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868화 (868/1,329)

1화. 드러내지 않아 빛이 나는 사람 Ⅱ (1)

이준영 교수의 수술이 시작됐다.

외과 사상 첫 시연, 첫 수술이다.

아무리 강심장을 가졌다고 해도 누구나 가슴 떨릴 순간이건만, 표정부터 행동까지 평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수술실에 감돌던 은근한 긴장이 밀려났다.

공표한 대로 4년 차 치프인 이혁원이 퍼스트를 섰다. 이제는 고경아에 이어 일반외과 수술 팀의 노련한 구성원 중 한 명이 된 간호사와 손을 맞췄다.

“수술 시작합니다. 메스!”

3포트로 진행하는 과정이 회의실과 강당에 마련된 대형 TV를 통해 중계됐다.

물 흐르듯 막힘없는 기구 조작.

완벽하게 시야를 확보하는 퍼스트.

간호사의 노련한 어시스트.

3개의 손이 조화롭게 어울리며 담낭이 순조롭게 절제되기 시작했다.

가장 흔하고, 가장 빈번하게 시행되는 수술이었지만 확실히 달랐다.

참석자 모두 복강경 수술에 일가견이 있는 의사들이었다. 기구 움직임만 보아도 집도의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말이다.

‘역시 대가라고 불리는 이유가 있네.’

‘저런 식으로 처리하면 3포트로 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겠어. 이준영 교수와 김지훈이라! 허경발 선생님의 뒤를 확실하게 잇는 건가?’

여기저기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나직한 대화가 오고 갔다.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면서도 안전해 보이는 과정은 노련한 의사들에게도 많은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시연 행사에 참석한 이유가 있다.

대가라는 의사를 따라잡기 위해,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모든 신경을 집중시켰다.

연배나 체면을 따질 일이 아니었다.

최인호 교수와 진충기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

이제 첫 번째 시연을 시작했을 뿐인데, 이준영 교수의 수술이 진행될수록 주변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변했다. 기본 수술에서도 이 정도 호응을 보인다면 대단한 성공을 예약한 것과 다름없었다.

둘 다 품성이나 인성과는 무관하게 실력은 뛰어나다. 하나를 보면 열은 몰라도 대여섯 정도는 알 수 있는 수준이다. 하기에 스스로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었다.

눈가에 잡힌 주름이 깊어졌다.

‘이준영! 확실히 이름값을 하는구나. 제길! 어떻게든 우리가 시연을 잡았어야 했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가다간 도리어 눌릴 수도 있어. 방법이, 방법이.’

‘최인호 선생님과 비슷한 실력인 줄 알았는데, 더 매끄럽다. 이런 실력자에게 배웠다면 김지훈도?’

생각은 달랐지만 두려움은 같았다.

복강경 수술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담낭 절제술에서 두려움이란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에 얼굴이 일그러질 정도였다.

동시에 김지훈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졌다.

왜 첫날 시연에 참가하지 못했을까?

학회 발표대로 자신의 실력을 한껏 드러낼까?

어떤 수술을 준비했을까?

혹시 견제와 질시에서 비롯된 말이 사실이었을까?

스승에 이어 제자까지 압도적 실력을 보인다면 모든 명성과 명예는 S 병원 차지가 될 것이라 여겼다.

세상이 그렇게 굴러갈 수 없건만, 때론 초조함과 라이벌 의식이 눈을 멀게 하는 모양이다.

째깍! 째깍!

10시 정각.

조기 위암과 조기 대장암 수술이 시작됐다.

새로운 관심과 기대가 쏠렸다.

3개의 대형 TV에서 각기 다른 수술이 방영됐다.

신현수의 정확하고 침착한 손.

이경석의 빠르면서도 간결한 손.

전공의와 간호사의 확실한 어시스트.

도저히 이제 전임이 된 의사들의 수술이라 볼 수 없었다. 간간이 타고난 써전이란 소리를 하곤 하지만, 날 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그동안 얼마나 노력했는지 짐작조차 쉽지 않았다.

여기저기에서 나직한 감탄이 터졌다.

선배 의사들에게는 가히 눈으로 즐길 수 있는 최고의 호사라 할 수 있었다. 경험이 없는 의사는 모든 과정을 머릿속에 담기 바빴고, 있다고 해도 자신의 수술과 비교하며 차이점을 파악하기 위해 눈을 크게 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열기가 고조됐다.

처컥! 처컥! 처컥!

“보비, 모스키토, 켈리, 카메라.”

마치 수술실에 있는 것처럼 몰입하기 시작했다.

진충기의 눈가에 주름이 점점 더 깊어졌다.

‘신현수와 이경석까지 저 정도 수준이었어? 이제 전임인데 언제 저렇게 실력을 쌓았지?’

견제의 대상은 김지훈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첫 번째 수술 시연이 끝났다.

소문은 부풀기 마련이라는데, 완벽하다는 말만 떠오를 지경이었다. 이준영 교수가 대가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여지조차 없었다.

