남아 있는 담관에 절대 손상을 주면 안 된다.

극도의 신중함 속에 조금씩 지방조직을 박리하며 담관을 노출시켰다.

수술 부위가 말도 못하게 좁았다. 기구를 제대로 조작하기 힘들 정도로 동작 제한이 너무 심했다.

경험이 거의 없는 수술인 탓에 과도한 긴장까지 이어졌다. 축축해진 등이 뻐근할 지경이었다.

익숙한 일이다.

끈질기게 담관을 찾던 김지훈이 눈을 반짝였다. 드디어 다소 굵어진 부분을 찾아냈다.

예상보다 훨씬 더 간과 가까웠다. 이 부분에서도 담즙이 묻지 않는다면 수술이 불가능해질지도 몰랐다. 슬며시 다가오는 불안을 밀어내야 했다.

윗면을 살짝 절개한 후 거즈로 닦아 냈다.

담관 부위와 맞닿았던 부분을 무영등 아래로 가져갔다. 밝은 불빛 아래로 새빨갛게 묻은 피만 보였다.

가슴이 철렁해지는 순간 진한 갈색 흔적이 점점이 보였다. 분명히 담즙이었다.

송진우와 오하석이 훅! 숨을 내뱉었다.

“후우! 담관 맞네. 진우야, 이 정도 굵기면 정상이라고 봐도 되겠지?”

굵기를 가늠한 송진우가 고개를 살짝 움직였다.

“예. 정상적인 굵기 같습니다.”

이제 고비 하나를 넘었을 뿐이었다.

정상적인 부분을 찾았다고 곧바로 소장을 이으면 치명적인 문제가 남는다. 연결 부위 상부에 위치한 담도가 좁아져 있으면 실패나 다름없었다. 간 내 담도는 방법이 없지만, 간 밖인 이상 좁아진 부분을 최대한 피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오피 콜란지오그람 준비합시다.”

Operative Cholangiogram.

(수술 중 담도 촬영)

간담도의 선구자이자 진정한 대가인 허경발 교수가 개발한 방법이다. 무작정 조영제를 넣고 찍으면 행여 다른 병변이 있을 경우 정확하게 찍히지 않는다. 때문에 담도 굵기에 따라 조영제 농도를 적절하게 조절해야 한다.

‘큰 스승님 같은 분이 안 계셨으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눈 감고 수술하는 것과 다를 게 없겠지?’

새삼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조영제가 준비됐다.

가장 가느다란 관을 담관 안으로 넣고 단단히 묶었다.

대기하고 있던 방사선 기사가 포터블(Portable:이동식 방사선 촬영 장치)을 끌고 들어와 촬영 준비를 마쳤다.

김지훈의 눈짓에 수술 팀 모두 뒤로 물러났다.

조영제를 주입하는 사람은 촬영 중 방사선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당연히 납으로 된 차폐복을 입어야 하지만, 오염 우려와 수술복을 또 갈아입어야 하는 번거로움에 그대로 진행했다.

정형외과처럼 자주 있는 일이 아니기에 피폭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란 인식이었다.

이 역시 안전 불감증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뜯어고쳐야 할 일일 것이다.

부드럽게 조영제를 밀어 넣으며 소리쳤다.

“슛! 판 갈아 주세요. 슛! 다시 판 갈아 주시고.”

위이잉! 찰칵! 위이잉! 찰칵!

몇 장의 사진을 찍고 결과를 기다렸다.

상당한 압박감이 다가왔다.

조영제를 주입할 때 심한 저항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담도가 가늘고 길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좁아진 부위가 또 있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간 내 담도까지 다발성으로 좁아져 있다면 다른 방법이 없는데 어떻게 하지? 간 이식이 대안이라지만 수술할 수 있을 때까지 살 수 있을까?’

째깍! 째깍!

무거운 공기 속에 시간이 흘렀다.

송진우와 오하석도 연거푸 문을 쳐다보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입 안이 바짝 마르는지 입가를 오물거리며, 눈가를 찌푸렸다.

김지훈도 다르지 않았다.

수술 성패 정도가 아니라 한 아이의 목숨이 달린 일이기 때문이었다. 희망을 품은, 바라 마지않는 결과가 나오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제발! 제발!

드디어 수술실 문이 열렸다. 간호사가 재빨리 사진을 받아 걸었다.

두근두근!

어린아이 심장처럼 가슴이 뛰었다.

오염 방지를 위해 팔짱을 낀 채 가까이 다가서는 김지훈의 눈가가 흔들렸다.

오늘 수술의 성패를 좌우할 결정적인 요소였다. 한 아이를 살리고, 한 아이의 엄마에게 희망과 기쁨을 줄 수 있는 소견이 반드시 보여야 했다.

‘제발 더 이상 좁아진 부분이 없기를.’