또다시 참석자들의 궁금함이 치솟았다.

이런 스승에게 배운 제자의 실력은?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닌 김지훈은 왜 안 보일까?

이준영이라는 의사에게 전적인 신뢰를 받는 제자의 실력이 과연 자랑할 만한지, 아니면 거품에 불과한지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누군가는 전자를 믿었다.

누군가는 후자이길 바랐다.

김지훈의 손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순간 확실한 결론이 날 것이다.

모든 참석자가 같은 마음일 수는 없었다.

뒤늦게 모습을 보인 고성문이 툭하면 시계를 보았다. 수시로 휴대폰 메시지를 확인하며 시연까지 챙겨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선생님, 애들 태어나는 거 한두 번 본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초조해하세요? 별 탈 없이 잘 낳을 겁니다. 분만 들어간다고 연락 올 때까지 마음 푹 놓으시고, 시연장에서는 수술에만 신경 쓰세요.”

“송 원장, 그게 마음처럼 안 돼.”

“하긴 그렇긴 합니다. 김 교수라도 옆에 있으면 좋을 텐데, 지금 하는 수술이 만만치 않네요. 시연도 못하고 경아 옆에 있어 주지도 못하는데, 김 교수한테 서운하지 않으세요?”

“서운하긴, 고맙기만 해. 내 자랑 같아서 말은 안 했는데, 사위 정말 잘 얻었어.”

“자랑 맞습니다. 사위도 자식인 거 아시죠? 그럼 팔불출인데 이걸 어쩌나. 큰일 났네요, 큰일.”

“이 사람이! 자네도 전에 아들 자랑 했었잖아?”

“끼리끼리 노는 겁니다. 에이! 이러면 안 되는데.”

타박과 핀잔을 주고받으면서도 고성문과 송재덕 교수가 밝은 미소를 머금었다. 눈가에 걸린 의미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이내 화면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신현수의 조기 위암, 이경석의 조기 대장암 수술이 본격적인 과정에 돌입하고 있었다. 수많은 참석자들이 내뱉은 숨소리만이 나직하게 흘렀다.

첫 시연이 시작되기도 전.

김지훈, 송진우, 오하석이 담도 폐쇄 수술을 앞두고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첫 시연 포기도 모자라 고경아의 출산과 6주 된 아이 수술까지 이렇게 공교로운 상황도 없을 것이다.

동시에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가느다랗지만 버거워 보이는 코 줄, 배가 고파 그치지 않는 울음, 만에 하나를 대비해 발등과 이마에 잡은 수액 라인을 본 엄마 아빠의 서럽고 아픈 눈물을 뒤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지금은 수술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마취 시작합니다.”

김진호 교수의 손길이 여간 섬세한 것이 아니었다.

가장 가느다란 호흡용 튜브.

너무 어리고 작아 인공호흡기조차 사용할 수 없어, 대신 이용해야 하는 조그만 공기 주머니.

수술 중 마취 유지와 회복까지.

6주 된 아이에게는 모든 것이 강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어느 하나 무심코 지나칠 구석이 없었다. 이 또한 의료진에게는 강한 긴장이자 압력이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굳히며 이준민을 보았다.

전에 없이 집중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수술이었다. 고경아가 출산 중이라는 생각에 영향을 받으면 자칫 실수할 수도 있었다.

‘경아 씨, 미안해요. 많이 힘들 텐데 수술 중에는 잠시 잊을 수밖에 없네요. 우리 딸, 엄마 고생시키지 말자. 아빠 없다고 버티면 안 된다.’

“드레싱 시작하세요.”

수술 전 복부 소독을 시행했다.

조그만 천 하나로도 온몸을 덮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몸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수술실 냉기에도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수술대 위에 깔아 놓은 보온 매트가 체온을 지켜 주길 바랄 뿐이었다.

“마취과,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바이탈을 포함해 환자의 전신 상태를 꼼꼼하게 점검한 후에야 허락이 떨어졌다.

“시작해도 됩니다.”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차가운 빛을 뿌리는 칼날이 예리했다.

흔들리던 눈동자가 냉정함을 되찾았다.

손바닥만 한 배 우상복부를 가로로 절개했다.

피부도, 근육도 약하고 얇아 저항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조그만 리트랙터(끌개)로 아주 쉽게 복부를 벌릴 수 있었다.

신생아 수술의 가장 큰 난관은 모든 장기가 작고, 약하다는 것이었다. 배를 함부로 벌릴 수도 없어 수술 시야마저 극도로 제한된다.

수술 부위를 확보하는 순간 실감하고 말았다.

손바닥 반도 안 되는 간.

손가락 한 마디에 불과한 담낭.

새끼손가락 굵기만 한 소장.

‘작다. 너무 작다.’

황달로 모두 제 색깔을 잃은 상태였다.

어느 때보다 냉정해야 했지만 한 사람으로서, 치료를 맡은 의사로서 애처롭기 짝이 없었다.