나뭇가지처럼 담도가 간 속으로 뻗어 나간 소견이 관찰됐다. 총수담관에 이어 좌우로 나누어지는 간 내 담도를 따라가던 김지훈이 훅! 숨을 몰아쉬었다.

“송진우, 오하석, 어때?”

“조영제 튜브를 연결한 부분 위쪽에서만 좁아진 부분이 보입니다. 간 내 담도는 정상인 것 같습니다.”

“맞아. 간 속은 정상이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말이었다.

활짝 웃으려던 오하석이 흠칫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무슨 일일까?

김지훈은 물론 송진우의 얼굴이 심각하기만 했다.

한동안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제야 좁아진 부분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깨달았다.

6주 된 아기의 담도와 소장은 너무 작고 가늘어 직접 연결할 수가 없다. 따라서 담관과 간에 인접한 조직에 연결해야 한다. 담관을 소장으로 덮어 버린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 간과 직접 연결해야 할 수도 있었다.

이준민이 그런 경우였다.

최악은 피했지만 최상의 결과도 아니었다.

수처와 타이가 정교하고, 정확하지 않으면 수술 후 합병증 발생 가능성이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6주 된 아이는 수술 후 발생할 수 있는 사소한 합병증조차 버티지 못할 것이다.

김지훈이 눈빛을 굳혔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반드시 이어 주어야 한다. 지금은 오직 그 한 가지 목표만을 생각하며 집중해야 할 때였다.

송진우의 손이 절대적이었다.

강한 신뢰만이 자신감을 북돋아 줄 수 있었다. 긴장을 유발시키는 말은 도리어 문제만 만들 것이다.

스승이 자신에게 한결같은 모습을 보인 것처럼 평소와 똑같은 자세와 표정으로 송진우를 보았다.

“진우야, 시작하자. 마취과, 간과 인접한 부위에서 소장을 이어야 합니다. 바이탈에 유념해 주십시오.”

“걱정하지 마시고 진행하세요.”

사전에 계획했던 과정이 무의미해질 정도로 수술이 어려워졌다. 고도의 집중력과 적절한 긴장, 그동안 쌓은 경험과 실력, 수술 팀의 조화까지 모든 것이 어우러져야 성공할 수술이었다.

이미 다 갖췄다. 자신감을 갖고 시작할 때였다.

“담관부터 모두 노출시키자. 모스키토!”

담관을 가로로 잘라 구멍만 남긴다면 수술 후 유착이나 협착으로 좁아질 수 있었다. 원칙은 관을 따라 길게 절개해 최대한 넓은 출구를 만드는 것이다.

담관을 덮고 있는 주변 조직 박리를 시작했다.

다른 부분은 손상이 가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해야 했다. 불과 1~2밀리미터 아래 간으로 들어가는 굵은 혈관이 있을 것이다.

간에 가까워질수록, 모스키토 끝이 조직 속으로 사라질 때마다 수술 팀의 긴장이 크게 치솟았다.

상당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가느다란 담관이 모두 노출됐다.

답답한 신음이 터졌다.

정상적인 부분이 사진에서 확인한 것보다 훨씬 더 간에 가까이 붙어 있었다. 간격이 너무 좁아 간을 건드리는 과정을 피할 길이 없었다.

‘후우! 조금만 더 아래쪽에 있었으면 그나마 안전했을 텐데 최악이네. 송진우, 넌 우리 수술 팀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야. 자신을 믿고 가자.’

강한 신뢰의 눈빛을 받은 송진우가 어금니를 꽉 물었다. 단 한 번이라도 타이를 끊어 먹거나 제대로 밀착시키지 못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잘 알고 있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담관 오픈합니다. 제일 작은 가위 주세요.”

신중을 기해 담관을 따라 길게 절개했다.

좁아진 부분이 거의 끊어지다시피 잘렸지만 남겨 둘 수밖에 없었다. 제거한다고 건드리면 손상만 가중시킬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댐처럼 담즙을 막았던 협착 부위가 제거됐다.

간 속에 고여 있던 담즙이 흘러나오며 거즈를 적셨다. 염증으로 진한 갈색이었지만 좋은 징후였다. 하기에 더욱 강한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연결할 소장부터 끌어 올려야 한다.

일부 소장을 잘라 연결 통로를 만드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길이가 너무 짧아 과도한 압력이 가해지면 조직 괴사가 일어난다.

조심하고 또 조심한 끝에 필요한 길이를 확보했다.

노출된 담관 및 주변 조직과 연결하면 끝이다.

가장 작은 바늘, 가장 가는 실을 사용해 연약하면서도 이질적인 두 장기를 연결해야 한다.

전공의 때부터 숱하게 해 온 술기였지만 6주 된 아이의 장기다. 가장 어렵고 힘든 과정일 수밖에 없었다.

성공을 위해 필요한 요인은 엄청나게 많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단 두 가지, 실력과 자신감이었다.