송진우와 오하석의 눈가도 어둡기만 했다.

김지훈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울렸다.

“담낭부터 제거하자.”

담도 어딘가가 좁아져 담즙 흐름이 막혔다. 당연히 담즙을 저장하는 담낭의 기능도 상실된다. 제거하지 않으면 문제만 일으킬 불필요한 장기에 불과했다.

“보비, 모스키토.”

모든 장기가 조그맣고, 조직마저 연약해 극도로 신중을 기해야 했다.

6주 된 아이에 맞는 수술 기구는 따로 없다. 가장 작다고 해도 성인에게 사용하는 기구일 뿐이었다.

그 탓에 도리어 다루기 쉽지 않다.

담낭 끝을 잡았다.

조심스러운 손길을 따라 얇은 담낭 벽이 서서히 간에서 떨어져 나왔다. 가장 약한 보비 파워를 유지했지만 너무도 쉽게 박리됐다. 그만큼 인접한 간에 손상을 주기 쉽다는 말이기도 했다.

“동맥 주변 박리합니다.”

담낭 동맥과 담낭관은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늘었다. 무영등 초점까지 다시 잡아 가며 확실하게 확인하고 잡았다.

‘담낭관이 보이는 것만도 다행이다.’

“모스키토, 타이!”

타이에 사용하는 실 역시 너무 가늘어, 단 한순간이라도 삐끗하면 실이나 동맥 중의 하나는 끊어질 수 있었다. 공간이 작아 손을 놀리기도 힘들었다.

타이하는 송진우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매듭이 하나하나 늘어 갔고, 마침내 담낭이 제거됐다. 거즈를 살살 눌러 가며 출혈 여부를 확인했다.

‘후우! 유문 협착증 때는 더 어린 아이를 수술하는데, 모든 면에서 비교가 안 되네.’

눈가에 힘을 준 김지훈이 다음 과정을 상기했다.

이제 담도를 찾고, 최대한 좁아진 부분을 피해 소장과 연결해야 한다.

간 밖의 담도에 정상적인 부분이 있다면 모를까, 만일 간 내 담도에 연결해야 한다면 수술 자체가 치명적으로 변한다.

사실상 불가능한 수술이었다.

보호자에게 이미 설명했지만 최악의 경우 열었던 배를 다시 닫아야 한다.

한 아이를 포기하는 일이었다. 엄마 아빠를 부를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랐다.

불행히도 수술 전 검사에서 총수담관이 좁아져 있다는 것까지만 확인했다. 너무 어려 내시경을 이용한 담도 촬영술은 엄두도 내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수술실에서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비관적인 생각은 하지 말자.’

총수담관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부위의 박리를 시작했다. 중요 구조물이 많은 부분인 데다 6주 된 아이의 장기는 너무 작고 약했다. 주변 조직에 손상을 주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심스럽게 조직을 파헤쳤다.

통상 담관이 있어야 할 자리에 도달했다. 정상적인 크기여도 작고 가늘 수밖에 없는 탓에 육안으로 확인하기 쉽지 않았다. 한참 동안 박리된 조직을 확인하고, 또 확인한 끝에야 의심되는 구조물을 볼 수 있었다.

가느다랗고 길다.

신중하게 촉진해 혈관이 아님을 확인했다.

“진우야, 너도 확인해 봐.”

손을 가져간 송진우가 눈가를 찡그리며 구조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려 애썼다. 박동을 느끼기에는 너무 가늘었다. 압박 시 색깔 변화가 있는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밖에 없었다.

“혈관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잘 기억해 둬.”

혈관이 아니라면 총수담관 이외에는 존재할 구조물이 없는 부위였다.

어차피 좁아져 있는 상태라 잘라 내도 무방했고, 그런 방식으로 진행해야 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담관으로 의심되는 구조물을 가위로 잘랐다.

잘린 면에서 갈색 담즙이 보여야 하지만, 아무런 색도 관찰되지 않았다.

판단이 맞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단면에 거즈를 대고 담즙이 묻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거즈.”

신중하게 거즈를 가져갔다.

슬며시 힘을 줘 닦아 낸 후 착색 여부를 확인했다. 점점이 묻어 나온 색은 빨갛기만 했다.

순간 가슴이 서늘해졌지만 다행스럽게도 양이 적었다. 박리 조직에서 흘러나온 피가 분명했다.

혈관 여부를 몇 번이나 확인했건만 가슴이 은근히 떨렸다.

반복해도 거즈의 양상은 변하지 않았다.

경우의 수는 둘 중의 하나였다.

다른 구조물이거나, 담관이 너무 좁아 거즈를 적실 정도의 담즙조차 흘러나오지 못하는 경우였다.

후자라면 안심이지만 만일 전자라면 생각조차 하기 싫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다.

송진우와 오하석의 불안과 두려움이 느껴졌다.

김지훈이 눈가를 좁히며 수술 부위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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