‘우리는 최고의 수술 팀이다.’

“수처 주세요.”

작은 바늘이 날카롭게 빛났다. 가느다란 실은 마치 투명한 것처럼 보였다.

첫 번째 수처를 진행했다.

얇은 소장 벽과 담관 주변 조직이 주는 감각이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오직 약하다는 느낌, 바늘과 실에 가해지는 힘만으로도 찢어질 수 있다는 느낌만이 다가왔다.

송진우가 극도의 긴장 속에 타이를 진행했다. 조여진 매듭을 보는 눈가에 땀이 흘렀다.

“이 정도면 충분해. 긴장하지 말고, 침착하게 하면 돼.”

수처와 타이가 이어졌다.

모든 조직이 너무 얇고, 약했다.

김지훈의 이마도 땀으로 젖어 들었다.

타이가 진행될수록 송진우는 숨소리도 함부로 내지 못했다.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땀에 수술복이 축축하게 젖은 지 오래였다.

“수처! 타이! 컷!”

나직하지만 단호한 목소리였다. 잘하고 있다는 응원과 스스로 자신감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점점 간에 가까워졌다.

더 이상 주변 조직과 연결할 수 없는 부분에 다다랐다. 이젠 간과 소장을 연결해야 한다.

가뜩이나 힘들었는데 전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모든 과정이 어려워졌다.

리트랙터를 잡은 오하석이 꼼짝도 하지 못했다. 많은 경험을 가진 김지훈도 극도로 긴장했다.

첫 번째 바늘을 찔렀다.

6주 된 아기의 간이다. 간 속에 분포한 혈관이나 담도는 그만큼 약할 테고, 조금만 깊게 찔러도 위험할 수 있었다.

은빛 바늘이 모두 빠져나올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바늘구멍으로 흘러나오는 피의 양도 정확하게 판단해야 했다. 단 한 방울 피라도 어른의 피 한 방울과 같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우려했던 양상은 보이지 않았다. 바늘이 통과한 자리를 지켜보던 김지훈이 훅 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타이!”

송진우의 손이 아기의 배 속으로 사라졌다.

단단한 듯 연약한 간과 건드리기만 해도 찢어질 것 같은 소장의 이질적인 감촉을 느끼며 매듭을 만들었다.

신중하게 손가락을 밀어 매듭을 마무리했다.

실조차 간에 손상을 줄 수 있었다.

모든 시선이 연결부로 향했다.

또르륵! 한 방울의 피가 흘렀다.

오하석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보비도, 수처도 할 수 없다. 타이가 제대로 됐다면 멈춰야 한다.

김지훈이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직접 했어도 이보다 더 확실하게 타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결과를 반드시 확인해야 했다.

스멀스멀 새어 나오던 피가 스르르 사라졌다.

더 이상 나오는 피는 없었다.

안도의 한숨이 터졌다.

‘잘했어. 역시 송진우답다. 이대로만 가자.’

두 번째, 세 번째.

단지 네 바늘에 불과했다.

한 바늘 한 바늘이 긴장과 초조의 연속이었다.

금방이라도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땀방울에 송진우가 마취과 간호사를 찾았다.

지금까지 이보다 어려운 수술은 없었다. 한계를 절감한다는 느낌이 이런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마침내 마지막 바늘만 남았다.

찔러 넣기도 힘든 좁디좁은 공간 속에서 김지훈의 손과 기구가 동시에 움직였다. 간과 소장의 차이를 확실하게 느끼며 바늘을 뺐다.

송진우의 타이가 이어졌다.

‘침착하자. 여기서 실수하면 나 때문에 수술을 망치는 거야. 집중하자.’

‘선생님! 힘내요.’

가느다란 실에서 전해지는 감촉을 느끼며 손의 감각을 유지했다. 손끝과 맞닿은 간의 단단함에 의지해 연약한 소장을 연결했다.

매듭이 단단하게 조여졌다.

조심스럽게 손을 뺀 송진우가 입술을 꽉 물었다.

이제 집도의의 판단만 남았다.

김지훈이 신중하게 연결부를 확인했다.

‘소장과 주변 조직은 잘 연결됐고, 간과의 연결부 역시 확실하게 밀착됐어. 문제가 생긴다면 진우가 아니라 내가 실수한 거야. 송진우, 정말 잘했다. 고맙다.’

송진우와 오하석이 김지훈의 입만 바라보았다.

‘실수가 있었으면 어떻게 하지?’

‘선생님, 확실하게 된 거죠?’

간절한 눈빛에 도리어 여유가 찾아왔다. 그만큼 최선을 다했고, 자신이 가진 실력과 능력을 모두 쏟아 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었다.

김지훈이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김진호 선생님, 마무리합니다.”

이보다 흥분되고 기쁜 말은 없을 것이다.

송진우가 주먹을 꽉 쥐며 부르르 떨었다. 오하석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